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어느 편에 설 것이냐?
엽현을 죽이면 창검종과 완전한 결별이었다. 결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고무족은 창검종의 영원한 원수로 남을 것이다.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당사자인 엽현은 오히려 여유만만한 태도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이때, 막수가 말했다.
“고 족장, 설마 다른 생각을 품고 있기라도 한 것이오?”
고무족 족장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막수는 그녀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이때, 한 고무족의 장로가 외쳤다.
“족장, 이제 결정하셔야 합니다!”
다른 장로들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보아하니 그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이미 결정이 끝난 듯했다.
고심하던 끝에 고무족 족장이 엽현의 곁에 있던 미영천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오너라!”
그러자 미영천이 고개를 흔들더니, 엽현의 옷자락을 꽉 붙들었다.
비록 어린 그녀였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족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장로들을 향해 말했다.
“여자아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니 절대 다치게 해선 안 되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무족의 장로들이 순식간에 엽현의 사방을 에워쌌다.
모두 진 어법경의 강자들이었다.
그들이 어느 편에 설지는 분명해졌다.
고무족 족장의 말을 들은 막수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엽현을 향해 말했다.
“엽현, 이제 알겠느냐? 우리 호계맹이 손을 내밀기만 한다면 청창계의 어떤 세력이든 기꺼이 우리의 손을 잡고자 한다는 사실을!”
막수가 족장을 향해 말했다.
“고 족장, 그럼 놈을 부탁하겠소.”
그러자 족장이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로서는 창검종보다 호계맹과 손을 잡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
“고 족장,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라오!”
족장이 차갑게 시선을 거두며 소리쳤다.
“우리의 생각은 확고하다! 죽여라!”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순간 십여 개의 기운이 날아와 엽현의 주변을 뒤덮었다.
이때, 엽현이 여유 있는 모습으로 웃으며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뭐랬소! 그대의 반지는 소용없을 거라 하지 않았소!”
엽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붉은 치마의 여인은 다시 고무족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변고가 생길까 염려한 엽현의 강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엽현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한편, 여인이 나타나자 고무족 족장 등은 넋이 빠져나간 모습을 보였다. 왜냐하면 집 안에 걸려 있는 한 점의 초상화의 모습과 여인이 일치했던 것이다.
고무족 족장이 떨리는 손으로 여인을 가리켰다.
“다, 당신은……”
쾅-!
여인의 손짓 한 번에 고무족 족장에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본 장로들이 허둥지둥 여인을 향해 출수하려 했다.
“멈추시오!”
장로들이 손을 멈추고 족장을 바라보았다. 족장이 몸을 추스른 후, 여인에게 다가와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선조(先祖)님을 뵙습니다!”
선조(先祖)!
장내의 모든 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한쪽에 있던 막수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족장의 앞으로 다가온 여인이 족장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너 같은 장님이 어찌 족장이 되었느냐?”
족장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인이 집 안에 있던 무인들을 돌아보며 나무라듯 소리쳤다.
“고작 그까짓 땅을 위해 다른 자들에게 고개를 조아린단 말인가? 세월이 흘러 고무족의 기상도 모두 사라져버린 것인가?”
고무족의 무인들은 감히 그녀에게 대꾸하지 못하고 죄인 같은 표정만 짓고 있었다.
이때, 막수가 말했다.
“귀하께서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 호계맹은……”
퍽-!
여인의 손이 가볍게 움직이자 막수 역시 마찬가지로 한쪽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든 막수를 향해 여인이 소리쳤다.
“꺼져라!”
그 말에 막수가 차갑게 노려보더니, 이윽고 장내에서 사라졌다.
막수가 떠난 후, 여인은 미영천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족장 등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이 아이가 고무족의 족장이다. 이의 있느냐?”
고무족 족장 등은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장로 한 명이 돌연 그녀에게 질문했다.
“선조,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호계맹의 호의를 거절하신 것입니까?”
갑자기 여인이 엽현을 가리켰다.
“저 사내가 보이느냐?”
갑자기 지목당한 엽현이 깜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질문을 한 장로가 대답했다.
“선조,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놈의 잠재력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화, 확실히 천재인 것은 맞습니다만, 호계맹의 힘에 비하면 새 발의……”
“멍청한 놈!”
여인이 돌연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쓰겠느냐? 겨우 열아홉의 사내아이가 이미 진 어법경에 올랐다. 앞으로 십 년, 아니, 오 년 만 더 지나면 몇몇 노 괴물들 빼고는 놈을 당해 낼 자가 없을 것이다. 십 년이 지나면 그땐, 청창계 전체에서 감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이에 가만히 듣고 있던 엽현이 감동스런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나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을 줄은 몰랐소만! 이제까지 뭔가 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오. 그 뭐시냐, 다시 한번 내 소개를 하겠소. 나는 엽현이라 하오만 제가 뭐라 부르면 좋겠소?”
