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94
1895화 부디 현명하게 판단하시오
환족 족장은 눈앞에 있는 무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 있느냐?”
“천령우주입니다!”
순간 족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천령우주?”
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급문명에 속한 우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족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런 귀한 사람이 어찌 그런 하등문명지에 있단 말이냐?”
“그건 속하도 알 도리가 없습니다.”
환족 족장은 잠시 무언가 골몰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명령을 전하거라. 환족 십사단의 강자 전원은 지금 당장 천령우주로 가서 엽 공자를 호위한다!”
이 말을 듣자, 무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 족장… 하지만…….”
순간, 족장이 무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전원… 전원이라 하셨습니까?”
족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이 몸이 직접 가 봐야겠구나! 너희들에게 맡기려니 조금 불안한 구석이 있구나!”
무인의 표정은 이제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 족장! 굳이 족장께서…….”
이에 환족 족장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이걸로도 부족하다. 우리는 반드시 엽 공자를 최고 예우로 대접해야만 한다!”
“…….”
* * *
작은탑 안.
얼마간의 수련을 통해 엽현은 첫 번째 시공부터 사중시공까지 중첩하는데 이어, 시공압력을 형성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엽현은 이곳의 경지로 치면 십단의 고수로, 검기와 청현검까지 합친다면 동급에서는 무적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련을 진행하면서 엽현은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신인족과 접촉한 이후로, 줄곧 시공에 대한 수련만을 진행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치명적인 문제라 할 순 없겠지만, 천생 검수인 엽현으로서는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 엽현은 운백색 장포의 검수를 떠올렸다. 그는 시공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오직 검 하나만으로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 딱히 시공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그가 검 한 번만 휘두르면 시공이든 우주든 잘려 나가고 마니까.
검수!
엽현은 자리에 주저앉아 고민에 빠졌다.
한동안 검이 아닌 시공을 수련해오면서, 시공지도에 대한 엽현의 실력은 부쩍 성장한 상태였다. 그 결과 현재의 엽현은 십단은 물론 십일단의 강자와도 능히 견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동안 검도 조예는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검!
엽현은 손안의 청현검을 내려다보며 낮게 한숨을 흘렸다. 그동안 검을 너무 소홀히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다만, 지금 당장 검을 수련한다 해서 어떤 진전을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엽현의 검도는 오래전부터 한계에 멈춰 있었던 것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아무런 깨달음이나 도움 없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삼검이 이 세상을 떠난 지금, 검도에 관한 한 엽현보다 뛰어난 고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엽현은 반드시 스스로에 의지해 검도를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엽현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에 많은 성장이 있었는데 왜 부친과 형님의 검도 인장은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걸까?
생각이 미친 엽현은 곧장 두 개의 검도 인장에 접촉했다. 하지만 역시나 검도 인장은 잠이 든 듯, 잠잠하기만 했다.
순간, 엽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혹시 아버지가 떠나면서 검도 인장에 무슨 봉인이라도 걸어 둔 것은 아니겠지?
바로 이때, 문밖에서 이령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엽 공자! 안에 계시오?”
상념에서 벗어난 엽현은 곧장 작은탑을 빠져나왔다. 주변을 정리한 그는 문을 열고서 이령왕을 맞이했다.
엽현이 마주한 이령왕은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엽 공자, 나쁜 소식이오.”
“나쁜 소식?”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흑의인의 정체를 알아냈소. 그는… 오급문명지의 무인이오.”
이 말에 엽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짐작대로구려.”
“무슨 계획이라도 있소? 그들이 그대의 검에 눈독을 들인 이상, 조만간에 반드시 행동에 나설 것이오.”
엽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곳에 오자마자 오급문명지의 표적이 되다니… 너무 잘난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구려.”
“아니, 표적은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검이오. 혼동하지 마시오.”
엽현이 볼멘 표정으로 무어라 대꾸하려는 이때, 갑자기 머리 위로부터 강대한 압력이 휘몰아쳤다.
쾅-!
찰나의 순간, 온 천지가 금방이라도 소멸할 듯 희미해졌다.
이에 이령왕이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놈들이 왔나 보오!”
엽현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이때, 하늘이 찢어지면서 검은 장포를 입은 신비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흑의인을 본 순간, 이령왕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상대는 이령족의 체면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흑의인은 곧장 엽현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엽 공자, 제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소?”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내 검의 값을 얼마나 쳐 줄 생각이오?”
“그대의 목숨!”
흑의인의 이 말에 엽현이 입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 말은 곧 내놓지 않으면 날 죽이겠다는 소리겠구려?”
