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죽이지 않으면 죽는거야
그녀가 엽현에게서 조금 떨어졌을 때, 그녀의 앞에 웬 흑의를 입은 무인 하나가 나타났다.
“아가씨, 왜 방금 놈을 죽이지 않으셨습니까? 저자만 제거하면 청주 전체가 순식간에 우리 마종의 손아귀에 들어올 텐데 말입니다!”
이에 면사녀가 걸음을 멈추고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죽일 수 있었다면 내가 멈췄겠는가? 저자는 전력을 다 하지 않았다. 게다가 괜히 더 싸웠다간 상대의 경계심만 더 키울 뿐이니, 차라리 곁에 남아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등 뒤에서 칼을 꼽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흑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아가씨의 혜안에 탄복하는 바입니다!”
“그대는 아버지께 가서 저자의 배후를 조심하라고 말씀드려라.”
이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의 신형이 장내에서 사라졌다.
약 일 각 후, 면사녀가 사라졌던 공간이 갑자기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사람이 하나 나왔다.
바로 엽현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어리석은 여인은 아니로군.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 지켜볼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아가씨…….”
엽현의 입꼬리가 음흉하게 말려 올라가더니,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 * *
깊은 산 속, 엽현과 묵운기 등을 태운 흑염마가 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화염이 치솟는다.
소탕 작전의 시작이었다.
이번에 그들이 소탕할 대상은 강국 주변국들에 침입한 중토신주 무인들이었다.
이들 중토신주의 잔당들은 마치 종양과 같았다. 미리미리 제거해 놓지 않으면 청주에 들어 온 마종과 귀종에게 귀신처럼 들러붙을 수가 있었다.
한 시진 후, 엽현 일행은 강국 외곽에 있는 한 작은 성에 도착했다. 인적이 끊긴 지 오래인 성 안은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듯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청주의 영기가 사라질수록 생존을 위한 환경은 점점 열악해져 갔다. 설상가상 중토신주의 무인들이 약탈을 자행하니, 강국의 많은 성들은 이미 유령성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어떤 성들은 백성들이 스스로 비운 것이었고, 또 어떤 성들은 인위적으로 비워진 것들이었다.
성벽 아래.
엽현이 고개를 들자 성문 위로 사람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한두 구가 아닌, 수백 수천의 시체들이었다.
수많은 시체 중 어떤 것은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은 것이, 살해된 지 얼마 안 된 듯 보였다.
이를 본 묵운기 등의 안색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엽현의 곁에 있던 묵운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육 군사의 말에 따르면, 성 안에 수백 명의 중토신주 무인들이 있다고 해. 이 성을 거점으로 삼고 주변의 성들을 약탈하는 모양이야.”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 시진이면 부족할까?”
“훗… 네놈은 아직도 내가 옛날 옛적의 묵운기로 보이는가?”
묵운기가 모두를 향해 크게 손짓하며 외쳤다.
“형제들, 가자!”
그 말과 동시에 백여 명의 무인이 성 안으로 맹렬히 돌격했다.
바로 이때,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성문 앞을 막아섰다.
“네 놈들은 웬 놈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자루의 비도가 날아와 그의 미간 사이에 꽂혔다.
백여 명의 기병들이 마치 홍수처럼 성 안으로 들어갔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성 밖으로 새 나왔다.
한편, 엽현은 성에 들어가지 않고 팔짱을 끼고 강아지풀을 입에 문 채 조금은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성문 옆에 기대 있었다.
반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묵운기와 백 기의 창란도병들이 성문 밖으로 빠져 나왔다. 이때, 성 안의 한 공터에는 산처럼 쌓인 수백 구의 시체들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엽현에게 다가온 묵운기가 납계 하나를 내밀었다.
“최상품 영석 구천만 개에다가 자질구레한 것까지 더하면 일억 삼천만 개쯤 될 거야.”
묵운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렇게 많은 재물을 모으는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약탈을 했을지…….”
엽현이 납계를 받아들며 물었다.
“성 안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 있어?”
“많지는 않지만 몇몇 남아있는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어.”
“잘했어. 이만 가자.”
성을 떠나 엽현 일행은 어디론가로 향했다. 엽현과 나란히 걷던 묵운기가 입을 열었다.
“엽 강도, 듣자하니 창란주는 이미 유령의 땅이 되었다던데… 청주도 과연 그렇게 될까?”
“네가 봐도 청주가 망할 것 같아?”
“그건 모르겠어. 어쨌든, 이곳은 우리 집이 있는 곳이잖아.”
이때, 묵운기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 안에서 수많은 시체들을 봤어. 대부분은 강국의 백성들이었지. 만약… 우리가 황성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강국과 창란학원도 혹시…….”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우리가 죽이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를 죽일 뿐이야.”
묵운기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씩 웃었다.
“네 말이 맞아. 죽이지 않으면 죽는거야… 젠장… 하하하하!”
엽현 등이 중토신주 무인들을 소탕하고 있을 때, 대운경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무리가 나타나 대운경 내의 중토신주 무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토신주 무인들도 거세게 반항을 해 보았으나, 점점 도망치는 자들이 늘어났다.
상대가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법경 강자들마저도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후, 성문에 목이 걸리기 일쑤였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자, 중토신주의 무인들은 청주의 저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엽현 쪽엔 창란도병 외에도 두 개의 용병단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수입이 너무나도 짭짤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이틀 후, 중토신주의 무인들은 서서히 그들이 넘어왔던 만구산을 향해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딜 가든 엽현 등이 가죽을 벗겨 먹으려 달려들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로써 사냥감과 사냥꾼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이틀이 지났을 땐, 중토신주의 무인들은 대부분 만구산 가까이로 물러난 상태였고, 몇몇 잔당들은 두문불출하며 감히 문밖에 나서지 못했다.
