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살을 빼라고? 죽으란 소린가?
엽현은 엽령을 데리고 원래 그들이 머물던 가장 아래층의 객실로 돌아왔다. 특등실 어쩌고 하는 것은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엽현은 엽령이 잠에 든 것을 확인 한 후 곧바로 계옥탑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탑의 두 번째 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엽현이 깜짝 놀라고 있을 때 천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기분은 좀 나아 졌느냐?]엽현이 어두운 곳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녀님!”
천녀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왜 나섰는지 아느냐?]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네 검이 가져올 결과를 알고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기억 하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때, 네가 검을 거뒀다면 나 역시 출수하지 않았을 것이다.]엽현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입니까, 천녀님? 제가 무모하게 맞섰기 때문에 저를 구해주러 오셨다는 겁니까?”
[검수의 자격을 얘기하는 거다. 자신의 가족이 그와 같은 상황에 빠졌는데도 결과 따위나 생각하고 있다면 결코 검을 잡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만약 네가 그 일검을 뽑지 않았더라면 너의 마음은 억울함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너의 검심 역시 산산조각 나서 영영 검수가 될 기회를 잃게 되었을 것이다!]
“검심이 파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엽현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자 천녀가 말을 이어갔다.
[검수는 검 뿐만 아니라 마음도 수련해야 한다. 마음은 사람의 본심을 말한다. 아까 너는 동생을 위해 살인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네가 그 결과를 두려워한 나머지 사건을 그대로 덮어버리려 했다면 마음을 배신한 셈이 되는 것이다.이게 무슨 큰 영향을 끼칠까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는 매우 중요하다. 검은 검수와 연결되어 있는 법이다. 네가 스스로의 본심을 배신하는 순간 검심징철(劍心澄澈)의 경지 역시 깨지기 마련이다.]
엽현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녀님, 매번 이런 식이라면 검수의 생명은 오래가지 못하겠네요.”
천녀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검수가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진정한 검선의 존재는 극히 드물지. 네게 검도의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하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엽현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그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원래 출수해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계옥탑에서 나오고야 말았지. 너는 이 것이 초래할 결과를 알고 있느냐?]“결과요?”
엽현이 천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결과 말입니까?”
[전에 말했듯이 이 탑의 봉인은 이미 많이 헐거워져 있다. 이번에 내가 탑을 잠시 나감으로써 탑을 싸고 있던 봉인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쉽게 말해 제 2층의 봉인이 풀리는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말이다. 많아야 넉 달 혹은 다섯 달 후, 2층의 봉인은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그 전에 도칙(道則)을 찾아오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미리 말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없다. 내가 봉인된 존재들을 향해 출수하는 순간 탑 전체 봉인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더 나쁜 결과를 불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엽현이 심각해진 표정으로 잠시 침묵한 뒤 물었다.
“그렇다면 천녀님께서는 영영 출수할 수 없는 것입니까?”
[네가 도칙을 찾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이번처럼 탑 밖을 나가는 것도 안 된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더 이상 출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 내가 나선 것은 네 용기가 가상하기도 했고, 그 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이제 이해했느냐?]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천녀님!”
사람이 기대야 할 곳은 자기 자신뿐이다. 설령 누군가로부터 한 번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다음에도 도와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기대를 해서도 안 된다.
한 번 도움을 받은 것으로 이미 큰 은혜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다.
엽현은 원래 자존감이 강한 인물이었다. 다른이의 도움을 당연시하지 않았다. 홀로 동생을 키우면서 항상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녀의 마지막 말은 엽현에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 더 이상 천녀님께 의존해서는 안돼. 내 스스로가 실력을 키워 나와 동생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해!’
다만 도칙을 찾는다는 건 조금 골치 아픈 일이였다. 도칙을 찾으려면 우선 빠른 속도로 어기경, 혹은 능공경에 도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천녀는 기변경 경지에서는 도칙을 통제할 수 없다고 했다.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어!’
엽현이 마음 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지금 엽현이 가장 신경쓰는 문제는 여동생 엽령의 치료였고 그 다음이 이 계옥탑의 봉인이었다.
그는 이미 계옥탑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천녀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느낄 수가 있었다. 봉인이 풀린다면 천녀는 그를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그 때가 오면 반드시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엽현이 돌연 질문을 던졌다.
“천녀님, 검심징철이란 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엽현은 사실 천녀가 언급한 검심징철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거울을 보는 것과 이치가 같다. 평소 너는 네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거울을 비춘 후에는 그것을 똑똑히 볼 수 있다. 이런 이치로, 검심징철에 다다르면 네 스스로 너의 검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엽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검심징철에 도달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이번에 일검정생사를 사용했을 때 무언가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했느냐?]순간, 엽현이 무언가 깨달았다.
‘그래, 맞아!’
그가 처음으로 일검정생사를 사용했을 땐, 거의 반쯤 시체가 될 정도로 처참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피곤하기만 할 뿐이었다!
