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누가 감히 날 죽일 텐가!
검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엽현은 칼을 소성주의 목에 겨눈 채, 얼음장 같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갑자기 들어온 엽현에 의해 겁먹어 벌벌 떨고 있었다.
두 사람 주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 네다섯 명이 침대위에 너부러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혼절한 상태였다.
소성주가 입을 뻐끔거리며 뭐라 말하려는 순간, 엽현의 검 끝이 약간 움직였다.
푹-!
소성주의 검은 목에 작은 구멍이 만들어졌다. 소성주가 하려던 말은 모두 그리로 새어나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엽현이 주먹으로 소성주를 가격했다. 소성주는 속절없이 그대로 쓰러졌다.
엽현은 먼저 기절한 소성주의 손에서 납계를 빼낸 후 자신의 품속에서 작은 백옥병 하나를 꺼냈다.
이 것은 예전에 그가 척발언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병에서 단약 한 알을 꺼내 소성주에게 복용시킨 엽현은 그를 데리고 소리 없이 장내를 빠져나갔다.
다음 날, 동녘이 틀 때 즈음이었다. 성문 앞에 갑자기 한 무리의 돼지떼가 나타났다. 그 돼지들 사이에는 벌거벗은 한 남자가 얼굴에 검은 천을 뒤집어 쓴 채 섞여 있었다.
이 남자는 미친 듯이 돼지들을 향해 욕정을 풀고 있었다. 이 진귀하고 구역질나는 광경에 성문 앞엔 점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잠시 후, 해가 환하게 밝아오자 성문 앞은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남자를 조롱하기도 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기도 했다.
너무 격정적으로 움직인 탓일까. 남자에게 씌워져있던 검은 천이 점점 느슨해지더니, 마침내 남자의 얼굴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술렁이기 시작했다.
육헌명이었다.
“세상에… 저게 누구야…….”
“소성주 육헌명이 왜……”
“빌어먹을 놈… 이제 하다하다 돼지까지……”
장내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의 눈은 매우 흥미로운 듯 육헌명의 짓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보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한 중년인이 육헌명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바로 운공성의 성주 육봉(陸封)이었다.
돼지를 끌어안고 힘을 쓰고 있는 육헌명을 보자, 육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순식간에 돼지들을 모두 도륙했다.
갑자기 상대가 없어져 당황한 육헌명은 자신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 놈!”
육봉이 성난 음성과 함께 순식간에 손으로 육헌명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격렬히 몸부림치던 육헌명의 붉은 눈빛이 천천히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잠시 후,정신을 차린 육헌명이 어리둥절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발밑에 쌓인 돼지 시체들을 발견한 그가 비명을 질렀다.
“누구냐! 누가 이런 것이냐!”
육봉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침 육헌명을 지키던 두 보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육봉과 눈이 마주친 두 보위가 허겁지겁 달려 나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성주, 소성주께서 저희에게 방 안에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이 쓸모없는 놈들!”
육봉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휘두르자 두 보위의 몸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육봉이 살기 넘치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모여든 사람들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성문 앞, 육봉은 음험한 표정으로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육헌명은 얼굴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었다.
치욕이었다. 이는 일생일대의 치욕이었다.
육헌명은 자신이 곧 중토신주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리란 것을 확신했다.
게다가 방금 전 자신이 했던 행동이 떠오르는 순간……
“으아아아악-!”
육헌명이 마치 한 마리 야수처럼 목청 놓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그들 앞에 노인 하나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에게 공손히 예를 갖춘 노인이 말했다.
“이는 분명 엽현의 소행일 것입니다.”
“대관절 엽현이란 놈이 누구냐! 누군데 나한테 이런 짓을 한 거야!”
곁에 있던 육헌명이 으르렁거리듯 소리쳐 물었다.
“그는 우리 호계맹의 적이자 엽령의 오라비입니다. 이번 일은 분명 그가 엽령을 위해 꾸민 일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엽령!”
육헌명이 험상궃은 표정을 지으며 육봉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엽령을 데리러 가기로 한 날이 아닙니까? 지금 당장 그녀에게 가야겠습니다. 놈의 여동생에게 내가 겪은 수모를 백배로 돌려줄 것입니다!”
육봉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이대로는 절대 넘어갈 수 없다! 여봐라! 당장 북한종으로 갈 채비를 하여라!”
이때 노인이 육봉에게 말했다.
“혹시 엽현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니 노부도 뒤따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공성 상공에 온갖 장식들로 화려하게 치장된 거대한 운선 한 척이 떠올랐다.
운선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북한종이었다.
한편, 돼지를 범한 육헌명의 소문은 순식간에 운공성 전체에 퍼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중토신주 전역에 퍼져나갔다.
사실 육헌명의 이름은 중토신주에서 잘 알려져 있다고 할 순 없었다. 유명한 것은 그의 숙부인 육 존주였다.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조금씩 와전되었고 중토신주 변경에 이르러서는 육 존주가 돼지를 수간했다는 말까지 떠돌게 되었다.
* * *
호계맹.
