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그렇게 반 시진 후, 엽현은 주기봉을 나섰다.
이때 계옥탑 안에는 지난번 전철로부터 받은 비검인 경홍 외에도, 한 자루의 비검이 더 놓여 있었다.
마찬가지로 천계 급 비검이었다.
이렇게 엽현은 마음속 깊이 사숙의 정(?)을 느끼며 창검종을 빠져나왔다.
청주로 향한 엽현은 곧장 자신의 지인들을 찾진 않았다. 지금 같은 시기에 자신과 같이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엽현은 청주로 돌아가지 않고, 먼저 취선성(醉仙城)이라는 오래된 고성을 찾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성은 취선루의 총본산이 위치한 곳이었다.
취선루는 중토신주의 세력들 사이에서 최상급 전력으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업신여김을 받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가진 엄청난 돈이었다.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강자들을 종문으로 초빙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창목학원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일반 종문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고수 한 명을 초빙하는데도 엄청난 돈이 드니 말이다.
엽현은 곧장 취선루를 찾아갔다. 그가 검은 명패를 내밀자 이내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익숙한 얼굴. 그는 아주 오래전에 만났던 삼 루주였다.
삼 루주 역시 오랜만이라 그런지 엽현을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일세! 못 본 사이에 검황이 되었군!”
엽현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삼 루주가 물었다.
“그런데, 사부께서는 안녕하신가?”
“너무 정정하셔서 탈입니다!”
이에 삼 루주가 다시 웃는 얼굴로 엽현에게 손짓했다.
“엽현 형제, 이리로 앉게나.”
엽현이 사양 않고 자리에 앉았다. 건네받은 차를 한 잔 홀짝인 후, 엽현이 운을 뗐다.
“삼 루주, 이번엔 물건을 좀 팔고자 왔습니다.”
“하하! 꺼내 보시게나, 얼마든지 팔아 주겠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탁자 위에 물건들을 쌓기 시작했다.
이내 엽현의 앞에는 그가 꺼낸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것들은 그가 그간 전투에서 벌어들인 전리품들이었다.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까닭에 계옥탑 정리도 할 겸 팔러 온 것들이었다.
그러자 삼 루주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산처럼 쌓인 물건과 엽현의 얼굴을 말없이 번갈아 보았다.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하하, 삼 루주. 다 해서 얼마에 쳐 주실 수 있습니까?”
이에 삼 주루가 물건들을 위아래로 대충 훑어보며 견적을 잡기 시작했다.
“음… 그리 값나가는 물건은 많지 않아 보이는군. 대략 최상급 영석 십억 개가 조금 넘는 정도? 혹시 다른 물건은 또 없는가?”
“하하, 형편이 어려워서 이게 전부입니다.”
“허허허! 내 그렇다면 엽현 그대에게는 조금 후하게 쳐주겠네. 모두 해서 최상급 영석 이십억 개에 팔아 주겠네!
“아, 아니… 그러면 루주님께서 너무 손해 아닙니까?”
“하하하!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을!”
“그럼, 십오억 개로 하시지요! 저도 그 이상은 못 받겠습니다!”
물론 엽현은 영석 이십억 개를 넙죽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또 사람 된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삼 루주 역시 빙그레 웃으며 엽현을 향해 납계 하나를 던져 주었다.
엽현은 납계 안을 확인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 루주, 그럼 또 뵙겠습니다!”
“살펴 가시게나!”
삼 루주는 친히 대문 입구까지 나와 엽현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엽현이 완전히 사라진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삼 루주는 방 안에 걸려 있는 검은 거울 앞에 섰다.
삼 루주가 거울 앞에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거울 안에서 음성이 들렸다.
“루주께선 아직도 고민하는 것이오?”
그 음성이 방안을 채웠다.
“호계맹에서 내건 조건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오?”
삼 루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조건이 너무 좋은 까닭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무엇을 고민한단 말이오?”
“그것이… 저 소년의 성장 속도로 봤을 때, 훗날 창계검주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취선루도 그간 소년에게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만약 호계맹 편으로 돌아서게 되면 그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까 염려스럽습니다.”
잠시 후, 거울 안에서 다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일단은 어느 편에도 서지 말고 철저히 중립을 지키시오. 사업에 한해서만 가능한 그들의 요구에 따라 주시오. 만약 육 존주가 다시 그대를 찾아오거든 이렇게 전해주면 알아들을 것이오.”
“명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삼 루주가 방을 빠져나가려 할 때, 거울 속에서 재차 음성이 들려왔다.
“그 소년… 티 나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허락하오. 하지만 결코 신분을 노출시켜선 안 될 것이오.”
삼 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삼 루주가 예를 갖춘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 * *
취선루를 빠져나온 엽현은 더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청주로 향했다.
중토신주로 올 땐 운선을 타고 왔지만, 돌아갈 땐 어검술과 함께였다.
조금씩 늘어난 그의 재산은 이제 어느덧 최상급 영석 백억 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최상급 영석 백억 개라니. 단번에 들었을 때 어느 정도인지 바로 감조차 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번 청주로의 복귀는 그야말로 금의환향이라 할 수 있었다.
