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1
31화 내가 그에게 연정을 품을까 걱정하는 것이오?
엽 형!?
안란수가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는 자가 황성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혹시 있다면 결코 보통 존재는 아닐 것이다!
사상 최연소로 국사가 된 그녀가 서스럼없이 다가가는 동년배의 무인이라면 범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 자임이 분명했다!
장내의 사람들은 기이함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말수청의 눈에도 의아함이 묻어났다.
그녀가 알기론 안란수가 인정하는 사람은 황성 내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 저 소년이 그 중 하나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녀 옆에 있는 대황자의 표정 역시 놀람에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안란수의 제안에 엽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좋소!”
바로 이때, 젊은 무인 하나가 안란수에게 다가가 예를 올리며 말했다.
“안 국사, 이 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 소저를 능욕하고 사람을 상하게 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안 국사께서 공명정대함을 보여 주시기를 간청하는 바이옵니다!”
안란수가 눈앞의 젊은 무인에게 소리쳤다.
“그대는 누구요?”
무인이 속으로 기뻐하며 포권을 취했다.
“이가(李家)의 이봉(李鳳), 안 국사를 뵙습니다!”
안란수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엽현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엽령이 급히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다.
“언니, 저 사람이 먼저 우리에게…….”
엽령은 안란수에게 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잠시 후, 안란수가 말수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란수의 시선을 받은 말수청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말 가의 가세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창목학원이나 취선루와 같은 거대 세력도 어려워하는 국사 안란수였다!
“말 소저, 말 가는 강국의 거대 세가 중 하나이고,그대는 말 가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소. 그대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말 가를 대표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면, 앞으로 이런 유치한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오. 그대 생각은 어떻소?”
말수청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란수가 말수청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대답이 없다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남아있어서 불복한다는 뜻이겠군.”
이때, 안란수의 몸에서 강대한 의경(意境)이 휘몰아치듯 밀려 나왔다. 순간, 말수청은 마치 거대한 산에 눌리는 것과 같은 압력을 느꼈다. 그녀의 몸은 점점 구부러졌으며 그녀의 두 다리 역시 기이하게 휘어져갔다.
이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 국사가 분노했다!
말수청의 몸이 압력에 눌려 계속해서 휘어져 가는 와중에 그 어떤 자도 그녀를 위해 감히 나서지 못했다.
마침내 말수청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그녀의 두 주먹엔 힘이 들어가 있었으며 눈빛은 여전히 표독하기 그지없었다.
언제나 다른 이들의 위에 군림하던 말수청이었다.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 안란수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안 국사, 우리 아가씨가 아직 철이 없는 까닭에 감히 국사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가주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용서를 바랍니다!”
노인의 간곡한 청에 안란수는 의경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말수청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안란수가 쓰러진 말수청을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서 너희 가주에게 전하거라. 엽 형은 나의 친구이니 만약 오늘 일에 불만이 있거든 나를 찾아오시라고!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혹시라도 저들 남매에게 손을 쓰기라도 한다면 내가 직접 말 가를 방문하여 공명정대함이 무엇인지 보여 줄 것이다!”
노인이 황망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수청을 업고 장내를 빠져 나갔다.
안란수가 이번에는 대황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대황자의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우리 강국에서 한 명의 인재가 탄생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는 대황자께서도 알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오늘 사사로운 감정을 위해 조국의 인재를 찍어 누르려 했소. 이는 분명 식견이 좁고 우매한 행동임에 틀림없소!”
강념생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감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자신의 부황(父皇)마저도 예를 다해 대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황실의 사람으로서 안란수의 존재가 강국에 어떤 의미인지 대황자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강국 황실과 세가들은 안란수의 심기를 건드릴 용기조차 없었다. 안란수가 강국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강국은 주변 강대국의 압박과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란수가 서서히 두 눈을 감으며 대황자에게 말했다.
“앞으로 오 년 간 그대는 신입생을 초대하는 직무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오.”
대황자가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춘 후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 까지 엽현을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엽 형, 이제 갑시다.”
안란수의 말에 엽현이 엽령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동생도 함께 해도 되겠소?”
“물론이오!”
그렇게 안란수와 엽현 남매는 장내를 빠져 나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연회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 * *
안란수와 엽현 남매는 고요한 대로를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시간이 얼마 흐른 것 같지도 않은데 검심징철에 전의까지 깨우쳤다니 엽 형은 이제 준(準) 무도종사가 되었구려.”
“어찌하여 그대는 단 번에 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오?”
엽현은 이 궁금증을 청성에서부터 갖고 있었다.
안란수가 가볍게 웃었다.
“나는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다오.”
안란수가 말을 아끼자 엽현 역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안란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양계성에서 당국의 흑갑기병을 죽이고 수천 기의 흑갑기병대를 홀로 막아낸 것이 그대였소?”
“그대가 그 것을 어찌 알았소?”
엽현이 깜짝 놀라며 묻자 안란수가 웃으며 말했다.
