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을 꿇진 않는다!
엽현 등을 둘러싸고 있던 군중들은 어느 틈엔가 멀찌감치 비켜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목이 잘린 시체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앞에 있는 엽현이 쉽게 건드릴만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숲속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이제 장내에는 조롱도 비꼬는 음성도 모두 사라졌다.
엽형을 포함한 창란학원의 학생들이 엽현에게 깊이 머리를 조아린 후,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때, 길을 막고 있던 군중들이 마치 썰물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터 주었다. 누구도 감히 그들의 앞을 막는 자는 없었다.
문득 창란학원이 있는 쪽을 돌아본 엽형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은 전염이 되는 것일까, 엽형을 따라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들에게 있어 창란학원은 집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엽현은 역시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은 좋지 않았다.
창란학원은 처음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학원 안에 있는 무엇 하나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창란학원에 대한 엽현의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창란학원의 해산을 결정한 것은 물론 적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스스로 발전할 기회를 주기 위한 까닭도 있었다.
지금까지 창란학원은 심각할 정도로 엽현 한 사람에게만 의존해 왔던 것이 사실 아닌가!
무조건적인 보호는 무인에게 결국 해가 될 뿐이다. 모름지기 강해지기 위해선 밖으로 나가서 많은 경험을 쌓고 피를 흘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엽현은 확신했다. 다음번에 만날 땐, 모두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거라고!
자신의 학생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엽현은 몸을 돌려 다시 창란학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불현듯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꺼져!”
갑작스런 엽현의 외침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할 때, 엽현의 검이 번뜩이더니, 허공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엽현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동안 자기가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변하니 엽현은 자괴감까지 들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하하! 말로 좋게 할 때는 들어먹지 않더니, 손을 한 번 쓰니 그제야 어린아이처럼 말을 잘 듣는군! 이거 의외로 악한 역할도 잘 어울리잖아?”
“헛소리! 네 놈은 원래 천생 악인이다!”
이때, 엽현의 뒤에서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는 다름 아닌 사도 가의 사도명이었다.
엽현이 한편에 있던 널찍한 돌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호계맹이 직접 나선 것을 보니 한시라도 빨리 청주의 본원을 차지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오. 그대들도 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을 거요.”
사도명이 엽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을 막기로 한 것은 네가 아니었던가?”
“이보시오! 그대들이야말로 진 어법경 강자는 그대들이 처리하기로 하지 않았소? 그런데 방금 육 존주가 나타났을 때, 어디 처박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오?”
그 말에 사도명이 침묵했다.
육 존주는 명실상부 청창계 최고 고수의 반열에 든 자였다. 게다가 그의 뒤에는 호계맹이 버티고 있었다.
사도명은 목숨을 걸고 그들과 싸우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아니, 그럴 용기가 없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비록 우리가 호계맹을 막을 순 없지만 여전히 공공의 적을 가진 동맹이라 할 수 있소. 그렇지 않소?”
“호계맹은 결코 너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세력들 역시…….”
“다른 세력들? 아하! 그러고 보니 호계맹을 제외하면 나를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세력은 바로 그대들 사도 가였군! 어떻게, 이제 나를 적으로 돌릴 심산이오?”
사도명이 차가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걱정 마라, 우리는 아직 너를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내가 지칭한 세력이 누구인지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호계맹을 조심해라. 그들은 절대로 청창계 내에서 또 다른 창계검주가 등장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사도명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떠난 후, 기다렸다는 듯 다른 노인 하나가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오 루주였다.
“노부가 오랜만에 강국에 방문했는데, 이미 창란학원이 간판을 내렸다고…….”
엽현이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잠시 동안일 뿐입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다행이네. 참, 지난번 내게 맡긴 물건은 이미 다 처리했네. 모두 합해 최상급 영석 삼십 칠억일세.”
오 루주가 엽현을 향해 납계 하나를 건넸다.
최상급 영석 삼십 칠억 개!
엽현은 흡족한 표정으로 납계를 받아 들었다. 이 정도 재물이라면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이때, 오 루주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인가?”
“하하, 그동안 미뤄 왔던 일들을 할 생각입니다.”
“음… 부디 조심하도록 하게. 저들이 가면을 벗어던진 이상,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고 행할 걸세.”
오 루주가 말한 것은 호계맹이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오 루주가 엽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혹시 필요한 게 있거든 언제든지 연락을 취하게나. 그럼 몸조심하게.”
오 루주를 떠나보낸 후 다시 엽현은 창란학원으로 향했다. 그의 앞에 이번에는 숨겨 놓았던 육 반장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이 그들을 향해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 참…. 만나자마자 또 헤어져야 한다니…….”
“엽 형, 정말로 호계맹과 적이 된 거요?”
능한의 질문에 엽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봐야지.”
“하필 호계맹과 원수가 되다니…….”
