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가라면 제발 좀 가라!
둥근 제단 위, 육인의 검수의 몸에서 끊임없이 검의가 흘러나오고, 동시에 제단 위로 무수히 많은 검광들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참선검진(斬仙劍陣).
이는 오래전 창계검주가 창검종을 위해 남긴 수호진이었다. 창검종이 가진 최강의 패였다.
정말로 큰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 한 함부로 개진하지 않지만, 백발 중년인의 실력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창검종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한편, 호계맹 무인들과 함께 멀찌감치 피해있던 육 존주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그’의 분신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계획엔 없던 일이었던 것이다.
애당초 이 분신은 천녀와 싸울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임종운과 진진이라는 예기치 않은 불청객의 등장으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만 것이다.
이제 쌍방은 모두 자신들의 비장의 한 수를 드러낸 셈이었다.
겉보기엔 호계맹 측의 패가 상대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육 존주는 어쩐지 안심이 되질 않았다.
왜냐하면 언제 또 그 신비한 여인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육 존주에게 크나큰 공포심을 안겨 주었던 그 여인 말이다.
그 여인이 언제고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육 존주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선, 임종운과 진진이 어두운 표정으로 백발 중년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발 중년인의 실력은 그들의 상상을 벗어날 정도로 강했다.
이때 임종운이 문득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일이 커지기 전에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좋겠소. 이러다가 공자가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오.”
“그대가 돌아가시오.”
진진의 말에 임종운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대가 가는 게 맞소. 나는 이곳에 남아 공자를 보호하겠소.”
“하지만…….”
“낭비할 시간이 없소. 빨리 떠나시오!”
진진이 임종운의 눈을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후… 그렇다면 조심하시오. 금방 다녀오리다!”
말을 마친 진진이 서둘러 장내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임종운의 눈빛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영허성궁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약 한 달이었다.
진진이 아무리 빨리 돌아간다 해도 원군을 데려오기까진 적어도 두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두 달이라…….’
임종운이 고개를 돌려 백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육 존주가 말하길, 그는 단지 분신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만약 본체가 이곳에 나타난다면 과연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을까?
임종운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간에, 그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단 위. 이때 여섯 검수의 머리 위에는 각각 한 자루씩의 광검(光劍)이 떠올라 있었다. 또한, 제단의 정 중앙엔 여섯 개의 검의가 이미 하나로 뭉쳐진 상태였다.
적막감이 감도는 순간!
이때, 진북한이 돌연 포효하듯 외쳤다.
“출검(出劍)!”
그의 외침과 함께, 여섯 검수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쉬쉬쉬쉬쉬쉭-!
그들의 머리 위에 있던 여섯 자루의 검이 여섯 개의 검광으로 변해 백발 중년인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여섯 개의 검광이 지나는 곳은 그 공간마저 찢겨 나갈 정도였다.
하늘 위. 백발 중년인이 가볍게 손을 늘어뜨리더니, 한 발 내딛으며 아래쪽을 향해 일 장을 뻗었다.
쿠쾅-!
순간 천지가 크게 흔들리는 동시에, 장내의 모든 무인들의 귀가 먹먹해지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만 같은 그 순간.
하얀빛과 함께 치솟아 오르던 여섯 개의 검광이 돌연 거대한 힘에 짓눌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의 파도가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이 파도에 휩쓸린 창검종의 모든 건축물들은 마치, 해일 앞의 모래성처럼 힘없이 스러졌다. 이를 지탱하고 있던 대지조차 마치 종잇장처럼 수십, 수백 갈래로 찢겨져 나갔다.
이와 같은 힘을 견디지 못한 여섯 개의 검광은 순식간에 한 줌의 빛으로 산화했다.
창검종의 마지막 일격도 이렇게 힘없이 무너졌다.
멀리서 바라보던 엽현이 오른손 주먹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바로 이때, 그의 머릿속에 월기의 음성이 들려왔다.
“떠나거라, 어서! 가능한 멀리 가거라!”
엽현이 고개를 들어 제단을 바라보았다. 이때의 월기는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입가에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떠나라고?’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순간에 어떻게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백발 중년인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창검종이 무너지고 나면 그다음은 곧바로 엽현의 차례가 될 것이다.
하늘 위. 백발 중년인이 예의 그 오만한 눈빛으로 진북한 등을 내려다보았다.
“참선검진… 소문대로 훌륭하구나. 내 기억이 맞다면 검진 아래 너희 조사가 남겨둔 검의가 있을 텐데……. 아쉽게도 그것을 발동하는 데는 실패했나 보구나. 내 말이 맞는가?”
제단 위의 진북한이 백발 중년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대 말대로 조사의 패검(佩劍)만 있었더라면, 그의 검의를 발동시켜 한순간에 그대를 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그 검이 없지.”
백발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바로 이때였다.
“조사의 패검은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엽현이 황급히 제단 위로 올라왔다.
“사부, 제게 사조의 검이 있습니다!”
