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겠소?
순간 엽현이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 켜며 소리쳤다.
“아, 아니 되오!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이 밝은 대낮에 아이를 만든단……”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나가서 아이 하나를 데려오란 말이다!”
엽현이 입을 삐죽거렸다.
‘처음부터 말을 분명히 했어야지!’
여인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낀 엽현이 웃으며 물었다.
“아이를 데려다가 뭘 하려는 것이오?”
“그것까진 알 필요 없다!”
“그럼 나도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소.”
엽현이 당당하게 말했다.
순간, 여인의 눈빛이 얼음같이 차가워졌다.
“죽고 싶은 게냐?”
엽현은 사실 두렵긴 했지만 지지 않고 대꾸했다.
“내가 누군 줄 아시오? 내가 바로 창검종 차기 종주 후보란 말이오! 창검종을 들어본 적 없소? 그렇다면 창계검주는 들어봤겠지?”
여인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지금 나를 위협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아니,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 만약 내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창검종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이오.”
“너는 내가 창검종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우리 서로 이렇게 딱딱하게 할 필요 있소? 내가 무슨 대단한 걸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게 아이를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말해주면 간단할 일 아니겠소?”
여인이 엽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청창계를 떠나기 전, 고무비술(古巫秘術)을 전승해줄 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무비술? 전승?’
엽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뭔가 엄청난 비술일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내, 내가 하겠소, 나의 자질이 그렇게 나쁘지 않으니, 안심하고 내게 전승해줘도 될 것이오!”
여인이 눈을 치켜떴다.
“내가 너처럼 뻔뻔한 놈은 살다 살다 처음이다!”
그 말에 미영천이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리며 웃었다.
엽현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내게 전수해 준다면 결코 스승님을 욕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여인이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남자는 이 비술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반드시 여자여야만 한다.”
이때, 여인의 시선이 엽현에게서 그의 뒤에 있던 미영천에게로 옮겨갔다.
“아이야, 나를 사부로 모시겠느냐?”
미영천이 당황스러운 눈초리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은 상대가 처음부터 미영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만약 정말로 아이 하나가 필요한 것이었다면, 애당초 그녀가 밖으로 나가 아무 아이나 들이면 될 일이었다. 이 여인은 미영천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엽현이 물었다.
“왜 굳이 이 아이를 선택한 것이오?”
“너와 상관있느냐?”
그 말에 엽현이 미영천의 손을 잡고 입구 쪽으로 향했다.
“멈춰!”
여인의 차가운 음성이 엽현의 귀에 박혔다.
“네가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엽현이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대꾸했다.
“내가 정말로 그대를 두려워할 것 같소?”
엽현이 별안간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자 한 자루 검이 그의 손에서 떠오르는 동시에, 강대한 기운이 체내로부터 터져 나왔다.
검황지위(劍皇之威)!
“참나! 고작 검황 따위가 겁도 없이!”
여인이 막 엽현을 향해 출수하려는 순간, 엽현이 곁에 있던 미영천이 소리쳤다.
“제가 받겠습니다! 저에게 전수해 주세요!”
순간, 여인이 손을 멈추고 미영천을 향해 물었다.
“진심이더냐?”
미영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 오빠를 해치지 말아 주세요!”
여인이 엽현을 바라봤다.
“저놈은 말만 번지르르하고 낯가죽은 호랑이보다도 더 질긴 놈이다. 가까이해서 이로울 것 하나 없다! 왜 저런 놈이랑 엮인 게냐?”
미영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에요!”
여인이 미심쩍은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음…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
우여곡절 끝에 미영천은 여인의 비술을 이어받기 시작했다. 엽현은 불안한 마음에 동굴을 떠나지 않고 미영천의 곁을 지켰다.
엽현은 여인이 미심쩍은 것이 사실이었다. 단, 그녀의 실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것만은 사실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엽현은 여인이 전심전력으로 무공을 전수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미영천이 배우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는 것이었다.
미영천은 여인이 무얼 가르치던지 한 번에 해내곤 했다.
그녀를 가르치는 여인 또한 그녀의 그런 천재성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비록 미영천의 자질이 훌륭한 것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그 당혹감은 이내 흐뭇한 미소로 변했다.
그렇게 오륙일이 또 흘렀다. 여인이 조용히 엽현을 가까이로 불렀다. 엽현이 다가온 것을 본 미영천이 그의 손을 잡으며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이것 좀 보세요.”
그녀가 오른손으로 연못을 향해 살짝 누르자, 순간 연못이 빠르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미영천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 소용돌이 안에서 사람의 형상이 하나 출몰했다.
그것은 바로 엽현이었다.
엽현이 깜짝 놀라 미영천을 향해 소리쳤다.
“와-! 정말 대단하구나!”
엽현의 칭찬에 미영천이 기뻐했다.
