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만법경으로 돌아가라
‘임신 팔개월?’
엽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검게 타들어 갔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지? 내가 애 아빠가 된다니!?’
엽현이 당황해 서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밀려 들어왔다. 더 이상 한 발 빼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러다간 창목학원과 싸우기도 전에 허무하게 압사당할 수도 있으리라!
원래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 했던 엽현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엽현이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검 한 자루가 날아와 그의 발밑을 받쳤다.
이렇게 해서 엽현은 검을 타고 천천히 앞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장내의 모든 시선은 엽현에게로 쏠렸다.
안정적으로 검 위에 발을 딛고 서서 뒷짐을 지고 하늘을 나는 엽현의 모습은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에 바람이 불어 그의 치렁치렁한 머리마저 흩날려 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여, 엽현이다!”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장내는 이내 팔팔 끓는 용광로로 변했다.
청주 최연소 검주, 동시에 현재 청주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신진 무인, 그가 바로 엽현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오늘 있을 일전을 보고 싶은 마음도 강했지만, 현재 청주에서 가장 잘나가는 검수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했다. 그동안은 검수라는 자 치고 실력이 뛰어난 자를 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유히 사람들의 머리 위를 검을 타고 엽현이 날아갔다.
그런 그를 넋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
“매, 매제…….”
엽현의 어검 속도는 굉장히 느렸다. 이는 그가 일부러 천천히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가 속도 조절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아직 어검비행술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거북이 같은 속도를 두고 어검비행술이라 부르는 것도 민망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밑에서 보는 사람들은 엽현이 일부러 천천히 날고 있는 것이라 알아서 착각해 주었다.
한참이 지나 엽현은 겨우 창목학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한 커다란 바위에 내려섰다.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구부리자 그의 발밑에 있던 검이 유려한 검광이 되어 엽현의 눈앞에 날아들었다.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또다시 열광하기 시작했다.
“너무 멋져!”
엽현이 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채, 창목학원이 위치한 산 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창목학원, 누가 날 상대할 것이냐!”
과연 누가 나올 것인가!
장내의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창목학원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청주 제일의 세력인 창목학원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오래지 않아 엽현의 앞에 한 중년인이 나타났다.
막청현이었다.
막청현이 막 입을 떼려는 순간, 엽현이 검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
“쓸데없는 소리라면 사양한다. 나는 죽이러 온 것이지 너희들과 입씨름이나 하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니까!”
말이 끝나자 엽현이 검을 들고서 그대로 창목학원을 향해 날아갔다.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말조차 섞지 않겠다는 건가!?’
막청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창목학원 건원 이래로 어떤 자가 감히 창목학원을 이런 식으로 대했단 말인가!
“엽현!”
분노의 일갈을 지른 막청현의 기운이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이내 신합경의 경지까지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막청현이 직접 출수하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막청현은 가장 마지막에 나서야 할 원장 아닌가!
산을 오르던 엽현이 신형을 멈춰 세웠다. 그 역시 막청현이 직접 출수하려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자신의 경지를 스스로 낮춘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목숨을 내걸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불리하다고 해서 다시 만법경으로 돌아가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막청현이 그런 식으로 전투를 하는 순간, 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창목학원 천년의 명성은 그대로 무너지고 말테니 말이다.
막청현이 엽현을 노려보며 도발했다.
“싸우러 온 것 아니었나? 오너라! 내가 상대해 주마!”
말이 끝나자 그의 신형이 사라지면서 장내에 송곳같이 날카로운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후벼 팠다.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을 파괴할 것만 같은 패도 넘치는 일 권이 엽현의 안면을 향해 쏟아졌다.
엽현은 주먹을 맞받아치지 않고, 몸을 비틀어 주먹을 피해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영수검이 막청현의 복부를 노렸다.
하지만 영수검은 목표에 닿지 못하고 갑자기 튀어나온 손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막청현의 왼손이었다.
막청현이 손을 펼쳐 검 날을 단단히 쥐자, 엽현은 도저히 칼을 뽑아낼 수가 없었다.
이때, 막청현의 왼손이 칼 위로 미끄러지며 엽현의 복부를 강타했다.
퍽-!
엽현은 순식간에 이십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에 잠겼다.
엽현을 밀어낸 막청현이 다시 출수하려는 순간, 자신의 팔에 깊은 검흔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방금 자신의 일 권이 엽현을 강타했을 때, 엽현의 검이 자신의 팔을 스치고 치나갔던 것이다.
물론 방금 전의 일합에서는 막청현이 우위에 섰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청현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창목학원 학생 중에는 엽현을 상대할만한 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청주 내의 젊은 세대 중, 엽현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자는 극소수라 할 수 있었다.
한편, 엽현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복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방금 전 상황에서 엽현은 선념검의를 사용해 자신의 복부를 둘렀다. 이는 막청현의 힘을 조금이라도 흡수하고자 한 응급처방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선념검의가 집중된 곳에 두터운 호갑(護甲)이 나타났다. 이는 대지전갑보다 더욱 큰 효과를 보여 주었다.
