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내가 그런 거 아냐!
엽현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는 분명 계옥탑 안에 사람을 가둔 적이 있었지만, 이는 적들을 죽이기 위해 그렇게 한 것뿐이었다. 천녀가 말했듯, 살아있는 자가 계옥탑 안에 진입하게 되면 탑의 방어기제가 작동해 상대를 살해하게 된다.
이때, 이 층 존재가 엽현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 이 아이는 사람이 아니니 들어가도 돼.”
소녀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 사람이야?”
소녀가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사람 맞는 거 같은데?”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소녀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을 때, 이 층 존재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엽현 역시 소녀를 잡아 계옥탑 안으로 그대로 던져 버렸다.
그렇게 소녀와 이 층 존재가 사라진 바로 그 순간!
엽현의 머리 위에 웬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우 익숙한 얼굴이었다. 다름 아닌 막수였다.
엽현을 발견한 막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또 네 녀석이로군!”
“하하하! 막 장로, 오랜만이오! 어째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은데, 무슨 비법이라도 있소?”
이에 막수가 엽현을 따갑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여기서 뭘 본 것이냐!”
“보다니? 뭘? 여기에 뭐가 있소?”
“그게 아니면 이곳엔 왜 나타난 것이냐!”
“아~ 내가 왜 이곳에 왔냐면, 그건 바로… 알아맞혀 보시오! 하하하하!”
엽현을 한동안 노려보던 막수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엽현, 네 놈의 좋은 시절도 이제 끝이다. 청주의 본원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는 날, 너와 창검종은 감히 호계맹에 대항했던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똑똑히 깨닫게 될 것이다.”
엽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곧, 나의 신공(神功)이 완성되고 나면, 나를 적으로 돌린 것이 호계맹 역사상 가장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하하하! 그런 허풍은 누가 못 치느냐?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막수는 엽현을 막아서지 않았다. 지금의 엽현은 그로서는 어찌해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엽현의 실력은 이미 보통의 진 어법경 강자로는 죽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엽현이 사라진 후, 막수의 곁에 여러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그중 한 노인이 말했다.
“대장로, 우리는 본원의 기운을 느끼고 이쪽으로 오는 길이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그 기운이 사라져버렸소. 정말 괴상한 일이오!”
노인이 엽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놈이 좀 이상하오.”
막수가 무덤덤한 투로 말했다.
“놈은 처음부터 이상했소.”
“혹시 본원이 이미 놈의 손에 넘어간 것은……”
막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소. 본원은 인간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존재요. 그런 본원을 제압하기 위해선 반드시 무력을 사용해야 할 것인데, 놈의 실력으로는 아무 소란도 일으키지 않고 본원을 제압할 수가 없소. 만약 그런 낌새를 조금이라도 눈치챘다면 내가 놈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오.”
“음… 확실히 그렇게 쉽게 본원을 얻으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소만. 어쨌든 놈의 재능이 창계검주만은 못할지라도 충분히 위협적인 것은 분명하오. 하루라도 빨리 놈을 제거해야만 할 것 같소!”
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오. 존주께서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 놓으셨소. 본원만 손에 넣게 되면 그날로 엽현과 창검종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니, 이렇게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소!”
잠시 후, 막수와 노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한편, 깊은 산 속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한 엽현은 즉시 계옥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의 앞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탑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 소녀가 서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소녀를 바라보며 엽현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청주 본원이 이렇게 쉽게 굴러들어오다니.
이때, 계옥탑을 구경하던 소녀가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며 밝게 웃기 시작했다.
엽현은 물었다.
“왜 웃어?”
그러자 소녀가 엽현을 향해 눈을 깜빡거리며 대답했다.
“여기 엄청 안전해. 여기에 있으면 더 이상 숨어다닐 필요가 없겠어. 좋아 여기 머물겠어. 대신 내게 먹을 걸 갖다 줘야 해. 엄청 달고 시원한 영과(靈果) 같은 것들 말이야. 자, 받아!”
이때, 소녀가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영롱한 보라색 빛을 발하는 돌덩이들이 엽현 앞에 무더기로 떨어졌다.
자원정이었다.
그 귀한 자원정이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수천 개였다. 게다가 이 자원정들은 일반 자원정들에 비해 두 배 가까이 큼지막했다.
소녀가 멍하니 있는 엽현에게 말했다.
“이거 가져가서 먹을 것 좀 구해와.”
엽현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군말 없이 바닥에 떨어진 자원정을 싹싹 긁어 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님, 지금 당장 가서 음식을 해 오겠습니다. 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용대가리 무침, 봉황 날개 튀김이라도 문제없습니다!”
“…….”
자원정이 무려 천 개였다.
엽현은 소녀가 이렇게 부자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풍부한 영기를 담고 있는 자원정은 만법경 이상의 무인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수련 자원이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화폐처럼 통용되기도 했다.
만법경 이상의 무인에게 영석은 더이상 효과가 없었다. 그들은 반드시 자원정을 구해야만 했다.