이때, 붉은 치마의 여인이 흥이라도 깨려는 것인지 미영천을 향해 말했다.
“저쪽에 앉아서 오늘 배운 것을 복습하도록 하여라!”
미영천이 고개를 끄덕인 후, 한편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었다.
이때, 여인이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에 내력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는 평범한 소녀가 아니다!”
엽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첫눈에 딱 알아봤죠.”
엽현이 우쭐댔다. 그러자 여인이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저 아이를 고무족의 족장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건 안 되오!”
엽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여인이 차갑게 소리쳤다.
“왜 안 된다는 거냐!”
“…저 어린아이가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소.”
그러자 여인이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그냥 해본 말이니 개의치 말거라!”
이때, 엽현이 갑자기 질문했다.
“그대의 정체는 무엇이오?”
“…나는 고무족을 만든 장본인이다.”
엽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이 여인이 정녕 고무족의 창시자라고?!
여인이 미영천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저 아이의 학습 능력은 결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맘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저 아이의 속을 도대체 꿰뚫어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인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로 네 놈처럼 말이다.”
여인의 따가운 눈빛에 엽현이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관 속에 들어가 있던 것이오?”
“원해서 들어간 것이 아니다. 다른 자의 손에 갇힌 것이다.”
“음? 당신 같은 고수를 누가……”
“종종 등에 비수를 꽂는 이는 적이 아니라 가장 신뢰하는 사람일 경우가 있지.”
엽현은 더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 말대로라면, 여인은 가까운 누군가에 의해 배신을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때, 여인이 엽현을 향해 검은 반지 하나를 날려 보냈다.
“이것은 고무족 족장을 상징하는 반지다. 저 아이를 데리고 가서 그걸 보여주면 고무족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저들이 과연 고작 반지 하나를 보고 저 아이를 족장으로 삼으려 하겠소?”
“내가 시키는 대로 해보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키는 대로 하겠소! 그런데……”
엽현이 갑자기 웃는 표정으로 여인에게 물었다.
“혹시 내게도 줄 물건 같은 건 없소? 천계 무기라던가, 공법이라던가… 헤헤…….”
여인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변했다.
“너 정말 검수가 맞느냐?”
“…….”
“내게 구걸하지 마라! 나는 그런 쓰레기 같은 물건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설령 있다 해도 네 놈에게 줄 것은 없다!”
그 말을 들은 엽현이 괜히 입을 삐죽거렸다. 없으면 없는 것이지, 굳이 빈정댈 것까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났다. 엽현과 미영천은 동굴을 떠나게 되었다.
미영천이 여인을 향해 절을 올리며 말했다.
“사부, 저희와 같이 가지 않으시렵니까?”
여인이 미영천에게 대답하려 입을 열면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방금 미영천이 말할 때, 자신의 백 년의 수명이 줄어버렸던 것이다.
무려 백 년의 수명이었다.
순간 미영천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이 매우 무거워졌다.
‘아니, 어떻게 내 소중한 수명이…’
여인이 미영천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 할 일이 있어 너와 함께 가지 못할 것 같구나.”
그 말에 미영천의 표정이 다소 우울해졌다. 사실 지난 며칠 사이 눈앞의 여인과 정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여인이 손가락으로 미영천의 이마를 가리키자, 한 줄기 붉은 빛이 순식간에 미영천의 이마 사이로 쏙 들어갔다.
“사부, 이건?”
“네게 주는 선물이니라. 네가 진 어법경에 달하게 되면 자연히 꺼내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여인이 경고의 눈빛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엽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마시오, 나는 영천이의 물건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여인이 다시 미영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에게도 결코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미영천이 작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그 말에 엽현이 기분이 좋은지 바보 같은 웃음을 보였다.
여인이 그런 엽현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아이를 부탁한다. 잘만 보살펴 준다면 훗날 네게도 큰 보상이 돌아갈 것이다!”
엽현이 미영천의 손을 잡아끌며 대답했다.
“그럼 더 할 말 없으면 우린 이만 가겠소!”
그렇게 두 사람은 동굴을 빠져 나갔다. 동굴 입구에 막 이르렀을 때, 엽현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괜찮다면 작은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정말 작은 일이오!”
여인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여인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엽현이 말했다.
“호계맹에 가면 육 존주라는 아주 나쁜 놈이 있소. 만약 혹시라도 그쪽에 볼 일이 생긴다면 놈의 뺨을 한 대 후려쳐 줄 수 있겠소?”
여인이 아무 대꾸도 없자, 엽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그대로 동굴을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검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미영천은 엽현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긴 했지만, 지난번처럼 두렵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한편, 동굴 안에서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던 여인이 문득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계집애…… 도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잠시 후, 여인이 동굴 한쪽을 바라보며 차가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설령 네가 무변성역(無邊星域)으로 도망쳤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내 기필코 너를 찾아낼 테니!”
순간, 여인의 모습이 동굴 안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