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훌륭한 재목이구나
엽현의 대답에 노인과 중년인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중년인이 다시 엽현을 향해 물었다.
“엽현이 왜 여기에 나타났단 말이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 역시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저 붉은 머리 남자가 그의 이름을 사칭한 것과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이번에는 노인이 나서서 물었다.
“저 남자는 어법경 강자도 죽일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런데 백리운의 말에 따르면 너는 그런 남자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
엽현이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장로, 잠깐 그를 막아선 정도였으니,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남우가 떠나려 할 때, 왜 그녀에게 날아든 화살을 막지 않아 육신을 잃게 했느냐?”
순간, 엽현은 노인이 대화를 질질 끄는 이유를 파악했다. 그는 남우에게 벌어진 일을 탓하고 있던 것이다.
엽현이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대꾸했다.
“장로, 외람된 말씀이오나, 이치를 따지자면 그것은 남우 사저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닥치자 보호는커녕 가장 먼저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엽현이 이번에는 중년인을 향해 물었다.
“이쪽 장로께서는 남우 사저의 행태가 옳다고 보십니까?”
이때, 중년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노인이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가 물은 것에나 답해라! 왜 남자의 화살을 막지 않고 남우의 육신이 소멸하게 놔두었느냐? 이 것만 대답하면 된다, 알겠느냐?”
노인의 음성은 이미 극도로 차가워진 상태였다.
엽현이 노인에게 웃으며 말했다.
“장로, 남우 소저의 육신이 파괴된 것은 저 또한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걸 제가 한 것도 아닌데 장로께서는 왜 저를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까?”
엽현이 손으로 붉은 머리 남자의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탓을 하려면 응당 저 자를 탓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흥! 네 놈은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않은 것이다! 이는 분명 네게 그녀를 암살하려는 목적이 있던 게야! 동문을 암살하려 한 죄는 응당 만검능지(萬劍凌遲)형에 처해야한다!”
그 말에 엽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첫째, 그녀는 어리석었습니다. 섬에 상륙하기 전, 저는 이미 그녀에게 섬 안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듣지 않고 무작정 전진해 들어갔습니다. 둘째, 위험을 만나자 그녀는 우리를 보호해 줄 책임이 있는 사저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도망쳤습니다. 셋째, 남자의 화살 한 발도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약해 빠졌습니다. 그런 쓰레기 같은 무인을 길러낸 스승이 누구인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혹시… 여기에 계신 건 아니겠지요?”
“건방진 놈!”
노인의 표정이 얼음처럼 차갑게 식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한 줄기 검세가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검선의 검세였다.
강력한 검세가 폭우처럼 몰아치자, 엽현이 서 있던 땅 주변이 사방으로 갈라져 나갔다.
엽현 역시 그 힘에 허리와 무릎이 살짝 꺾이긴 했으나, 이내 꼿꼿이 자세를 취하며 버텨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중년인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노인 역시 다소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이번에는 오른손을 들었다가 지면을 향해 지그시 내리 눌렀다. 그러자 엽현의 몸을 짓누르고 있던 위압이 더욱 강해졌다.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검을 빼들고는 일 검을 휘둘렀다.
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노인의 기세는 사라졌지만, 엽현 역시 수십 장을 튕겨져 나갔다.
엽현이 제자리에 멈췄을 때, 그의 입가에선 붉은 선혈 한 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널 조금 얕본 모양이로구나! 허나, 장로들을 멸시하고 말이 불손한 죄를 물어 내 오늘 너를 폐하고 종문의 권위를 바로 잡을 것이다!”
노인이 손가락으로 엽현을 가리키자, 한 자루의 검이 마치 벼락과 같이 쏘아져 나갔다.
엽현 역시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체내에 있는 모든 현기를 일순간 끌어 올렸다.
상대는 검선, 게다가 진 어법경 강자였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죽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엽현이 막 출수하려는 때,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월기였다.
월기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자,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한 줄기 검기가 날아갔다.
쾅-!
월기의 검기와 충돌한 노인의 검이 튕겨져 날아갔다.
노인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월기에게 소리쳤다.
“월 사매, 너……”
바로 이때, 월기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검결(劍訣)을 맺었다. 순간, 하늘 위의 구름이 요동치더니, 그 사이로 한 자루 검이 벼락처럼 꽂혔다.
“운중검(雲中劍)!”
노인이 근엄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펼치자, 검 한 자루가 그의 앞에 떠오르더니,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솟구쳐 올라갔다.
두 자루의 검이 서로 맞부딪쳤다.
쾅-!
고막을 터트릴 만한 폭발음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때, 월기가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그녀의 주위로 무수히 많은 검광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이에 노인이 다소 당황한 듯한 눈빛을 보이며 소리쳤다.
