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엽현만이 알고 있겠지
월기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거든, 너는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절대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 알겠느냐?”
엽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월기를 포함한 창검종 전체는 이미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다.
이때, 월기의 손바닥이 엽현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알았어, 몰랐어!?”
“헤헤, 잘 알아들었습니다, 사부. 그나저나 한 가지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엽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총에 있는 그 많은 검들……”
월기가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그 검들은 다른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종문 선배들의 전승이 담겨 있는 것들인데 네가 먹어 치워 버리면……”
이때, 월기가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우리가 모두 죽게 되면, 네 맘대로 하거라.”
‘죽는다고?’
“죽는다니요,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천년만년 잘 살아남을 것입니다!”
* * *
다시 황유산맥의 어느 하늘 위. 육 종주가 공중에 서서는 가만히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발밑의 대지는 이미 철저하게 갈라진 상태였다. 시뻘건 용암만 꾸역꾸역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곁에 있던 막수의 말에 육 존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시오.”
막수가 고개를 끄덕인 뒤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거대한 붉은 빛이 반원을 그리며 산맥 전체를 장막처럼 둘러쌌다. 이윽고 붉은 장막에서 흘러나온 새빨간 선혈이 땅속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갔다.
육 존주는 이 장면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장막의 사방에는 수십 명의 진 어법경 강자들이 진을 치고서 본원이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몇 시진이 지나도록 땅속에서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어둠이 깔리고,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도 여전히 아무런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이는 육 존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찌 된 일인가?”
그의 곁에 있던 막수가 주저하며 말했다.
“그게… 아무래도 아직 선혈의 양이 부족한 듯싶습니다.”
“그럼 계속하시오!”
“그게… 존주…….”
“음?”
육 존주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막수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진법이 필요로 하는 자원정 개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미 자원정 십만 개를 털어 넣었는데도…….”
‘자원정 십만 개라고?’
천하의 호계맹이라도 이만한 양의 자원정을 소모하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었다.
육 존주가 잠시 생각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성공할 때까지 아끼지 말고 계속 부어 넣으시오!
황유산맥에서는 붉은 피가 하루도 빠짐없이 갈라진 지면 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호계맹과 창검종은 서로를 경계하며 본원이 출몰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본원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땐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애가 타는 것을 모르는지 본원은 여전히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다시 이틀이 지났다. 육 존주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소.”
육 존주의 말에 막수는 뭐라 대꾸할지 몰랐다.
“혹시 창검종에서 이미 차지한 것은 아니오?”
막수가 이번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불가능합니다. 본원이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이상, 누가 본원에게 손을 대려 하면 그 순간 영기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게 됩니다. 본원이 스스로 창검종을 선택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한다고?’
육 존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생각으로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에게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본원이 어찌 제 발로 그런 짓을 벌이겠는가.
하지만 육 존주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신산문의 늙은이에게 한 번 다녀오시오. 아니, 됐소. 내가 직접 다녀오리다!”
육 존주가 순식간에 장내를 빠져나갔다.
* * *
잠시 후, 육 존주는 중토신주 내의 한 황량한 숲속에 도착했다. 숲의 한 가운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궁전이 존재했는데, 궁전의 현판에는 거의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신산문(神算門)
육 존주는 주저하지 않고 궁전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회색 장포를 입고 바닥에 누워 술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의 앞에 발걸음을 멈춘 육 존주가 바닥에 술 한 병을 탁 내려놓았다. 그러자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술병을 낚아챈 노인이 단숨에 술병을 비우고는 도로 드러누웠다.
“부탁할 일이 있어 왔소.”
그러자 노인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천기를 엿보는 부탁이걸랑 썩 꺼져라.”
“이 부탁은 그대가 반드시 들어줘야 하오!”
그러자 반쯤 몸을 일으킨 노인이 육 존주를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
“네 놈은 우리 신산문이 어찌 망했는지 모르는 것이냐? 바로 천기를 훔쳐보다 하늘의 노여움을 산 것이 아니더냐!”
육 존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를 수 있겠소. 하지만 이번 일은 호계맹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오. 이번만 도와주면 내 다시는 그대를 귀찮게 하지 않겠소.”
“…말해 보거라!”
“청주의 본원에 대한 것이오!”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거라면 괜히 헛심 켜지 말고 돌아가거라. 본원은 이미 다른 놈의 손에 떨어졌으니까.”
그 말에 육 존주가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오?”
“무슨 말이긴? 청주 본원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나와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이지.”
“그, 그럴수가!”
