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천한 목숨이라고?
강구의 두 눈에 점점 살의가 짙어졌다.
엽현이 대답하지 않자 남자가 피식 웃었다.
“싫은가?”
말과 동시에 남자가 아이의 뒷덜미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소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입에서는 끊임없이 처절한 비명이 흘러 나왔다.
이를 보고 있는 강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온몸을 떨었다.
이때, 엽현의 손에서 한 장의 황금 명패가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그가 말한 최상급 영석 오백만 개였다.
명패를 받아 든 남자가 순간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뽀각-!
섬듯한 소리와 함께 소녀의 목이 그대로 기이한 방향으로 꺾였다.
남자가 웃으며 이미 숨이 끊어진 소녀의 시체를 엽현의 앞으로 던졌다.
“살려서 준다는 말은 없었지. 내 말이 틀렸나?”
엽현의 두 주먹이 한 동안 부르르 떨렸다. 잠시 후, 침묵하던 엽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왜… 왜 그랬나?”
남자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엽현의 몸 안에서 순백의 검의(劍意)가 휘몰아치며 방출되기 시작했다.
선념검의(善念劍意)!
엽현이 두 주먹을 말아 쥔채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표정은 전에 없이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다니……. 좋은 사람에게는 선의로, 악을 향한 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리리라!”
쾅-!
순간 그의 몸에서 방출되던 하얀 운무가 순식간에 칠흑과 같이 어둡게 바뀌었다.
일념악(一念惡)!선악검의(善惡劍意)!
이 순간, 계옥탑 꼭대기에 꽂혀있던 세 자루 검 중, 가운데 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을까?
사실 엽현은 진정으로 악한 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악인이라 하는 자들도 따지고 보면 단지 입장이 다른 경우가 대다수였다. 가족 사이에도 이익과 생존이 달린 문제가 닥치면 반목이 생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지금 이 순간,엽현은 소위 ‘악’이란 것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지금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악해져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처럼!
선이 있으면 악도 있는 법!
엽현의 몸에서 검의가 실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본 남자가 표정이 크게 변하여 두려운 눈빛을 비추고 있었다.
“검의실질…… 너…….”
순간, 남자의 어깨로 검은 검광이 통과하는 동시에 그의 음성이 끊어졌다. 검광에서 흘러나온 강대한 기운은 남자를 끌고 가, 막다른 벽에 그의 신형을 고정시켜 버렸다.
남자가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때, 또 다시 세 줄기의 검광이 날아와 그의 다른 쪽 어깨와 두 다리에 박혔다.
남자는 더 이상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엽현을 음험하게 노려보고 있던 남자의 눈빛이 순간 공포로 바뀌었다. 네 검광이 박힌 자리가 천천히 부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에게는 단 한 번 반격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엽현이 더 이상 남자에게 신경 쓰지 않고 소녀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아직 감기지 않은 그녀의 두 눈엔 두려움과 억울함이 충만했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 아닌가!
엽현이 손을 들어 소녀의 두 눈을 감겨 주었다.
이때, 그의 귓가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하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혈종 부종주의 손자요. 괜히 나를 건드렸다가 화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오!”
순간 엽현이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 틈에 영수검이 들려 있었다. 이 때의 영수검은 칠흑같이 어두운 색이었다.
이는 검이 악념검의를 품었기 때문인 듯 했다.
또한 엽현은 영수검의 기운이 이전 보다 몇 배는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거의 천계 검에 필적할 정도였다.
순간 남자의 목을 움켜쥔 엽현이 흉포하게 외쳤다.
“어디 다 오라고 해라… 남에게 학대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마!”
그의 말이 떨어지자 영수검이 미친 듯 발광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남자의 살점이 한 점 한 점 떨어져 나갔다.
“끄악-!”
남자는 처음 몇 번의 칼질은 견딜 수 있었지만,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러댔다.
“이 청주의 버러지 같은 놈아! 정녕 네 놈의 일족이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게냐!”
하지만 엽현의 손은 오히려 더욱 빨라졌다. 동시에 그에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점점 사악해지더니, 마지막에는 극악(至惡)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악치악(以惡治惡)!
남자의 비명 소리가 장내를 채우는 가운데 엽현의 검은 이미 상대의 두 팔의 살을 모두 발라내고, 이제는 다리를 향하고 있었다.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잔인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엽현의 가슴 속에는 아직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편 강구는 이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의 엽현은 그동안 그가 알던 엽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검의와 기운은 너무나도 사악한 것이어서 강구조차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멈춰!”
복도 끝에서 누군가의 노성이 들려오는 동시에 강대한 기운이 순식간에 엽현을 감쌌다. 그러나 엽현이 채 손을 쓰기도 전에 악념검의가 먼저 반응했다.
쾅-!
엽현을 감싸오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강구와 엽현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모습을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검은 천이 들려 있었다.
“웬 놈이기에 우리 혈종 제자에게 감히 손을 댄단 말이냐!”
노인이 죽일듯한 기세로 엽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에 강구가 그의 앞을 막아서며 분노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네 놈들이야 말로 강국 안에서 이렇게 살육을 자행하다니, 하물며 이들은 모두 힘없는 노인들과 아이들에 불과하거늘…….”
