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한 대 때려주라던데?
여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호계산이었다.
그녀가 막 호계산에 발을 디디자마자, 중년인 하나가 나타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육 존주였다.
육 존주가 조금은 꺼리는 듯한 표정으로 여인을 훑어보았다.
이때, 여인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육 존주란 놈이냐?”
“그렇소만… 귀하는?”
육 존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로 이때, 여인이 다짜고짜 손을 들어 육 존주를 향해 가볍게 밀었다. 그 한 번의 손동작으로 육 존주가 서 있던 공간이 돌연 기이한 형태로 왜곡됐다.
상대가 갑자기 출수를 하자 육 존주 역시 다소 노기 띤 표정으로 정면으로 일 장을 뻗었다.
쾅-!
그의 손바닥에서 강대한 힘이 흘러나오자, 그의 주변 공간이 파도치듯 일렁였다.
바로 이때, 여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육 존주의 얼굴색이 바뀌며 황급히 자신의 앞쪽에 일 권을 찔러 넣었다.
쾅-!
천지를 진동케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육 존주의 신형이 뒤로 수백 장을 날아가 어딘가에 부딪쳤다. 순간, 그의 등 뒤에 있던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진쇄공간(震碎空間)!
“대관절 누구기에 호계맹에서 난동을 피우는 것이오!”
“그건 알 것 없고, 누구 부탁으로 한 대 치러 왔다.”
여인이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양손을 모아 합장한 뒤 그대로 정면으로 찔러 넣었다.
쾅-!
순간, 여인의 손끝으로부터 강대한 기운이 방출됐다. 육 존주와 그녀 사이에 있는 일체의 공간을 찢어발기며 쏘아져 나갔다.
이에 육 존주가 어금니를 깨물며 크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팔을 따라 엄청난 기운이 몰려들며 순식간에 거대한 기의 회오리가 육 존주의 눈앞에 나타났다.
쾅-!
벼락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그림자가 튕겨지듯 수백 장 뒤로 날아갔다.
놀랍게도 그림자의 주인은 육 존주였다.
육 존주가 입가에 흐르는 저릿한 피를 닦아내며 소리쳤다.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엽현.”
‘엽현?! 또 그 자식?!’
말을 마친 여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순식간에 장내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호계산 전체에 육 존주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엽현에 대한 육 존주의 원한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엽현을 제거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천녀에게 당한 후에, 그녀를 막을 대책을 강구했으나, 이번에는 창검종이 엽현을 비호하겠다고 나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엽현의 멈출 줄 모르는 성장세였다. 만약 그가 이대로 순조롭게 성장해 어느 날 검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땐 정말 제거하기가 어려워지고 만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육 존주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잠시 후, 호계전으로 돌아온 육 존주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들은 언제쯤 도착하는가?”
이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길어야 열흘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청주 쪽 상황은?”
“십여 일 정도가 지나면 마무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먼저 청주의 본원을 취한 뒤, 창검종과 엽현을 제거한다!”
말을 마친 육 존주가 대전 내에서 사라졌다.
* * *
동굴을 빠져나온 엽현은 미영천과 함께 곧장 고무족 족장의 거처로 향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엽현을 발견하고 고무 족장이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엽현이 아무 말 없이 붉은 치마의 여인에게서 받아 온 검은 반지를 내밀었다. 그 반지를 본 고무 족장이 머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제자리에 철퍽 주저앉았다.
“이, 이 물건을 어디서 찾았느냐!?”
엽현이 반지를 미영천에게 건네주며 대답했다.
“한 여인이 이 아이에게 준 것이오. 그녀는 이 반지뿐 아니라, 자신의 비술까지 이 아이에게 물려주었소.”
그 말을 들은 고무족장의 시선이 곧장 미영천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미영천이 다소 두려운 표정으로 엽현의 팔을 꼭 붙들었다.
미영천을 바라보던 족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장로들을 소집하거라.”
잠시 후, 족장의 집 밖에 십여 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들 중 일곱 명이 진 어법경 강자였다.
이 모습을 본 엽현은 자신이 고무족의 전력을 얕보았음을 깨닫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족장과 장로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토론을 벌였다. 그들은 토론 와중에도 이따금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미영천을 곁눈질했다.
장장 한 시진에 걸친 회의가 끝나고 고무족 족장이 엽현과 미영천을 향해 다가왔다.
“우리는 이 아이를 고무족 소족장에 앉히기로 결정했다. 성년이 된 직후에 이 아이는 고무족의 족장이 될 것이다!”
순간, 그 말을 들은 미영천의 눈에서 닭똥같이 굵은 눈물이 흘렀다. 그러자 엽현이 무릎을 꿇고 미영천의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왜 갑자기 우는 거야?”
미영천은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엽현이 웃으며 물었다.
“혹시 내가 널 버리고 갈까 봐 그러는 거야?”
미영천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여기 남기 싫으면 나랑 같이 가자꾸나!”
“그렇겐 안돼!”
그 말을 들은 고무족 족장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녀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그 아이는 아직 선조의 비술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너와 떠나가 버린다면 검수인 너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을 것이다!”
