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국사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군요
침대 위, 엽현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아령은 끊임없이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으며, 척발소요는 이 장면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아령이 척발소요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척발소요가 발그레해진 표정을 숨기며 마치 이런 장면은 수없이 봐 왔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아령이 엽현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남자의 가장 약한 부분이다. 훗날 남자와 싸울 때, 이곳을 공격하면 곧바로 공격력을 상실하게 될 거다.”
척발소요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두 눈에는 언젠가 시험해 보고 말리라는 굳은 결심이 서 있었다.
그로부터 약 반 시진 후, 아령이 갑자기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편으로 가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이 손 씻기는 무려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아령은 손을 씻는 동안 알 수 없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한편, 척발소요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엽현의 하반신에 시선을 고정시킨 상태였다.
엽현이 아무 말 없이 그 위에 자신의 옷을 덮었다.
그러자 척발소요가 눈을 찌푸렸다.
“쩨쩨하긴!”
엽현이 다른 곳으로 살포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더 이상 척발소요와 같은 철없는 여자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할 자신이 없었다.
이때, 손 씻기를 마친 아령이 다가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나면 그대의 환부는 다시 감각을 찾을 것입니다. 그때 혹여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만 툭 던져 놓고 아령은 방을 빠져나갔다.
“부작용?”
엽현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이봐, 무슨 부작용? 그렇게 가지 말고 자세히 얘기를 해 보라고!”
엽현이 목청을 높여 보았지만, 아령은 이미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엽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부작용? 어떤 종류의 부작용이지?’
엽현은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신의 소중한 남근이 아닌가!
엽현은 아령이라는 어의가 전혀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이때, 척발소요가 엽현의 정면에 털썩 앉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엽현에게 납계 하나를 흔들어 보였다.
“검수,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
“뭐가 들었는데?”
척발소요가 갑자기 흥분된 표정으로 소리쳤다.
“황금 삼십만 냥! 그리고 최상급 영석 이천육백만 개! 그리고 천계 무기 네 권, 천계 공법 두 권, 지계 무기는 셀 수도 없고, 그리고, 그리고! 진계(真階) 영기 다섯 점, 명계 영기 열한 점, 최상품 영기가 아흔여섯 점이야!”
착발소요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리고 옥품 영석 천삼백 점! 그 외에도…….”
척발소요가 아무도 없는 방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엽현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극품 영맥(靈脈) 하나를 건곤대(乾坤袋)에 숨겨놨어! 이건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말 못 해!”
‘극품 영맥!’
그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안색이 돌연 진지해졌다.
청주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것은 금맥이다. 이 금맥에서 나온 금화들이 청주 전체에서 화폐로 통용된다. 그 외에 중요시되는 것으로는 바로 영맥이었다. 영맥이 있는 땅은 영기가 풍부하여 무인들의 수련에 지대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영맥의 지하에는 영석이 자라 한 나라의 커다란 재원이 된다.
영맥은 크게 하품 영맥, 상품 영맥, 극품 영맥, 옥품 영맥, 지품 영맥 그리고 천품 영맥으로 나뉜다.
전설상의 천품 영맥은 이미 스스로 의식을 갖고서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 천품 영맥은 중토신주에서도 극히 드물게 출현했다.
한편, 청주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영맥은 바로 옥품 영맥이었다. 강국도 양계산에 이 옥품 영맥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미 다른 자들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이렇듯 영맥은 나타나기만 하면 여러 세력들이 목숨을 걸고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러니 척발소요가 말한 극품 영맥은 그야말로 엄청난 보물이었다.
엽현이 잠시 무언가 고민하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소요, 그 영맥은 내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될 것 같아. 그러니 영맥을 내게 넘기면 나머지는 다 네게 양보할게.”
척발소요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렇다면 영맥은 네게 줄게. 나머지는 평등하게 나누자. 어쨌든 이런 물건들은 우리 집에도 많기도 하거니와, 네가 아니었더라면 얻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말을 마치자 척발소요가 창목학원에서 가져온 물건들 중 절반을 엽현에게 건넸다.
엽현의 몫으로 떨어진 것은 황금 이십억 냥, 최상품 영석 천삼백만 개, 천계 무기 두 권, 천계 공법 한 권, 지계 무기 여덟 권 그리고 진계 영기 두 점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계 영기 두 점은 검이 아닌 창과 도라는 점이었다.
그 외에도 명계 영기 여섯 점과 최상품 영기 오십 점, 그리고 흑염 기병들이 사용하던 장비 스무 쌍도 있었다.
엽현은 그야말로 벼락부자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가진 물건들만으로도 충분히 어법경에 이르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척발소요 역시 얼굴에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의 집안은 돈이 궁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이만한 보물들을 한 번에 마련하는 것은 그들로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이것들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면 그녀는 집안에서 당당히 어깨를 펴게 될 것이다.
그녀가 집을 나온 이유는 바로 그녀의 부친이 그녀에게 종종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핀잔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어법경에 이르기 전까지 부친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재물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척발소요는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한껏 들뜬 척발소요가 방을 빠져나가자, 혼자 남은 엽현은 자신의 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좌원사에게 영수검이 파괴되어 폐인과 다름없는 몸이 되었을 때, 엽현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검이 없다고 검수가 아니더냐?’
