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이제 죽을 시간이다
진 어법경이 된 직후, 엽현의 검의는 검의실질(劍意實質)을 넘어 검의화천지(劍意化天地)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이 검선이 되었다는 증거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고민 끝에 엽현은 직접 월기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바로 이때였다. 이 층 존재의 음성이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사 층에 있는 놈을 조심해!]사 층?
“무슨 일인데?”
[놈이 소령을 꼬드겨 탑의 검을 뽑으려 했어.]탑의 검이라고?
이는 필시 계옥탑 꼭대기에 있는 세 개의 검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 검들이 뽑혀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엽현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함부로 뽑으면 안 될 검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에 엽현이 황급히 소령을 불러 앉혀 놓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사 층에 있는 자가 네게 검을 뽑으라고 시켰어?”
소령이 영과를 갉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어. 검을 갖고 놀면 재밌을 거라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엽현이 진지하게 묻자 소령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나는……”
순간 엽현은 소령의 눈동자가 또르르 돌아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말고!”
“…헤헤 그냥 한 번 뽑았다가 다시 꽂아 놓으면 안 돼? 궁금한데…….”
“한 번 해 봐. 탑이 무너져서 다 죽어도 상관없으면.”
순간 소령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응? 그럼 허락한 거야?”
‘내가 허락을 했다고?’
엽현이 살짝 당황해하고 있을 때, 소령이 탑 꼭대기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이에 엽현이 황급히 손을 뻗어 소령을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앉혀 놓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방금 그 말을 허락으로 알아들은 걸까?
엽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검, 뽑으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엽현은 소령이 과연 검을 뽑을 수 있을지 확신하진 못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검이 뽑혀 나온다면?
그땐,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일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소령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엽현을 향해 물었다.
“왜 뽑으면 안 돼?”
“뽑으면 큰일 나!”
“웅…….”
소령이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엽현이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소령이 다시 물었다.
“오늘 안 되면 그럼 내일은 뽑아도 돼?”
순간, 엽현은 거의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
‘어째서 끊임없이 검을 뽑을 궁리만 하는 게냐!’
엽현은 소령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엽현이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엽현은 이 층 존재에게 부탁해 소령에게 주의를 주라고 한 뒤에 탑을 빠져나왔다.
까딱하다가는 호계맹과의 전쟁에서 죽기 전에 탑이 무너져 죽을 판이었다.
탑에서 나온 엽현은 곧장 월기가 있는 내전으로 향했다.
월기는 마침 공법서 한 권을 펼쳐 놓고 심각하게 연구 중이었다. 엽현이 들어오자 그녀는 엽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할 말이라도 있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거라.”
“사부, 제가 검선이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음?”
순간 월기가 책을 덮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검선?”
“그렇습니다. 그런데…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월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엽현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가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순간이었다. 월기의 방 전체가 순식간에 엽현의 선악검의로 가득 찼다.
그러자 월기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제가… 검선이 맞습니까?”
월기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절반쯤 검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절반이라고요?’
이때, 월기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엽현에게 물었다.
“진 어법경이 된 것이냐?”
“헤헤, 천계 검 다섯 자루의 도움이 컸습니다.”
“흠… 내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나를 따라오너라.”
월기는 엽현의 팔을 이끌고 운검전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운봉산 뒷산의 대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는 곳이었다. 아마도 월기가 직접 가꾼 듯했다.
흔들리는 대나무 사이로 월기의 말이 전달됐다.
“검의를 개방해 보거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대나무 숲 전체에 엽현의 검의가 가득 찼다.
“지금 너의 경지가 어디쯤인지 알고 있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잘 듣거라. 첫 번째 단계는 영오검의(領悟劍意), 두 번째 검의실질(劍意實質) 그리고 세 번째가 검의화천지(劍意化天地) 단계다. 소위 검의화천지라는 것은 검의가 네 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천지에 융화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너의 검의는 네 육신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탈피해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검선 아닙니까?”
월기가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으로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검선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검의화천지, 그리고 검심(劍心)이 필요하다.”
“검심?”
엽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월기가 설명했다.
“너의 검심은 현재 검심정철(劍心澄澈)의 단계다. 즉, 검심에 결점이 없이 깨끗하다는 뜻이지. 하지만 검선이 되기 위해선 이를 뛰어넘는 검심통명(劍心通明)의 경지에 이러야 한다.”
검심통명(劍心通明)!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일종의 심경(心境)인 것입니까?”
“그렇다. 고도(高度)의 심경이라 할 수 있지. 게다가 매 사람마다 검심통명에 이르는 길이 다르다. 하지만 수도동귀(殊途同歸)이라 했으니 모든 길은 결국 검선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엽현이 물었다.
