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오라버니는 내 목숨보다도 소중합니다!
“건방지도다!”
먼 성역으로부터 큰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뒤이어 한 줄기 강대한 기운이 우주공간을 층층이 뚫고 소복녀에게로 날아왔다.
궁전 입구에서 소복녀는 여전히 비꼬는 듯한 웃음을 보이며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우주를 뚫고 날아온 기운이 막 그녀의 머리 위를 덮치려 할 때, 마침내 그녀의 손가락이 기운을 향했다.
쉭-!
한 줄기 검광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쾅-!
날아오던 기운이 순식간에 검은 우주 안으로 사라졌다.
다시 잠잠해진 우주 공간. 이때, 한 성역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너는 대체……”
“너 따위가 내 이름을 알아서 뭐 하겠느냐?”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여인이 다시 한 번 손을 들었다.
그러자 불투명한 검 하나가 멀리 떨어진 성역을 향해 빛처럼 쏘아져 날아갔다.
검이 성역에 도착했을 때, 검광은 주변의 별빛을 살라먹을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 후, 검이 도착한 성역 가운데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 우주는 다시 침묵 속에 잠겼다.
궁전 앞. 소복녀는 뒷짐을 진 채 고요한 우주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영롱한 별빛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원래의 차가운 눈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다소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지난 번,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소식을 전한 분신이 소멸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그’를 찾았는데 분신 스스로가 자신을 소멸시켰다는 것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간단히 말해 분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또한, 보통일이 아닐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이때,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나갔던 한 장면이 천천히 떠올랐다.
한 깊은 산속, 작은 사내아이가 품 안에 한 소녀를 껴안고 주변을 주시하고 있다. 어두운 하늘엔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었고, 그때마다 산속의 요수들이 미친 듯이 포효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종말의 그날이 임박한 것만 같다.
소년 역시 무척이나 겁에 질려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소녀를 위로하려 노력한다.
“청아… 괜찮아, 괜찮아…… 오빠가 널 지켜줄게……”
그 말에 소녀가 소년의 품속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비록 겁이 나긴 했지만, 오라비에 품에 있으니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다.
“오빠… 나, 배고파……”
그 말에 소년이 씩 웃으며 품안에서 만두 하나를 꺼냈다.
“자, 먹어……”
“오빠, 같이 먹자.”
“나는 아까 이미 먹어서 배 안고파. 자, 만져봐!”
소년이 자신의 배를 내밀자, 소녀가 그 말을 믿었다.
밤은 더욱 깊어가고, 소년은 소녀를 더욱 꼭 끌어 안고 있다. 어디가 불편한지 창백해 보이는 소년은 다소 무기력해 보였다.
“처, 청아, 너 검을 배워보고 싶다고 했지?”
“응! 강해져서 오빠랑 아빠와 엄마를 지켜주고 싶어.”
이때, 소년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소녀는 그의 눈물을 볼 수 없다.
어느덧, 소녀는 지쳐 잠이 들었다. 소년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처, 청아 만약 정말로 강해지게 되면 반드시… 반드시 우리와 같이 약한 자들을 지켜줘. 우리 불쌍한 부모님같이 약한 자들을……. 그리고 그 놈들… 정말 나쁜 놈들이야. 그런 놈들은 반드시 죽어야 해. 배가… 배가 너무 고프구나……”
순간,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 죽는 건 두렵지 않아, 근데 내가 죽으면 내 사랑하는 동생은 어떡하지? 아, 아직 이렇게나 조그만데……”
세상을 집어 삼킬 듯했던 어둠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마침내 날이 밝았다.
그리고 소녀를 마지막까지 끌어안은 채 소년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젖 먹던 힘을 다해 소년을 묻은 소녀는 그의 무덤가에 털썩 주저앉아 꼬박 하룻밤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소녀는 무덤을 떠나 어디론가로 향했다. 그녀의 작은 손에는 먹다 남은 만두 하나가 들려 있다.
그녀의 오라비가 먹을 수도 있었지만 소녀를 위해 남겨 둔 것이다. 그의 마지막 희망을 담아.
궁전 앞, 차갑기만 하던 소복녀의 얼굴에 두 줄기 뜨거운 은하수가 흘러 내렸다.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던 소복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약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을 죽여서 네 곁에 묻어줄 거야. 걱정 마. 나 역시 널 따라갈 테니까. 네가 없다면 검도의 끝에 이른다고 한들 아무 의미가 없어…….”
소복녀가 돌아서서 천천히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 어떠한 감정도 섞이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가 궁전 안에 울려 퍼졌다.
“내 인내심이 이제 바닥을 보이는구나.”
궁전 안에 있던 수많은 자들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기 시작했다.
* * *
청창계, 중토신주.
운공성에서 온 사절단이 도착하자, 북한종 무인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분노했다.
육헌명은 중토신주에서 소문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얼마 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돼지를 수간한 자가 북한종의 성녀를 달라고 온 것은 너무나도 파렴치한 것이었다.
북한대전(北寒大殿)안. 북한종의 모든 무인이 한데 모였다.
