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사람은 겸손하지 않으면 밖에서 쥐어 터지기 십상이다
물론 엽현은 대검수가 아니었다. 그가 일전에 검망을 뿜어낼 수 있었던 까닭은 단순히 일검정생사가 내포된 검기의 특성 때문이었다. 실력으로 말하자면 그는 대검수와 거리가 멀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무인들은 그의 영검(靈劍)에서 검망이 방출되자 두려움에 떨었다. 순간 모두가 동작을 멈추었고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순식간에, 방 안이 고요해졌다.
도도했던 여인의 눈빛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검수가 되기는 어려워도 결코 희귀하진 않았다. 하지만 대검수는 그 무게가 달랐다. 역사상 강국에서 배출된 대검수는 백명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은 듯한 눈 앞의 소년이 자신을 대검수라 칭했다. 살벌하기까지 했던 여인의 표정이 이내 부드러워졌다.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시신들을 가리키며 무인들에게 명령했다.
“이 시체들은 가져다가 개의 먹이를 주거라. 그리고 방금 도망친 자도 반드시 잡아 운선 밖으로 던져버려! 그리고…”
여인은 엽현에게 따스한 눈빛을 건냈다.
“이 공자 분을 특등실로 안내해라. 특등실을 이용하는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대접을 해드리거라!”
여인은 엽현에게 말을 건냈다.
“공자께서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보위의 안내를 받아 특등실에 들어선 엽현 남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특등실은 정말이지 컸다! 그들이 머물던 객실보다 족히 열배가 더 컸다. 푹신푹신한 양탄자와 휘황찬란한 장식 등 마치 황제의 거처 같은 느낌이었다.
“와아-!”
엽령이 사방을 둘러보며 탄성을 뱉었다.
“오빠, 너무 크고 아름다워!”
엽현은 말없이 살짝 미소 지었다.엽령이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눈으로 엽현을 올려 보았다.
“오빠, 오빠가 대검수라서 우리한테 이렇게 해 주는 거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엽현이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방금 전의 그 면사포를 쓴 여인이었다. 자리에 앉은 여인은 차를 따르면서 말했다.
“영선죽첨(靈仙竹尖)이라는 차입니다. 드셔 보시지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엽현이 차를 받아 마셨다. 부드럽고 청량한 차의 맛이 그의 목구멍을 통해 기분 좋게 전달됐다.
엽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면사녀를 바라보았다.
“청성의 엽현이라 합니다.”
“한향몽(寒香夢)입니다.”
짧게 이름만 대답하는 상대를 보고 엽현이 살며시 웃었다. 상대는 자신의 정체를 더 이상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다. 한향몽이 차를 한 모금 삼켰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검수가 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공자님은 어디서 수련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엽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에 한향몽이 미간을 찌푸렸다.
“공자님, 무슨 뜻입니까?”
엽현이 한향몽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한 소저, 제가 무례했다면 용서해주시오. 허나 묻고 싶은 것이 있소. 그대는 상대의 배경을 보고 사람을 사귀는 편이오?”
한향몽은 순간 당황했다. 엽현이 이렇게 나오리라곤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
“본디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이익이나 배경보다, 사람의 진실성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오. 만약 그대가 사람을 사귀는 방식이 이러하다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소.”
엽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령아, 가자!”
엽령은 빠르게 일어나 엽현을 따라갔다. 엽현은 아무 망설임 없이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이때, 한향몽이 다급히 외쳤다.
“공자님, 기다리세요!”
엽현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한향몽이 전보다 나긋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가 당돌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엽현이 몸을 돌려 한향몽을 바라보았다.
“한 소저, 방금 전 객실에서 벌어진 일을 눈감아 준 일은 잊지 않겠소. 언젠가 제가 보은을 하겠소!”
엽현은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향몽은 엽현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날이 이미 어둡습니다. 공자께서는 자리에 드시지요.”
안부인사를 전한 한향몽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한향몽이 나가자마자 엽령이 똘망똘망한 눈빛을 한 엽령이 물었다.
“오빠, 대검수가 그렇게 대단한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오빠는 대검수야?”
“조.만.간.”
“와…, 그럼 오빠 방금 전에 한 말은 다 거짓말…….?”
“어허! 조용히 하지 못할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내 동생이라도 살인멸구(殺人滅口) 할 수밖에 없으니…….”
“하하하…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어도 전혀 무섭지 않아…….”
반 시진 후, 엽현은 곤히 잠든 엽령을 침대에 뉘여 놓고 계옥탑으로 들어가서 수련을 시작했다.
강자만이 존중을 받는다!
엽현이 느낀 세상의 이치는 그랬다. 이미 그의 경지는 기변경 절정과 소검수(小劍修)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그의 힘, 속도 그리고 반응력은 기변경 무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고수들이 즐비한 황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직 부족했다. 능공경 이상의 고수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엽현은 끊임없이 수련을 해야 했다.
지금 엽현은 이미 그림자와 비슷한 실력을 보였다. 여기서 만족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우선 엽현은 빠른 시일 안에 그림자를 완전히 압도하는 게 목표였다.
계옥탑 안은 그야말로 엽현의 독무대였다. 그가 수련할 때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고독한 검수가 될 수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천녀도 엽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엽현 역시 묵묵히 수련에 임했다.
수련이란, 본래 지루하고 고독한 법!