흑의인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부디 현명하게 판단하시오.”
이때, 곁에 있던 이령왕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감히 이령족의 구역에서 이리도 안하무인일 수가 있단 말인가!”
흑의인은 이령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설마 이령족이 이 일에 끼어들 생각은 아니겠지 말이오?”
“흥! 왜? 우리가 못할 것 같소?”
이 말에 흑의인이 어딘가를 향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순간, 삼십여 개의 기이한 허영이 사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의 면면을 확인한 순간, 이령왕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허영들의 경지가 최소 십이단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십삼단의 강자도 다섯이 섞여 있었는데, 흑의인까지 포함하면 총 여섯 명의 십삼단 강자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여섯 명의 십삼단 강자!
십삼단 강자 둘과 십이단 강자 아홉을 보유한 이령족과 비교하면 이는 엄청난 숫자였다!
물론, 결과는 붙어봐야 알겠지만, 진용만 놓고 보았을 때 상대는 이미 이령족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상황을 파악한 이령왕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때, 엽현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이는 그대와 나 사이의 일이오. 이령족은 빼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담판을 지읍시다!”
엽현은 이령족까지 수령에 끌고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이령족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마당에 괜한 피해까지 입힐 순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상대의 전력이 이쪽을 크게 압도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엽현의 말을 들은 흑의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이때, 엽현이 우물쭈물하는 이령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할 것 없소. 오히려 이 며칠 편의를 제공해 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오!”
이령족은 미안한 표정으로 엽현을 응시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엽 공자,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게 됐소.”
마음 같아선 엽현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그 대가가 어떤 것일지는 너무나도 자명했다. 한 부족을 이끄는 족장으로서, 자칫 수많은 무인들의 희생을 야기할 수도 있는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들이 나선다 해서 엽현을 지킬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필경, 상대는 오급문명지에서 온 강자들이었으니까!
엽현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럼 나중에 또 봅시다!”
대화를 마친 엽현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끝없이 펼쳐진 성공 한복판이었다. 뒤이어 흑의인과 그의 일행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은 청현검을 꺼내 들고는 흑의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남자답게 일대일로 하겠소? 아니면 계집애처럼 떼거지로 덤비겠소?”
“당연히 후자!”
말을 마치기 무섭게, 흑의인 뒤쪽에 도열해 있던 허영들이 엽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던 것이다!
수십 명의 무인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자, 엽현의 입가에 한 줄기 흉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 순간, 한 명의 혈인으로 변한 엽현이 정면으로 뛰어나가면서 청현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쉭-!
한 줄기 핏빛 혈광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이에, 가장 선두에 있던 십삼단의 강자가 검광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콰쾅-!
검광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이때, 어느새 허영에게 접근한 엽현이 번개처럼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발검술! 이천팔백 회 중첩!
이는 혈맥지력까지 동원한, 엽현이 펼쳐낼 수 있는 최강의 발검술이었다.
검이 번뜩인 순간, 사중시공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콰쾅-!
결국 버티지 못한 허영은 수천 장 밖으로 튕겨져 날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 순간, 한 줄기 강대한 기운이 순간적으로 엽현을 에워싸며 날아왔다.
쾅-!
검광이 흩어지면서, 이번에는 엽현이 만 장 가까이 뒤로 밀려났다. 그가 막 자리에 멈춘 이때, 갑자기 길이가 백 장도 넘는 거대한 손바닥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손바닥이 떨어지면서 생긴 압력은 엽현 주변의 공간을 층층이 부숴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이 순간, 엽현이 돌연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검을 뽑아 들었다.
한 줄기 검광이 손바닥에 닿은 순간, 우주 전체가 휘청일 정도의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이에 엽현은 재빨리 검을 길게 세워 검역을 펼쳐냈다.
쾅-!
검역은 가까스로 엽현을 보호해 냈다. 하지만 폭발의 여파로 엽현의 주변은 초토화되고 말았다.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있는 허영 하나가 포착됐다. 이 순간, 엽현의 신형이 돌연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땐 여전히 원래 자리에 있는 듯했지만, 엽현은 지금 미친 듯이 밑으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시공의 심연!
바로 이때, 엽현의 신형이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현실 세계로 복귀했다.
이 장면을 보자, 흑의인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시공의 심연조차 무용지물이란 말인가!’
허영들이 재차 출수하려는 이때, 흑의인이 갑자기 한 손을 들어 이들을 물러나게 했다. 뒤이어 흑의인은 손바닥을 뻗어 천천히 아래쪽을 향해 내리눌렀다. 찰나의 순간, 위력적인 공간압력이 사방에서 엽현을 짓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