“하하, 어쩔 수 없다. 내가 그들 앞에 가서 무릎 꿇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 본다면 혹시 없던 일로 할지 모르겠지만, 나 엽현은 남에게 무릎은커녕 머리도 숙여본 적 없는 사람이라서.”
능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호계맹의 명성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계검주의 시절을 제외하면 천 년 동안 그 어떤 세력의 도전도 허락한 적이 없소.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지. 또한, 그렇기에 청창계가 그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 아니겠소? 이번 일은 너무나도 심각하오!”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저들은 당분간은 절대로 내게 출수할 수 없어. 그리고 너희들은 우선 중토신주로 돌아가도록 해. 머지않아 내가 중토신주로 갈 테니, 그때 모두 모이도록 하자. 물론 돌아가면 열심히 수련하는 거 잊지 말고!”
이때, 엽현이 능한 등의 사람 수에 맞춰 납계를 건넸다. 각각의 납계 안에는 최상급 영석 일억 개씩이 들어있었다.
능한이 다른 이들의 얼굴을 바라본 후,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엽 형, 우린 받을 수 없소. 이 영석은 엽 형이 필요한 곳에 쓰도록 하…….”
“가져가!”
엽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것 말고도 많이 있으니 가져가도록 해. 그리고 충고 하나 하자면, 최대한 빨리 만법경과 어법경에 이르는 것이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다음에 싸울 때 너희들을 부르지 않을 거니까!”
능한이 엽현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육반장이 납계를 낚아채고는 엽현을 향해 다가왔다.
“죽지 마. 나중에 네 시체나 치우고 싶진 않으니까!”
“…….”
그 말을 끝으로 육 반장은 능한 등을 이끌고 창란학원을 떠났다.
이제 기운산 전체에 남은 사람은 엽현 한 명뿐이었다.
바야흐로 진정한 의미의 혈혈단신이 된 것이다.
앞으로 그는 누구를 지키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뿐이었다.
원장이라는 신분을 내려놓게 된 엽현은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엽현은 홀로 영령전으로 들어왔다. 이때, 영령전 안은 아무것도 없이 휑한 상태였다. 학생들이 떠나기 전 위령패도 챙겨간 까닭이었다.
문 입구에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은 엽현이 품 안에서 술이 든 호리병 하나를 꺼내 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한 모금씩 들이킬 때마다 그의 머릿속에서 오래전 일이 한 장면씩 스쳐 지나갔다.
엽령, 안란수, 강구, 기안지, 묵운기, 백택, 육반장, 능한 그리고 기 원장…….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홀로 술을 마신 엽현은 얼마 가지 않아 취하고 말았다.
* * *
엽현이 창란학원을 해산했다는 소식이 청주 전체에 퍼지자 많은 청주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강국인들이 가장 기뻐했다. 그들은 창란학원만 사라지면 중토신주의 무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을 건들지 않을 것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엽현이 강국을 떠난 직후, 강국 황실도 칩거를 선언했다. 그들은 황실이 보유했던 군대마저 해산했다. 이와 같은 혼란의 시기에 군인들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하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강월천은 엽현과 창란학원이 사라진 이상, 강국 황실을 해체하지 않으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렇게 강국 황성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자유의 성이 되었다.
창란학원과 황실이 사라진 후, 살인, 약탈, 방화 등을 일삼는 세력들이 많아졌다.
질서가 사라지면 사람은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황성 내의 사람들은 그동안 감춰왔던 검은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엽현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 떠난 줄로만 알았던 중토신주의 무인들이 황성을 방문했다.
족히 이만 명은 넘어 보이는 중토신주의 무인들. 그들의 대부분은 통유경과 신합경 강자들이었다.
이때, 성문을 열고 한 무리의 청주 무인들이 성 밖으로 나왔다.
‘뭣 때문에 다시 왔지?’
이들은 중토신주 무인들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맞았다. 그들 중 한 중년인이 중토신주 무인들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여러분, 엽현은 이미 창란학원을 해체하고 황성을 떠났소. 그를 찾고자 하신다면 다른 곳을 한 번 탐색해 봄이…….”
이때, 갑자기 나타난 주먹이 중년인의 머리를 강타했다.
펑-!
순간, 중년인의 머리가 그대로 수박 터지듯 피를 뿜으며 터졌다.
이를 본 청주의 무인들이 충격에 사로잡혔다. 방금 중년인의 머리를 부순 남자가 그들을 향해 걸어 나왔다.
싸늘한 표정으로 황성의 무인들을 바라보는 남자.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황성 무인들에 귓가에 박혔다.
“엽현을 찾으라고? 참 딱하구나…. 우리가 이곳에 돌아온 것이 바로 그 엽현이 사라졌기 때문이란 걸 아직도 모르겠느냐? 어쨌거나… 이제 모두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이거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만의 중토신주 무인들이 동시에 황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바라보는 청주 무인들의 안색이 공포에 질려 창백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