안에 있는 육 존주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보아하니 운공성에서의 일이 그의 귀에까지 들어온 모양이었다.
잠시 후, 육 존주가 대전 안에 한 노인을 향해 물었다.
“아직 놈을 죽이지 못했소?”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놈이 중토신주로 들어온 직후 마치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 종적을 알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엔 놈에게 기운을 감추는 보물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순 없습니다. 놈이 성주부에 침입했을 때, 그 곳에 있던 세 명의 진 어법경 강자들마저 아무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운을 숨긴다라…….”
육 존주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진 어법경 강자의 눈마저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존주. 이미 만법경에 이른 놈은 어법경 강자 정도는 쉽게 해치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놈이 마음먹고 기운을 숨긴다면 진 어법경 강자의 이목을 숨기는 일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입니다.”
“음… 놈이 중토신주에 나타난 이유는 필시 동생 엽령때문일 것이다. 놈은 분명 엽령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듣자하니 헌명이가 북한종으로 떠났다고 하니, 너는 당장 사람을 이끌고 북한종으로 가거라. 백이면 백, 엽현은 나타날 것이다!”
“존주… 그러나 저… 혹시 검선이 나타난다면…….”
‘검선이라…’
순간 육 존주가 고민에 빠졌다. 어두운 얼굴로 한참을 생각하던 육 존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만약 엽현이 나타나거든 너희들이 나서거라. 그리고 만약 검선이 나타난다면…….”
이때, 육 존주의 손에 한 줄기 하얀 빛이 떠올랐다.
“이, 이것은?”
노인이 눈을 크게 뜨고 묻자, 육 존주가 대답했다.
“이 안에는 주상이 남기신 분신이 담겨 있다. 만약 검선이 나타나거든 사용하도록 해라. 단, 반드시 그녀가 나타났을때에만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그녀가 현신(現身)했을 때 그녀를 막을 수단이 없게 된다.”
조심스레 흰 빛을 건네받은 노인이 문득 육 존주에게 물었다.
“존주, 엽현이란 놈이 이렇게 애를 먹이는데 존주께서 직접 나선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그럴 수가 없다. 정 불안하다면, 진 어법경 강자 두 명을 붙여줄 테니 그들을 데려가거라. 엽현이 아무리 대단해도 진 어법경 강자 둘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자 노인이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대전 안에 홀로 남은 육 존주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 그 날 보았던 천녀가 떠올랐다.
그가 왜 직접 나서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두려웠다.
그 날 그녀가 얼마나 많은 진 어법경 강자를 죽였던가. 그것도 단 일 격에 말이다. 육 존주는 한 명의 진 어법경 강자라도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없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녀가 단 일 검으로 주상이 설치해둔 대진을 파괴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에겐 주상의 분신이 있었지만, 육 존주는 도저히 그 신비한 여인을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심어준 공포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 빼낼 수가 없던 것이다. 만약 이번에 그녀가 나타났을 때 주상의 분신으로도 그녀를 막지 못하게 되면,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육 존주는 확인하고 싶었다. 엽현이 위기에 빠졌을 때 정말로 천녀가 나타나는 지를 말이다.
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 엽현은 진 어법경 강자들에게 죽게 될 것이고, 나타난다 해도 육 존주 자신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육존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 뒤쪽으로 다가갔다. 대전 뒤엔 칠흑과 같이 어두운 대문이 있었다. 대문을 열자 마치 우주가 펼쳐진 것처럼 심오한 공간이 나타났다.
육 존주가 그 공간 앞에 예를 올리며 말했다.
“주상.”
얼마 후, 문 안쪽에서 누군가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찾아내라! 감히 나의 대업을 망친 자다. 내가 반드시 그녀의 육신을 불사르고 영혼을 꺼내 영겁의 세월동안 고통받게 할 것이다.”
같은 시간. 어느 우주 깊은 곳 어느 행성에 위치한 궁전 안. 하얀 소복을 입고 앉아 있던 여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들어 심연의 우주 사이를 바라보던 여인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감히 내게 이런 거지같은 저주를 퍼붓다니…… 살고 싶지 않은 게냐?”
바로 이때, 여인의 손바닥 위에 투명한 검이 천천히 생겨났다.
그녀가 검을 들고 대전 밖으로 나선 순간, 검이 격렬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주문 같은 말이 쏟아졌다.
“우주에 있는 모든 생령(生靈)들은 내 검의 명을 받들지어다. 명하건대, 방금 내게 저주를 퍼부은 자는 모습을 드러내라!”
순간, 그녀의 손에 있던 검이 검은 우주를 향해 날아가더니, 그 중 어느 성역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검이 들어간 성역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였다.
“대담하구나!”
한 성역 중에 누군가의 성난 목소리가 검은 우주 전체에 퍼졌다.
“감히 우주의 법칙을 깨려는 자가 있다니, 살고 싶지 않은 것이냐!”
대전 앞에 서 있던 소복녀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비꼬듯 말했다.
“살고 싶지 않냐고? 내가 죽고 싶지 않은데 감히 누가 날 죽일 것이며 내가 죽이고자 하는데, 누가 감히 죽지 않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