청주.
현재의 청주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었다. 수많은 지역에서 이미 영기가 고갈돼, 황량한 땅으로 변해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외세의 침입과 내란은 이러한 혼란을 가중시켰다.
재앙이 닥친 후, 사람들은 모두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자가 되었다. 자신만 안전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세상이 각박해지자, 청주 곳곳에서는 창란학원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창란학원이 있을 당시만 해도, 청주 내에는 최소한의 질서가 유지되었다. 창란학원이 사라진 지금은 질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힘이 있는 자가 무엇이든 맘대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청주의 영기가 사라짐과 함께,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은 중토신주행 운선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창란학원의 학생들은 누구 하나 청주를 떠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엽현의 부름이 있을 그 날을 말이다.
* * *
저국.
엽현이 저국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아는 중토신주 무인들은 감히 저국을 침범하지 않았지만, 그 중에도 정신 못 차린 무인들은 있었다.
이날, 마침 한 무리의 무인들이 중토신주 황성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앞에 있는 자는 도를 사용하는 자였다. 왼뺨에 길게 나 있는 칼자국은 안 그래도 흉악해 보이는 그의 외모를 더욱 험상궂게 만들었다.
그의 뒤로 대략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정렬해 있었는데, 그들 중 다수가 신합경이었다.
“여(黎) 형, 저국은 엽현의 보호 아래 있는 곳이라고 계속 말하지 않았소이까!”
한 노인이 말하자 얼굴에 칼자국이 난 남자가 흉악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엽현? 놈은 중토신주에 있지 않느냐! 게다가 놈은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호계맹에 죽음을 당할 것이니 감히 이곳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내 생각엔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의 주변인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소!”
“흥! 청주의 노른자 땅은 이미 마종과 귀종이 차지했고, 남아있는 땅이라곤 대운제국과 저국 뿐이다! 그러나 대운제국엔 그 무시무시한 연만리가 버티고 서 있으니, 이제 우리가 털어먹을 곳은 저국 밖에 없지 않느냐!”
남자가 뒤에 있는 무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자, 딱 한탕만 더 하고 중토신주로 돌아가자! 어떠냐?”
그의 말에 무인들이 쭈뼛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엽현이 강국에서 무수히 많은 중토신주 무인들을 학살한 일이 여전히 그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던 것이다.
무인들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본 남자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이런 소심한 놈들 같으니라구! 이 저국만 털면 우리는 앞으로 수십 년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단 말이다!”
“여 형, 마종조차 저국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 역시 엽현을 두려워하는 것이 틀림없소! 그런데도 굳이 위험을 무릅써야 하겠소?”
노인의 말에 나머지 무인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라고 왜 돈에 욕심이 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하나뿐인 목숨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좋아! 헛소리 집어치우고, 남고 싶은 놈은 남고 싫은 놈은 짐 싸서 떠나! 그러나 내 한 가지 말하는데, 저국에는 청주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재물이 쌓여있고, 강하다고 할 만한 자는 고작 만법경 강자인 척발언 국주 하나뿐이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서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거라!”
그 말을 들은 무인들이 다시 동요했다.
그러자 노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미 나는 할 만큼 했소. 여 형이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이만 떠나겠소.”
말을 마친 노인이 그대로 돌아서서 떠났다.
이십여 명의 무인 중 대여섯이 노인의 뒤를 따랐다.
나머지 십여 명은 잠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남자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눈앞의 금은보화를 놔두고는 떠날 수가 없던 것이다!
남자가 남은 무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담이 작은 자들은 굶어 죽고, 담이 큰 자들은 배가 터져 죽는 법이다. 이번 한탕만 잘 마무리하고 청주를 떠나 숨어버린다면, 제아무리 엽현이라도 우릴 찾아낼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럼, 시작하자!”
그의 명령에 십여 명의 무인들이 동시에 저국 황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황궁 앞을 지키고 있던 몇몇 보위들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곧 죽을 놈이 그걸 알아서 뭐하려 하느냐?”
뺨에 칼자국이 난 남자가 달려가던 그 속도 그대로 보위의 가슴팍에 일 장을 박아 넣었다.
쿵!
강렬하고 빠른 일격에 보위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이를 본 보위들이 안색이 파래지며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상대가 자신들이 맞설 수 없는 자들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보위들이 도망치는 것을 본 남자가 흉악한 웃음을 터트렸다.
“형제들, 이 지긋지긋한 운명을 바꿀 때가 되었도다! 돌격!”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칼자국의 남자와 십여 명의 무인들!
그러나 이때, 한 남자가 나타나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남자를 얼굴을 확인한 칼자국의 남자가 소스라치듯 놀라며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엽현이었다.
“여, 엽현… 너, 너, 너… 중토신주에 있어야 할 놈이 여긴 왜……”
순간 칼자국의 남자가 뒤로 돌아 냅다 도망쳤다.
하지만 그가 몇 발자국 벗어나기도 전에 엽현이 귀신처럼 남자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칼자국의 남자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