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그냥 해본 말이야
누군가 창검종 산문 앞에 열 개의 관을 놓고 간 사건은 중토신주 전체를 긴장케했다.
창검종이 어떤 자들인가?
천 년 전, 호계맹조차 발아래로 보던 세력 아닌가!
그 후로도 지금까지 창검종은 청창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강의 세력으로 군림해 왔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감히 그들에게 관 짝을 가져다 놓았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관 안에 들어있는 시신들이 모두 창검종 제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창검종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자 선전포고였다.
창검봉, 대전 안.
진북한이 두 눈을 감은 채 상석에 위치해 있었다. 그 아래쪽에 월기와 창현이 자리했다.
잠시 후, 진북한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자들을 모두 불러 오거라. 그리고 대사형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도록 해라…….”
‘대사형?’
“과연 대사형께서 돌아올까요?”
창현이 다소 걱정스런 눈빛으로 묻자, 창현이 웃으며 답했다.
“반드시 돌아오실 게다!”
그러자 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대전을 빠져나갔다.
진북한이 이번엔 월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월기야, 다른 의견이라도 있느냐?”
월기가 고개를 저었다.
“사형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관심 없다는 듯 돌아서는 월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북한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운검봉.
엽현은 이미 아침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전해들었다. 그는 대전 앞에 앉아 월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월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엽현이 벌떡 일어났다.
“사부, 이미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월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나가면 안된다!”
“왜 안 됩니까?”
“네가 창검종을 떠나가게 되면 세인들은 우리가 호계맹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멸문보다 더한 치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너는 이미 창검종의 제자 아니냐? 마땅히 종문과 생과 사를 함께 해야 한다.”
엽현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떠나지 않으면 호계맹은 계속 이런 식으로 협박할 것입니다!”
월기가 엽현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전에 말했듯이, 네가 있으나 없으나 이제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저들에게 있어 너는 하나의 핑계에 불과하다. 창검종과 전쟁을 일으킬 하나의 핑계일 뿐이다!”
월기가 그대로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밖에 홀로 남은 엽현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검종 같은 거대 종문이 어디서 굴러 들어온 제자 하나 때문에 전쟁을 결심할리는 없다. 분명 그들은 미리부터 호계맹과의 전쟁을 어느 정도 준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전쟁을 하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월기의 말대로 세인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워서?
전쟁의 이유라 하기엔 명분이 너무 약하다. 분명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기왕 창검종에서 남으라고 하니, 일단 남는 수밖에!’
지금 엽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수련밖에 없었다.
엽현은 모든 잡념을 버리고 강해지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련을 재개했다.
현재 그의 경지는 진 만법경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어법경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운이 따라준다면 검황을 넘어 검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검선. 그 말만 들어도 엽현의 가슴이 웅장해졌다.
검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땐 육 존주와도 겨뤄 볼만 할지도 모른다.
엽현이 숲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내 그의 눈앞에 검 한 자루가 떠올랐다. 순간 검이 사라지더니 사방팔방에서 무수히 많은 수의 검들이 나타났다.
순공일검(瞬空一劍)!
그가 순공일검으로 소환할 수 있는 검은 이미 백 개에 달해 있었다.
그의 수련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이 날 오후, 창검종 산문 앞에 또 다시 열 개의 관이 배달됐다. 안에는 이 전과 마찬가지로 시신들이 누워 있었다.
시체 중 세 구는 어법경 강자들의 것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만법경 강자들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시체들은 창검종 무인들이 아니라, 호계맹 사람들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호계맹의 무인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토신주는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혔다.
호계맹과 창검종이 기어코 전쟁을 시작하는 것인가!?
정확한 사정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 간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닷새째 되는 날, 창검종 산문 앞엔 삼십여 구의 관들과 삼십여 구의 시신들이 쌓이게 되었다.
이 날, 한 소년이 창검종을 방문했다. 소년은 회색 무명옷을 입고, 머리를 어깨까지 내린 채, 발에는 한 쌍의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
소년이 산문 앞에 쌓인 시체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창검종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창검종 젊은 무인들은 모두 덤벼라!”
명백한 도발이었다.
소년의 갑작스런 도발에 창검종이 술렁였다.
이내, 무수히 많은 검수들이 검을 타고 내려와 소년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물러나 있거라!”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한 자루 검이 공중에서 미끄러지듯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잠시 후, 검 위에 타고 있던 한 남자가 검집을 손에 쥔 채 바닥에 내려섰다.
“남궁언 사형이다!”
그들 중 누군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 질렀다.
창검종 젊은 무인 중에서 가장 절색을 꼽으라면, 첫째로 상월 그리고 그 다음이 남궁언이었다.
세인들은 이 둘을 합쳐 창산이검(蒼山二劍)이라는 이름을 붙여 칭송했다.
남궁언이 무명옷을 입은 소년을 향해 소리쳤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소년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인데, 굳이 이름을 알아야 하겠는가?”
소년이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다짜고짜 손에 들고 있던 창으로 남궁언을 향해 찔렀다. 그러자 그의 창이 마치 한 마리의 교룡(蛟龍)처럼 꿈틀거리며 날아왔다.
