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거부하면 죽는다
엽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왕자가 여인을 향해 말했다.
“확실히 이 일은 뭔가 미심쩍긴 해. 이 정도 현상금이라면 진 어법경 강자도 충분히 죽일 수 있을 텐데, 그런 거금을 겨우 신합경 강자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쓴다니. 게다가 호계맹에서 나서면 아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왜 굳이 번거롭게 수배령을 내렸을까? 게다가, 보통 수배가 내려진 자들은 모두 그 종적을 찾기 어려운 것이 보통인데, 엽현은 어디 숨지도 않고 저 성 안에 가만히 있단 말이지……. 네 생각은 어떤가?”
왕자가 여인을 향해 물었지만 여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광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거들었다.
“정말로 엽현이 호계맹의 사람일까? 그래서 호계맹에서 저 놈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부러 무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일까?”
왕자가 잠시 고민하다 대꾸했다.
“흠…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지. 저런 이름 난 검수 뒤에 아무런 세력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알다시피 창목학원과 암계가 놈과 대적하다 큰 피해를 입었지. 창목학원은 심대한 타격을 입고 추락했고, 암계는 아예 자취를 감췄어. 게다가 얼마 전에는 사도 가가 파견한 진 어법경 강자들마저 엽현에게 살해당했다지 않나.”
“만구산에서의 일을 말하는 건가?”
광사의 물음에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백 명의 무인들과 두 명의 진 어법경 강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보다시피 엽현은 저렇게 살아 있어. 이는 그의 배후에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고서야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야. 호계맹 역시 몇 안 되는 그런 세력들 중 하나지.”
“흠… 그럼 어쩐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이제 왕자와 광사의 시선은 면사를 쓴 여인에게로 향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호계맹이 다른 움직임을 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 만약 시간이 지나 그들이 현상금을 더 올린다면, 그 건…….”
“무슨 음모가 있다는 뜻이겠지!”
왕자가 여인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광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리도록 하자. 남의 손에 이런 식으로 놀아나는 건 아무래도 찝찝하단 말이지!”
면사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계속 조사해 보자.”
* * *
엽현은 창란학원으로 돌아오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가 성 밖에 나갔던 이유는 저들 용병단을 실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실제로 마주하고 난 이후, 엽현은 자신의 계획을 완전히 수정해야만 했다.
피부로 느낀 용병단의 실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이다.
용병단 개개인의 기운은 창란도병을 상회했다. 특히, 면사녀와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아홉 무인들의 기운은 엽현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모두 만법경일지도…….’
면사녀 양쪽에 서 있던 두 사람 역시 만법경 강자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진 만법경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면사를 뒤집어 쓴 여인은 엽현의 실력으로는 그 경지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엽현 혼자서 서른 명의 무인들을 모두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창란도병의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혹여 이겨도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엽현은 이제부터 자신을 찾아오는 무인들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닐 것임을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다.
엽현은 이내 빠른 걸음으로 창란학원 뒷산에 있는 수련장을 찾았다. 그곳엔 백 기의 창란도병들이 도열해 있었다. 가장 선두에는 강구가 서 있었다.
엽현은 창란도병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강구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지금부터 더 조심해야 해.”
강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강구의 호령에 창란도병들이 일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탕!
현재 창란도병이 매일같이 하는 일은 바로 성 안과 밖의 중토신주 무인들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매번 소탕이 끝나고 돌아올 때면, 그들은 꽤나 많은 수확을 얻곤 했다.
현재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진계급 장비들은 모두 도병들 스스로 마련한 것이었다.
비단, 창란도병들 뿐 아니라 창란학원의 모든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소득을 창출해 내고 있었다.
엽현이 어느 날 사라지더라도, 창란학원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눈앞에 다가온 적들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큰 적은 바로 호계맹이었다.
사실 처음에 호계맹에서 자신을 수배했을 때, 엽현은 상당히 당황했다. 그는 호계맹에 크게 잘못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천녀가 몇몇 호계맹의 무인들을 죽였던 것.
또한 호계맹이 직접 칼을 뽑지 않는 이유도 천녀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그 외에도 호계맹이 청주에서 발을 뺀 것엔 뭔가 탐탁지 않은 노림수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 사도 가와 다른 세력들이 저렇게 호계맹을 견제하려는 것이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은, 호계맹이든 사도 가든, 현재 엽현이 상대할 수 없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지금 이 순간, 엽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실력을 빠른 시간 안에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옥탑을 회복하고, 도칙을 되찾는 것 또한 결코 잊어선 안 됐다.
잠시 후, 엽현은 다시 창란학원 밖으로 나섰다.
* * *
중토신주, 호계전.
어두운 표정의 육 존주 앞에 한 명의 흑의 노인이 자리하고 있다.
“일문, 일맥, 일검, 삼종, 육족은 여전히 청주에 나타나지 않았소?”
육 존주의 물음에 흑의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중토신주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청주는 엽현과 연만리가 버티고 있으니,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입니다. 게다가… 청주 본원은 아직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흠… 엽현…….”
