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전무후무한 검수란 말이다!
엽현은 가주령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가주를 대표한다는 증명이었다.
거기에 사도 가의 족보까지 더해진다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엽현은 생각했다.
엽현은 가주령과 족보를 잘 보관해 둔 뒤, 두 번째 납계를 살펴보았다.
그 안에서 천 개가 넘는 자원정과 손바닥 크기만 한 설련(雪蓮)을 발견해냈다.
엽현이 조심스레 설련을 집어 들자 영롱한 빛 사이로 한기가 느껴졌다.
[천재지보(天材地寶)!]이 세상에는 하늘과 달의 정화(精華)와 천지의 기운을 흡수하여 자생하는 천혜의 보물들이 존재한다.
그의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는 설련 또한 그런 물건이었다.
무인이 이 설련을 지니고 있으면 공력증강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무인들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보물이었다.
설련 외에 다른 잡동사니들도 다수 있었지만, 돈 나가는 것들은 아니었다.
엽현이 다소 실망스런 표정을 드러냈다. 언제부턴가 엽현은 평범한 물건들엔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되었다.
납계를 집어넣은 엽현은 기쁜 마음으로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록 이번에 계옥탑을 되살리기 위해 이십억 개가 넘는 최상급 영석을 소모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득을 본 셈이었다.
엽현은 이번에는 은신비법인 ‘둔(遁)’을 사용해 자신의 몸을 숨기기로 했다.
‘둔’을 활용하면 진 어법경 강자 이외에는 그를 볼 수 없다. 심지어 진 어법경 강자라 할지라도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는 한 그의 기운을 느끼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게 엽현은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장내를 떠나갔다.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엽현이 있던 자리에 웬 그림자 하나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침묵하며 장내를 둘러보던 그림자가 조용히 읊조렸다.
“아가씨, 보고 계십니까? 도련님이 열아홉의 나이에 이미 검황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우리 독고가(独孤家) 내에서도 발군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엽령 아가씨는 아직 열다섯도 되지 않았는데 만법경 초입에 들어선 데다가 그 체질 또한 특이하기 그지없습니다. 만약 유옥(幽獄)에서 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실 수 있다면 참으로 기뻐하실 텐데 말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림자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남련산맥이 위치한 곳은 청주 남단의 황량하고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끝없이 이어진 산맥뿐이었다.
바로 이곳에 엽현이 찾고자 하는 도칙이 있었다.
엽현은 더 이상 두 번째 도칙을 찾는 일을 미룰 수 없었다. 계옥탑을 사용할 때 도칙이 있으면 부작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사도명과의 싸움 후 확인했기 때문이다.
도칙 없이 계옥탑을 사용했을 때는 그는 거의 죽음을 맛봤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 계옥탑을 사용했을 때는 비록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까무러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도칙이 부작용을 경감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한다고 엽현은 생각했다.
다음 날, 남련산맥에 도착한 엽현은 이 층 존재의 안내를 받아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첩첩산중을 빠르게 가로지르던 중 엽현은 몇몇 요수들과 마주쳤다. 요수들은 전혀 엽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반 시진을 달리던 엽현은 거대한 구덩이 앞에서 멈췄다. 그 너비는 백 장이 훌쩍 넘었고 바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게다가 구덩이 안쪽에서는 검은 안개와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엽현은 단박에 절대 평범한 장소가 아님을 직감했다.
바로 이때, 그의 귓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구덩이로 들어가라고!?’
엽현이 구덩이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간 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안은 검은 안개로 가득 차 있는 까닭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온몸의 세포가 그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대로 함부로 안에 들어갔다간 분명히 무슨 일이 닥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 신호였다.
이때, 계옥탑 이 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엽현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이에 엽현이 다소 머뭇거리며 이 층의 존재에게 말을 걸었다.
“저… 한 가지 물어도 될까? 기왕 도칙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면, 왜 직접 꺼내 오지 않았지?”
사실 이 층의 존재는 호계맹에 침입해 여러 명의 진 어법경 강자를 죽였을 정도로 강했다. 그와 같은 강자가 도칙을 발견하고도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엽현의 말에 요란하던 탑이 순간 조용해졌다. 이내 탑의 이 층으로부터 진동이 시작됐고 이번에는 심지어 일 층 또한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엽현은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 그만! 알았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을 테니까 그만해!”
엽현이 애원하듯 소리치자 탑이 다시 조용해졌다. 또다시 아까 전의 그 목소리가 엽현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뛰어내려!]그 목소리를 들은 엽현이 구덩이를 향해 다시 한 걸음을 옮겼다. 엽현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언제부터 이리도 겁이 많았지?”
말과 동시에 엽현이 구덩이 안으로 뛰어내렸다.
사실 엽현은 천녀가 떠난 후로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 눈앞에 있다면 그 어떤 두려움이 있더라도 해내야만 했다.
생각이 많을수록 문제에 부딪치고, 문제에 자꾸 부딪치다보면 사람은 늘 위축되기 마련이다.
마침내 엽현이 구덩이 안으로 과감하게 몸을 밀어 넣었다. 차가운 바람 소리가 빠르게 그의 귓가를 스쳐갔다.