만법경 이하의 무인들이 자원정을 사용하면 안 될 이유는 없지만, 너무나 비싼 가격 때문에, 차라리 영석을 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소녀는 더 이상 엽현을 신경 쓰지 않고 탑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떻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녀가 계옥탑 이 층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고 엽현은 깜짝 놀랐다.
엽현은 탑이 소녀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녀는 엽현에 대해 다소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이 층 존재에 대해선 무척이나 살갑게 대했다. 엽현은 이 점이 다소 맘에 들지 않았다. 왠지 자신이 이 층 존재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엽현은 더이상 소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서둘러 황유산맥을 떠났다.
사실 그가 단번에 청주의 본원을 찾아낸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호계맹은 벌써 오래전부터 본원을 찾겠다고 엄청난 인력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엽현이 황유산맥에 도착하자마자 본원을 이미 찾아 떠난 것을 알게 된다면, 육 존주는 아마 피를 토하고 쓰러질 것이다.
엽현이 그들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 줄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혹시라도 알게 된다면, 호계맹 무인들이 눈이 벌게져서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무를 완수한 엽현은 곧장 강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엔 설렘이 가득했다.
* * *
강국 황성.
웅장하던 성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와르르 무너진 성벽이 출입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직 성에 발을 디디지도 않았는데도 성 밖으로 피 냄새와 시체 썩은 내가 진동했다.
잠시 말없이 황성을 바라보던 엽현이 성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리엔 이미 인적이 드물었고 여기저기 오래된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살해된 지 얼마 안 된 시체들 역시 신체가 절단된 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엽현은 먼저 창란학원으로 이동했다. 창란학원의 학생들은 당시 엽현과 함께 모두 떠났으니, 학원엔 아무도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창란학원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엽현이 재빨리 학원을 둘러보니 창란전 외에도 창란학원의 모든 대전에 사람이 있었다.
엽현이 창란전 안으로 들어섰다. 이때 창란전 안에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엽현이 들어오는 것을 본 몇몇 사람들이 엽현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이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대전 안을 둘러보던 엽현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뭣들 하고 있는 것이오?”
사람들이 엽현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이때,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건들거리며 엽현에게 다가왔다.
“그대도 보호받으러 왔는가?”
‘보호라고?’
“그게 무슨 말이오?”
“하하, 참. 형씨, 다 알고 왔으면서 왜 모른 척 하시오? 창란학원에서 보호를 받으려면 당연히 보호비를 내야지. 잘 생각해봐, 여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고. 청주 전체가 난리가 났지만, 감히 이곳에 쳐들어오는 자들은 없어!”
엽현이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대는 창란학원 학생이오?”
이에 남자가 품 안에서 영패 하나를 꺼내 보였다.
“자, 보여? 이게 창란학원 학생들만 갖는 학생 영패라는 거야. 나는 창란학원의 사무를 담당하고 있지.”
영패를 자세히 살펴보던 엽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내민 영패는 틀림없는 창란학원 학생 영패였다.
하지만 엽현은 눈앞의 남자와 같은 학생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진짜 행세를 하는 가짜였던 것이다.
“보호비가 얼마요?”
남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최상품 영석 천 개!”
‘천 개라고?’
“하루에 천 개씩!”
‘하루에 천 개!’
그 말에 엽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방금 대강 둘러보았을 때, 창란학원 안에는 적어도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하루에 영석 천 개씩을 걷는다면……
이때, 엽현이 갑자기 대전 안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늘부터 그대들은 보호비를 낼 필요 없소!”
그러자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어이, 형씨. 지금 여기 행패 부리러 온 거야?”
엽현 앞에 있던 남자가 엽현의 가슴팍을 쿡쿡 찔러댔다.
“여긴 중토신주 무인들조차 함부로 설치지 못하는 곳이라고. 그런데 네까짓 게 감히……”
이때, 엽현이 웃으며 남자의 말을 끊었다.
“고작 통유경인 네가 이런 일을 벌였을 리는 없을 테고… 배후가 누군가?”
“하하하! 이 몸의 배후를 묻는 건가? 가소롭군! 나의 배후는 바로 창란학원 원장인 엽현이다! 들어본 적은 있나?”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들어봤지. 초절정 꽃미남에, 인품까지 완벽한 그분을 모를 리가 있나?”
“그래? 근데 왜 아직도 여기 서 있어? 썩 안 꺼져?”
엽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게 명령하는 자를 데려와라!”
남자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뭐라고 하려는 찰나, 엽현의 발이 남자의 무릎께로 들이닥쳤다.
퍼퍽-!
순간 무릎이 박살 난 남자가 엽현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저자가 겁도 없이 감히 창란학원에서 난동을 피우는가?’
이때, 남자가 엽현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너 이놈! 감히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엽 원장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엔 원장은 나를 가만둘 것만 같은데?”
“헛소리하지 마라! 엽 원장은 반드시 너와 너의 가족을 모두 멸해버릴 것이다!”
엽현이 코를 쓱쓱 문질렀다.
“음… 그는 아마 그러진 않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이 건 확신할 수 있지!”
남자가 뭐라 대꾸하려는 순간,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이 엽현을 가리키며 불신이 가득한 눈초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대는 엽 원장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