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이건 약속이랑 다르잖아
어둠 속에서 엽현은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엽현은 진 어법경 강자를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운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당당한 모습에 고명허는 엽현이 마치 진 어법경 강자처럼 느껴졌다.
엽현은 고명허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천녀에 비하자면 고명허의 기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기지 못한다고 해서 꼭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비록 고명허를 이길 순 없지만, 결코 두렵지는 않았다.
어둠 속,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반 각 여를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침내 침묵을 깬 것은 엽현이었다.
“고 종주, 그대가 무얼 염려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소. 혹여 내가 한 입 갖고 두말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것 아니오?”
“그렇다. 네가 확신에 차서 말할수록, 더욱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고명허는 아주 솔직히 말했다. 그는 비록 이번 일이 예사롭지 않은 것뿐 아니라 엽현 뒤에 배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엽현이 영 미덥지 못했다.
“하하하! 그렇다고 해도 결국 내 말을 믿어야만 할 것이오. 그대는 청주를 집어삼킬 생각에만 빠져 이곳에 왔겠지만, 상황이 그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자, 발을 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이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대로 돌아서기엔 그대는 너무 깊은 곳까지 와 버렸소.”
“우리가 자진해서 물러나겠다는데, 호계맹이 왜 우리를 치겠느냐!”
고명허의 차가운 말에, 엽현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그게 그렇게 궁금하다면, 고 종주께서 한 번 실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다만, 한 가지 말해 둘 것은 일단 그 실험을 시작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오. 고 종주가 몇 푼 아껴보겠다고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하시니, 나는 이만 가 보겠소.”
엽현이 고명허를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고명허가 손가락을 튕기자 납계 하나가 엽현의 앞에 떨어졌다. 그러자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납계를 확인했다.
납계 안에는 최상급 영석 오억 개가 들어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안전하게 청주에서 떠난 후에 주겠다.”
“좋소.”
조건을 승낙한 엽현이 고명허를 향해 몸을 빙글 돌렸다.
“마종은 떠나도 좋지만, 귀종과 중토신주에서 온 무인들은 갈 수 없소.”
순간 고명허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지?”
“생각을 해 보시오. 호계맹이 저들을 쉽게 놓아줄 것 같소? 귀종과 수만 명의 중토신주 무인들을 제거하면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 나 역시 만약 그대의 마종이 이토록 강하지 않았더라면, 협상조차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오!”
“흠… 중토신주의 어중이떠중이들이야 너희가 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귀종의 전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만약 그들을 전멸시키고자 한다면 너희도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하하하, 그건 우리 소관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알았다… 나중에 내가 다시 찾아오마!”
이를 끝으로 고명허는 등을 돌렸다.
고명허와 헤어진 엽현 역시 숲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로 이때, 그의 앞에 여인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귀종 종주 기언노였다.
엽현을 바라보는 기언노의 눈빛이 얼음장같이 차갑게 빛났다.
“궁금해… 정말 궁금해…. 생사를 건 결투를 목전에 둔 두 사람이 이런 야심한 시각에 몰래 만났다? 무슨 꿍꿍이지?”
“헤헤, 기 종주,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방금 전, 두 사람이서 무슨…….”
엽현이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기왕 이리 됐으니, 빙빙 돌리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겠소. 마종은 이미 청주에서 떠나기로 했소. 그리고 그대들 귀종과 중토신주에서 온 수만의 무인들은 이곳에 뼈를 묻을 것이오.”
“하! 네까짓 게 무슨 수로?”
엽현이 비꼬듯 말하는 기언노에게 몸을 가까이 대며 속삭였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뒤에 있는 분은 가능하지…….”
순간, 기언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날 협박하려는 게냐?”
“뭐, 믿든 안 믿든, 그건 그대 자유요.”
그 말을 끝으로 엽현이 뒤로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언노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공격할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겨우 참아냈다. 만약 지금 출수하게 된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엽현이 몇 걸음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두 분은 들으시오. 비록 호계맹이 그대들에게 청주를 줄 것을 약속했지만, 그들이 청주의 본원을 가져간다면, 영기도 없는 청주 땅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잔말 말고 내일 정오에 중토신주 무인들을 쓸어버릴 예정이니 나에게 협력하시오. 부디 딴 맘 품지 않길 바라겠소.”
엽현이 자취를 감추자마자, 어둠 속에서 중년 남자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그는 마종 종주 고명허였다.
“어떻게 눈치챘지?”
기언노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고명허가 고개를 지으며 말했다.
“놈의 실력으로 나의 기척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의 배후에 있는 자가 가르쳐 준 것이 틀림없소. 문제는 내가 상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오…….”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말을 믿으시오?”
기언노의 말에 고명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을 믿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모르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오. 나는 이런 진흙탕에 더 이상 발을 디디고 싶지 않소. 아무래도 청주로 온 것은 잘못된 판단인 듯싶소.”
이윽고 고명허가 사라졌다. 홀로 남은 기언노가 답답한 마음에 긴 한숨을 뱉어냈다.