“영수검(影隨劍)이라니… 월 사매, 정말로 미쳐버린 게냐! 제발 진정……”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월기가 노인의 앞에 도달했다.
쾅쾅쾅-!
노인 역시 이를 악물고 검을 빼 들었으니, 월기의 강력한 공격 앞에 한걸음 씩 밀려났다. 이때, 하늘은 무수히 많은 검기들이 쉴 새 없이 번쩍이고 있었다.
이에 참다못한 중년인이 황급히 소리쳤다.
“창현(蒼玄) 사형, 월기 사매, 멈추시오!”
하지만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월기의 공격은 더욱 맹렬해져 갔다.
창현의 실력은 월기만 못했던지 계속해서 밀리기만 하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엽현은 그야말로 별천지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검선들의 전쟁이라니!
그는 천녀가 출수하는 모습을 몇 번 보긴 했으나, 모두 단 일 검에 끝내버렸으니, 구경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검선 간의 결투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 검선의 무공이 얼마나 화려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화려한 것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무공은 매우 실용적이기도 했다. 특히 월기의 검은 군더더기 없이 상대의 허점만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에 창현은 쩔쩔매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격렬하게 싸움이 이어지던 중, 창현이 갑자기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결국 월기와 맞서지 못하고 도망치고 만 것이었다.
그러자 월기가 손을 멈추고 엽현 앞에 다시 나타났다.
월기가 엽현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던지고 사라졌다.
“와서 밥해!”
엽현이 순식간에 구름 속으로 사라진 월기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어검을 못한단 말이오…….”
이때, 근처에 있던 중년인이 그를 향해 다가와 물었다.
“그 엽현이란 자가 떠나기 전 남긴 말은 없느냐?”
“음… 그가 말하길, 이번 일은 호계맹이 꾸민 짓이라고 했습니다.”
순간, 중년인의 미간 사이가 깊게 패였다.
보아하니, 창검종 역시 호계맹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듯 했다.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던 중년인이 엽현을 향해 말했다.
“사안이 매우 중하니, 너는 오늘 일을 결코 발설하지 말거라!”
말을 마친 중년인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엽현이 서둘러 손짓을 해 보았지만 중년인은 매정하게 구름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나 좀 데려가란 말이다-!”
만약 거리라도 가까웠다면 어검비행을 시도라도 해봤을 테지만, 이렇게 먼 거리를 비행하려면 그야말로 하세월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엽현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보통 창검종까지 두 시진이면 도착하지만, 엽현은 그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소모하고서야 겨우 운검봉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엽현은 숨도 돌리지 못한 채, 월기에 의해 창검봉으로 끌려갔다.
창검봉은 일곱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창검종의 핵심지역이었다.
이 곳 창검봉은 창검종의 종주인 진북한(陳北寒)의 거처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엽현과 월기가 창검전에 들어섰을 때, 장내엔 이미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창현과 중년남자, 백리운과 고월, 그리고 영혼체(靈魂體)가 되어버린 남우도 있었다.
엽현이 등장하자 남우가 독기 서린 눈빛으로 엽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녀 곁에 있던 창현 역시 차가운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 곁에 있던 월기가 문득 그에게 말했다.
“겁먹을 것 없다. 창현 사형은 날 이기지 못한다.”
“…….”
이때, 한 쪽에 있던 백리운이 엽현을 보며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월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를 했다.
엽현이 대꾸하려는 순간, 대전 안으로 한 중년인이 들어섰다. 그는 하얀색 장포차림에, 허리에는 사자 형상을 한 허리띠를 매고 있었다. 손에는 기다란 피리를 들고 있었다.
그가 바로 진북한이었다. 창검종의 종주.
그를 처음으로 마주한 엽현의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진북한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육 존주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그 말인 즉, 눈앞의 진북한 역시 청창계 최고 고수 중 일인이라는 뜻이었다.
대전 상석에 오른 진북한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 앉으시오!”
그러자 장내 무인들이 그를 향해 예를 차린 후, 모두 자리에 착석했다.
진북한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안엽이라 했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훌륭한 재목이로구나.”
진북한이 엽현에게서 시선을 떼고 장내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사정은 내 이미 들어 알고 있소. 남우의 행동은 지극히 독선적이고 편협한 것이었으니, 지금의 모습이 된 것도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에 남우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진북한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제자가 어리석었습니다.”
진북한이 이번에는 창현을 향해 말했다.
“제자를 훈육함에 있어 비단 무공뿐 아니라, 제대로 처신하는 법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하오. 됨됨이가 부족한 무인이 세상에 나서면 젊어서 요절한다는 것을 창 장로도 잘 알고 있지 않소?”
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게 다 제자를 올바르게 훈육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허나……”
창현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아이는 분명 상대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남우를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런 자는 우리 창검종 제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진북한이 엽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음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엽현이 잠시 고민한 뒤 대답했다.
“그것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