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지름길이냐? 고생길이냐?
공중에 모습을 드러낸 소복 차림의 여인은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었고, 그녀의 소복엔 먼지 하나 묻지 않고 깨끗했다. 허리 뒤에 둔 그녀의 오른손엔 검고 흰 두 개의 기운이 손가락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공중에 서서,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어떤 호흡의 파동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엽현은 그녀의 등장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검수의 길은 홀로 가는 것이라며 앞으로 도와주지 않겠다던 그녀가 왜 이 곳에 나타난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이번에야말로 세상을 완전히 작살 낼 것인지 여부였다.
그녀를 보는 연만리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난 번 창목학원에서 보았던 그 공포스러운 모습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의 그 모습은 이미 사람이 아닌 마치
검신(劍神)!
검신 그 자체였다.
연만리의 눈 속에는 두려움 뿐 아니라 어떤 경외의 감정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초월적인 강함 그리고 혹여 누가 수틀리게 하면 그대로 세상을 파괴시켜 버리겠다는 그런 오만함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묵운기 등 역시 얼굴에 흥분이 가득한 기색이었다. 여인이 얼마나 강한지 직접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일 검에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장본인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좋아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지만.
한편, 여인을 바라보는 노인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그는 그녀가 나타날 때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보통 상대가 아니다!’
순간, 노인은 상대를 경시하던 마음을 접어놓고서 순식간에 백 장 뒤로 물러났다. 어느 순간 노인의 손에는 기다란 쇠사슬이 들려있었다. 쇠사슬의 끝에는 거대한 닻이 달려 있었다.
노인은 천녀를 근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쇠사슬 안으로 끊임없이 현기를 주입했다. 순식간에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거대한 파도처럼 장내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에 아래쪽에 있던 무인들이 기겁하며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어법경 강자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한편, 천녀는 노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멀리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보는 것은 수많은 별이 모여 있는 공간이었다. 정확히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때,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오른손 주먹을 쥐었다.
이때, 노인의 몸에서 다시 한 번 압도적인 기운이 주변의 모든 생명을 파괴할 듯이 피어올랐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닻이 격렬히 흔들리는 동시에 지면이 조금씩 갈라졌다.
그러자 아래쪽에 있던 무인들이 깜짝 놀라며 다시 몸을 날리듯 뒷걸음질 쳤다.
노인이 흉악한 표정으로 천녀를 바라봤다.
“검선, 그대는 여전히 검을 꺼내지 않는 것인가?”
노인은 결코 검선이란 이름이 두렵지 않았다. 자신처럼 사도가 내 공양당에서 머물고 있는 무인들 중 검선이 있었다. 그와 여러 번 비무를 치른 결과 한 번 지면 두 번 이기는 정도로 그가 더 우세했던 것이다.
노인의 현재 경지는 일반 어법경 보다도 더 강한, 진 어법경에 근접한 상태였다.
노인의 외침소리에 천녀가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검을 보이지 않다니, 정녕 노부를 무시하는 것인가!”
천녀는 여전히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노인에게 그것은 마치 자신을 경멸, 아니 마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천박한 계집같으니! 나를 무시한 대가는 피로 치러야 할 것이다!”
노인이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쇠사슬을 여인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거대한 닻이 산을 무너뜨릴 법한 위용으로 날아갔다.
이로 인해 일대의 공간이 거칠게 흔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여인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그저 날아오는 닻을 보고만 있었다. 공기를 찢으며 날아오던 닻이 여인의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두 눈이 순간 번뜩이더니, 두 개의 검광이 쏘아져 나갔다.
검광에 맞은 거대한 닻이 그대로 산산 조각 났다.
그 다음 순간,
푹-!
한 줄기 검광이 노인의 미간 사이를 통과하자, 노인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멍한 표정을 짓는 노인의 미간에서 붉은 선혈이 철철 흘러 나왔다.
“거, 검선… 아니, 대 검선…….”
대 검선(大劍仙)!
검선에 단 한 글자를 더할 뿐이지만, 그 두 경지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대 검선은 진 어법경에 상응하는 경지였다.
이 정도 강자는 청창계 전체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라고 할 수 있었다.
노인의 말을 들은 무인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대검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청창계 전체에서 정체가 드러난 대 검선의 수는 단 다섯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자신들 앞에 있는 것이다.
여인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노인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과 함께 온 다른 한 명의 어법경의 눈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사도 가에는 그들이 초빙한 검선이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대검선은 없었다.
심지어 사도 가 정도 되는 거대 세력조차 대검선을 초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때, 엽현이 노심초사하는 얼굴로 천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도 전에 천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너희들의 세계는 더 이상 가망이 없구나.]“처..천녀님! 아니 또 왜 그러십니까! 이 세상에 비록 나쁜 놈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 수많은 백성들은 또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엽현은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그에겐 친구들이 있고, 그 친구들은 모두 가족이 있다.
만약, 그녀가 또 다시 이 땅에 일 검을 꽂아버린다면 그것은…….
그들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비록 엽현 역시 죽이고 싶은 자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눈앞에 있는 수백 명의 무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없애버리는 것은 결코 안 될 말이다.
[내가 세상을 멸망시킬까봐 두려운 게냐?]“히히, 한 없이 선하신 천녀님께서 설마 그러시기야 하겠습니까요…….”
[내가 기어이 세상을 멸한다면? 날 막을 생각이냐?]엽현이 황망히 고개를 저었다.
