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선불입니다
고난을 함께 하지 않으려는 자들과 부와 명예를 나눌 순 없었다.
엽현은 수많은 사람을 떠나보내면서도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되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한편, 성문 앞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때, 엽현 옆에 있던 묵운기가 잔뜩 성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망할 놈들, 성안에 영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벌떼같이 몰려들 땐 언제고, 어려움이 닥치자마자 썰물 빠지듯 떠나버리다니!”
곁에 있던 검초초가 소리 내어 웃었다.
“원래 인간이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법이지. 이번 일로 진정한 우군을 가릴 수 있게 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어.”
백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런 놈들은 차라리 없는 게 낫지!”
묵운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방금 전에 너희들도 봤잖아, 지금 상황을 엽 강도의 탓으로 돌리는걸! 엽현이 아니었더라면 모두 진즉에 죽었을 거란 사실을 벌써 잊은 건가!?”
이때, 엽현이 묵운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세상 모두가 날 등진다 해도, 너희만 있으면 상관없어. 그러니 너무 화낼 필요 없어!”
말을 마친 엽현이 신형을 돌려 성안으로 돌아갔다. 왠지 쓸쓸한 그의 뒷모습에 묵운기가 씁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엽 강도, 사실 나도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냐. 하지만… 형제라면 응당 생과 사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 비록 우리가 벼랑 끝에 서 있다 하더라도, 나는 절대 널 버리고 도망가지 않겠어!”
바로 이때, 곁에 있던 백택이 갑자기 묵운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순간 깜짝 놀란 묵운기가 반사적으로 주먹을 뻗었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묵운기가 십여 장의 거리를 주루룩 밀려났다.
“야 이 미친놈아! 왜 이래! 뭐 잘못 먹었어!?”
이에 백택이 묵운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네가 한 말이 너무 기특해서 쓰다듬어주려 했을 뿐이야.”
“…….”
이 모습을 본 검초초가 입을 틀어막고 쿡쿡 웃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성을 빠져나갔다. 일부의 창란학원 학생들 또한 짐을 꾸려 떠났다. 하지만 창란학원은 결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성이 점점 비어가는 반면, 성 밖에는 중토신주 무인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마종과 귀종은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함부로 출수하려는 자를 엄하게 처벌하겠노라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그렇게 강국 황성은 뜻밖에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 *
중토신주(中土神州), 상계(上界), 사도 가(司徒家).
이날, 마종 종주 고명허는 예고도 없이 사도 가를 불쑥 찾았다.
고명허의 기를 느낀 사도명이 공중에 나타났다.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고명허를 내려다봤다.
고명허가 먼저 포권을 취하며 운을 뗐다.
“사도 형, 한 가지 긴히 물어볼 것이 있어 긴히 찾아왔소. 부디 사실대로 말해주길 바라오.”
사도명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명허를 바라보았다.
“물어보시오!”
“그것이… 당시 만병산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그 말에 사도명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챈 고명허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사도 형, 무슨 악의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오. 그저 순수히 그날의 상황을 알고 싶은 것뿐이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사도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만병산, 두 명의 진 어법경 강자, 십여 명의 만법경 강자 그리고 수백 명의 무인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소. 하지만 이 사건은 일체 청창계에 퍼지지 않았지. 이런 일이 가능한 세력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호계맹?!’
이때 고명허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다름 아닌 호계맹이었다.
“당시, 호계맹의 육 존주도 만병산에 있었소. 그러니 그를 찾아가면 더 확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을 들은 고명허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때, 사도명이 다시 말했다.
“호계맹이 그대들 마종을 부추겨 청주를 치게 한 것엔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오. 그대 역시 호계맹이 어떤 자들인지 잘 알고 있지 않소? 노부가 보건데, 마종은 결국 청주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막대한 손해만 입고 물러나게 될 것이오.”
그 말을 끝으로 사도명은 고명허의 앞에서 사라졌다.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뭔가 생각하던 고명허가 어디론가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이내 방향을 바꿔 창목학원으로 향했다.
창목학원 원장인 여경은 고명허의 입에서 호계맹이란 단어만 나왔을 뿐인데 다짜고짜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호계맹… 비열하고 파렴치한 늑대 자식들… 청창계 제일의 쓰레기들!”
이 말을 한 여경이 호계맹에 대해선 더 이상 말도 하기 싫다는 듯 소매를 뿌리치며 자리를 떠났다.
고명허가 그 모습을 보고서 뒤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표정엔 무언가 결심이 담겨 있었다.
* * *
청주의 창란학원.
현재 창란학원은 학생 스무 명이 떠나고 단 스물여섯만 남았다.
다행히 창란도병은 한 사람도 떠나지 않았다.
황성은 역시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전에 비할 수 없이 고요해진 상태였다. 도망친 이들 중에는 심지어 강국의 병사들도 섞여 있었다.
성을 빠져나간 사람들은 멀리 떠나지 않고 성 밖에 천막을 설치하며 자리를 잡았다. 마종과 귀종이 엽현을 처리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성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창란학원의 한 지하 수련실.
엽현은 육반장 등 비적용병단원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은 벌써부터 창란학원에 도착해 있었지만, 엽현은 일부러 이들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육반장 등은 모두 중토신주에 가족이 있는 자들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신분이 노출되면 호계맹에서 그들 가족에게 무슨 압력을 가할지 알 수 없었다.
엽현이 손을 펼치자 일곱 개의 납계가 용병단 앞에 떨어졌다. 그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엽현의 얼굴을 바라보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안에 진계 상품 무기들이 있어. 너희들이 사용하면 좋을 거야.”
