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맨입으로는 친구 할 수 없지
저국으로 가는 운선 안.
뱃머리에 서 있던 엽현이 척발소요를 향해 말했다.
“소요, 호법을 좀 서 줘. 아무도 내 방에 접근하지 못하게 말이야.”
말을 끝낸 엽현이 자신의 객실로 향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엽현은 곧장 계옥탑으로 진입했다. 그가 손을 펼치자 순간 여덟 자루의 칼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때, 엽현이 돌연 한 자루의 검을 자신의 몸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흡수!
사실 엽현은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 이 여덟 자루의 검으로 인해 전투력에 많은 향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위력을 자랑할지라도 결국 만법경 강자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법경 강자와 겨루기 위해서는 신합경에 오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그가 신합경에 오르기를 꺼렸던 이유는 신합경에 이르게 되면 만법경 이상의 강자들이 경지를 낮추지 않고도 자신에게 덤벼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전의 경지가 아직 온전하지 않았던 까닭에 성급하게 경지를 돌파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창목학원에서의 일 전 이후, 그의 경지는 이미 절정에 이른 상태였다. 특히, 그의 검도는 새롭게 한 단계 성장한 상태였다.
마침내 때가 된 것이다.
한 자루의 검을 흡수한 직후 엽현은 힘의 소용돌이가 몸 안에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곧, 그의 몸 안의 영수검이 진동하며 순식간에 휘몰아치던 힘을 흡수했다. 그리고 약 일 각 후, 영수검으로부터 정순한 힘이 방출돼 엽현의 몸 안 구석구석으로 흘러 들어갔다.
신합경(神合境).
소위 신합(神合)이라는 것은 육신과 영혼의 완전한 합일을 말한다.
합일을 통해 영혼과 육신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합(神合)의 정의다.
일단 신합이 일어나게 되면 사람의 몸은 질적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엽현이 하려는 것이 바로 육신과 영혼의 질을 한 단계 끌어 올리려는 것이었다.
약 반 시진 후, 엽현은 첫 번째 검의 흡수를 이뤄냈다.
그렇게 엽현은 하나씩 검을 흡수해 가기 시작했다.
한편, 운선 위에서는 척발소요가 무료했는지, 배의 난간에 걸터앉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바로 이때, 뒤편에서 다른 운선 하나가 빠르게 접근했다. 이내 엽현과 척발소요가 탄 운선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배가 스쳐 지나가는 중에, 척발소요는 선상에 서 있는 금포(錦袍)를 입은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가 입은 옷은 화려한 비단으로 제작된 장포였다. 허리춤에는 광택이 나는 영옥(靈玉)이 달려 있었다. 이 것만 보아도 상대가 얼마나 부유한 자인지 알 수 있었다.
척발소요의 눈빛을 느낀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돌연 눈을 반짝이며 손을 아래로 향하자, 운선의 속도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비단 옷을 입은 남자가 미소를 보이며 말을 걸어왔다.
“이 아름다운 숙녀의 이름을 내가 알아도 되겠소?”
척발소요가 일 없다는 듯 대꾸했다.
“무슨 일이오?”
그러자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초면에 실례인 것은 알겠지만, 아가씨의 자태를 보아하니 왠지 귀한 분인 것 같아 말을 걸었소. 괜찮다면 그대와 친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 하시오?”
“친구?”
척발소요가 눈을 껌뻑였다.
“나랑 친구 하고 싶다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와 친구가 된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삼을 것이오!”
이에 척발소요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글쎄… 친구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맨입으로 이래서야 쓰나…….”
“…….”
남자가 살짝 표정이 굳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대라면 그보다 간단한 것은 없었다. 어차피 돈은 썩어 나니까!
남자가 손을 뻗으니 명패 하나가 척발소요 앞으로 날아갔다.
“황금 오십만 냥이오. 이 정도면 체면치례는 할 수 있겠소?”
‘황금 오십만 냥!’
이때, 척발소요가 명패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역시 이 험한 세상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다는 아버지 말씀이 옳았어. 엽현은 나를 위해 황금 수억 냥도 아끼지 않았는데……. 결국 그만한 친구는 없군!”
척발소요가 손을 튕기자, 명패가 도로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훠이, 훠이. 가던 길 가시오. 나 척발소요는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자와만 친구를 한다오. 내 친구가 되기에 그대는 너무 가난한 것 같소.”
남자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내 성의를 이렇게 무시한단 말인가?”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그 안에선 위협이 느껴졌다.
그 말을 들은 척발소요가 아무 대꾸 없이 그저 손에 들고 있던 망치를 내리쳤다.
순간 남자가 표정이 변하며 신속히 제자리에서 십여 장을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남자가 서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가루로 변했다.
이를 본 남자의 표정이 순간 새하얘졌다.
그는 비록 많은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덤벼야 할 자와, 그러지 말아야 할 자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빠르게 결심을 마친 남자는 황급히 척발소요를 향해 정중히 예를 올렸다.
“본 공자가 무심코 실례를 저질렀으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양해 바랍니다.”
그러자 척발소요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가진 거 다 놓고, 몸만 빠져 나가도록. 실시!”
