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우리가 도와주마!
엽현의 어색한 태도에, 노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어쩌면 이번 일은 호계맹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호계맹이 무엇 때문에?’
노인의 시선이 다시 엽현에게로 향했다.
“호계맹이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혹시 네 놈이 노부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냐?”
엽현이 대답 없이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몇 발 내딛기도 전에 노인이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사도 가의 원한이 전적으로 네게 향하는 걸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노인의 말에 엽현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해 줄 말은 단 네 가지요. 첫째, 청주 창목학원이 완전히 괴멸되었는데, 중토신주의 창목학원 본원은 왜 여태껏 잠자코 있는지.
둘째, 사도 가의 가주와 십여 명의 만법경 강자 그리고 수백의 중토신주가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셋째, 호계맹이 어찌하여 그들이 사라진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배후로 나를 지목할 수 있었는지.
넷째, 그렇다면 왜 호계맹이 직접 나서지 않고, 수배령을 내린 것인지. 그대가 스스로 잘 생각해 보시오!”
그 말과 함께 엽현이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인이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우선 엽현이 했던 첫 번째 말. 처음에는 노인 역시 창목학원을 제거한 것은 검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도 가에서 조사한 결과 창목학원 본원이 호계맹에 거대한 액수의 벌금을 지불한 이후, 타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안 가의 보호를 받게 된 사실이 드러났다.
만약 엽현의 배후가 청주 창목학원을 제거했다면, 창목학원은 왜 벌금을 내야만 했을까?
두 번째, 당시 사도 가는 진 어법경 강자 하나와 열 명의 만법경 강자를 파견했다. 그 외에도 암계에서 데려온 초특급 살수 하나와 수백 명의 중토신주 무인들이 그들과 함께였다. 이 정도면 중토신주에서 가히 하나의 세력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는 검선 홀로 행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 많은 자들을 흔적도 없이 제거하는 것은 몇몇 거대 세력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호계맹은 그 몇 안 되는 거대 세력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라진 직후, 호계맹은 왜 엽현을 수배했을까?
호계맹의 실력이라면 엽현 하나 쯤 제거하는 일은 문제도 아닐 텐데, 굳이 번거롭게?
혹시 호계맹이 모든 일을 꾸미고 나서 엽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라면?
순간, 노인의 두 눈이 번뜩였다. 모든 실마리가 풀린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바로 호계맹의 계략이었다! 그 이유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았다.
예를 들어, 중토신주의 세력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일 수도 있었다. 호계맹이 줄곧 중토신주의 세력들이 강성해지는 것을 원치 않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엽현은 그 계략을 성사시키기 위한 희생양일 따름인 것이다.
이에 생각이 미친 노인의 표정이 순간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처음부터 뭔가 이상 했어……. 엽현 혼자서 사도 가의 그 많은 무인들을 처리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모든 게 호계맹 놈들의 계략이었던 게야!”
노인이 황급히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이 엄청난 함정을 한시라도 빨리 사도 가에 알려야 했다.
한편, 깊은 산속에선 엽현이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그는 이 기술을 극한의 경지까지 완성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때가 오면 일 검에 상대를 죽일 수 있도록 말이다.
엽현이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순간에도 중토신주의 무인들은 끊임없이 청주로 몰려들고 있었다.
창란주로 갔던 무인들이 실력이 향상되어 돌아오자, 너도 나도 청주로 향했던 것이다. 물론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엽현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사도 가의 노인이 중토신주로 돌아간 이후로, 중토신주의 정상급 세력들은 청주로 들어오지 않았다.
중토신주는 상계(上界)와 하계(下界)로 구분된다. 하계의 수많은 세력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일문(一門), 일맥(一脈), 일검(一劍), 삼종(三宗), 그리고 육족(六族)을 꼽을 수 있었다.
일문은 현문(玄門)을 칭한다. 중토신주 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다소 신비로운 세력이었는데, 이는 그들의 본거지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단, 모두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현문이 지금까지 여섯 차례나 요얼방 1위 무인을 배출해 냈다는 점이었다.
일맥은 만수산맥(萬獸山脈)의 요계세력(妖界勢力)을 일컫는다. 그 실력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일검, 창검종(蒼劍宗)은 청창계 최대의 검수종문(劍修宗門)이라 할 수 있었다.
삼종에는 마종(魔宗), 현음종(玄音宗), 그리고 북한종(北寒宗)이 속한다. 이들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마종이라 할 수 있다. 마종은 혈종, 귀종, 합환종과 같은 수많은 마도 세력들의 추종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 청주로 들어온 마도 세력들은 결코 적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마종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는 마종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일문, 일맥, 일검, 삼종, 그리고 육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인들은 이를 두고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으나,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 *
호계맹 총본산.
총본산은 호계산이라는 깎아 지르는 듯한 거대한 산에 위치한다. 만약 호계맹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선경이 바로 발밑에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호계전(護界殿) 내에는 육 존주가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허리가 약간 굽은 노인이 무언가 심각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윽고 노인이 말을 끝마치자 이번엔 육 존주가 입을 뗐다.
“상계의 정보력으로도 그녀에 대해 알아낼 수 없었단 말이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상계와 하계의 모든 검수와 대검수, 심지어 그 위의 존재까지도 확인했으나 그런 여인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말입니다.”
그 말에 육 존주의 미간 사이가 순간 깊게 패였다.
흰 소복녀!
호계맹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조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가만 두기엔 그녀는 호계맹에 너무나 큰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육 존주는 아직 엽현의 배후인 그녀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봐도 그녀에 대해 털끝만큼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 여인은 뭔가 범상치 않습니다. 아니면 이만 포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호계맹의 진 어법경 강자를 죽인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소!”
