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동생 신랑감이라고?
척발소요는 어쩐지 처음부터 자꾸 엽현의 술수에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할게. 내가 황성을 찾은 건 싸우기 위해서야.”
엽현이 흑염마에서 훌쩍 뛰어내리고는 고개를 들어 척발소요를 바라보았다.
“만나서 반가웠어. 나는 지금부터 창목학원과 암계와 싸우러 가야 해. 여기서부터는 따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난 네게 피해가 가는 게 싫거든.”
엽현이 몸을 돌려서는 성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람은 항상 염치라는 게 있어야 한다.
만약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선을 넘어버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검수!”
엽현의 등 뒤에서 척발소요의 음성이 들려왔다.
엽현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척발소요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넌 능글맞은 구석이 있지만 사람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나랑 친구할래?”
엽현이 씩 웃었다.
“엽현, 청주 강국 출신, 창란학원 원장이야!”
척발소요가 똑같이 따라 웃었다.
“척발소요, 중토신주, 척발가(拓跋家) 최고 재능, 요얼방 구 위, 조만간 세상을 구할 자!”
“하하! 소요, 세상을 구하려면 조금 더 분발해야 할 거야!”
척발소요가 진심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
엽현이 다시 성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막 성 아래에 도착했을 때, 한 중년인 하나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법경이었다.
중년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엽현을 응시하며 자신의 기운을 낮추었을 뿐이다.
곧, 중년인의 기운이 만법경에서 신합경으로 낮아졌다.
중년인이 천천히 엽현을 향해 다가왔다.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여는 순간, 엽현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중년인의 코앞에 엽현이 나타났다. 게다가 어느새 나타난 열두 금인이 중년인의 모든 방위를 막고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번쩍이는 한 줄기 검광!
잠시 후,
열두 금인이 엽현의 뒤편으로 물러나자, 그 자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머리통 하나가 나타났다. 중년인은 죽는 순간까지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열두 금인의 압박 아래, 중년인은 단 한 번의 출수 기회도 잡지 못하고 처절하게 죽임을 당했다.
열두 명의 금인 그리고 엽현. 이들의 조합으로 신합경 강자 하나 죽이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게 된 것이다.
엽현이 문득 고개를 치켜들고 성문을 바라보았다.
“창목학원, 내가 왔다.”
말을 마친 엽현이 빠른 걸음으로 성 안으로 들어섰다.
이때, 엽현을 따라오던 흑발소요가 자신이 타고 있는 흑염마를 한번 바라보고는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검수! 말 안 가져가?”
한편, 엽현이 도착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대운제국 황성 전역을 휩쓸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창목학원이 위치한 산 아래로 모여들었다.
창목학원은 천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청주의 삼대 패주(霸主)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창목학원이 발을 한 번 구르면 청주 전체가 벌벌 떤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과장이 좀 섞인 표현이긴 하지만, 그만큼 창목학원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한 소년이 대운제국에 도착했다. 중요한 점은 이 소년이 창목학원을 찢어발기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창목학원을 찢어발기겠다는 과감한 도발!
이런 말은 아무리 저 대운제국이라도 감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창목학원의 산문 아래에는 이미 황성 도처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강국에서 온 소년이 어떻게 창목학원을 찢을 것인지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창목학원 산문 앞, 거대한 광장에는 거의 십만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단 하나!
엽현이었다.
황성에 들어온 엽현은 한 골목에 붙어있는 객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장님, 계란 두 개 얹어서 국수 두 그릇만 시원하게 말아 주십시오!”
“젊은 총각 국수 두 그릇!”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면을 한 움큼 집어 들고서 익숙하게 국물 속에 빠뜨렸다.
잠시 후, 엽현 앞으로 뜨겁게 말아진 국수 두 그릇이 나왔다.
빠르게 젓가락을 비비던 엽현이 잠시 손을 멈추고 자신의 앞자리에 놓인 국수를 바라보았다.
“령아, 보고 싶다!”
엽현이 뜨거운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국수를 입안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엽령은 엽현에게 있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엽현은 문득 그날이 생각났다.
엽령이 여덟 살 되던 해에 밖에 나가 반나절 동안 국수집 앞에 물끄러미 서 있던 그날을.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엽령의 입안엔 침이 가득 고여 있었지만, 그날의 엽현은 단 한 푼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날 이후, 엽현은 반드시 성공해서 엽령을 잘 보살피겠노라고 다짐했었다.
* * *
중토신주.
천천히 길을 걷고 있는 한 소녀와 한 미부(美妇). 그런 그들을 곁눈질하는 행인들.
특히 그들의 시선은 소녀에게로 대부분 쏠려 있었다.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의 의복은 마치 얼음으로 짜인 것처럼 보였으며,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역시 마치 가닥 가닥의 얼음 줄기 같았다. 게다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한기(寒氣)는 십여 장 밖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소녀가 밟은 땅은 발자국 그대로 얼어붙었다.
“저 이상한 아이는 누구지?”
“자네, 아직도 모르나? 북한성녀(北寒聖女) 아냐! 요얼방 서열 십이 위의 북한성녀!”
“아니지! 며칠 전에 요얼방 팔 위까지 올라갔어!”
“맙소사! 저렇게나 어린데?”
“나도 믿기지 않지만, 중토신주 요얼방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린 아이라는구만!”
“…….”
이때, 여자아이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떨어진 곳은 국수를 파는 작은 객잔이었다.