“검심통명에 이르기는 어렵습니까?”
월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렵다. 검총을 지키는 사형을 기억하느냐? 그는 검심통명을 위해 십 년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십 년이라고?’
순간, 엽현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검선에 이르기 위해서 앞으로 십여 년을 더 인내해야 한단 말인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너같이 어린 나이에 검선 근처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다. 심지어 당시의 대사형이라 할지라도 네게 한 수 접어 줘야 할 정도다.”
“제가 빨리 검선이 되어서 종문에 보탬이 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월기가 다소 의기소침해하는 엽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생각만으로도 기특하구나. 그러나 종문의 일은 네가 염려할 것 없다. 이런 일은 우리 늙은이들에게 맡기고 너는 열심히 수련이나 하거라. 알겠느냐?”
“저 사부……”
엽현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에게 승산이 얼마나 있습니까?”
월기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허나, 설령 승산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맞부딪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구나.”
엽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별일 없으면, 나중에라도 검총 안쪽으로 가 보거라. 그곳은 조사님께서 수련하던 장소인데, 그곳에 그분의 검도 남겨져 있다. 혹시 네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사부, 검총을 지키는 사숙께서 저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습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냐?”
월기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엽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지난번에 제가 검총에 있는 검들을 흡수하는 바람에……”
월기의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갔다.
“그까짓 검 몇 자루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냐? 검보다 사람이 더 우선이거늘! 안 되겠다. 따라오너라!”
월기는 엽현을 이끌고 다시 검총을 방문했다.
검총 입구 앞에서 노인은 어김없이 누워있었다. 그가 월기를 발견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웃으며 다가왔다.
“사매, 요즘 방문이 잦구나!”
월기가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쏘아붙였다.
“임구(林丘) 사형, 왜 내 제자를 검총에 들여보내지 않는 건가요? 혹시 제게 무슨 유감이라도 있는 건가요?”
임구라 불린 노인이 다소 당황한 듯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사매, 무슨 그런 섭한 말을 하는가? 단지, 사매도 알다시피 이곳 검총은 종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어서 그런 것일세.”
월기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쏘아붙였다.
“그럼 사형은 종주의 허락을 받고 이곳에 있는 건가요?”
“아, 아니 월 사매. 우리끼리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다 같이 형제와도 같은 사이인데.”
“저, 임구 사숙님.”
이때 엽현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지난번 허락도 받지 않고 검을 흡수한 것은 명백한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부디 못난 제자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임구가 눈을 크게 뜨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네 놈이 잘못을 인정할 줄도 알다니. 참으로 뜻밖이구나!”
임구가 곧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비록 네가 경지의 상승을 위해 그런 짓을 벌였다고는 하나, 이곳에 있는 검들은 엄연히 종문의 보물이고 재산이다. 이런 행동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맞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제 잘못을 깨달았으니,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임구가 엽현에게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 누군가의 음성이 그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들여보내 주거라. 앞으로도 그가 원할 땐 언제든 검총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거라.”
이는 진북한의 목소리였다.
전폭적인 지원이라고?
임구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더할 나위 없이 잘 알고 있었다.
“들어가거라.”
임구의 말에 엽현이 그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사숙!”
엽현이 월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포권했다.
“사부,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가장 깊은 곳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검총 안으로 진입했다.
그가 사라지자, 월기가 임구를 향해 조금은 자랑하듯 말했다.
“저 아이는 벌써 진 어법경이예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진 어법경이라고?’
임구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월기가 사라지고도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던 임구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괴물 한 마리가 들어 왔구나…….”
젊은 무인들 사이에서 진 어법경이라면, 중토신주 상계의 몇몇 가문과 현문의 제자 한둘을 제외하면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엽현은 검총 깊숙한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검총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광대했다. 그렇게 반 시진을 걷고서야 그는 겨우 검총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엽현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잡힐 듯 말 듯 한 희미한 검의가 느껴졌다.
이때, 그의 몸 안에서 뇌소검이 가볍게 떨려왔다.
“이곳이 창계검주가 수련하던 곳인가 보군.”
엽현이 편편한 곳을 골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눈을 감고 집중하자, 이내 희미했던 검의가 점점 또렷이 느껴졌다.
어딘가 특별한… 그러나 딱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느낌…….
엽현은 점점 이 기이한 검의 속으로 동화되어갔다.
엽현이 검총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할 때, 두 명의 노인이 호계산을 찾았다.
암금(暗金)색 장포를 입은 두 노인과 황금색 장포를 입은 열두 명의 무인이 도열해 있었다.
호계전.
육 존주가 두 눈을 번쩍 뜨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엽현… 이제 죽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