청주에 도착한 이후, 그들은 일이 호계맹이 말한 것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엽현을 죽일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할 바가 없지만, 그들 역시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함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게다가 설령 엽현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 뒤의 배후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호계맹은 사실 엽현을 죽이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용하여 엽현의 배후를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기언노는 엽현을 전적으로 믿을 순 없었지만, 호계맹은 더더욱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황성에 살던 사람들 중 삼 할은 이미 성을 빠져나갔다. 여전히 성문을 빠져나가는 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정오가 되었을 때, 엽현이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이백여 척의 운선에 나누어 타고 있던 무인들이 으르렁거리며 엽현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가장 거대한 운선 위에서는 고명허와 기언노가 뱃머리에 서서 엽현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때 엽현 뒤에는 일백 명의 창란도병과 광사 용병단 그리고 왕자 용병단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진용은 마종과 귀종의 수만의 무인들에 비하면 털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수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편, 성문을 빠르게 빠져나가던 황성의 백성들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엽현 등을 발견하자 비웃기 시작했다.
그들 눈에 엽현과 창란학원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 하는 어리석은 자일뿐이었다.
왕자 용병단과 광사 용병단의 단원들 또한,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두 진영 간에 실력 차이가 압도적이었던 까닭이었다.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하늘로 뛰어오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고명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듣자 하니, 마종 종주의 실력이 하늘 끝에 미친다고 하던데, 오늘 내 그대의 가르침을 한번 받고 싶소.”
순간, 장내의 모든 무인들이 나무 목석처럼 굳었다.
‘마종 종주에게 비무를 신청한다!?’
마종 종주는 진 어법경의 강자였다. 게다가 진 어법경 강자들 사이에서도 마종 종주는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엽현은 겨우 신합경의 애송이일 뿐이었다.
사실 엽현은 이미 만법경에 이른 상태였으나, 그 후로 한 번도 실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다른 무인들은 여전히 그를 신합경으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만법경이라 할지라도 무모하다는 것엔 변함이 없겠지만 말이다.
당황한 것은 같은 편인 왕자 용병단 등 또한 마찬가지. 그들 중 누구도 엽현이 감히 마종 종주에게 비무를 신청하리라 생각한 자는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무인들 가운데 가장 놀란 것은 역시나 당사자인 고명허였다.
‘어제 만났을 땐, 분명 이런 이야기는 없었지 않은가!’
이내, 여기저기서 엽현을 비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종 종주와 비무를? 이거 너무 겁에 질려서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린 건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까부는군!”
“오히려 잘 됐어! 마도 종주가 놈을 죽여 버리면 우리는 굳이 힘 빼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
한편, 운선 위에서는 기언노와 고명허가 엽현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당황해하고 있었다.
“놈이 무슨 수작인 것이오?”
“나도 잘 모르오. 하지만 곧 있으면 알게 되겠지!”
말을 마친 고명허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진 어법경.
청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토신주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자. 그가 바로 고명허였다.
이때, 고명허의 전음이 엽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뭘 하려는 게냐?”
엽현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삼초(三招)를 겨룬 후에 내게 패배한 척을 하시오.”
“네게 일부러 지라고? 진심이냐?”
“진심이오!”
“그건 절대 안 된다! 만약 내가 네게 지게 되면 그날부로 나와 우리 마종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계획의 일부분이니만큼 어쩔 수 없소. 그대는 네게 패한 직후, 그대로 무인들을 이끌고 도망가면 되는 것이오.”
고명허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상관없으나, 천년 마종의 명성이 땅바닥에 처박히는 꼴은 용납할 수 없다!”
“음… 정 그렇다면, 지는 것 대신, 비기는 걸로 합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목적도 이룰 수 있고, 그대 역시 마종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이오.”
고명허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이때, 엽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거절하면 그땐 나도 달리 방도가 없소.”
“후… 영악한 놈. 그럼, 시작하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큰 소리로 사방을 향해 소리쳤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은 정정당당하게 비무로서 승부를 보게 될 것이오!”
엽현이 현기를 담아 소리치자 장내의 수만 명의 무인들은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곧바로 엽현이 검을 들고서 자세를 취했다. 순간, 한 줄기 강대한 검세가 그의 체내로부터 하늘 높이 솟구쳤다.
일검정생사( 一劍定生死)!
강대한 검세가 끝도 없이 하늘을 채우니, 장내 모든 사람이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이때, 한 줄기 검은 검의가 엽현의 몸 안에서 빠져나왔다. 순간, 엽현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고명허의 머리 위!
이때, 검은 검의가 두 사람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두 사람의 모습이 검은 검의에 막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 그들의 귀에 하늘을 찢을 듯한 검명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검의가 걷히면서 엽현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때, 엽현의 왼손은 심각하게 떨리고 있던 반면 고명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때, 엽현이 고명허에게 전음을 날렸다.
“이쯤에서 날 한 번 칭찬 해 주시오!”
고명허가 순간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우물쭈물 엽현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 그대의 검술 실력은 너무나도 뛰어나고, 에… 먼 훗날 틀림없이 최강의 검수가 될 것만 같은…….”
이때, 갑자기 엽현이 고명허에게 포권을 취하며 소리쳤다.
“그대 역시 충분히 강하오! 그대가 양보해 주지 않았더라면 패배한 쪽은 나였을 것이오!”
‘패배?’
‘패배했다고? 마종의 종주가!?’
엽현의 말은 마치 벼락과 같아서 십 리 밖에 있는 사람도 모두 들을 정도였다.
고명허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노, 놈… 무슨 소릴 하는 게냐! 이건 약속이랑 틀리지 않느냐!’
한편, 엽현의 말을 들은 무인들은 모두 너무 놀라 돌처럼 굳어버렸다.
엽현이… 이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