여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얌전히 처박혀 있거라!”
“…….”
여인이 엽현을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고무족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한시적인 이익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냐? 어쩌다 나의 고무족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이냐!”
“선조께 면목이 없습니다. 무능한 저희를 탓하여 주십시오.”
고무족 족장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부터 이 아이가 고무족 족장이다. 너희가 잘만 보필해 준다면, 앞으로 우리 고무족을 크게 일으킬 것이다!”
이에 고무족 족장이 대답했다.
“선조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때, 여인이 엽현을 향해 말했다.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방을 나서려던 여인이 다시 돌아와 미영천의 손을 잡아당겼다.
“너도 같이 가자!”
그렇게 세 사람이 떠나고, 나머지 고무족 무인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무집 밖.
붉은 치마의 여인이 엽현을 향해 말했다.
“이 아이는 비록 족장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세력기반도, 아직 실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다. 아무래도 내가 떠난 후, 다른 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할까 염려스럽다. 그러니 네가 여기 남아 이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나 같은 외부인이 함부로 끼어들었다가 괜히 혼란만 초래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소.”
“그게 무슨 상관이냐? 이 아이가 너를 친 오빠처럼 따르고 있는데! 아무튼 더 길게 말할 것 없으니, 그리 알고 남거라. 나는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구나.”
엽현이 황급히 물었다.
“이렇게 일 벌여놓고 어딜 간다는 말이오!”
“오래전의 원수를 갚아야 하니 이만 가 봐야 한다. 그리고 참, 호계맹은 쉽지 않은 자들이니, 결코 만만히 보지 말거라.”
말을 마친 여인이 간다만다 말도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미영천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 깊게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리려 했다. 이때,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를 차릴 필요까진 없다. 그 마음만 잘 간직하거라!”
그 말에 미영천이 우물쭈물하더니, 결국 허리를 숙이고 말았다.
그러자 먼 하늘에서 낮게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엽현은 미영천을 데리고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엽현이 고무족 무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한마디 하겠소. 이 아이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씨앗이라 할 수 있소. 그대들이 잘만 가꾸어 준다면, 머지않아 고무족은 반드시 대성할 것이오!”
고무족 무인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에 미영천이 긴장된 얼굴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긴장하지마, 당분간은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그 말에 미영천에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엽현은 약속한 대로 고무족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매일 미영천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는 도칙을 찾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이 층 존재가 이곳에서 도칙의 기운을 느꼈다고 한 만큼, 도칙은 반드시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도칙은커녕 조그마한 단서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고무족 사람들은 엽현의 우려와는 달리 미영천에 대해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에 반한 듯싶었다. 지금 그녀는 고무족이 다시 기상할 희망이자 보물인 셈이다.
그리고 다시 이틀이 지났다. 엽현은 여전히 도칙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이 층 존재 역시 다시는 도칙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그의 몸속에 있던 전음석이 요동쳤다.
이는 남궁언이 보낸 신호였다.
그렇다는 것은 상월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생각대로 남궁언은 만수산맥에 들어간 상월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급히 엽현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엽현은 곧바로 미영천부터 찾았다.
“어디가려구요?”
미영천이 뭔가를 느낀 듯, 엽현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그래, 내 친구에게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고 올게!”
미영천이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엽현의 팔을 풀어 주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엽현이 웃는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열심히 수련하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음을 날려. 알았지?”
“네!”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검을 타고 날아갔다.
자리에 남은 미영천이 엽현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엽현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기꺼이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었다. 엽현은 이미 미영천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엽현은 지체없이 곧장 만수산맥을 향해 날아갔다.
검을 타고 날아가는 엽현의 표정은 매우 굳어있는 상태였다.
만약 호계맹이 솔깃할 만한 제한을 들고 다른 세력들을 찾아다닌다면, 거부할 만한 세력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막수가 고무족에게 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붉은 치마의 여인이 없었더라면, 고무족은 반드시 호계맹의 편에 섰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창검종보다는 중토신주 최강 세력인 호계맹 쪽에 붙는 것이 누가 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상월에게 일이 생겼다면, 분명 만수산맥이 호계맹과 손을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생각이 미친 엽현은 곧장 창검종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하지만 창검종 측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엽현은 어쩔 수 없이 계속 만수산맥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