이에 엽현은 막청현의 일 권에 정통으로 가격당하긴 했지만, 전혀 내상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 발견은 엽현에게 뜻밖에 기쁨을 선사했다. 선념검의는 살상용보다는 수비 시에 더욱 큰 위용을 발휘할 수 있던 것이다.
“빨리 붙어라!”
개미처럼 몰려든 군중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때 막청현이 엽현을 바라보며 외쳤다.
“덤벼 보거라! 네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확인해 보겠다!”
말을 마친 막청현이 근처에 있던 수 장 높이의 거대한 암석 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엽현을 향해 암석을 걷어찼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암석을 앞에 두고 엽현이 무표정으로 일 검을 찔러 넣었다.
퍽-!
암석이 순식간에 두 개로 쪼개졌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의 검은 빠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암석 뒤에서 나타난 두 개의 손가락이 검 날을 꽉 물고 있었던 것이다.
막청현이 다른 손으로 출수하려 할 때, 엽현의 몸 안에서 한 자루의 검이 튀어 나왔다.
막청현이 눈을 크게 뜨며 오른손으로 날아오는 검을 후려쳤다.
쾅-!
날아오던 검이 튕겨져 나갔지만, 또 다른 검이 연이어 막청현을 향해 날아왔다.
이에 막청현이 가볍게 지면을 박차며 신형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검은 그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심지어 순식간에 그의 미간에서 몇 촌(寸)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따라붙었다.
이때 막청현은 엽현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검망을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검이 막 미간을 파고들려는 순간, 막청현이 간신히 고개를 돌려 검을 비껴냈다. 하지만 그의 정면으로 또 다른 검 한 자루가 다시 날아들었다.
이에 막청현이 또다시 후퇴하는 듯하더니 돌연 전방을 향해 달려들며 일 권을 뻗어냈다.
쾅-!
주먹에 담긴 강대한 힘이 정면으로 날아오던 일곱 자루의 검과 맞부딪쳤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일곱 개의 검을 모두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바로 이때, 뒤편에서 검을 조종하던 엽현이 질풍처럼 막청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그의 손에 들린 영수검 안에 강대한 검세가 무섭게 증폭됐다.
취세(聚势)!
엽현이 막청현에게서 몇 장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 영수검이 뿜어내는 검세는 막강해져 있었다.
이에 막청현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아니, 이미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엽현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검세는 처음의 몇 배나 불어나 있었다. 영수검이 뿜어내는 세는 이미 만법경 강자의 ‘세(势)’에 도달한 것이었다!
엽현은 만법경이 아니었지만, 검의 위력은 만법경에 필적했다.
이때, 막청현의 눈빛이 흉흉하게 번뜩였다. 순간 막청현이 한 발을 뒤로 뻗으며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의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했다. 이것은 만법경으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닌 일종의 무기(武技)를 펼치려는 것이었다.
영수검이 그의 머리까지 몇 촌의 거리도 남기지 않은 순간, 막청현이 한 발을 구르며 합장한 양손을 머리 위로 뻗었다.
“허공적멸(虛空寂滅)!”
순간 막청현의 머리 위가 어둡게 그늘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엽현의 검에서 뿜어내던 검광이 그대로 이 검은 그림자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림자는 순식간에 엽현에게로 뻗어 나가 엽현을 집어삼키려 했다.
적막감이 감도는 순간.
장내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온통 엽현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대로 당하는 것인가?
바로 이때였다.
쾅-!
칠흑과 같이 어두운 그림자 사이로 하얀 기류(氣流)가 폭발했다.
선념검의(善念劍意)!
선념검의가 순식간에 어둠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을 때, 한 줄기 검광이 이 백색 기류 사이에서 번뜩였다.
쾅-!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막청현의 신형이 순식간에 수백 장 뒤에 있던 암벽까지 날아가 강하게 부딪쳤다. 그다음 순간, 암벽 전체가 흔들리더니 그대로 막청현을 향해 와르르 무너졌다.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우측으로 향했다. 이때, 그림자 속에 삼켜졌던 공간은 다시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장검을 들고 서 있는 한 남자!
그의 몸 주위에서 하얀 운기(雾氣)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검의실질(劍意實質)!
설마 이렇게 엽현의 승리로 끝나는 것인가?
엽현이 검을 들고 천천히 막청현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 암석 잔해 틈에서 막청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입가에선 붉은 선혈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그의 전신엔 십여 개에 이르는 검흔(劍痕)이 뼈를 드러낼 정도로 깊게 패여 있었다.
딱 봐도 중상이었다.
막청현이 소매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치며 엽현을 노려보았다.
“패도하고 강력하기 그지없는 검의로군. 이건 대체 무슨 검의냐?”
막청현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멈춰선 엽현이 검을 들어 막청현을 가리켰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만법경으로 회귀해 보아라!”
“뭐라고?!!”
순식간에 장내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정말로 죽고 싶은 건가!?’
‘엽현은 겨우 통유경이 아닌가!?’
막청현이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엽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가 만법경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 어떤 사람도 너를 두고 비겁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창목학원이 몰염치하다고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일로 창목학원의 천년 명성에 결코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만법경으로 돌아가 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