이때, 노인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육 존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육 가야, 잘 듣거라. 호계맹이 그놈을 가지고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청주의 본원은 창란주의 그것보다 훨씬 더 영특한 놈이니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순간, 육 존주의 눈빛이 냉랭하게 변했다.
“본원은 지금 누구 손에 있소?”
“하하하! 네 놈은 정녕 내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만약 내게 모든 걸 알아맞힐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신산문이 이 지경이 됐겠는가? 내가 아는 것이라곤 본원이 이미 청주의 중심부에서 나와 다른 자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밖에 없다!”
육 존주가 음험한 표정으로 물었다.
“찾아낼 방법이 없겠소?”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천하의 호계맹과 창검종의 눈마저 속인 자인데, 나라고 별수 있겠는가?”
노인이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육 가야,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니, 이만 물러가거라!”
“마지막으로 묻겠소. 혹시 창검종 손에 들어간 것은 아니오?”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육 가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신산문은 대략적인 방향만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세세한 것들은 설령 조사께서 살아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알 방법이 없다.”
육 존주가 어두운 표정으로 노인을 한 번 바라본 뒤, 말없이 사라졌다.
그가 떠난 후, 노인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대전 안에 얕게 퍼졌다.
“확실한 것은, 너희 호계맹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똥을 밟았다는 것이다…….”
* * *
중토신주를 떠나, 다시 황유산맥으로 돌아온 육 존주.
황유산맥에 설치돼있던 진법은 이미 제거된 상태였다.
이때, 막수가 육 존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본원을 뺏긴 것이 확실합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오.”
“그렇다면… 창검종이?”
육 존주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아무 기척도 내지 않고 본원을 빼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소.”
막수의 미간 사이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창검종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바로 이때, 막수가 말을 하다 말고 뭔가 생각난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오?”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본원의 기운이 잠시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기운이 느껴진 곳으로 급히 달려와 보았으나, 기운은 온데간데없었고, 그 자리엔 단 한 사람만이 서 있었을 뿐입니다.”
‘사람?’
“그게 누구요!?”
“엽현!”
순간 육 존주의 두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당시, 저는 아무리 엽현이라도 그렇게 티 나지 않게 본원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착각한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막수가 다시 고개를 휘저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본원의 힘은 검황 따위가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오!”
육 존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은 항상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들을 끊임없이 일으켜 왔소. 만약 다른 자가 그랬다면 믿지 못하겠지만, 엽현이라면 모르는 일이오!”
“그렇다면 엽현이 본원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육 존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대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놈의 손에 있을 것이오. 지금 엽현은 어디 있소?”
“창검종과 함께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음… 모두 나를 따라오시오!”
육 존주의 명령에 삼십여 명에 달하는 진 어법경 강자들이 그의 뒤를 쫓아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 후, 육 존주 일행이 나타난 곳은 황유산맥에 위치한 작은 산이었다.
산 정상. 진북한이 육 존주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다가왔다.
“육 존주, 청주 본원은 어찌하고 이리로 왔소?”
“엽현은 어딨소?”
‘엽현?’
진북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왜 그 아이를 찾는 것이오?”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소.”
육 존주가 말했다.
진북한이 무어라 대답하려 할 때, 육 존주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진북한, 쓸데없는 말 섞고 싶지 않다. 엽현을 내놓아라.”
산 정상에 불던 바람이 일순간 냉랭하게 변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던 진북한 역시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바로 이때였다.
“육 존주, 날 찾고 있었나?”
그 소리에 육 존주가 고개를 돌렸다. 과연 엽현이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월기가 있었다.
육 존주의 음험한 시선이 엽현의 얼굴에 떨어졌다.
“청주의 본원… 혹시 네가 갖고 있느냐?”
‘청주의 본원?’
그 말에 창검종 무인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엽현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원? 무슨 본원?”
그러자 엽현을 바라보는 육 존주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엽현, 더 이상 노부에게 시치미는 통하지 않는다! 본원이 네게 있는지만 말해라!”
엽현이 대답했다.
“육 존주, 벌써 노망이 온 건가? 나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자, 보거라. 내가 어디 본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나?”
엽현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듯 팔을 펼쳐 보였다.
이때, 한쪽에 있던 진북한이 말했다.
“육 존주, 혹시 농담하는 것이오? 본원이란 것이 고작 한 명의 어법경 강자가 쉬이 얻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이오? 그렇다면, 호계맹은 지금까지 왜 그리 공을 들여온 것이란 말이오?”
이때 육 존주가 엽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본원을 얻었는지 여부는 엽현만이 알고 있겠지…….”
“육 존주!”
엽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말이 맞다. 본원은 내가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