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나와 친구가 되겠소?
엽현은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도망간다고?’
합환노인이 줄행랑을 친 것을 보자 고소천 등의 무인들 역시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만법경 강자들이 마음먹고 도망치니 엽현 등은 그저 눈뜨고 그들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엽현 역시 굳이 무리를 해서 상대를 뒤쫓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세 번의 검을 휘두른 그에게는 이 할의 전투력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비록 승리했지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저들이 살아 돌아간 이상 더 많은 강자들을 데리고 다시 나타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벌어질 일전은 더욱 격렬할 것이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승리한다 해도 저들이 도망가 버리면 결국 불리해 지는 것은 숫자가 한정적인 엽현 측이었다.
“신합경에 오른 걸 축하하오!”
어느새 다가온 연만리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와 친구가 되겠소?”
엽현이 짧게 묻자 연만리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원하던 바요!”
“따라 오시오. 상의 할 일이 있으니.”
먼저 등을 돌린 엽현을 보며 연만리가 곁에 있던 척발소요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여인은 엽현의 뒤를 쫓으면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엽현 등을 바라보던 강월천이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언제 또 저렇게 성장했는지, 그저 감탄 밖에는 나오지 않는군.”
봉남과 묵원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벼운 웃음을 보였다.
엽현이 강해지면 질수록 그들에게는 좋은 것이었다.
“묵 형, 그 곳에 한 번 다녀와야겠소. 이제 금인들의 경지를 올릴 때가 된 것 같소.”
봉남의 말에 묵원이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세나!”
묵원과 봉남이 그렇게 황궁을 떠났다.
육 루주가 합환노인 등이 달아난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들은 조만간 다시 더 날카로운 칼을 들고 덤빌 것이니, 한시 바삐 저들의 행적을 미리 파악해야 하오.”
이에 칠 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은 내가 처리하겠소.”
그렇게 취선루의 세 명의 무인들도 자리를 떠났다.
한편, 저국 황성에서 수천 리 떨어진 인적 드문 산길. 신형을 멈춘 합환노인 등은 따라 붙은 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합환노인의 안색이 심히 어두웠다.
“저 놈의 실력이 이리도 강할 줄이야!”
곁에 있던 고소천이 한 마디 거들었다.
“엽현은 우리들만으로 제거할 수 없소!”
이에 합환노인이 잠시 무언가 고민하다가 눈을 번뜩였다.
“원군을 데려 와야겠소. 중토신주에도 강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이에 고소천이 고개를 저었다.
“요얼방 십 위 권 내의 인물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귀하는 혹시 북한성녀(北寒聖女)라는 자를 들어 봤소?”
합환노인의 말에 고소천이 대답했다.
“중토신주 최연소 요얼방 무인 북한성녀를 모르는 사람이 있소? 그런데 그녀를 어떻게 움직이려 하시오?”
“당시 북한성녀가 상대 환소문 종주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 있소. 그 일을 가지고 회유한다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순간, 합환노인의 표정이 흉흉하게 변했다.
“노부는 결코 엽현이 북한성녀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 * *
저국 황궁의 넓은 대전 안에는 단 두 사람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떫기만 하고 달지가 않으니 좋은 차라고 할 수 없군.”
연만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연 소저, 헤어진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보니 매우 반갑소.”
“며칠 사이에 무공 실력만 향상된 것이 아니라 화술도 늘었구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먼저 말 해 보시오.”
그러자 연만리가 찻잔에 손가락을 넣다 빼낸 후에 탁자 위에 원을 하나 그렸다.
“그대 사부 때문에 청창계가 격변을 맞이했소. 특히 청주 지역의 본원이 크게 손상되어 영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소.”
연만리가 원 가운데 여러 개의 점을 찍으며 말을 이어갔다.
“뿐만 아니라, 중토신주에서 넘어온 자들이 청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온갖 흉악한 짓은 다 벌이고 있소. 이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니 단번에 몰아내기도 힘든 실정이오. 청주를 지켜내기 위해선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처리해야 하오. 하나, 영맥을 찾아 청주의 본원을 회복시킬 것. 둘, 외적을 몰아내고 민심을 안정시킬 것!”
그녀에 말에 엽현이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연만리가 청주를 구하고자 하려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연만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힘이 강할수록 더 강한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오. 청주에서 가장 강한 자들은 대운제국과 그대를 제외하고 강국, 저국 그리고 취선루를 들 수 있소. 우리가 당장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이 청주는 한 달 안에 살아있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오.”
‘살아있는 지옥!’
엽현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연만리가 한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가 만약 조금만 늦게 도착했더라면 저국은 지금쯤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중토신주의 무인들은 일단 성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내부에 억누르고 있던 욕망을 마음껏 분출했던 것이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이미 많은 자들이 최소한의 인성도 버린 지 오래였다.
연만리가 엽현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찻잔을 잡은 그녀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이때,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를 본 연만리가 대단히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찻잔을 놓고 일어서려 했다. 바로 이때, 엽현의 음성이 그녀의 발을 잡았다.
“내가 볼 때, 나와 대운제국 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오. 청주의 다른 세력들, 예를 들어 월국, 초국과 같은 국가들, 그리고 산수무인들 등이 모두 단결하여 합께 일어나야 하오. 그것만이 이 청주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오!”
