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부탁할 게 하나 있다
대충 정리를 마친 후, 엽현은 미영천의 할아버지로부터 받아온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 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부문들이 적혀 있었다.
엽현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혹시나 하고 두루마리 위에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려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뭔지 아니?”
엽현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그냥 아무 쓸모 없는 종이는 아니겠지?
“오빠, 그건 지도예요.”
‘지도?’
“이게 지도인 줄 어떻게 알았지?”
“왜냐하면 읽을 줄 아니까요!”
“흠… 네 할아버지께도 이 사실을 알려 드렸니?”
미영천이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는 너무 약해서, 제가 알려드려봤자 위험에 빠지셨을 거예요. 그렇지만 오빠는 무척 강하니까 알려줄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엽현은 소녀가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너는 참 슬기로운 아이구나!”
실은 노인은 결코 약한 자가 아니었다. 엽현이 그의 집에 들어갔을 때, 그는 노인에게서 어법경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생명이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미영천의 말대로 괜한 일에 말려들었다간 해를 입힐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가는 줄도 알고 있니?”
“이쪽으로 곧장 가면 됩니다. 지금 가게요?”
“하하… 음… 위험한가?”
미영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오빠같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리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그럼 당장 출발하자!”
엽현이 미영천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이내 두 사람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깊은 숲으로 들어섰다.
길을 걷는 중, 미영천은 엽현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엽현의 얼굴을 훔쳐보다 엽현과 눈이 마주칠 때면 황급히 시선을 회피했다.
“왜 자꾸 보는 거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미영천이 개미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빠는 좋은 사람 같아요!”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은 항상 명확히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예를 들어, 나는 네게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최악의 악인일 수도 있지!”
미영천이 엽현의 눈을 마주친 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 말에 엽현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미영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엽현은 미영천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었다. 그 역시 가장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엽현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알고 있었다.
노인이 미영천을 부탁했을 때, 엽현은 고민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무 사심도 들어가 있지 않은 그의 순수한 배려였다.
엽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미영천은 엽현의 이런 점마저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토록 엽현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던 것이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협곡 안으로 들어섰다. 협곡은 굉장히 광활했다. 양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미영천이 문득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들어 오른편에 있는 한 절벽을 바라보았다.
“저기?”
엽현이 묻자, 미영천이 절벽의 한쪽 모퉁이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자연적으로 생긴 것 같은 틈바구니가 보였다.
엽현이 미영천과 함께 어검비행으로 그리로 날아갔다. 미영천은 조금 무서웠는지, 엽현의 가슴께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이내 두 사람은 멀리서 보았던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돌로 된 문을 발견했다.
엽현이 손을 들어 돌문을 가리키니, 한 줄기 검광이 쏘아져 나갔다.
쾅-!
돌문이 박살나면서 그 사이로 동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지도는 정확했다.
엽현은 미영천의 손을 잡고서, 동굴 안에 이어져 있는 돌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자 이번엔 연못이 나왔다. 그리고 연못 가운데는 웬 검은 관 하나가 떠있었다.
엽현이 조심스레 주위를 돌아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마침내 엽현의 시선이 수면 위의 관으로 향했다. 그가 막 관을 향해 몸을 날리려 할 때, 미영천이 고개를 저으며 연못 아래쪽을 가리켰다.
“뭔가 있어요!”
엽현이 아래쪽을 검안으로 살펴봤다.
과연 뭔가 있었다.
“너 혼자 잠깐 여기서 기다릴 수 있지?”
미영천이 고개를 끄덕이다,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무서워할 필요 없어. 만약 이 안에 뭔가 있더라도 내가 해치울 테니까!”
엽현이 미영천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곧장 혼돈지기를 펼쳤다. 순간, 그의 기운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순식간에 엽현은 물 위에 있는 관에 올라섰다. 관의 표면엔 보라색 부문(符文)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또한, 수많은 검은 실들이 마치 하나의 어망처럼 관을 칭칭 동여맨 상태였다.
‘이게 도대체 뭘까?’
엽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관을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 알아낼 순 없었다. 단, 그의 직감이 말해주길 결코 그에게 호의적인 물건은 아닌 듯했다.
엽현이 미영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에 뭐가 있는지 보이니?”
미영천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에 가로막혀서 안 보여요!”
엽현이 다시 관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분명 관에 새겨져 있는 부문들과 검은 실들이 방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열어볼까?’