이에 용병단원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다가 헤헤 웃으며 납계를 받아 들었다. 엽현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그들이 거절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엽현이 싱긋 웃었다. 이제 그들은 서로 예를 차릴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친밀했다. 이들은 멀리 중토신주에서부터 자신을 돕겠다고 달려온 자들이었다. 엽현은 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순 없었다.
단원들은 재빨리 엽현이 건네준 장비를 착용했다. 순간, 그들 일곱 사람의 몸에선 만법경 강자와 맞먹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만약 그들이 만법경에 이른다면 어법경 강자를 죽일만한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었다.
만법경에 이른 육반장과 능한은 이미 어법경 강자들을 가볍게 상대할 수 있었다.
이때, 육반장이 엽현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언제 시작하면 되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서두를 것 없어. 싸움이 시작되면 바로 너희를 부를 테니 그때까지 푹 쉬고 있어.”
그러자 육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가서 눈 좀 붙일 테니, 시작하면 깨워!”
그녀가 떠나자, 엽현은 제자리에 남아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마음은 사실 조금 복잡했다.
형제!
그가 청성 엽 가에 있을 당시, 그는 혈육관계에 있는 자들과 결코 정을 나눈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엽 가를 떠나 묵운기, 백택, 기안지, 강구, 육반장 등을 차례대로 만나면서 처음으로 형제의 정이라는 것을 느껴보게 되었다.
만약 살면서 생사고락을 함께할 친구가 없다면, 그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더라도 외로운 인생인 것이다.
잠시 감상에 빠져있던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 거나하게 한 잔 마셔 보자!”
“어허, 이런 자리에 우리를 빼놓으면 쓰나!”
이때, 백택과 묵운기가 나타났다. 엽현을 지나친 두 사람은 능한 등과 깊은 포옹을 나눴다.
수련실 안은 곧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한창 술을 붓던 중, 술에 잔뜩 취한 능한이 엽현에게로 다가왔다.
“엽 형, 그때 우리가 떠났다고 화 많이 났었지?”
능한의 목소리가 워낙 커 모두가 술잔을 놓고 능한과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이 술잔을 바닥에 탁 내려놓으며 짐짓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화? 당연히 났지! 너 같으면 괜찮겠어? 그 벌로 너희들에게 세 잔씩 따라 줄 테니까, 다 마실 때까지 용서를 바라지 마라!”
그 말에 능한과 용병단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후, 미친 듯이 입안에 술을 퍼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세 번째 잔을 비운 능한이 엽현을 강하게 끌어안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웅얼댔다.
“엽 형… 이번엔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우리 모두 죽어도 다 같이 죽어…….”
“죽어도 같이 죽자!”
“죽어도 같이 죽자!”
순식간에 장내가 다시 떠들썩해졌다.
잠시 후,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련실 밖으로 나왔다.
만약 이런 때, 적이 쳐들어오면 허무하게 당할 수도 있으니, 결코 취해선 안 됐다.
밤이 깊은 창란학원.
하늘엔 별도, 달도 없이 그저 적막감만이 엽현을 내리쬐고 있었다.
수련실 앞 돌계단에 털썩 주저앉은 엽현이 품 안을 뒤적여 작은 나무 인형 하나를 꺼냈다. 바로 엽령의 인형이었다.
엽령과 떨어진 이후, 한 시라도 동생을 잊은 적이 없었다. 비록 이제 키도 많이 크고, 어쩌면 자신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엽현에게 있어 엽령은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엽현이 인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웬 흑의인 하나가 엽현의 눈앞에 나타났다.
“나를 따라서 오너라.”
흑의인이 짧게 한 마디만 던져놓고 그대로 뒤로 돌아섰다. 엽현이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윽고 도착한 곳은 창란학원 뒷산의 한적한 숲속이었다.
어느새 걸음을 멈춘 흑의인이 뒤로 돌아 자신을 감추고 있던 흑의를 벗어 던졌다.
고명허!
그의 정체는 바로 마종의 종주, 고명허였다.
고명허의 시선이 엽현의 얼굴로 향했다.
“놀라지 않는 것인가?”
“고 종주께서는 어찌 이 야심한 시각에 나를 불러 낸 것이오?”
고명허가 엽현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순간 그의 살기 어린 눈빛이 엽현의 전신을 휘감아 들었다.
“지금 내가 손을 뻗으면 널 바로 죽일 자신이 있다.”
“훗, 그때 암존과 사도가의 그 노인 역시 똑같은 말을 했었지. 지금쯤 그들 무덤가엔 잡초가 무성할 것인데…….”
고명허가 한 번 엽현을 노려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마종은 이만 발을 빼겠다.”
엽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고명허가 미간을 찌푸리며 살의를 발산했다.
“우리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겠다는 게냐?”
엽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상관없으나, 어떤 자들은 그대들이 이대로 물러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오.”
“어떤 자라 함은 호계맹을 두고 하는 말이더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고명허가 분노에 찬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게 생각이 있는데… 들어 보시겠소?”
“말해 보거라!”
“우리가 서로 연극을 하는 거요. 세상 사람들과 호계맹을 속이는 연극 말이오. 하지만 맨입으로 도와줄 순 없고… 최상급 영석 십억 개 정도면 노력해 보리다!”
고명허가 눈썹을 치켜떴다.
“욕심이 과하구나!”
엽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럼 결렬된 것으로 알고 내일 결판을 봅시다. 마종이 아작 나던 우리가 아작 나던 한번 해 보는 거요!”
엽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때, 고명허가 황급히 엽현의 앞을 막으며 소리쳤다.
“어떻게 속일 생각이냐! 계획을 말해 보거라!”
그러자 엽현이 고명허를 향해 빈손을 내밀며 말했다.
“선불입니다, 고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