“…….”
잠시 후, 척발소요는 갑판 위에 앉아 산처럼 쌓인 물건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건 검수꺼, 이건 내꺼, 이것도 내꺼, 이것도 내꺼, 이것도…….”
* * *
다음 날, 저국.
저국은 상황은 혼돈 그 자체였다.
갈수록 더 많은 중토신주의 무인들이 황성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일반 병사들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숫자로 불어난 상태였다.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청주의 영기가 고갈되면서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저국 황성의 영기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놀랄 만치 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황성에서 병사들을 동원해 큰 소요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토신주에서 무인들이 넘어 오면서 황성은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일반 병사들로는 결코 그들을 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통제 되고 있던 일반 백성들까지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황성은 이내 혼돈 그 자체가 된 상황이었다.
성 안에서 벌어진 혼란은 이내 황궁까지 불어 닥쳤다.
이 시각, 황궁 네 개의 대문 중, 두 개가 이미 함락된 상태였였다.
황궁을 공략한 흉수는 다름 아닌 중토신주의 무인들이었다.
용병들, 세가의 제자들, 산수무인들 등 온갖 종류의 무인들이 황궁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만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 온 이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재물이었다.
광란의 약탈!
이 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고 하려 하는 것이었다.
중토신주의 무인들 외에도 황궁을 공격하는 자들 중에는 저국의 무인들, 산수무인들 심지어 세가의 제자들까지 섞여 있었다.
특히 이들 세가들은 자신의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함께하기는커녕 황궁을 공격하는 배반이율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 세력이 보기에 저국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었다.
중토신주에서 온 합환종과 환소문이 저국 황실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국은 청주 내에서는 꽤나 강력한 전력을 갖고 있지만, 중토신주의 세력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여기에 영기 고갈이 가속화 되고 있으니, 저국은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곧 죽어가는 사자에게 고기 한 점 얻고자 여기저기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저국 역시 작지 않은 나라이니만큼 그간 쌓아둔 국부가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국 황궁의 한 대전.
척발언은 여전히 용의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한 노부(老婦)와 흑포를 입은 노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중갑(重甲)을 입고 활을 손에 든 서른 명의 병사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었다.
이들은 금어위 중에서도 특별히 선발된 자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전투경험이 풍부하고 전투력이 막강한, 그야말로 저국의 최고 정예부대라 할 수 있었다.
무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던 척발언을 향해 노부가 그녀의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전하, 어서 가셔야 합니다!”
“간다고? 어딜?”
척발언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두 세력들의 목표는 나인데, 어딜 간단 말이냐?”
“저희 두 늙은이가 목숨을 걸고 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도망치면 백성들과 병사들은 어찌 하느냐? 버리고 가란 말인가?”
이때, 서른 명의 금어위들이 일제히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저희 금어위들은 죽음으로 충정을 다 할 것입니다!”
척발언이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성에 가득한 백성들과 병사들을 버리고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을 것이다.”
척발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중토신주에서 온 자들을 한 번 만나 봐야겠다.”
말이 떨어졌을 때, 그녀의 신형은 이미 대전 밖에 나와 있었다. 그러자 금어위들이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 나섰다.
두 노인이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척발언의 뒤를 쫓았다.
이때, 황궁은 이미 대부분 함락된 상황이었다. 만법경 강자들이 나섰기 때문이었다.
황궁의 모든 병사들은 척발언이 있던 대전까지 밀려나 있었다. 그들의 앞으로는 백여 명의 중토신주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만법경 강자들도 세 명 섞여 있었다. 그 외에도 이백 명이 넘는 저국 출신 무인들이 대전을 빙 두른 상태였다.
황궁이 이렇게 빨리 무너진 것은 역시나 만법경 강자가 나선 탓이 컸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만법경 강자들은 마음대로 출수 할 수 없었다. 특히나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었는데, 청주의 호계자들이 이미 철수한 상황에서는 그들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었다.
중토신주 무인들의 가장 전면에는 요염한 기운을 풍기는 한 중년남자와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있었다.
중년인은 새빨간 붉은 장포를 입고서, 얼굴엔 짙은 화장으로 요염함을 드러냈다. 노인 역시 몸집보다 커다란 붉은 장포를 입고 있었다. 그 위에는 노출이 심한 남녀가 뒤엉켜 있는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모두 병사들 사이에 서 있는 척발언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들은 척발언을 바라보며 탐욕과 음탕함을 숨기지 않았다.
중년 남자가 사악하게 웃었다.
“과연 내미지체(內媚之體)로군, 만약 저 것을 잘 길들이기만 한다면… 흐흐…….”
왜소한 노인 역시 야비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정말 보기 드문 내미지체로구나…, 저 아이를 품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하하하…….”
이때, 척발언의 뒤편에 서 있던 노부가 돌연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소리쳤다.
“들으시오! 우리 전하께서는 강국의 국사 엽현과 아주 각별한 사이니 그의 얼굴을 봐서라도 물러가 주기 바라겠소!”
“엽현?”
중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쓰레기인지 몰라도, 그런 이름 들어본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