엽현은 조금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관을 함부로 열었다간 번잡한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엽현은 결국 관을 열어보기로 결심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엽현이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관 안에서 진 어법경 강자가 갑자기 튀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일 전을 벌일 자신이 있었다.
엽현이 손을 뻗자, 한 줄기 검광이 관 위로 번뜩였다.
쉭-!
순간, 관 위에 새겨져 있던 부문들이 파괴됨과 동시에 검은 실 또한 천천히 사라졌다.
검은 실이 완전히 제거된 뒤, 엽현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 천천히 관을 열어젖혔다.
관이 반쯤 열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한 명의 여인이었다. 붉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창백한 얼굴 위에 요염한 분칠을 더한 여인은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갑자기 여자?’
엽현이 머뭇거리며 관을 향해 몸을 수그렸다. 바로 그때, 여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순간, 엽현의 몸이 돌이 된 것처럼 굳었다.
관 속의 여인은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여인의 눈 속에선 일말의 감정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시, 실례했소!”
엽현이 당황해하며 황급히 관 뚜껑을 닫으려 했다.
바로 이때, 여인의 손이 관 뚜껑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피처럼 붉은 기운이 엽현의 몸을 감쌌다.
엽현이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미영천의 곁으로 돌아왔다. 미영천 역시 겁을 먹었는지, 엽현의 팔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관 속의 여인은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보니 그녀의 붉은 치마는 혼례복인 것처럼 보였다.
여인이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자 엽현은 검을 부여잡은 채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이 층 주민, 잠깐 나 좀 도와줄 생각 없어?”
[하하하하!]계옥탑에서는 웃음 소리만 들렸을 뿐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분명 엽현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웃음이 틀림없었다.
순간 엽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역시 이 층 존재는 믿을 만한 자가 아니었다.
바로 이때, 붉은 치마의 여인이 천천히 엽현과 미영천쪽으로 날아왔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엽현이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 보았다.
“잠에서 깨어난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에게 고마워하실 것은 없습니다. 저는 본래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선량한 사람이니까요. 물론 굳이 감사를 표하고 싶으시다면 보물이라도 좀 나눠 주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인이 엽현을 향해 보물대신 느닷없이 일 장을 날렸다. 깜짝 놀란 엽현이 다급히 미영천을 자신의 뒤로 끌어다 놓는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일검정생사!
쾅-!
엽현은 그대로 동굴 깊숙한 곳까지 밀려났다. 그의 입가에선 선혈이 흘러내렸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강했다.
엽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여인은 오른손을 들어 엽현을 가리켰다. 그러자 연못물이 솟구쳐 올라 하나의 화살 형태를 이루더니, 그대로 엽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엽현은 한 발 전진하며 양손으로 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쾅-!
물의 화살을 겨우 막아낸 그의 앞에 이번엔 붉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엽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장 검을 찔러 넣었다.
쿵-!
엽현의 신형이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엽현이 바닥에 떨어지자, 황급히 다가온 미영천이 그의 팔을 껴안으며 걱정스러워했다.
바로 이때, 여인이 다시 출수하려는 것을 본 엽현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여인이 손을 멈췄다.
“나는 그대를 관속에서 꺼내 준 사람인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어찌 나를 공격한단 말이오?”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언제 널더러 꺼내 달라 했더냐?”
“…….”
“난 네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다!”
날카롭게 소리친 여인이 엽현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엽현의 주변 공간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엽현이 뭔가 결심한 듯, 오른손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수(囚)!”
그러자 엽현과 미영천 주변의 공간이 수축하더니, 두 사람을 감싸고 작은 우리를 만들었다. 여인의 핏빛 기운은 뭔가에 가로막힌 듯 더이상 두 사람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여인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엽현이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공간의 힘을 변형한 것이오!”
여인이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됐다. 이만 가도 좋다!”
“어, 어…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오?”
“더 해보고 싶은 게냐?”
이에 엽현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오! 싸우고 싶지 않소!”
미영천의 손을 잡고 황급히 빠져가려는 엽현의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이 곳을 찾았느냐?”
엽현이 잠시 망설이다가,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 펼쳐 보였다. 그러자 여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그 지도는 그가 만든 것인데……”
여인이 문득 엽현을 바라봤다.
“너는 그의 제자냐?”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단지 우연히 지도를 얻었을 뿐이오!”
여인이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엽현을 향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다!”
“무슨 부탁이오?”
“내게 아이를 하나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