이렇듯 청주의 형세는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으나, 영기는 여전히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 * *
창란학원, 계옥탑 안.
반가부좌를 틀고 앉은 엽현 앞에 납계 하나가 둥둥 떠 있다.
납계 안에는 그가 이틀 동안 벌어들인 수익인 최상급 영석 육억 개와 원래 가지고 있던 칠억 개, 총 십삼억 개의 최상급 영석이 들어 있었다. 만약 오 루주가 의뢰한 물건들을 잘 처분한다면, 수십억 개의 최상급 영석이 그에게 떨어질 것이다.
그가 가진 재물은 중토신주의 웬만한 일류 세가의 재산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
엽현은 납계를 잘 보관한 다음 수련을 시작했다.
이번에 수련할 것은 검기가 아닌 검도(劍道), 즉, 경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만법경(萬法境)!
엽현의 현재 목표는 바로 만법경에 이르는 것이었다. 신합경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검을 찾아서 흡수하는 것이었다.
만법경부터는 검과 더불어 ‘깨달음’이 필요했다. 둘 중 그 어느 하나 부족해서는 안 됐다.
이때의 엽현은 검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천계 검 두 자루 외에 수많은 검이 있었으니 말이다.
깨달음에 대한 것도 큰 난관이라고 볼 순 없었다. 왜냐하면 검황에 이르면서 이미 공간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이리라!
엽현은 아직 공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편은 아니었고, 진지하게 연구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검황에 도달할 때, 공간의 ‘세(勢)’를 빌리는 데 성공했으니, 그 문턱은 넘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엽현이 천천히 눈을 감고 주변의 모든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음이 가라앉았고 온갖 잡념이 사라졌다.
그의 눈앞에 검 한 자루가 둥실 떠올랐다. 순간, 검에서 검세가 방출되었다. 이는 엽현이 공간에서 빌려온 공간지세(空間之勢)였다. 그는 검을 매개로 하여 공간을 세세히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은 만질 순 없지만, 느끼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공간을 어떻게 빌리고, 이용하고, 관리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게 되면 만법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목표는 진 만법경이었다.
계옥탑 내의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흘러갔다.
* * *
만구산(萬丘山), 청주도(青州道).
이곳은 이미 청주에서 빠져 나오는 중토신주 무인들로 가득했다. 청주에 엽현과 연만리가 버티고 있는 이상 그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창란도병과 용병단들이 눈에 핏발이 선 채로 그들을 잡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토신주로 향하는 청주도 입구에 한 노인이 서서 다른 이들이 지나갈 수 없도록 길을 막고 있었다.
이때, 한 남자가 나서 노인에게 물었다.
“귀하는…?”
노인이 장내의 무인들을 한 번 둘러보며 대답했다.
“이렇게 도망치듯 중토신주로 떠나다니, 참으로 애석하구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엽현과 창란도병은 우리가 감당할 만한 자들이 아니니 어쩔 수 없습니다!”
노인이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복수하고 싶지 않은가?”
“무슨 뜻입니까?”
“나는 마종의 장로일세. 내가 온 것은 우리 마종이 곧 청주를 장악할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러 온 걸세. 그리고 엽현은 우리가 처리할 걸세.”
마종이라고?!
그 한마디에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마종은 중토신주에서도 최정상급의 세력이었다.
창목학원이나 암계, 심지어 북한종과 같은 세력과 비교해서도 우위에 있는 거대 세력이었던 것이다.
그런 마종이 청주에 들어가면 엽현과 연만리를 해치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때문에 장내의 무인들이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무인들을 바라보며 노인이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 청주는 엽현의 것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것이오. 게다가 그 악랄한 놈은 그대들과 아무 원한도 없는데, 재물을 차지할 길을 완전히 끊어 버렸소. 이 복수를 하지 않고 어찌 돌아갈 수 있단 말이오? 게다가 엽현의 이름은 이미 수배자 명단에 올랐으니, 그를 죽이는 것이 곧 청창계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오!”
“그러나 그 창란도병은 정말…….”
노인 앞에 있던 남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노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 마시오. 엽현과 창란도병은 우리 마종에서 맡을 것이오.”
바로 이때, 노인이 군중 속에서 누군가를 찾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자가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마종이 우리와 함께 하는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소? 여러분, 엽현을 죽여 전날의 치욕을 깨끗이 씻읍시다!”
그 말과 동시에 장내가 다시 한번 들끓기 시작했다.
“엽현을 죽이고 청주를 피로 물들이자!”
“와-!”
광분해서 소리 지르는 무인들을 바라보던 노인이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양손을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순간, 장내가 다시 조용해졌다.
노인이 천천히 무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종이 도착할 것이오. 그때가 되면 이곳에 모여, 모두 함께 청주로 들어가 엽현을 토벌합시다!”
“좋습니다!”
많은 이들이 노인의 말에 호응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내 청주 전역에 흩어져 있던 중토신주의 무인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만구산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가 채 되기도 전에, 만구산엔 수만 명이 운집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신합경 강자들이었다. 만법경이나 어법경 강자도 있었으나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편, 거의 백 척의 운선으로 이루어진 함대가 천천히 청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마종과 귀종의 무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