엽령 역시 종주인 심미령 곁에 다소곳이 앉았다. 얼음치마를 입은 그녀의 자태는 이 곳에 모인 여인들 사이에서도 으뜸이었다.
비록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훗날 엽령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만한 미녀가 될 것이란 걸 모르는 자는 없었다.
심미영이 장내를 둘러보며 입을 뗐다.
“호계맹과 운공성의 행태가 도가 지나친 것 같다. 그대들 생각은 어떠한가?”
이때, 무인들 중 한 여인이 말했다.
“종주, 사태를 진정시킬만한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입니까?”
심미영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때, 한쪽에 있던 한 노부인이 소리쳤다.
“우리 북한종의 힘이 호계맹만은 못하더라도 이런 치욕을 받고서 참을 순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끝까지 항거하지 않는다면 훗날 세상 사람들은 우리 북한종을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장내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호계맹과 운공성이 강제로 혼인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북한종을 얕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때, 누군가 또 소리쳤다.
“진정들 하시오! 만약 호계맹에 반기를 들게 되면, 그때부턴 호계맹을 적으로 삼게 되는 것이오. 호계맹과의 전쟁에서 우리에게 승산이 얼마나 있겠소!”
이때, 누군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했다.
“그럼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수모를 견디란 말이오?”
“당연히 아니오! 그러나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소. 자칫 도화선이 터지기라도 하면 우리 북한종은 크나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오.”
장내가 순간 숙연해졌다.
그녀의 말대로 북한종은 결코 호계맹과 싸워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우선은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척하면 어떻겠소?”
모두의 시선이 순간 한 미부에게로 쏠렸다. 그녀의 이름은 육예(陸芸)였다. 북한종의 대장로였다.
엽령은 다소 차가운 눈빛으로 육예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이 대장로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원래 북한종의 성녀는 엽령이 아닌 대장로의 손녀였다. 훗날, 엽령이 성녀가 된 후, 대장로는 시시때때로 엽령을 찾아와 그녀를 괴롭혔던 것이다.
대장로 육예가 말을 이어갔다.
“현재 중토신주의 영기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소. 게다가 우리 북한종 땅의 많은 면적이 이미 녹아 없어진 상태요. 이런 상황에서 호계맹과 싸우게 되면 최악의 경우 북한종이 멸망할 수도 있소.”
북한종의 멸망할 수 있다고?!
사람들의 표정이 더 없이 어두워졌다. 그 누가 종문의 멸문을 원하겠는가.
이때, 누군가 소리쳤다.
“그렇다면 성녀를 이대로 내주자는 말이오?”
“성녀? 성녀는 북한종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북한종의 성녀라면 모름지기 북한종을 위해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오. 종문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키워낸 성녀인데 이런 어려운 시기에 뒤에 숨어있기만 해서야 쓰겠소?”
이때, 엽령이 육예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장로, 나 엽령은 북한종의 성녀입니다. 성녀를 물건처럼 상대에게 내준다면 이는 나의 체면이 아니라 우리 북한종 선조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엽령이 고개를 숙여 육예에게 예를 올린 후 말했다.
“내가 들어온 이후로 그대의 손녀가 성녀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 역시 그 점이 언제나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개인의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북한종이 없으면 대장로는 대장로가 아닐 것이고, 나 역시 더 이상 성녀가 아닐 것이니 말입니다.”
그 말에 장중 무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심미영은 뿌듯한 표정으로 엽령을 바라보았다.
과연 북한종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성녀다웠다.
반면, 육예의 표정은 마치 벌레라도 씹은 듯 했다.
엽령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뼈가 있었다.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다.
이럴 때 괜히 반대를 했다간 큰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자로 낙인찍힐 것이 뻔하다.
육예가 조용히 입을 닫고 한 편으로 물러났다. 이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더했다.
“한 가지 모두가 알아야 할 점은, 이번 호계맹이 북한종과 성녀를 노리는 이유는 모두 엽현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엽현을 넘긴다면 우리 북한종에게는……”
“그대가 감히!”
바로 이때, 엽령이 불같이 화를 내자 그녀의 몸에서 한 줄기 기운이 나와 육예를 향해 날아갔다.
장내 무인들은 엽령이 출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엽령의 기운은 육예의 손짓 한 번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육예가 근엄한 표정으로 엽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북한종의 위계가 언제부터 이리 무너졌소?”
“누구든 내 오라버니를 건드리면 반드시 죽을 것이오!”
“건방진! 성녀라고해서 오만방자하지 마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성녀는 북한종의 것이지 네 오라비의 것이 아니다! 너는……”
“그만 됐소!”
한쪽에서 듣고 있던 심미영이 소리쳤다.
육예는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분을 삭이진 못한 상태였다.
심미영이 엽령을 향해 말했다.
“대장로에게 사과하거라!”
“싫습니다!”
순간 심미영의 눈썹이 꿈틀댔다.
“엽령!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어찌 이리 철이 없느냐! 어서 사과하라니까!”
“싫습니다! 대장로가 먼저 오라버니를 건드렸지 않습니까!”
“혹시 북한종보다도 네 오라비가 더 중요한 것이냐?”
심미영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엽령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대답했다.
“오라버니는 내 목숨보다도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