객잔으로 다가간 소녀가 밖에 나와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의자 밑으로 순식간에 고드름이 달렸다.
주위의 시선은 완전히 소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손짓으로 주인장을 불러낸 소녀가 차가운 음성으로 주문했다.
“소면 두 개, 계란 두 개 얹어서.”
이때, 주인장은 소녀의 주문을 듣지 못한 채 멍청한 눈으로 얼어붙은 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소녀 곁에 있던 미부가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
“네네, 소면 두 개, 계란 두 개.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요.”
소녀가 기다리는 동안 얼음으로 만들어진 납계를 꺼내놓고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러자 식탁 위에 다섯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다섯 자루의 진계 검이었다.
소녀가 검들을 잠시 바라본 후, 옆에 앉은 미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천계 검은 제가 반드시 차지할 거에요!”
이에 미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성녀, 그대는 검수도 아닌데 왜 이리 검에 집착하시는 건가요?”
“왜냐하면 우리 오라버니가 검수니까요. 이 검들은 모두 다 오라버니에게 줄 것들이랍니다!”
미부가 가만히 눈을 들어 소녀를 바라보았다.
검을 다시 납계에 집어넣은 소녀가 물었다.
“우리 오라버니는 청주에서 아직 잘 지내고 있지요?”
미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소녀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창목학원은 여전히 오라버니를 괴롭히는 건가요?”
미부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는 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지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곧장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금 성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성물(聖物)을 다스려 만법경에 이른 다음 요얼방 오 위 안에 드는 것입니다!”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 겁니다. 더 강해져서 오라버니를 지켜줘야 하니까요!”
미부가 아무 말 없이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때, 종업원이 와서 소녀의 앞에 소면 두 그릇을 올려놓았다. 순간, 종업원이 화들짝 놀라며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소녀의 주변이 너무나도 차가웠기 때문이다.
한편, 갓 담아내서 뜨거운 열기가 넘쳐나던 소면에서는 순식간에 한기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얼어붙은 두 그릇의 소면을 바라보며 소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오빠, 보고 싶어…….”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뜨거운 소면 한 그릇을 들고서 후다닥 방으로 들어와 자신에게 먹였던 그 날 밤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작은 계란이 고명으로 올려 진 그 뜨거웠던 소면을.
그날 밤, 소녀는 매우 행복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먹고 싶었던 소면을 난생 처음으로 먹어 본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오라비는 배가 부르다며 한 입도 대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 말을 믿었다.
그렇게 그녀의 오라비는 방구석에 앉아 그녀가 먹는 모습을 행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오라비가 열두 살 되던 해, 어머니가 떠났던 바로 그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가 어디서 소면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매번 물을 때마다 그는 그저 미소로 일관할 뿐이었다.
다시 청주. 대운제국 황성.
엽현이 소면을 거의 비워갈 때쯤, 그의 앞자리에 한 여인이 앉았다.
엽현이 먹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몸에 달라붙은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치마에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검은 봉황이 새겨져 있었다.
여인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실례 좀 해도 되겠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소면을 들이켰다. 여인이 자신 앞으로 배달된 소면을 한 입 먹더니 엽현을 보고 말했다.
“내 소개를 좀 하겠소. 원래는 다른 이름이 있었는데, 지금은 연만리라는 이름을 쓰고 있소. 듣기 좋소?”
‘고산왕!’
엽현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대운제국의 고산왕. 청주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여인이 국물을 조금 들이키고는 그릇을 식탁 위에 탁 올려놓았다.
“얘기 좀 합시다.”
“내게 볼일이라도 있소?”
연만리가 웃었다.
“볼일은 없는데, 그냥 어떤 자인지 궁금해서 한 번 와 본 것이오.”
연만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엽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기 시작했다.
“실력도 나쁘지 않고, 용모도 어디 빠지진 않겠군……. 나를 따라오겠소? 내가 그대 등에 날개를 달아 주겠소!”
탁-!
엽현이 젓가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게 사랑 고백이라도 하려는 것이오?”
연만리가 순간 당황해서 눈을 깜빡거렸다.
“미안하오, 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
이에 연만리가 정색하며 말했다.
“어디가 좀 아픈 모양인데, 황궁에 괜찮은 어의들이 있으니 한 번 찾아가 보는 게 어떻겠소?”
“…….”
연만리가 엽현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정말로 원한다면, 날 따라오시오. 혹시 그대의 병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말을 마친 연만리가 그대로 객점 밖을 빠져나갔다.
엽현이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박고 소면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반 시진 후, 엽현은 창목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때의 창목학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이곳으로 강둑이 터진다 해도 물 한 방울 새어 나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엽현은 이 많은 인파에 말문이 막혔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있는 건가?
“좀 지나갑시다!”
엽현이 사람들의 옆구리를 파헤치며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좀 지나갑시다, 지나가요!”
이때, 그의 앞을 막고 있던 한 남자가 엽현을 향해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아니, 밀치기는 왜 밀쳐? 살고 싶지 않은 게냐!?”
엽현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쪽에 볼일이 있어서… 좀 지나갑시다!”
“볼 일? 그럼 난 볼 일 없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앙? 오늘 내 동생 신랑감이 창목학원하고 한 판 뜨는 날인거 알아 몰라?”
“도, 동생 신랑감? 그게 누구요?”
남자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엽현! 너도 들은 적 있지? 그 엽현이 바로 내 매제라고! 우리 여동생이 이미 임신 팔 개월째에요, 알아 몰라? 알았으면 썩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