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나도 염치가 없는 건 알고 있소
‘너무 건방져!’
‘싸우기도 전에 사람을 더 불러 오라니, 이 얼마나 방자한가!’
한편, 엽현을 마주하고 있는 중년인은 애써 태연한 척 연기했지만, 등 뒤로 끊임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엽현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는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실력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도 무려 만법경 강자였다.
하지만 방금 전, 엽현에 일 검에 반응 한 번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미간을 내어주지 않았는가!
“원군을 부르면 살려 주겠다.”
엽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중년인의 귓가를 찔렀다.
“고, 공자. 내가 잘못 찾아온 것 같소. 지금 당장 강국을 떠날 테니 부디…….”
“혓바닥이 왜 이리 길어!?”
엽현이 갑자기 성을 내며 소리쳤다.
“그렇게 멀리서 왔으면서 싸워보지도 않고 떠난다니, 내가 그렇게 못 봐줄 정도인가? 그런 거야?”
서걱-!
한 번의 칼질에 중년인의 한쪽 팔이 날아갔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중년인을 보며 다른 무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미, 미친놈… 미친놈이다!’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런 엽현과 마주하고 있는 중년인은 이미 공포에 질린 상태였다. 어떻게 봐도 눈앞의 엽현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때, 서슬 퍼런 검 끝이 중년인의 목젖에 닿았다.
“마지막 기회다. 지원을 요청해라. 청림종인지 하는 네 종문에 당장 연락해!”
중년인이 엽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외쳤다.
“정녕 피를 보고 싶은 게냐?”
서걱-!
말과 동시에 중년인의 몸이 세로로 쪼개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졌다.
순간, 무인들이 눈을 크게 뜨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엽현이 품 안에서 천을 꺼내 검신의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악당이 되어서 이렇게 쫑알쫑알 대기만 해서야…쯧쯧…….”
순간, 엽현이 고개를 쳐들며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뭘 쳐다보고만 있어! 날 죽이러 온 거 아냐!? 다 덤벼!”
뭔가 상황이 뒤바뀐 것 같은 상황에 무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겁이 많은 자들은 이미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무인들 사이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어법경 강자였다.
“모두 겁먹지 마시오! 놈이 비록 고수라 해도 여기 있는 모두를 당해낼 순 없소!”
그 말에 엽현이 짐짓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하지. 하지만 그대가 불쌍해서 한 가지 알려주자면, 보통 만법경 강자는 나의 일 검도 막아내지 못해. 어법경 강자 또한 나를 이길 수 없다. 농담이 아니야, 영감.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내 말대로 친구들을 싹 다 불러 오는 게 좋다니까?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인해 내일 뜨는 해를 볼 수 없게 되면 안타깝잖아!”
노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엽현! 그렇게 말한다고 누가 겁먹을 줄 아느냐? 너는 이 노부 손에…….”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엽현이 앞으로 발을 굴렀다. 그러자 한 줄기 검광이 십장 거리에 있던 노인을 향해 빛처럼 날아갔다.
서걱-!
순식간에 노인의 머리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몸통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으며 사방으로 튀었다.
십장일살(十丈一殺)!
어법경 노인이 단 일 검에 목이 잘리자, 무인들이 대경실색하며 황급히 후퇴했다.
어느새 노인의 납계를 손에 쥔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내가 진심을 말해 줘도 믿지를 않는구나…….”
엽현이 고개를 들어 나머지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지원을 요청을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니, 모두 이만 죽어 줘야겠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엽현의 신형이 하늘을 날았다.
엽현이 달려드는 것을 본 백여 명의 무인들이 당황한 기색으로 서 있을 때, 그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엽현을 죽이고 천생의 부를 누리자! 다 같이 죽…….”
말하던 자의 목이 어느새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이를 신호탄으로, 비검이 무리를 섬광처럼 헤집고 다니니, 그때마다 피 묻은 머리들이 떨어졌다.
엽현이 마치 살인귀와 같은 모습으로 무인들을 죽이자, 나머지 자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막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엽현의 비검은 그들보다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장내에는 백 명 중 겨우 이십여 명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들 또한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엽현은 직접 그들을 추격하진 않았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창란도병들이 그들을 쫒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엽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내 산처럼 쌓인 시체들 사이에서 아직 살아서 꿈틀대는 무인의 앞에 멈춰 섰다.
무정한 얼굴. 그리고 무정한 칼이 남자의 가슴팍을 깊게 꿰뚫었다. 순간, 남자의 몸이 경직되더니 이내 혼이 빠져 나갔다.
잔인하다고?
험난한 세상에서는 독해지지 않으면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적에게 함부로 인정을 베풀었다가는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지기 십상이다.
마침내 검을 거둔 엽현은 시체들 사이에서 납계를 수거했다. 그가 이번 전투에서 거둬들인 수익은 최상급 영석 일억 구천만개 정도였다.
그 외에 진계 영기가 십여 점과 명계 영기도 서른 점 가량 있었다. 꽤나 짭짭할 수입이었다.