두 시진 후, 엽현은 손에 칼을 쥐고 자리에 멈춰 섰다. 이미 그의 전신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천녀님, 매번 그림자와 겨룰 때마다 이제는 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다음 대련에서도 딱 거기까지 느낌입니다. 제가 다가가려할때마다 한발짝 더 나아가는 느낌입니다. 혹시 천녀님께서 그림자의 실력을 강화하십니까?”
이에 천녀가 응답했다.
[네가 그런 느낌을 받는다니 네 실력이 매번 상승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청성이나 강국을 기준으로 보면, 네 기초는 훌륭하다. 만약 범위를 세계로 넓힌다면, 너는 아직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다. 일단 기변경의 단계에 더 머물면서 기초를 닦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영검(靈劍)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라.]“알겠습니다.”
엽현은 어기경에 이르기 전에 모든 부분의 기초를 한 단계씩 끌어 올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엽현이 수련을 끝내고 휴식에 들어갔다.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되기 마련. 수련도 마찬가지여서 충분한 휴식은 필수적이다.
한 시진 후, 엽현이 잠에서 깨어났다. 뒤이어 엽령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그들의 방으로 아침 식사가 배달됐다. 엽현 남매는 그 많은 음식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었다.
어린 시절, 많은 날을 배곯고 살아온 남매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식사 후, 엽현은 동생을 데리고 배의 갑판 위로 올라갔다.
운선은 지상에서 수백 장 떠 있는 높이에서 공중을 날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갑판에 나와 있었다. 엽현은 엽령을 데리고 가장 앞쪽에 있는 뱃머리로 향했다. 운선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특등실에 머무는 선객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니, 이름 모를 새들이 곡예를 펼치며 수많은 산봉우리들 사이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와아-!”
엽령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오빠, 보여? 산들이 엄청 작아 보여!”
엽현이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얀 구름과 푸른 산의 조화로운 모습은 마치, 선계에 들어온 듯했다. 시야가 제한적인 땅과 달리 공중에서는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청성은 작고, 세상은 넓다.
인간의 존재는 미미할 뿐이고, 천지는 광대하구나!
엽령이 뱃머리 쪽으로 걸어가 난간을 붙잡고 탄성을 내질렀다.
“정말 아름답다!”
“촌스러워 죽겠네!”
누군가의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엽령의 귀에 박혔다. 고개를 돌리니 엽령의 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화려한 옷을 입고 서 있었다. 화려한 옷에 비해 몸은 보잘 것 없었다. 너무나 뚱뚱한 나머지, 눈동자조차 살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엽령은 엽현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얼른 시선을 돌려 무시했다. 그 남자아이는 엽령의 옆으로 다가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옷 좀 봐. 누더기가 따로 없네. 너는 옷 살 돈이 없니?”
엽령은 남자아이의 말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옷이 뭐 어때서! 몸만 가리면 됐지. 어쨌든 나는 오빠가 있으니 다른 건 필요 없어!”
남자아이가 자신의 옷을 툭툭 털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 옷을 뭘로 만든 줄 알아? 바로 요수(妖獸)와 영호(靈狐)의 가죽을 벗겨서 만든 거야. 이거 한 벌이면 네 옷 정도는 십만 벌은 살 수 있을 걸?”
엽령이 남자아이의 옷을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서 뭐, 나는 우리 오빠가 있는데.”
그러자 남자아이는 난데없이 품 안에서 맑고 투명한 옥석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엽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수하고 흠이 없는 옥석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번엔 엽령이 관심을 보이자, 남자아이가 또 잘난 체했다.
“이건 상급 영옥(靈玉)이야. 가히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 넌 없지?”
엽령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난 오빠가 있어!”
소년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얘기 좀 그만할 수 없어?”
엽령은 남자아이를 무시한 채, 먼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난 오빠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그랬다. 엽령, 그녀에게는 엽현이 전부였다. 아니 그 이상은 필요치 않았다.
남자아이가 엽령의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네 오빠가 그렇게 대단해?”
“엄청!”
“그래봐야 우리 아부지만큼 대단할까!”
엽령이 고개를 비스듬히 둔 채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너희 아빠도 대단하셔?”
남자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아부지가 바로 천산성(千山城)의 성주시라구! 천산성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조아리는 성주 말이야!”
엽령의 눈이 크게 떠졌다.
“우와, 대단하다!”
“당연하지! 천산성에서 우리 집이 가장 크다!”
엽령이 남자아이를 다시 훑어보았다.
“우리 오빠가 말하길, 모름지기 사람은 겸손하지 않으면 밖에서 쥐어 터지기 십상이라 그랬어.”
“감히 우리 아부지가 있는데 날 건드린다고? 흥, 어림도 없지!”
엽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의 눈에 남자아이는 아직 철부지 응석받이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아이가 손을 들어 엽현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네 오빠야?”
“맞아, 멋있지?”
“칫, 멋있어 봤자지. 멋있다고 밥을 10끼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엽령은 더 이상 소년을 상대하지 않고 엽현의 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사색에 잠긴 엽현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엽령은 조용히 엽현 옆에 서있었다.
어느덧 운선은 천산을 넘어 강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강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족히 수천 장에 이를 정도로 넓은 대하(大河)였다. 엽현은 참선 중인 노승 마냥, 여전히 꼼짝 하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