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보고 싶었어!
엽현은 그대로 엽령의 손을 이끌고는 노점으로 향했다. 이때, 엽현의 몸은 선념검의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기에 한기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았다.
노점에 도착한 엽현은 피 묻은 의자를 소매로 정성껏 닦아내고는 엽령을 앉혔다. 그러고는 직접 아궁이에 불을 뗐다.
모두 죽어 버렸기에 요리를 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 노점에는 식재료가 조금 남아 있었다.
엽령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엽현이 요리하는 모습을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북한성녀가 아닌 평범한 소녀였던 것이다.
한편, 멀찍이 서서 이 모습을 바라보는 강구의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엽현은 엽령을 대하면서 일말의 꾸밈도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동생을 순수하게 위할 뿐이었다.
황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기에 형제간의 우애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잠시 후, 엽현은 뜨거운 소면이 담긴 그릇을 대령했다. 그러나 그가 엽령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소면이 꽁꽁 얼어 벼렀다.
두 남매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보기 좋게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엽령이 엽현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오빠, 정말 보고 싶었어!”
“나도!”
두 남매는 오랜만에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그렇게 엽현과 엽령이 회포를 푸는 사이, 창란도병은 이미 혈종의 무인들을 모두 척살했다. 그 목을 양계성 위에 매달아 놓았다.
한 명의 만법경 강자 그리고 서른 명이 넘는 신합경 강자들의 목이 성에 걸렸다.
이번 일이 있은 후, 중토신주에는 엽현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원래 강국을 약탈하려 계획했던 무인들은 그들의 생각을 접어야 했다.
* * *
양계성 안.
마포(麻袍)를 입은 한 노부가 피가 철철 흐르는 세 개의 머리를 들고 와서 엽현과 엽령의 발아래 떨어뜨렸다.
그 세 개의 머리는 방금 전 도망쳤던 합환종 만법경 강자들의 것이었다.
엽령 앞에 다가온 노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령아, 스스로의 실력에 기대는 생각은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노부가 한 가지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우리 북한종은 언제나 네게 있어 최대의 후원자라는 사실이다.”
엽령은 발아래 머리들을 바라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엽현이 노부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예를 차렸다.
“령이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습니다. 부디 너른 마음으로 양해 바랍니다!”
엽현이 이번에는 엽령을 향해 다소 꾸짖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령아,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 했잖니. 북한종은 네 병을 치료해 주었을 뿐 아니라, 오늘도 도움을 주었어. 우리 남매는 절대 이 은혜를 잊어선 안 돼!”
엽령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대답했다.
“오빠, 알았어.”
엽령이 노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냉(冷) 할머니, 북한종이 제게 얼마나 잘해 주는지 알고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로 속 좁게 행동하지 않을게요.”
“령아,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니 너무 자책하지는 말아라.”
다소 표정이 누그러진 노부가 고개를 돌려 엽현을 훑어보았다.
“네가 령이의 오라비인 엽현이로구나.”
“그렇습니다.”
“오래전부터 령이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만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천부적인 자질과 강한 실력도 모자라 인성까지 갖추다니, 너와 같은 오빠를 둔 것은 령이에게도 행운일 뿐 아니라 우리 북한종에게도 복이로구나.”
인정하고 있었다. 노부는 엽현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엽현이 혈려와 싸울 때부터 이미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검주에 오른 것도 모자라 엽령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자질까지, 이런 천재를 북한종이 적으로 삼아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엽현이 엽령의 혈육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종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북한종으로서는 엽령을 얻은 것만으로도 크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었는데, 이제 보니 엽현이란 보물도 딸려 온 것이다!
한편, 엽령은 자신의 오빠가 인정을 받자 속으로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자신을 잘 돌봐준 북한종 역시 엽령에게 있어 중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령아, 일이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 북한종으로 돌아가자꾸나!”
“돌아가…?”
노부의 말에 엽령이 고개를 흔들며 엽현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오빠랑 같이 있을래요!”
그러자 노부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 몸 안에 있는 성물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성물을 흡수하기 위해서 북한종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너도 알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물이 부작용을 일으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성물?”
엽현이 노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노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북한종에는 백 년 동안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던 성물이 있다. 하지만 령이는 성물의 인정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지. 만약 성물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령이의 실력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게다가…….”
말을 하던 노부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령이의 체질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어쨌거나 우리는 북한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때 엽령은 엽현의 팔을 죽기 살기로 끌어안고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모습에 노부는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만법경 강자조차 손쉽게 죽이는 엽령이었지만, 자기 오라비 앞에서는 그저 어린 아이였을 따름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노부는 엽현을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이에 엽현이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엽령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성물에게 주인으로 인정받으면 네 실력이 엄청 강해질 거라는데, 사실이니?”
“응!”
엽현이 엽령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네가 더 강해지면 오빠 일을 더 도와줄 수도 있겠네?”