[검심징철에 이르게 되면, 상대가 펼치는 환상이나 환술이 네게 통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실력이 너를 훨씬 초과할 때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이것 외에도, 마음과 검이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네가 펼치는 검기와 검초의 위력이 배가 된다이제 좀 피곤하구나. 더 이상 말하기 귀찮으니, 저기 가서 그림자와 대련이라도 하거라. 그러다 보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천녀에 말을 듣자마자 엽현은 그림자를 불러내어 대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 일 검을 펼치는 순간 엽현은 당황했다.
그의 검이 이전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림자의 검도 어딘가 모르게 이상했다. 설명할 순 없지만, 마치, 너무 간단하다랄까?
그로부터 약 일 각의 시간이 지나자 엽현은 대련을 멈춰야만 했다.
그의 장검이 그림자의 흉부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엽현이 잠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엽현은 손에 든 영소검을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엽현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네가 내 검인 것 같구나…….”
그동안 영소검은 엽현에게 있어 낯선 존재였다.
자신의 검 같지 않다고나 할까? 검을 사용 할수록 왠지 어색했다.
지금은 이런 생소함이 사라졌다. 검을 사용할 때 훨씬 더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엽현은 비로소 무인과 병기간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검을 갈무리 한 엽현은 그대로 계옥탑을 빠져 나와 휴식을 취했다.
수련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휴식이다. 휴식을 취하고 정력을 보충해야만 더 좋은 수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참의 소동이 지난 후 운선이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모든 것은 평상시와 같아보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갑판 위에서 벌어진 소동으로 한 소년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소년이 분명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취선루의 무인들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들에게 맞섰으니 살아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운선은 거대한 대하를 건너 이윽고 끝이 없는 큰 산맥에 도달했다. 운선 아래서 내려다보는 산맥의 풍경은 가히 절경이었다.
다시 갑판 위로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취선루가 이미 경고한 이상 그들은 그들이 본 것을 함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취선루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엽현의 객실 안.
얼마나 잠에 들었을까? 엽현은 무언가 자신의 얼굴을 간지르는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엽령이 천연덕스럽게 엽현의 얼굴에 머리를 비벼대고 있었다.
엽현이 깨어난 것을 본 엽령이 달콤하게 웃었다.
“오빠!”
엽현이 비몽사몽간에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이미 정오가 지났어. 오늘은 많이 피곤했나보네? 조금 더 자, 내가 옆에 있어줄게!”
엽현이 동생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웃었다.
“나가서 바람이나 좀 쐴까?”
엽현은 간단히 세안을 한 후 엽령과 함께 갑판 위로 올라갔다.
그들 남매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로 쏠렸다.
‘살아있었어?’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가득했다.
취선루의 무인을 죽이고도 살아 있단 말인가?
이때, 육소연이 엽현을 발견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저 아이,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구나…….”
육소연 곁에 있던 뚱보 소년이 엽현 남매에게로 다가갔다. 엽현의 얼굴을 한동안 응시하던 소년이 갑자기 자신의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형!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돈이 필요하다면 말씀만 하십시요, 우리 아부지는 돈이 엄청 많다고요!”
“…….”
그 모습을 보고 엽령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순간, 어느새 다가온 육소연이 뚱보 소년을 발로 뻥 차며 가볍게 꾸짖었다.
“이놈아, 검수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느냐!?”
뚱보 소년이 볼맨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어려운 게 뭐 대순가! 돈이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요?”
육소연이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엽현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제 아들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한 제 불찰입니다!”
엽현이 빙그레 웃으며 뚱보 소년을 바라보았다.
“검수가 되고 싶으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살부터 빼는 게 좋겠다.”
그 말에 소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살을 빼라고? 죽으란 소린가!’
소년의 표정을 본 엽현과 육소연은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공자님은 황성에 가는 길이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창목학원에 지원하러 가는 것이겠군요.”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육소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삼년에 한 번 있는 창목학원의 신입생 모집은 강국 최대의 행사나 다름 없소. 그대와 같은 젊은이가 이 시기에 황성으로 향한다면 백이면 백! 창목학원에 지원하려는 것이겠지요.”
육소연이 자신의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놈은 큰 아들 육명(陸明)이오. 내 아들 역시 창목학원에 지원하기 위해 가는 길이오.”
소년이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아부지, 걱정 마십쇼! 반드시 창목학원에 합격할 것이니! 만약 날 떨어뜨리면, 학원을 몽땅 사버리면 그만입니다!”
“…….”
“너를 너무 오냐오냐 해 준 내 탓이 크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성은 강국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니 만큼 각지의 인재가 몰려드는 곳이다. 육명이 천산성 안에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을지 몰라도 황성에서 똑같이 하다가는 크게 망신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그의 눈에도 철없어보이는 육명인데 아버지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들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엽현은 왠지 모르게 이들과의 인연이 길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