“벌레들을 죽였을 뿐인데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
노인의 말에 강구가 대노하여 소리치려는 순간, 엽현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왜 쓸데없이 말을 섞고 있어?”
이때, 엽현의 검이 번뜩였다.
서걱-!
그러자 그의 뒤편에 있던 남자가 그대로 반 토막이 났다.
“너… 너……!”
노인은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엽현이 흉흉한 기세로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영수검에서 거대한 검세가 마치 해일과 같이 쏟아지니 노인은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이에 노인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이 것이 정녕 신합경의 검세란 말인가!’
생각할 틈도 없이 노인은 양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에 있던 검은 천이 칠흑과 같은 기운을 뿜으며 마치 독사와 같이 엽현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이때, 영수검이 떨리더니 찰나 간에 천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을 잡아먹었다.
검안에 있던 악념검의가 상대의 기운을 흡수한 것이었다. 상대의 악념마저 흡수한 영수검은 방금 전보다 더 강한 기운을 내뿜었다.
순간, 엽현이 상대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 꽂았다.
지악일검(至惡一劍)!
노인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검은 방패가 나타났다. 하지만 영수검은 이 방패의 힘마저 순식간에 흡수했다.
‘끝났다!’
노인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검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쾅-!
노인의 신형이 그대로 튕겨나가 백장 밖에 있던 방을 뚫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무너진 건물이 노인의 몸 위를 덮었다.
먼지가 걷힌 후, 노인이 천천히 잔해더미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때, 피를 토하는 노인의 앞에 엽현이 나타났다. 엽현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노려보는 노인을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떨어뜨렸다.
서걱-!
노인의 몸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바닥에 피를 뿌렸다.
악념검의에 닿은 선혈은 그대로 검게 변했다.
바로 이때, 한 무리의 기병이 엽현 앞에 나타났다.
창란도병이었다.
도병들이 일사분란하게 말에서 내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원장을 뵙습니다!”
엽현이 창란도병들을 향해 명령했다.
“지금 당장 성 곳곳을 수색해 혈종의 무인들을 모두 참수하라!”
“알겠습니다!”
창란도병들이 순식간에 말을 이끌고 사라졌다.
‘혈종(血宗)!이 놈들!!’
엽현이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자 영수검이 강하게 진동했다.
그의 곁에 다가온 강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엽현이 고개를 가로저은 후,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노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곳은 그가 맨 처음 양계성에 왔을 때, 동생 엽령과 소면을 먹었던 장소였다. 노점 바닥에는 한 뚱뚱한 남자가 엎어져있었다.
그때 자신에게 소면을 말아주던 주인이었다.
양계성에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도 족히 수십만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 수십만의 대부분이 모두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신합경, 만법경 강자 앞에서 그저 파리만큼 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엽현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탁자 위에 영수검을 올려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구가 조용히 그의 곁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얼마나 지났을까, 엽현과 강구에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가장 앞에 있는 중년인을 필두로 서른 명 정도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왼편 가슴에 작게 ‘혈(血)’자가 새겨진 무복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신합경 절정의 강자들이었다.
그들 중 중년인은 혈종의 대장로 혈려(血黎)라는 자였다.
혈려가 엽현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들은 적이 있다. 청주지역 젊은 일대(一代) 중에서 안란수 외에 가장 강한 자라고.”
엽현은 아무 대꾸도 없었다.
이때, 혈려가 엽현 등 너머 멀리에 보이는 노인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침묵했다.
“우리 혈종은 너와 적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만약 이대로 우리가 한 일을 덮어준다면 우리 역시 너와 더 이상 얽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가?”
그러자 강구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네 놈들이 나의 백성들을 계속 죽이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
중년인이 별스럽다는 듯 대꾸했다.
“천한 목숨일 뿐인데 그렇게 예민하게 굴 것까지야?”
“천한 목숨?”
강구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만법경 강자 정도 되어야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것인가?”
중년인이 표정 없는 얼굴로 엽현을 향해 말했다.
“보아하니, 엽현 너는 우리와 적이 되고 싶은 마음인가 보구나. 그렇다면야…….”
바로 이때, 엽현이 별안간 탁자 위에 있던 영수검을 잡고 번개처럼 일획을 그었다.
이에 중년인의 눈이 차갑게 변하더니 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순간 그의 주먹 위에 한 줄기 혈망(血芒)이 번뜩였다.
검과 권의 충돌이었다.
쾅-!
장내에 폭음성이 울려 퍼지면서 두 사람의 신형이 각각 십여 장 씩 밀려났다.
협려의 주먹은 금이 가 있었을 뿐 아니라, 손등이 처참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러자 혈려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는 만법경 절정의 경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엽현은 겨우 신합경일 뿐이었다.
순간, 엽현을 바라보는 혈려의 시선이 더할 나위 없이 엄숙해졌다.
“하하하하!”
이때, 커다란 웃음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윽고 하늘을 가르며 한 노인이 천천히 날아와 혈려와 엽현에게서 멀지 않은 허공에 자리를 잡았다.
합환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