남궁언이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순간 그의 주위로 무수히 많은 검광들이 생겼다. 검광은 순식간에 날아오는 장창을 에워쌌다. 바로 이때, 소년의 창신에서 한 마리 요수의 형상이 나타났다. 산 전체가 거대한 짐승의 포효소리에 파묻혔다.
쾅-!
검광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고, 남궁언 역시 백장 가량을 미끄러지듯 물러났다.
자세를 고쳐 잡은 남궁언이 손가락으로 소년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검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소년을 향해 날아갔다.
이에 소년 역시 날아오는 검을 향해 창을 찔렀다. 장내에 또 다시 야수의 포효성이 울려 퍼졌다.
쾅-!
남궁언의 칼이 소년의 창 끝에 가로막혔다. 이때, 소년이 손목을 비틀어 검을 비켜내고는 남궁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남궁언이 한 층 무거워진 표정으로 재빨리 결(訣)을 맺자, 그의 머리 위 공간에 한 자루의 투명한 검이 나타났다. 남궁언이 양손으로 진짜 검을 휘두르듯 내리치자, 투명한 검이 반원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바로 이때, 소년의 창이 공기 중 파문을 일으키며 벼락처럼 날아갔다.
쾅-!
수많은 시선들 속에 투명한 검이 산산조각나는 동시에 남궁언의 신형이 튕겨져 날아갔다.
창황(槍皇)!
창검종 무인들이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명옷을 입은 소년은 무려 창황의 경지였던 것이다.
이때, 무명옷의 소년이 멈추지 않고, 또 다시 남궁언을 향해 달려들었다.
쉭-!
그의 창이 섬뜩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남궁언의 가슴을 노렸다.
남궁언이 이를 악물며 양 손바닥을 합치자, 그의 손 안에 한 자루의 검이 응집됐다. 뒤이어 그가 검을 앞으로 쭉 내밀며 소리쳤다.
“파(破)!”
쾅-!
남궁언의 정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남과 함께, 그의 신형이 튕겨지듯 뒤로 날아갔다. 남궁언이 그대로 지면에 처박히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손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모든 이의 시선이 손의 주인을 향했다.
엽현이었다.
지난 번, 창검종을 위기에서 구했던 엽현이 또다시 나타난 것이다.
남궁언이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며 말했다.
“그대가 안엽인가?”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남궁언의 입에 자원단 한 알을 넣어 주었다.
“내가 상대하겠소!”
“조심하시오, 만만한 놈이 아니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무명옷을 입은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상대가 창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나는 또 네가 나오지 않는 줄 알았다!”
“훗, 네 목적이 나인 걸 뻔히 아는데, 어찌 나오지 않을 수 있겠나?”
“기백만큼은 마음에 드는군. 그럼 어디, 청창계 최연소 검황의 실력을 보도록 할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년이 정면을 향해 크게 보법을 밟았다.
쾅-!
순간, 소년의 발밑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기운이 그의 몸 주위로 응집됐다. 그 기운은 점점 포악한 폭우처럼 휘몰아쳐, 창검종 무인들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이때, 엽현이 지면을 밟고 공중 높이 뛰어올랐다. 엽현은 그대로 무명옷의 소년에게 일 검을 내리 꽂았다.
일검정생사(一剑定生死)!
이 순간, 엽현은 더 이상 실력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일 검엔 검황의 검세뿐 아니라, 악념검의가 녹아 있었다.
엽현의 검을 본 장내 무인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저런 괴물 같은 무공이라니!’
이에 아래쪽에서 엽현을 바라보던 소년이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창을 내질렀다.
“관천천지(貫穿天地)!”
그의 창이 마치 하늘이라도 뚫어버릴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검과 창이 맞부딪쳤다.
쾅-!
경천동지할 위력의 폭발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뒤로 날아갔다. 서로의 몸이 공중에 떠 있는 이때, 엽현이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쉭-!
소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엽현의 검이 빛처럼 날아 그의 미간을 뚫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장내는 고요해졌다.
이겼다!
순간, 창검종 제자들이 하늘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또 이겼다!
승리에 열광하며 소리 지르는 창검종 무인들은 엽현에 대한 존경심도 숨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존경이었다.
한편,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던 엽현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호계맹은 듣거라! 나 엽현은 오늘부로 창검종을 떠날 것이니 앞으로는 더 이상……”
바로 이때, 산 정상으로부터 누군가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부로 안엽을 창검종 차기 종주 후보로 임명한다!”
‘엥? 뭐라고?’
엽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창검종 종주 후보!?’
그렇다. 창검종은 끝까지 그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때, 한 쪽 하늘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들려왔다.
“죄인 엽현을 비호하는 창검종을 지금부터 청창계의 공적으로 선포한다!”
이에 엽현이 하늘을 향해 중지를 펼쳐 보이며 소리쳤다.
“육 존주, 이 호계맹의 늙은 개야! 모습을 보이거라, 나와 겨뤄보자꾸나!”
순간, 장내의 무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제 정신인가?’
‘아무리 그래도 육 존주에게 도전한다고?’
바로 이때, 한쪽 공간이 열리며 육 존주가 공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육 존주가 살기등등한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 진심이더냐?”
엽현이 정색하며 대꾸했다.
“그냥 해 본 말인데 믿다니, 멍청하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