천녀의 이 한 마디에 엽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핏 보기에 간단해 보이는 그녀의 말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천녀는 누가 보더라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하지만, 검이 없다고 해서 그녀가 약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엽현이 이해한 것은 사람이 강하면 검 또한 강해진다는 것. 설령 검이 아닌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 할지라도 천계 검 이상의 위력을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반면 사람이 약하면 아무리 들고 천하의 명검을 쥐여 준다 하더라도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어떤 도(道)를 수련하든 그것은 마음(心)을 연마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따르고 복종하는 것이다.
물론, 말로 하긴 쉽지만, 이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침대 위에 누운 엽현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검도란 것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었다.
현재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래의 커다란 청사진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 걷고 있는 한 걸음을 정확히 내딛는 것이었다.
이때, 방 안으로 불쑥 들어온 연만리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엽현을 보고는 미소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엽 국사, 좀 회복이 되었소?”
엽현이 몸을 일으켜 여전히 저려오는 자신의 하반신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연 소저, 할 말 있거든 이리 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시오.”
그 말에 연만리가 천천히 걸어와서는 의자를 끌어와 엽현의 앞에 앉았다. 양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그녀의 자태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연만리가 얼굴 가득 미소를 드러내며 말했다.
“엽 국사, 느낌이 어떻소?”
“연 소저, 할 말 있으면 하시오.”
엽현은 눈앞에 있는 연만리가 결코 만만한 여인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앞에서는 화사하게 웃고 있지만, 사람을 뼈째로 삼키고도 남을 여인이었다.
엽현의 말에 연만리가 정색하며 대꾸했다.
“엽 국사, 내가 무슨 오해할 만한 일이라도 한 것이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엽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연 소저처럼 정의로운 사람에게 내가 무슨 오해할 게 있겠소. 단지 무슨 할 말이 있나 해서 물어본 것이오.”
연만리가 가볍게 웃었다.
“그럼 좋소,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그대가 혼수상태에 빠진 이틀간 청주의 상황이 많이 변했소. 청주의 본원이 손상된 이후로, 청주 전역에서 영기가 사라지고 있소. 그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 어떤 지역은 이미 영기가 고갈된 곳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오. 그대 강국 역시 몇몇 성에서 영기가 고갈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소. 심지어 이들 성에서는 심심찮게 소요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오.”
엽현은 말없이 연만리의 말을 듣고 있었다.
본원이 손상을 받은 것은 필시 천녀의 그 일 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멸하겠다고 한 말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엽현이 고개를 흔들며 몸서리쳤다. 당시엔 아무 생각 없이 천녀를 말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까딱하면 청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을 수도 있던 것이다.
연만리가 자리에 일어나서 침대 가까이로 다가왔다.
“엽 국사, 지금 청주 전역이 크게 동요하고 있소. 만약 이대로 흘러가게 된다면 청주는 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오. 그리고 이런 시기에 우리는 엽 국사가 나서 청주의 수많은 생명을 구해주기를 바라고 있소. 우선, 청주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대신해서 본 왕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
“자, 잠깐!”
엽현이 고개를 치켜들며 연만리의 말을 잘라냈다.
“내, 내가 언제 청주의 생명들을 구해주기로 약속한 적이 있소? 꿈에서 그랬나?”
연만리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럼 안 구해 줄 생각이오?”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연 소저, 나 엽현은 그저 일개 통유경의 검수일 뿐이오. 나 같은 자가 세상을 구원하느니 하는 것은 일단 말이 되지 않소. 물론 내가 몸이 회복되고 나면 강국의 혼란만큼은 잠재우도록 노력할 테니, 연 소저는 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오!”
연만리가 잠시 입을 닫고 있다가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그녀가 손을 뻗으니 몇 장 떨어진 탁자에 놓여 있던 사과가 그녀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만리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으며 말했다.
“엽 국사, ‘국사’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로군요!”
“하하… 그야 나는 강국의 국사지 대운제국의 국사는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않겠소.”
연만리가 엽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이 청주가 이 지경이 된 건 다 엽 국사 때문인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이오?”
“하하…… 과실을 분명히 따지자면 이는 모두 창목학원과 암계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연 소저는 어찌 그들에게 찾아가 추궁하지 않는 것이오?”
연만리가 무어라 반응하려는 찰나 엽현이 손을 저으며 가로막았다.
“연 소저, 나는 바보가 아니오. 그러니 계속 같은 말을 해서 나를 실망시키지 마시오.”
연만리가 의자에서 일어나 엽현을 향해 다가갔다.
“난리가 난 것은 청주뿐 만이 아니오. 청창계 전역에서 소요가 발생하고 있고, 특히 정보에 의하면 중토신주의 용병단들과 세력들이 청주로 몰려오고 있다고 하오. 그들이 무엇 하러 이리로 오겠소? 바로 약탈이오!”
연만리가 두 손을 엽현의 어깨 위에 올리며 흥분하여 소리쳤다.
“기왕 저들이 이렇게 나온다면야 반대로 우리가 저들을 쳐야 하오! 그대와 내가 손을 잡고 중토신주를 쳐부순 다음 청창계를 통일하는 것이오! 내 생각이 어떻소?”
엽현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그의 전신의 모든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붉게 변했다.
이때, 엽현의 머릿속은 진공상태가 된 듯 새하얘졌으며, 그의 의복 또한 몸에서 나는 뜨거운 열기로 인해 순식간에 재로 변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