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5
25화 누구 허락을 받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거대한 몸집의 사내 하나가 한 무리의 병사들을 이끌고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당국이 아닌 강국의 병사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계성에 주둔 중인 강국의 사병이었다.
그리고 저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남자는 바로 양계성의 성주였다. 그들의 앞에 선 성주가 엽현과 여인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누구 허락을 받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냐!”
엽현이 눈을 치켜떴다.
성주가 여인을 향해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 년을 잡아 들여라!”
그의 명령에 병사들이 여인에게로 다가왔다. 그러자 여인이 자신도 모르게 엽현의 뒤로 몸을 숨겼다. 이때, 엽현이 손을 들어 앞에 오는 병사의 뺨을 휘갈겼다.
쩍-!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그 사병은 허공을 날아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에 살로 뒤덥힌 눈을 까뒤집으며 잠시 놀란 성주가 이내 격노하며 소리쳤다.
“네 이놈-! 모반을 꾀하는 것이냐!”
엽현의 오른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당국의 병사들이 성에 침입하여 재물을 빼앗고 아녀자들을 납치할 때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다가, 내가 출수하려 하자 득달같이 달려 나와서 막으려 하다니 그대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오?”
이에 성주가 화를 내며 대답했다.
“네가 그를 죽이면 뒷일은 누가 책임지느냐!?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흑갑기병들의 주둔지가 있다. 만약 네가 그를 죽이면 저들은 이를 핑계 삼아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 할 것인데, 이 점은 모르는 것이냐?”
엽현이 코웃음을 쳤다.
“그저 그대가 죽기 싫은 것뿐 아니오?”
엽현의 말에 성주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헛소리는 집어 치우거라! 이 양계성은 내가 담당하는 곳이니…….”
엽현이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찌르시오.”
여인은 엽현을 한 번 쳐다본 뒤 흑갑기사를 향해 다가갔다.
이에, 성주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저 것들을 싹 잡아 들여라!”
바로 이때, 엽현의 신형이 순식간에 성주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 모습을 본 그의 병사들이 제자리에 멈춰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엽현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성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이 뭔 줄 아느냐? 바로 너같이 약자에겐 포악하고 강자에겐 찍소리도 못하는 작자들이다. 한 마디만 더 뱉어 보아라. 목을 꺾어 줄 테니!”
엽현의 협박에 성주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였다. 그들의 뒤 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끄억-!
엽현이 돌아보니 흑갑기사의 목에 한 자루 도가 꽂혀 있었다. 도를 잡은 여인의 얼굴은 그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흑갑기사를 죽인 여인은 그대로 성벽에 쓰러지듯 기댔다. 그녀의 눈은 초점 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겨,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구나!”
성주가 부들부들 떨며 엽현에게 소리쳤다.
성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엽현은 금화 몇 개를 꺼내 여인에게 쥐어 주었다.
“살아남으시오!”
여인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서 걸어가는 엽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때, 성 밖으로부터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십여 기가 아닌 무수히 많은 말발굽 소리였다!
그러자 성 안에 모든 사람의 표정이 일순간 급변했다.
육소연의 표정 역시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성 밖을 흘깃 바라본 성주가 이내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했다.
“끝났어, 끝났다고. 흑갑기병이 오고 있어…, 흑갑기병이…….”
성주가 돌연 분노에 찬 표정으로 엽현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너 때문이다. 너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
그의 말대로, 성내의 백성들은 엽현을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마치 왜 쓸데없이 참견하여 화를 키웠느냐고 말하는 듯 했다.
그 순간, 엽현의 머릿속에 천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용기를 내어 정의로운 일을 했을 뿐인데, 대접이 형편없군. 기분이 어떠냐?]“제가 하는 모든 일은 모두 제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 다른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들이 어떻게 저를 바라보아도 상관없습니다!”
천녀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엽현은 성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빠!”
엽현이 엽령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령아, 국수 한 그릇만 더 시켜줄래? 금방 돌아올게!”
엽령은 성문으로 향하는 엽현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성 밖으로 나온 엽현이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방금 전의 그 여인이 어느새 그의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바로 이때, 굉음과 함께 성문이 닫혔다.
닫혀있는 성문 앞, 한 쌍의 남녀가 서 있었다.
그들을 향해 수천 기의 흑갑기병대가 돌진하고 있었다. 그 강대한 위용 앞에 엽현 역시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엽현은 직감적으로 막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천기의 흑갑기병대 앞에서는 아마 천하의 무인 능공경 안란수라 할 지라도 쉽게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피하지 않는다!’
이런 위험에 쳐했지만 엽현은 자신이 선의로 한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들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제 이름은 옥어(阿魚)라 합니다.”
여인이 엽현의 뒤에서 말했다.
엽현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엽현이오.”
“그 이름,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 생애, 다다음 생애에서라도!”