그렇게 끝없는 암흑 속에 몸을 맡기던 중, 엽현은 자신의 발이 무언가에 닿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엽현이 검안을 열어 발밑을 살펴보자 그가 서 있는 곳은 지면이 아니라, 절벽 옆으로 삐져나온 암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덩이의 벽면은 풀과 덩굴 같은 것들로 뒤덮여 있었다.
[내려가!]이 층 존재의 보채는 듯한 음성이 엽현의 머릿속에 울려왔다.
그러자 엽현이 벽면에 내려와 있는 덩굴줄기를 손에 감고 천천히 구덩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다시 반 시진 가량이 지났을 때, 엽현의 두 다리가 마침내 지면에 닿았다.
그의 발밑에서 정강이 부근까지 물이 차 있었다. 다시 확인해보니 그것은 물이 아닌 피였다.
엽현이 화들짝 놀라 주위를 경계하며 다급히 소리쳤다.
“여기 뭔가 위험한 게 있는 건가?”
[…안 가르쳐줘!]이 층 존재의 대답에 엽현은 순간 욱할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이런 때에 이런 식으로 농락하다니!’
자신보다 강하지만 않았더라면 엽현은 진작에 이 층 존재를 혼쭐 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엽현은 화를 내는 대신 그저 한 숨을 내쉬는 것으로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그의 실력으로는 이층 존재를 이길 수가 없었다. 엽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저, 그러지 말고 가르쳐 주십시오. 이곳에 뭔가 위험한 것이 있습니까?”
[있어!]엽현이 더욱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어떤 위험 말씀인지요?”
[그건 몰라!]상대의 쌀쌀한 대답에 엽현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모른다니… 모른다고 하면 다 끝날 일이더냐!’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발밑에 있는 피는 걸으면 걸을수록 더욱 많아졌다. 농도도 더욱 짙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던 중, 엽현은 전방에 도깨비불 하나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엽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비록 그는 귀신같은 존재를 두려워하진 않았지만, 정체 자체를 알 수 없어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깨비불은 피처럼 붉은 색이었다. 크기는 어른 손바닥 정도였다. 도깨비불이 춤을 출 때마다 엽현의 심장은 더욱 강하게 고동쳤다.
그러나 엽현은 마음을 다잡고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엽현이 큰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 아버님도 참! 나 혼자 가도 괜찮다니까 굳이 진 어법경 강자 열 명을 붙여주실 게 뭐람! 이래서 수련이나 될까 모르겠네! 우리 엽 가가 보유하고 있는 진 어법경 강자만 수백 명에 이르는데, 누가 감히 날 건드릴 수 있다고… 참…….”
그의 말에 도깨비불이 잠시 멈칫하더니, 동굴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엽현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독려하는 한편, 그의 몸 주위로 자신의 기운을 발산했다. 그건 바로 검황의 기운이었다.
혹시라도 상대가 자신이 검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덤벼들지 않을까 염려해서 한 행동이었다.
엽현은 걸음을 옮기면서, 끊임없이 입을 움직였다.
“할아버지께서도 참 이상하시지, 그렇게 내게 경지를 눌러 놓아야 한다고 하시니 원… 만약 내가 스스로 경지를 제한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검황을 넘어 검선이 되었을 것을! 에휴… 할 수 없지 뭐. 할아버지 명이니 평소에는 실력을 숨겨놓는 수밖에…….”
이때, 앞서가던 붉은 도깨비불이 속력을 올리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에 엽현이 걸음을 더 빨리하며 외쳤다.
“음기가 아주 강한 것이 아주 제대로 찾아 왔구나! 강한 자를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때 전진하던 엽현의 앞쪽 공간이 일렁였다. 마치 무형의 벽이 만들어진 것처럼 엽현을 막아섰다.
이렇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자라면 분명 최소 진 어법경 이상의 존재가 틀림없었다.
엽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차갑게 소리쳤다.
“누가 감히 나 엽현의 길을 막는 것인가!”
이때, 어둠 속에서 음산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여기는 너같은 핏덩이가 올 곳이 아니다. 지금은 살생을 저지르고 싶지 않으니, 노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썩 꺼지거라!”
“꺼지라고?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뭐가 웃기다고 웃는 게냐?”
엽현은 상대의 반응을 무시한 채 더욱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이 청창계에서 설령 호계맹이라도 우리 엽 가의 종에 불과한데, 그대가 나를 보고 꺼지라 하니 우습지 않소? 엽 가의 명령 한 마디면 이곳은 물론, 청창계 전부라도 갈아 엎어버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오?”
“엽 가? 본제(本帝)는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흥! 그렇다면 설마 이 엽현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그따위 이름 모른다!”
어둠속에서 울려 퍼진 음성에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를 알지 못한다니, 그대는 이곳 사람이 아니거나 이곳에서 머문 지 너무 오래된 것이 틀림없군! 잘 들으시오. 나 엽현은 청창계가 낳은 가장 걸출한 검수로, 전무후무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는 그런 무인이오!”
말을 마친 엽현이 다시 한번 검황의 기운을 발산했다.
잠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어둠 속에서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검수라…… 천 년 전, 창계검주라 하는 자가 여길 찾아온 적이 있었지. 그런데 기운만으로 봤을 때, 너는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엽현은 당황했다. 상대는 이미 창계검주를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떡하지? 어떻게 나를 포장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