특히 진계 영기는 바로 창란도병에게 건네 줄 수 있었기에, 창란학원의 지출을 상당히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자질구레한 물건까지 모두 팔아 치운다면 수천만 개의 영석을 얻을 수 있을 터, 그렇다면 이번에 얻은 총 수익은 대략 최상급 영석 이억 개 정도가 됐다.
단숨에 벌어들인 수익 치고는 엄청났다.
하지만 엽현에겐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엽현은 이 영석들을 육구가에게 넘기지 않고 계옥탑에 흡수시키기로 했다.
창란학원에서 가장 강한 자는 다름 아닌 엽현 자신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으면 안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가장 강력한 패인 계옥탑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때, 패잔병들을 쫒아 나섰던 창란도병들이 손에 피 묻은 머리를 들고서 돌아왔다.
그들 중 한 명이 말에서 내려 공손히 두 손을 엽현에게 내밀었다. 손 안에는 이십여 개의 납계가 쌓여 있었다.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 몫이다.”
엽현이 신형을 돌려 성 안으로 향했다. 그가 막 성문을 통과하려 할 때, 갑자기 멈춰서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시신들을 처리하고 나서 창란학원에 경계태세를 단단히 갖추라고 이르도록! 덧붙여, 나는 중상을 입고 치료 중에 있다고 전하거라!”
말을 마친 엽현이 그대로 성 안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방으로 돌아온 엽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옥탑에 영석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영석이 가득 들어있던 납계가 어느덧 바닥을 드러냈다.
엽현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최상급 영석 구억 개…….’
구억 개의 영석을 집어삼키고도 계옥탑은 여전히 요지부동인 것이다.
밑 빠진 독!
진정 밑 빠진 독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엽현은 계속해서 그 안에 영석을 부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계옥탑이 필요한 영석이 백억 개라고 가정한다면, 어디서 그 많은 영석을 구할 수 있겠는가?
뺏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정녕 이대로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엽현은 다소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더 이상 진행하다가는 스스로의 정신력이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다.
바로 이때, 그의 몸 안에 있는 계옥탑에서 순간 진동이 감지됐다.
엽현이 다급히 계옥탑을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계옥탑이 미세하게나마 떨렸던 것은 사실이었다.
분명 무슨 징조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던 엽현은 조금 더 진행해 보기로 결정했다.
어쨌든 이미 영석 구억 개가 들어갔고, 계옥탑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에겐 남은 영석이 없다는 것이었다.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얻은 영석 이억 개를 순식간에 다 써버리다니……
엽현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조금은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억 개의 영석이 넓은 바다에 빠뜨린 돌멩이와 같이, 그저 한 순간 물보라와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물론 계옥탑이 반응했다는 사실이 조금 고무적이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엽현은 답답하기만 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방문을 열고 한 노인이 들어왔다.
사도명이었다.
“거 참, 문 좀 두드리고 들어오면 어디 덧나오?”
“농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중토신주에서 가장 강한 용병단 셋이 너를 처리하기 위해 오고 있다는 정보다. 그것도 그들 셋이 연합해서 말이다.”
“진 어법경 강자도 있소?”
엽현은 진 어법경 강자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연만리 정도의 진 만법경 강자는 예외이긴 하지만.
“있다면?”
사도명의 말에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못 이기오, 도망가겠소!”
“어허! 검황이란 놈이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하지만 진 어법경은 정말로 못 이기는 걸 어떡하란 말이오!”
“진정해라. 진 어법경 강자는 때가 되면 우리가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네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제야 엽현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문제없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사도명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들을 결코 얕봐선 안 된다. 특히 용병단 서열 일위인 황천(黃泉) 용병단은 신비하기 짝이 없는 세력이다. 사도 가의 정보력으로도 그들의 내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력 또한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데, 특히 그 우두머리는 요얼방 삼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도명이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얼방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약하다는 보장은 없다. 몇몇 강자들은 단순히 요얼방에 관심이 없어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너 또한 요얼방에 오르지 않았지만, 누구도 너를 함부로 하지 못하지 않느냐? 같은 이치다. 알겠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결코 얕보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런데 저…….”
엽현이 주저하듯 말을 이었다.
“내가 장비가 좀 필요한데… 단약도 마침 떨어졌고…….”
사도명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엽현이 살짝 목을 움츠리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에이… 나도 염치가 없는 건 알고 있소……. 그런데 그대도 한 번 생각을 해 보시오. 저 많은 중토신주 무인들을 나 혼자 막소? 나도 다른 무인들을 키워다가 쓰려면 돈이 필요할 것 아니오? 아니면 그대가 알아서 쓸 만한 놈들을 골라서 척척 보내 주든가! 그렇게만 해 주면 내가 제일 앞장서서 싹 다 쓸어버릴 수 있는데…….”
엽현이 표정을 순식간에 진지하게 바꿨다.
“만약 내 요구가 난처하다면 할 수 없소. 지금 당장 창란학원의 무인들을 데리고 청주를 떠나 어디 깊은 산 속에 숨어 들어가겠소. 힘이 없는데 무슨 수로 싸운단 말이오? 어쨌든 아직까진 저 호계맹과 철천지원수가 된 것도 아니니…….”
그 말에 사도명은 한참 동안 매서운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내일 대답을 가지고 돌아오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도명은 방을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