엽현은 그녀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이미 그는 달려오는 기병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기세등등하게 돌격해 오는 기병들을 바라보며 엽현에게도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때, 엽현은 몸 안에 있는 영소검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엽현 역시 죽는 것은 두려웠다. 하지만, 어떤 때는 죽는다 해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국가의 대사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스스로 강국의 사람인 것을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비록 부족한 점이 많은 나라지만 그는 강국의 백성이고 강국은 그의 조국이었다.
그런 조국이 다른 자들에게 침략 당하는데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전(戰)!
이 일전은 동생을 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엽현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눈앞에 흑갑기병을 앞에 둔 그의 표정엔 이제 어떠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의기충천한 전의(戰意) 뿐이었다!
“하하하!!!”
엽현이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다.
“오너라!”
순간, 그의 전신이 갑자기 떨리더니 한 줄기 강대한 무형의 기운이 그의 몸 안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이때, 계옥탑 안으로부터 천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의? 검의(劍意)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검수가 전의(戰意)를 깨닫다니! 내가 그 동안 뭘 가르쳤던 거지!?]의경(意境)!
세상에는 수많은 의경이 존재한다.
검의(劍意),창의(槍意),권의(拳意),살의(殺意),전의(戰意) 등.
각 의경을 깨닫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 강국 전체에서 검의를 깨달은 자는 강국 유일의 검도종사 하나뿐이었다.
의경에 도달하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수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수련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고 무인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어야 그 경지에 도달 할 수가 있다.
일단 의경에 도달하게 되면 전력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또한 다른 무(武)의 차원으로의 진입이 가능하게 된다.
현재 무엇 때문에 엽현이 이다지도 강한 전의(戰意)를 갖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엽현은 눈앞에 수천 아니 수만 기의 기병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결코 물러나지 않을 기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戰)!
엽현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이제는 거의 뛰다시피 기병들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의 발이 닫는 곳마다 전의가 광풍처럼 휘몰아쳐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이윽고 그의 주위에는 하나의 거대한 모래폭풍이 형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기의 흑갑기병이 보여주는 장엄한 기세는 엽현의 그것보다 수 배 이상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엽현의 눈에는 한 점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검은 기운이 한 소년을 막 집어 삼키려는 장면을 바라보는 옥어의 눈빛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병대와 엽현의 거리가 백 장 무렵 남았을 그 때!
돌연 선두에 있던 남자가 오른 손을 들어 기병들을 멈췄다.
갑작스런 정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열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이 엽현이 아닌 그의 오른편을 향했다. 그 곳에는 한 명의 여인이 천천히 말을 몰며 다가오고 있었다.
은색 연갑(軟甲)을 착용하고 긴 머리를 묶어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인은 굽어진 황금색 만도(彎刀)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경국지색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의 두 눈은 잘 버무려진 한 자루의 도(刀)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은갑, 금도!
그녀의 등장에 수천 기의 기병들이 동공이 확장됐다.
강국 전체를 통틀어 은갑과 금도를 착용하는 자는 강국의 통수(統帥) 구공주(九公主) 뿐 이었다!
구 공주는 당국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자였다.
어디 당국뿐이겠는가? 그녀의 악명은 강국과 인접해 있는 모든 나라에 널리 퍼져 있었다.
구 공주는 안란수와 함께 강국의 절대쌍교(絶代雙驕)라 불리는 입지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선두에 있던 중년인의 눈빛은 이윽고 엽현에게로 넘어갔다. 엽현을 잠시 뚫어져라 바라 본 뒤 그는 손을 들어 흑갑기병들을 퇴각하게 했다.
중년인과 수천 기의 흑갑기병대는 달려오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이에, 당황한 것은 엽현이었다.
‘뭐지, 설마 내게 겁먹은 건가?’
엽현이 당황하고 있을 때 천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놈의 낯가죽은 땅보다 두껍구나!]“…….”
은갑녀는 엽현 앞으로 오더니 엽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에 엽현은 흑갑기병들을 물린 것이 바로 이 여인 때문이란 것을 눈치 챘다.
엽현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은갑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은갑의 여인은 안란수만큼 화려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두 눈은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서웠다.
그 매서움에도 엽현은 주눅들지 않았다.
엽현에게는 존경할 만한 사람은 있지만,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녀의 눈빛에 압도되지 않은 이유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 둘의 눈빛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여인의 눈빛이 날카롭고 공격적이었지만 엽현의 그것은 옅은 바람이 이는 푸른 언덕처럼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은갑의 여인이 눈빛을 거두고 짧게 말을 꺼냈다.
“성 안으로!”
한마디만 툭 던진 그녀는 말머리를 성 쪽으로 틀었다.
이에 엽현은 고개를 돌려 옥어를 바라봤다.
“우리도 갑시다.”
옥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엽현의 뒤를 쫒았다.
이윽고 세 사람은 성문에 도착했다. 은갑녀가 굳게 닫힌 성문을 지그시 쳐다보자 그녀의 뒤편에서 여러 개의 잔영이 출현해 순식간에 성문을 다섯 등분으로 쪼개 놓고는 다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엽현이 순간 움찔했다.
‘무시무시하군.’
엽현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은갑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