“천녀님, 천녀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이미 죽어도 열 번은 더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결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가 아닙니다. 게다가 제게는 천녀님을 막을 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내게 힘이 있다면 천녀님을 막아보려 할 것입니다.”
여인은 엽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검수란 모름지기 항상 등을 펴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비록 자신보다 훨씬 강한 자를 맞닥뜨린다 할지라도 결코 신념과 원칙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그 말에 엽현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보아하니 이 번에도 이 세상은 망하지 않을 듯 했다.
[너는 정말로 내가 그때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줄 알았느냐?]“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습니까?”
여인이 문득 고개를 들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내가 한 말 기억나느냐? 저 별들 사이에서 누군가 이쪽 세계를 염탐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기운은 이미 예전에 이 땅으로 흘러 들어와 무형의 진까지 설치했었지. 나의 일 검은 바로 그 검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진 못했지. 만약 온전히 내 힘을 썼다간 너희들의 우주 전체가 사라져버릴 테니.]“…….”
여인이 하늘을 바라보던 눈빛을 거두고 엽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나타난 것은 그 자가 나를 불러냈기 때문이다.]“그,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한 번 쳐다보니까 겁먹고 도망가더구나.]“…….”
[사람이 어느 정도 힘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 소위 인성이란 것이 사라지고, 더 강한 힘과 더 오랜 수명 같은 것들을 추구하게 되지. 그 외에 것들은 모두 하찮을 뿐이다. 그리고 내겐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먼지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녀님, 더 이상 천녀님께 지나치게 기대지는 않을 것입니다.”
[좋다. 네가 이 번에 계옥탑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기연이라 할 수 있다. 계옥탑은 결코 하찮은 미물이 아니다. 만약 아홉 개의 도칙만 모은다면 나조차도 무시하지 못할 위력을 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물건이기도 하다. 만약 탑이 네게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수많은 강자들이 눈의 불을 켜고 뺏으려 들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 상황으로써는 널 도와주기 힘들 것이다!]“명심하겠습니다.”
이때, 여인이 사도 가의 나머지 어법경 강자를 가리켰다.
[죽여라!]엽현이 뜨악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만약 저 자를 죽이지 않으면, 네게서 탑을 거두어 가는 동시에 너의 모든 적들을 죽이고 네가 평화롭게 살도록 해 주겠다. 하지만 그 후에 너는 영원히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저 자를 죽이면 탑은 그대로 네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나는 너를 떠나야 하고 앞으로의 일은 네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천…천녀님! 왜 그래야 합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무도의 정점에 서기 위해서는 스스로 길을 찾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전적으로 너 자신에게 의지해야만 한다!]엽현은 고민에 빠졌다.
만약 첫 번째 길을 택한다면 그녀가 모든 적을 해치우고 자신을 이 세계의 최고의 무인으로 올려놓을 것이다.
두 번째를 택하게 된다면, 앞으로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첫 번째는 지름길이요, 두 번째는 고생길인 것이다.
엽현은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결론에 이른 듯 여인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길을 택하겠습니다!”
말과 동시에, 그의 몸 안에서 강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황!
여인이 한껏 기쁜 표정으로 엽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검도란 인생과 같은 것이다. 만약 네가 지름길을 택했다면 너와의 모든 정은 모두 흙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다행히 올바른 길을 택했으니, 때가 오면 운단(雲端)에서 다시 보도록 하자꾸나!]여인이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때, 그녀의 손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 몸도 사라질 때가 되었구나.]사람은 반드시 자신에게만 의지해야 한다.
이 것이 엽현의 생각이었다.
만약 모든 일을 천녀에게 맡긴다면 그의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엽현이 천천히 어법경 강자를 향해 다가갔다.
어법경이라고?!
오래 전, 엽현은 창목학원의 어법경 강자인 좌원사와 겨뤄본 적이 있었다. 당시 좌원사는 자신의 경지를 일부러 낮춘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현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론 현재의 그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어법경 강자와의 일전!
영수검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법경 강자를 앞두고 긴장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이리라!
하지만 역시 싸워야만 했다.
엽현이 다가오는 것을 본 어법경 강자 역시 주먹을 감아쥐며 전투 준비를 했다. 그의 뒤에 있는 여인은 자신이 감히 건드릴 수도 없겠지만, 엽현 정도라면 자신 있었다.
비록 엽현이 이미 검황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말이다.
노인에게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발을 멈춘 엽현이 검 끝으로 상대를 겨냥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일합으로 승부를 봅시다!”
쾅-!
순간, 한 줄기 세찬 검세가 영수검을 타고 흘러나오며, 마치 거친 파도처럼 사방을 향해 뻗어 나갔다.
천지검세(天地劍勢)!
현재의 그는 이미 천지와 공간의 힘을 검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상태였다. 비록 그의 경지는 만법경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 검세 하나만으로도 만법경 강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쓸데없는 말은 생략한 채, 엽현이 검을 들고 그대로 돌진했다.
지금 엽현의 마음속에는 단 한 가지만 있을 뿐이다.
네가 죽던가, 아니면 내가 죽던가!
영수검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기운을 느낀 노인은 자신이 엽현을 얕잡아 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생각할 여유도 없이 노인이 일 보 전진하며 자신의 앞 공간을 양 손으로 끌어 당겼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엽현의 검 또한 그 안으로 끌어 들였다.
공간 왜곡!
바로 이때, 영수검이 돌연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악념검의(惡念劍意)!
악념검의가 펼쳐진 순간, 왜곡되던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노인의 표정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어떻게 공간이 흔들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