육 존주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순간 번쩍 뜨였다.
“설마 중토신주의 세력들이 뭔가 눈치챈 것은 아니겠지?”
“그것은 모르겠사오나, 하여간 저들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은 다분히 수상해 보입니다.”
육 존주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차라리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안 되오. 만약 우리가 직접 나서면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를 눈치챌 것이 분명하오. 그렇게 되면 중토신주 상계와 하계의 세력이 연합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소. 게다가 우리 손으로 청주를 멸하는 순간, 청창계의 수호자로서의 우리의 입지 역시 동시에 사라져버릴 것이오.”
“확실히 그건 그렇습니다.”
육 존주가 잠시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표정이 점점 흉악하게 변했다.
“엽현… 만약 그놈만 아니었으면 이미 청주는 피바다가 되었을 것을…….”
육 존주가 문득 흑의 노인을 바라봤다.
“그 흰 소복녀에 대해 새로 들어온 정보는 없소?”
“무진성역(無盡星域)에서 그녀를 본 자가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쪽 인사가 그리로 달려갔으니, 머지않아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그녀를 찾은 후 주상(主上)의 본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엽현과 함께 일망타진해야 하오!”
흑의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육 존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여인에 대한 육 존주의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호계맹의 진 어법경 강자가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머리카락 한 올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딘가에 살아있는 한, 육 존주는 주상이 복귀할 때까지 엽현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호계맹의 전력만으로는 그녀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마종에 한 번 다녀와야겠소. 어디 마종에게 청주 전체를 준다 해도 움직이지 않는지 한 번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육 존주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은하수, 그 사이를 한 여인이 가로지르고 있다. 하얀 소복 차림의 여인은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허리 뒤에 가볍게 올려놓은 양손 끝엔 검고 흰 무언가가 끊임없이 춤을 추듯 맴돌고 있었다.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그녀의 두 눈엔 한 올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몇 개의 성역을 지나쳤는지 셀 수도 없을 때 즈음, 그녀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누군가의 말을 듣기라도 하는지 두 귀를 쫑긋거렸다. 여인의 긴 눈썹이 움직이는 순간, 그녀의 오른발이 가볍게 허공을 디뎠다.
쾅-!
순간, 그녀가 위치하던 성역 전체가 마치 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행성들이 차례대로 붕괴되어 별 먼지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후, 여인이 오른손을 내밀어 엄지와 검지로 허공을 꼬집었다. 그러자 그녀의 두 손가락 사이에 한 줄기 백광(白光)이 번쩍하며 나타났다.
그녀가 손가락의 힘을 풀자, 자유를 얻은 백광이 가볍게 떨리더니 이내 한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엽현이었다.
빛이 만들어 낸 형상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엽현의 형상을 눈앞에 둔 여인이 잠시 멍하니 서 있더니, 손을 들어 가볍게 엽현을 어루만졌다.
여인의 손이 떨리고, 차갑기만 하던 그녀의 눈빛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여인의 눈빛이 갑자기 차갑게 빛났다.
“분신이 소멸하고 정보조차 불분명하다니…… 분명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렷다…….”
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흉흉하게 일그러졌다.
“만약 네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내 장담하건데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바로 이때, 여인이 정면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 줄기 검광이 빛과 같은 속도로 뻗어 나가면서, 근방의 모든 물질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일 각 후, 여인이 서 있던 성역은 아무 빛도 없는 암흑으로 바뀌었다.
여인은 다시 어둠을 헤치고 성역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별들 사이에 떠 있는 한 궁전을 발견하자, 신형을 멈춰 세웠다.
웅장한 기세를 갖춘 궁전은 어두운 빛이 감도는 금색이었으며, 양쪽에는 작은 산보다 더 큰 두 마리의 요수들이 엎드려 있었다. 요수는 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뿔은 한쪽 밖에 없었으며, 두 눈은 새빨간 것이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궁전 위쪽엔 우람한 체구의 남자 조각상이 서 있었는데, 한 손을 허리 뒤에 놓고 무심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는 것이, 마치 천하를 오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궁전의 현판에는 금색 글씨로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영허성궁(靈虛星宮)]여인이 궁전 앞에 이른 순간, 양옆에 있던 요수들이 그녀를 향해 벌떡 일어났다. 순간, 강대한 기운이 여인을 향해 물밀 듯 쏟아져 나왔다. 그들 앞의 공간이 마치 붕괴할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 여인이 요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
그녀의 한마디 외침에, 산만한 요수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벌벌 떨기 시작했다.
여인이 손을 들어 크게 휘둘러 궁전의 대문을 박살냈을 때, 궁전 안에서 한 백발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이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귀하께서는…….”
여인이 다시 손을 펼치자, 사람의 형상 하나가 백발노인 앞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바로 엽현의 형상이었다.
여인이 노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찾아라.”
이때, 여인이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키니, 갑자기 한 자루의 불투명한 검이 궁전 상공에 나타났다.
어느덧 노인의 바로 앞에 멈춰선 여인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거부하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