육 존주의 노기 띤 음성에 노인은 바로 입을 닫았다. 노인이 볼때는 그들이 입은 피해는 충분히 잊을 수 있는 것이었다. 복수하기에는 그녀의 실력이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다.
육 존주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내 상부에 이미 기별을 넣어 놓았소. 어찌됐던 간에 반드시 그녀의 내력을 알아내야만 하오. 자칫하다간 우리의 대업을 망칠 수 있으니 말이오. 그대는 가서 성망(星網)을 통해 다른 천성계(天星界)에도 그녀를 수배하도록 하시오. 청창계에서 찾을 수 없다면, 밖에서 찾아보면 될 것이니…….”
“존주, 늙은이가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그 여인을 찾으려 하는 것입니까?”
“그녀의 일 검에 그 분의 천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소. 만약 그분께서 청창계에 계셨더라면 그녀를 가만히 두셨겠소? 그분께서도 이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여인을 찾아내어 반드시 복수하라 하셨소!”
그제야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소. 그리고 참, 일문, 일맥, 삼종, 육족 쪽엔 여전히 움직임이 없소?”
“마종 외에는 별 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심히 수상해 보입니다.”
“다시 명을 내리겠소. 엽현을 죽이는 자는 포상으로 천계 공법 두 권, 천계 무기 두 권, 천계 영기 두 점, 최상품 영석 오억 개, 옥품 영맥 스무 개, 그리고 호계령 하나를 하사하겠소. 흥, 이래도 저들이 가만있을 수 있는지 두고 봅시다!”
호계령(護界令)!
호계령은 그 자체로는 무슨 대단한 보물이라 할 순 없었다. 하지만 호계령을 지닌 자는 호계맹의 도움을 한 번 요청할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천계 급 보물보다 더욱 값어치 있는 것이었다.
호계맹에서 내 건 새로운 보상 조건이 알려지자, 청창계 전역은 또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엽현의 이름은 다시 한번 청창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청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는 더 이상 약탈이 목적이 아닌, 엽현의 머리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청창계 전체에는 이런 말이 떠 돌았다.
엽현을 잡으면, 삼대가 놀고먹을 수 있다!
한편, 울창한 숲속. 수련에 매진하고 있던 엽현이 문득 고개를 돌리니 한 노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취선루 오 루주였다.
오 루주는 이미 어법경에 이른 상태였다.
오 루주가 손을 휘두르니 두 사람 사이에 탁자가 하나 펼쳐졌다. 그 위에 술독과 술잔이 나타났다.
먼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한 잔 마신 오 루주가 인상을 쓰며 말을 시작했다.
“엽현, 미안하게 됐네. 취선루는 완전히 청주에서 발을 빼게 됐으니… 앞으로 더 이상 도움을 주긴 힘들 걸세.”
엽현 역시 술잔을 입에 털어 놓고는 웃음을 보였다.
“괜찮습니다!”
“하하하, 역시 호방하구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던 오 루주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참, 오늘부터 내 자네를 원장이라 불러야 겠구만!”
“원장?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하, 그게 말이지. 오늘 부로 이 노부는 취선루를 떠나 창란학원에 들어가기로 했다네! 하하하!”
말을 마친 오 루주가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잠시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던 엽현이 몸을 돌려 손가락을 하나 까딱였다. 그러자 십여 장 밖에서 나뭇잎 하나가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나뭇잎이 있던 자리에는 대신 한 자루 검이 공중에 떠 있었다.
현재 그의 비검술은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빨라진 상태였다. 만약 십 장으로 거리를 한정한다면 자기 자신조차 검의 궤적을 겨우 느낄 정도의 속도였다.
비검!
일검정생사!
일검정생사를 천녀에게서 배운 것이라 한다면, 비검술은 스스로 터득한 것이었다. 이번 수련에서 엽현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이 비검의 위력을 한 층 강화시켰다는 것이었다.
비검에 검의와 검세를 입힌 효과는 의외로 대단했다.
엽현은 설령 상대가 어법경 강자라 할지라도 십 장 내에서라면 비검으로 죽일 자신이 있었다.
십장일살(十丈一殺)!
엽현이 이 비검술에 붙인 이름이었다.
이윽고, 흡족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나려는 엽현 앞에 웬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품이 넓은 장포를 입은 노인은 백발이 성성했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것이 꽤나 나이 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마치 심해와 같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노인이 먼저 담담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노부는 전대 사도 가의 가주, 사도명(司徒冥)이라 한다.”
“무슨 볼 일이라도?”
엽현이 별 다른 표정 없이 묻자, 노인이 잠시 엽현이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노부가 네 뒤에 있는 검선을 만나고 싶구나!”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만날 수 없소!”
“무엇 때문에?”
노인의 물음에 순간 엽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호계맹의 무인들에게 중상을 입고 상처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이오!”
“흠… 허면, 우리 사도 가의 무인들을 죽인 것도 호계맹이었더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오.”
짧게 대답한 엽현이 그대로 몸을 돌리려 하자, 사도명이 재빨리 엽현의 앞을 막아섰다.
이에 엽현이 포권을 취했다.
“나는 더 이상 호계맹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으니, 존장께서는 양해 바라오!”
“혹시, 호계맹이 너를 놓아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게냐?”
“…….”
“그들이 네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기로 작정한 이상, 너를 포기할 리가 없을 터, 그렇다면 너는 왜 그들과 대적하지 않는 것이냐?”
“간단하오. 내가 이길 리가 없기 때문이오!”
사도명이 엽현에게 한 발 다가서서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사도 가가 도와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