“놈! 어서 떠나라 했더니, 왜 아직까지 남아있는 게냐!”
월기가 노기 띤 음성으로 엽현에게 소리쳤다.
이때, 진북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우리가 모두 죽어버리면 너는 도망갈 수조차 없다! 지금이라도 몸을 숨기고 후일을 도모하…….”
이때, 모두의 눈앞에 한 자루의 검이 떠올랐다.
영수검!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창계검주가 남긴 뇌소검이었다.
이를 본 제단 위의 무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가 어떻게…….”
전철이 믿기 힘들다는 눈초리로 말했다.
“네가 어떻게 조사의 패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냐!”
진북한 역시 경악에 찬 얼굴로 엽현과 검을 번갈아 보았다. 엽현에게 창계검주의 검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엽현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 일은 나중에 말씀드리고 일단 급한 불부터 끄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너는 당장 검을 이용해서 검진 안에 있는 검의를 전부 끄집어 내거라!”
진북한의 말에 엽현이 서둘러 제단 가운데로 달려갔다.
“지금이다-!”
진북한의 외침과 함께 여섯 무인들 각각의 머리 위에 거대한 검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육인의 검의가 다시 한번 제단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순간 엽현의 손에 들린 영수검이 격렬히 떨림과 동시에, 제단이 미친 듯이 흔들리며 마치 당장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를 지켜보던 백발 중년인이 쉴 새 없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보다 못한 그가 주먹을 쥐자, 그의 손에서 강대한 힘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진북한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취(聚)!”
그의 말에 따라, 여섯 사람의 머리 위에 있던 검들이 한 곳에 뭉쳐 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제단 사방에서 엄청난 양의 검의가 마치 홍수처럼 흘러나왔다. 이 검의들은 제단 중앙에 있는 엽현의 몸을 타고, 마지막으로 그의 손에 있는 영수검을 향해 집중됐다.
윙-!
날카롭게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검의 울음 소리!
미친 듯이 몸을 떨고 있는 엽현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무궁무진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이 힘만 있으면 하늘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때, 진북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검(出劍)!”
엽현이 하늘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검이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하늘로 치솟았다.
창계검주의 검의를 담은 영수검은 천계 검 이상의 위력을 보였다. 하늘도 무너뜨릴 기세였다.
이를 본 육 존주 등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때, 백발 중년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향해 하강했다.
중년인을 향해 솟구치는 검. 그리고 검을 향해 떨어지는 백발 중년인.
이때, 백발 중년인이 검을 향해 일 장을 뻗어냈다.
하늘과 구름이 맞닿은 지점, 두 개의 거대한 힘이 충돌했다.
콰앙-!
제단이 순식간에 붕괴되고, 수없이 많은 검광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창검종 주변의 모든 봉우리들이 무너지고,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잠시 후,
뿌연 먼지가 조금 걷힐 무렵, 무인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백발 중년인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중년인이 엽현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네가 그의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겨우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제단 위에서 엽현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멍청하긴, 너 같으면 알려 주겠냐?”
“…그렇다고 너무 안심하진 말거라. 네가 조만간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이 말을 끝으로 백발 중년인의 형상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사라진다!
이 모습을 본 창검종 무인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호계맹 무인들의 표정은 일순간 어두워졌다.
설마 주상의 분신이 이토록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줄이야!
“엽현… 내가 다시 찾을 때까지… 잘 살아 있거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백발 중년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육 존주 등도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진북한은 호계맹을 쫓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피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그들을 쫓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전쟁이 막을 내렸다. 주변에서 관망하고 있던 다른 세력의 강자들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
창검종이 이겼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중토신주 전역에 퍼졌다.
많은 이들은 쉽게 이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 누구도 창검종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청창계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호계맹이었다.
그런 호계맹이 모든 패를 꺼내 보이고도 승리하지 못했다? 누가 이런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 거짓말 같은 일은 현실로 일어났다.
반면 창검종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위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계맹은 언제라도 다시 전력을 갖추고 쳐들어올 것이다.
그땐 호계맹은 분신이 아닌, 진짜 백발 중년인과 함께일지도 모른다.
고작 분신을 막는 데도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과연 그들이 본체를 막아낼 수 있을까?
* * *
운검전.
전내에는 창검종 핵심 인사들, 그리고 엽현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엽현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여 창계검주의 패도가 엽현에게 있었을까?
이때, 침묵을 지키던 엽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조사의 검을 얻었을 뿐입니다…….”
엽현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에 진북한이 엽현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겠다면, 나 역시 더이상 묻지 않겠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조사의 검이 네게 들어간 것은 하늘의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나는 너를 창검종의 다음 종주로…….”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진북한의 말을 끊었다.
“종주, 저는 종주의 자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 그거 아쉽구나. 종주가 되면 종문 내 어떤 물건이라도 마음껏 할 수 있을 텐데……. 설령 검총의 검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 엽현의 눈이 번뜩였다.
“…정 모두의 뜻이 그러하다면 한 번 고려는 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