“그치만, 난 오빠랑 있고 싶어!”
“하하! 녀석. 이쪽 일이 처리되는 대로 널 찾아 가도록 할게. 어때?”
엽령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노부의 미소도 조금씩 떫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엽령이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하루, 딱 하루만 오빠랑 있을게. 그리고 바로 돌아갈게, 응?”
엽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엔 갈구함과 엽현이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혼재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눈빛을 보고도 엽현이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자!”
엽령이 시간을 못 박자, 그제야 노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엽현은 엽령을 데리고 강국 황성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밤늦은 시각. 엽현과 엽령은 산꼭대기에 앉아 밝은 달과 무수히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엽령은 여전히 작은 손으로 엽현의 팔을 꼭 붙들고 있었다.
“오빠, 근데 왜 처음부터 계속 눈을 감고 있어?”
“그건 말이지, 내가 지금 절세신공을 수련 중에 있어서 그렇단다.”
“절세신공? 그거 쎈 거야? 북한종의 ‘만리빙봉(萬里冰封)’만큼?”
“아마 그 만큼은 아닐 걸…….”
“괜찮아! 다음에 북한종에 오면 내가 가르쳐 줄게! 그리고 또 있잖아, 북한종에 좋은 물건들이 엄청 많아. 종주가 그러길 내가 종주가 되면 다 내 거래! 그렇게 되면 그것들 다 모아서 오빠한테 줄게! 갖고 싶은 거 다 가져도 돼!”
“…….”
어둠속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노부의 표정이 순간 좋지 않았다.
“오빠, 옛날 얘기해줘!”
“옛날에 어떤 산에 작은 절이 있었는데, 그 절 안에는…….”
“…….”
다음 날.
홀로 산 위에 앉아 있는 엽현.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던 엽현은 정오가 다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손 안에는 납계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납계 안에 든 것은 세 자루의 진계 하품 검, 두 자루의 진계 중품 검, 한 자루의 진계 상품 검, 그리고 천계 검도 한 자루 있었다.
천계 검!
엽현이 천계 검을 꺼내 들었다. 검은 약 사 척 반 정도의 길이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좁은 폭을 가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검 주변에 끊임없이 번개가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검은 뇌세(雷势)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검의 손잡이 부근에는 검은 글씨로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뇌소(雷霄).
뇌소검을 바라보는 엽현의 눈빛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이 검은 엽령이 주고 간 것이었다.
엽령은 어떻게 이 검들을 손에 넣었는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검을 들여다보던 엽현이 검을 집어넣으며 중얼 거렸다.
“중토신주!”
* * *
엽현은 우선 창란학원으로 향했다.
엽현이 막 창란전 앞에 도착했을 때, 묵운기가 황소처럼 달려들어 엽현에게 격렬한 포옹을 안겼다.
그의 뒤로 백택이 입에 미소를 머금고 나타났다. 여전히 닭다리를 입에 물고 있는 기안지 역시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난 엽현이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모두 잘 살아 있었구나!”
가족에게 돌아온 느낌이었다.
엽현에게 있어 묵운기 등은 단순한 친구를 넘어선 가족이었다.
아무리 강한 무인이 된다 한들 곁에 둘 친구 하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반대로, 평생을 함께할 벗들을 사귀었다면, 실력 조금 모자란다 한들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엽현이 계속해서 안부를 물으려는 때, 묵운기가 비밀스런 미소를 지으며 그의 입을 막았다.
“엽 강도,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이리로…….”
묵운기 등 세 사람은 엽현을 데리고 어두운 창란전 안으로 들어갔다. 엽현이 검의를 통해 주변을 살피려고 할 때,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켜지며 대전 안이 환해졌다.
그러자 엽현 앞에 거대한 탁자가 보였고, 그 위에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단지, 태웠는지 어쨌는지 무슨 음식인지 형체를 알아볼 순 없었지만, 확실히 누군가 요리한 것이 맞았다.
그리고 탁자 정 중앙에는 거대한 접시 위에 커다란 떡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생일 떡이었다!
이때 묵운기 등이 엽현을 향해 씩 웃었다.
“엽 강도, 생일 축하해!”
‘생일? 내 생일이라고?’
엽현은 잠시 멍청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엽현과 엽령은 철이 든 이후로 한 번도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엽 가에 있을 당시 엽현 남매는 따듯한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생일상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엽령을 잘 보살필 수 있던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행복한 일은 이따금 몰래 먹는 소면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묵운기가 엽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엽현이 옛 일에 대한 생각을 접고 웃음을 보였다.
“근데, 오늘 내 생일인 건 어찌 알았어?”
“안지 누님이 말해 준 덕분이지!”
엽현이 기안지를 쳐다보았다. 기안지는 표정 변화 없이 그저 닭다리만 뜯을 뿐이었다.
“아, 뭐해! 빨리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