엽현은 결코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그저 자신과 주변인들만 돌볼 수 있으면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신만을 지킨다는 생각은 이기적일뿐만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한 것이었다.
자기가 남들을 돕지 않으면 그들은 곧 모두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자신이 위기에 닥쳤을 때, 그를 도와줄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그의 몸 안에서 한 줄기 검의가 꿈틀거렸다.
선념검의!
엽현은 깜짝 놀랐다.
그가 놀란 이유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검의가 스스로 움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서 검의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니, 넓은 대전은 이내 그의 검의로 가득 차, 마치 구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검의실질(劍意實質)!
연만리가 그런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 상황은 검황이 되기 직전의 상황이 아닌가!
순간, 빽빽이 들어선 검의가 대전 밖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연만리의 손이 움직였다.
꽝-!
이 한 번의 손짓으로 대전 밖으로 빠져 나가려던 검의 뿐 아니라, 대전 내의 검의 또한 깨끗이 소멸됐다.
엽현이 놀란 눈으로 엽현을 쳐다보자 연만리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황이 되지도 않았는데도 검의실질이라니… 이는 필경 그대가 익힌 검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오. 하지만 아직 실력이 온전치도 않은데 굳이 적에게 패를 들킬 필요는 없겠지.”
이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이 맞소.”
엽현이 손바닥을 펴자, 그 가운데 한 덩이의 검의가 나타났다.
엽현은 선한 생각을 품을수록 선념검의가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그의 선념검의는 이전보다 2할은 더 강해져 있었다. 이때쯤 되니 그는 악념검의에 대한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천녀의 말에 따르면 악념검의의 위력이 더욱 강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때, 연만리의 목소리가 그를 깨웠다.
“청주의 모든 사람들을 연합하자고 했소?”
엽현이 검의를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들 개개인의 힘은 강하지 않지만, 모든 힘이 모인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할 것이오. 그리고 만약 그들을 모으지 않으면, 그들은 중토신주의 강자들을 따라 청주를 더 난잡하게 만들 것이 뻔하오.”
“음… 일리가 있소. 내가 이미 사방으로 사람들을 보내 영맥을 찾는 한편 청주 본원이 위치한 장소를 탐색하고 있소. 만약 충분한 영맥만 확보하게 된다면 본원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오.”
“대략 어느 정도의 영맥이 필요할 것 같소?”
연만리가 그의 두 눈을 직시하며 대답했다.
“최상품 영맥 백 개 이상!”
순간 엽현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최상품 영맥 백 개!?’
현재 그가 가진 영맥은 단 하나에 불과했다. 알다시피 청주 지역에서 영맥을 찾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백 개라니!
이 많은 수를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하하하! 거짓말이었소!”
“…….”
엽현이 어떻게 화를 내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연만리가 탁자 위에 납계 하나를 올려놓았다.
“받으시오.”
말과 동시에 연만리가 장내를 빠져 나갔다.
다소 얼빠진 모습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엽현이 납계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계 검이었다. 그 것도 세 자루나!
엽현이 납계를 집어 들고 황급히 연만리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연만리는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여자로구나!’
엽현이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을 때, 노인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오 루주였다.
오 루주가 말없이 손가락을 튕기자 엽현의 앞으로 납계 하나가 천천히 날아왔다.
“일전에 내게 준 물건들을 모두 처리했다네. 안에 최상품 영석 육억 오천만 개가 들어있으니 확인 해 보게나.”
엽현의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대가 주었던 천계 급 무기는 중토신주에서도 극히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네. 그 정도 값어치는 당연하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 루주에게 납계 하나를 건넸다.
“이번 달 취선루에 갚을 영석입니다.”
납계를 받아 든 오 루주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최근 전해진 소식에 의하면 창란주는 이미 가망이 없는 것 같네. 길어야 한 달이 지나면 창란주는 죽음의 땅이 될 걸세. 게다가 중토신주마저 혼란과 소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정보일세. 그렇게 되면 창란주와 중토신주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자들이 모두 청주로 몰려올 걸세. 그리고 알다시피 호계맹은 이미 청주와 창란주를 포기했으니,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 상황이네.”
오 루주가 엽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만약 그대가 강국과 저국, 그리고 창란학원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단단히 각오해 놓는 게 좋을 걸세!”
“창란주는 어찌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까?”
“흠… 창란주에서 가장 강한 세력들이 상황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발 벗고 나서서 미친 듯이 자원을 수탈하고 있기 때문일세. 그 중 가장 흉악한 자들은 창란학원이네. 그들은 이미 약탈을 끝내고 정예 제자들만 선별하여 중토신주로 돌아갔네…….”
오 루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대와 대운제국이 저들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청주는 길어야 2주를 견디지 못하고 불모지로 변해버릴 걸세!”
이는 분명 엽현을 떠보는 것이었다.
그의 의중을 파악한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 역시 가끔씩 재물을 탐할 때도 있지만, 정도라는 것을 모르진 않습니다.”
“그대의 인품은 노부 역시 모르진 않네.”
이때, 엽현이 오 루주에게서 받은 납계를 다시 내밀며 말했다.
“이 안에 있는 최상품 영석 오억 개로 진계 장비… 영기나 무기나 전갑이나… 뭐가 됐든 쓸 수 있는 진계 장비는 모두 구해 주십시오.”
오 루주가 별 다른 질문은 생략한 채 납계를 받아들였다.
“오일 후에 다시 찾아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