“내 각별한 친구인 구 공주가 말해 주었소. 청삼을 입고 여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소년, 그대 말고 또 누가 있겠소?”
엽령이 그녀의 말에 웃으며 엽현의 팔을 꼭 껴안았다.
안란수가 다시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엽 형, 황성의 사람들은 인심이 박하고 자기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오. 그러니 저들에게 무슨 애국심이 있겠소? 만약 오늘 연회장에 있던 자들이 그 날, 양계성에 있었더라면 엽 형처럼 나서는 이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 확신하오.”
“그럼 안 소저는 강국의 안위를 신경 쓰시오?”
안란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라가 있기에 가문이 있고 가문이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오. 그러니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소? 물론 내가 신경 쓰는 대상은 황실이 아니라 조국인 강국이오. 이해할 수 있겠소?”
“그렇소.”
사실 이 점에 있어서 두 사람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엽현은 겉 보기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라가 어려움에 빠진다면 발 벗고 나설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안란수 역시 황실이 아닌 강국의 안위를 위해 힘쓰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는 안란수의 뒤를 엽현 남매가 따랐다.
달빛이 그녀의 전신을 눈부시게 비추니 진정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녀(神女)가 따로 없었다.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로구나!’
엽현은 안란수에게 말수청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음을 느꼈다.
안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엽 형, 황성의 사람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많소. 기질이 올곧은 그대는 매사에 조심해야 할 것이오.”
“고맙소, 명심하도록 하겠소!”
갑자기 엽현이 안란수에게 물었다.
“한 번, 겨뤄보겠소?”
현재 엽현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강한 무인과 한 번 겨뤄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대련 상대였던 그림자는 이미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 엽현은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몹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엽현의 말에 안란수가 몸을 돌려 엽현을 바라보더니 싱긋 웃었다.
달빛도 무색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엽현은 잠시 넋이 나갈 뻔 했지만 재빨리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되찾았다.
엽령이 옆에서 수줍게 말했다.
“언니, 진짜 예뻐요.”
안란수가 웃으며 엽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외모란 껍질에 불과한 것,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에 있단다.”
안란수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우리 대결은 그대가 어기경에 이른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소. 어떻소?”
“음, 그렇게 하겠소.”
이때, 안란수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엽 형, 우리 이쯤에서 헤어져야 할 듯 싶소.”
엽현이 안란수를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안 소저, 오늘 고마웠소. 다음에 봅시다!”
그렇게 엽현은 엽령과 함께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엽령이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안란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안란수가 마음에 쏙 든 모양이다. 엽현 남매의 모습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안란수가 눈빛을 거두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때, 웬 노인이 인기척도 없이 그녀의 옆에 나타났다.
“아가씨, 저 자와 가까워질수록 저들이 말썽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영로. 누구든 저들 남매를 건드린다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영로가 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저 아가씨께서 저 자를 멀리 하시면 될 일 아닙니까?”
“영로는 저 사람이 나와 어울리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저 어린 나이에 전의를 깨닫고 검심징철에 이른 기재이니만큼 아가씨가 그저 벗으로 삼기 원하신다면 겨우 자격은 있겠지요. 그러나 만약…….”
영로가 말을 더 이상 잇지 않자 안란수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영로, 내가 그에게 연정을 품을까 걱정하는 것이오?”
영로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가 모시는 아가씨는 결코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좀 완곡하게 돌려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안란수가 고개를 돌려 엽현 남매가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았다.
“처음 청성에서 그를 마주쳤을 땐 동생을 지극히 아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소. 그리고 이번 양계성에 일이 있은 후로는 그 이상의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오.”
안란수가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좋은 사람이오.”
안란수의 말에 영로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멀리 간 것이다!
영로가 작게 한 숨을 내쉬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 놈,아가씨에게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게 비참해 질 것이니…….”
세상에서 영로만큼 안란수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와 함께 할 남자는 신분, 실력, 자질, 배경, 무엇 하나 부족해선 안 된다!
그러나 엽현은 그저 이 조그만 세계에서 조차 버림받은 자에 불과 했다!
그녀와 엽현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라 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잠시 후, 영로는 작게 탄식을 한 후 안란수가 걸어간 방향으로 사라졌다.
* * *
엽현은 엽령을 업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빠, 언니…, 정말 예쁘지 않…….”
“응!”
엽령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엽현이 힘을 주어 대답했다.
“오빠, 혹시 언니 좋아해?”
“…….”
“오빠, 언니한테 장가들고 싶지 않아? 내가 볼 때 둘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령아, 나 같은 빈털터리한테 시집오는 사람은 평생 손가락만 빨고 살아야 해…….”
“그럼 한 가지만 말해봐. 언니 좋아하지?”
“나는 우리 령이 말고는 아무한테도 관심 없어!”
“오빠…, 나도 평생 오빠랑 같이 살고 싶어…….”
“바보, 시집은 안 갈 거야?”
“안가!”
“왜?”
“왜냐면, 이 세상에 오빠만큼 좋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