족장이 이번에는 미영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 남거라! 그러면 너는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미영천이 족장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족장이 엽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저 사내도 이곳에 머물도록 허락해 주겠다!”
그 말에 미영천이 잠시 머뭇거렸다.
바로 이때, 한 중년 남자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고무족 족장을 향해 예를 올린 후 말했다.
“족장, 호계맹에서 사람을 보내 왔습니다!”
호계맹!
순간, 엽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장내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안으로 들라 하라!”
족장의 명령에 중년인이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한 노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다름 아닌 막수였다.
집 안으로 들어온 막수의 시선은 곧바로 엽현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엽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막수 대장로, 그동안 잘 지내셨소?”
“나는 잘 지냈다만, 네 놈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하하하하! 나 역시 잘 지냈소. 너무 잘 지내고 있어서 탈이지, 하하하하!”
“그래, 그날 이야기했던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느냐?”
“뭘 말이오?”
순간 막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보아하니, 전혀 고려해 보지 않았구나!”
“아차차차! 혹시 그때, 내게 호계맹 소존주의 자리를 준다던 그 제안을 말하는 것이오?”
엽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막 장로, 우리 좀 더 솔직해집시다. 만약 내가 호계맹에 들어간다 치면, 그대들은 정말 나를 안심하고 믿을 수 있겠소? 내가 보기에 그대들이 두 발 뻗고 자려면 내 목을 치는 것이 가장 확실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한 가지 약속하마. 네가 호계맹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우리는 네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것이다!”
“하하하하! 그대 말을 믿느니, 차라리 귀신 말을 믿겠소!”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노부는 더이상 너와 할 말이 없다.”
막수가 고무족 족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 족장, 노부가 찾아온 이유는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창검종은 악행을 일삼으며 중토신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니, 그대들이……”
“잠깐, 잠깐!”
이때, 엽현이 막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막 장로, 없는 말을 지어내면서 양심에 가책도 없소? 우리 창검종이 언제 악행을 일삼았단 말이오?”
엽현이 막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 청창계에서 가장 악한 자들을 거론한다면 호계맹을 제외하고 또 누가 있소? 창란주의 그 수많은 생명들이 어떻게 죽었소? 모두 그대들 호계맹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오? 그 후엔? 창란주에서 했던 일을 똑같이 청주에서 하고 있지 않소?”
“놈! 네가 명을 재촉하는구나!”
막수가 엽현을 향해 출수하려 자세를 잡았다.
엽현 역시 일말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고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한 자루의 검이 그의 손안에 나타났다.
“모두 멈추시오!”
이때, 곁에 있던 고무족 족장이 소리쳤다.
“이곳은 호계맹도, 창검종도 아니오! 함부로 소란 피우지 마시오!”
고무족 족장의 호통 소리에 엽현이 웃으며 한쪽으로 물러났다.
막수가 족장을 향해 말했다.
“고 족장, 우리 호계맹은 진심으로 고무족과 동맹을 맺길 원하고 있소. 그 보답으로 그대들에게 영기가 충만한 땅과 옥품 영맥을 제공하여 최소 수십 년간 영기의 고갈 없이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려하오!”
그 말에 장내에 있던 고무족 족장 등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현재 고무족에게 임면한 가장 큰 문제는 최근 그들의 땅의 영기가 조금씩 말라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창검종과 접촉을 하려 했던 이유도, 창검종의 도움을 빌어 영기가 충만한 땅을 찾으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호계맹에서 그들이 필요한 것을 주겠노라고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쪽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엽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막수가 말을 이어나갔다.
“잘 생각해 보시오. 현재 청창계의 수많은 세력과 세가들이 이미 호계맹과 함께하고자 하는 의사를 전달해 오고 있소. 청창계는 거대하니, 모두를 수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소. 물론……”
막수가 차가운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어떤 자들은 이 청창계에서 사라져야 할 테지만 말이오!”
그러자 엽현이 고무족 족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소. 막 장로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했으니, 이제 그대들이 결정할 차례요.”
엽현을 바라보던 족장이 시선을 막수에게로 옮겼다.
“막 장로, 그대가 말한 옥토는 어디에 붙어 있는 땅이오?”
“우리 호계맹의 영역 안에 남산(南山)이라는 곳이 있소. 그곳 지하에 한 줄기 옥품 영맥이 흐르고 있으니, 그대들이 머물기 불편함이 없을 것이오.”
그러자 고무족의 무인들이 다시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무족 족장이 막수를 향해 물었다.
“막 장로, 그대의 약속을 모두 믿어도 되겠소?”
막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그러나 우리 측도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막수가 엽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는 우리 호계맹의 철천지원수요. 마침 놈이 이 자리에 있으니, 그대들과 내가 연합하여 놈을 죽여 버립시다! 이것이 우리 호계맹이 원하는 유일한 조건이오!”
그 말을 들은 미영천이 엽현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차가운 눈으로 막수를 노려보았다.
이를 바라보는 고무족 족장의 표정 역시 매우 난처해졌다.
‘엽현을 죽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