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도대체 무슨 일이야!
평온함 그 자체.
호계맹이 패해서 돌아간 뒤, 청창계엔 모처럼만에 평온이 찾아왔다.
물론 이는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운검봉.
엽현은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의 현재 경지는 진 어법경. 더 이상의 경지의 상승은 당분간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검도(劍道) 방면에 있어서는 천천히 시간을 갖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검기(剑技).
엽현은 무공의 경지에 비해 펼칠 수 있는 검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검정생사, 일검정혼, 십장일살, 그리고 순공일검.
이들 무기는 지금까지 누구를 만나든 큰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경지가 상승한 만큼, 이들 무기 또한 더욱 강력해질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일검정생사는 특히 그랬다.
천녀가 남겨준 이 검기는 비단 하나의 검기로 사용될 뿐 아니라, 그에게 하나의 검도를 제시해 주는 길잡이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가 매번 일검정생사를 사용할 때마다 드는 감정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수련을 할 때든, 전투를 할 때든, 무인이라면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자신감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검을 들고 있어도 필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지나치면 오만하게 되고, 이는 곧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엽현은 잘 알고 있었다.
운검봉 뒷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엽현의 앞에 한 자루의 검이 부유해 있었다. 숲 전체엔 이미 그의 검의로 가득했다.
이때, 엽현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사방으로 까닭 없이 수많은 검광이 나타났다.
순공일검(瞬空一劍)!
그가 창검종에서 유일하게 터득한 검기인 순공일검이 사방에 펼쳐졌다. 이 순공일검은 앞으로도 발전의 여지가 많은 검기였다.
지난번 전쟁에서 그가 호계맹의 진 어법경 강자들을 암살할 때 사용했던 것이 바로 이 순공일검이었다.
엽현은 진 어법경이 되고 난 후, 공간도칙의 운용이 한결 수월해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지금 하려는 것은 공간도칙을 활용하여 순공일검의 위력을 배가시키는 일이었다.
엽현이 천천히 손을 휘젓자, 사방에 있던 떠 있던 검광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편, 엽현의 수련 장면을 몰래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월기와 고 사숙이었다.
월기가 고 사숙을 향해 말했다.
“소한(小娴) 사저. 방금 봤어요? 그의 순공일검은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군요.”
“원래의 검기를 살수의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 같구나.”
월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때 호계맹 무인들을 암살한 것은 바로 저놈이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내 생각도 그렇다.”
고 사숙, 아니 고소한이 다시 엽현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자질과 인품은 부족하지 않으나, 낯가죽이 너무 두껍구나.”
월기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두꺼운 걸로만 따지면 창검종 역사를 통틀어서 최강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지 않겠느냐. 최소한 손해는 보고 다니진 않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고소한이 진지한 표정으로 월기를 바라봤다.
“수련은 수련, 식사는 식사니 밥때를 놓치지 말라고 일러두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고소한이 장내를 떠나갔다.
“옳은 말이야.”
월기가 작게 중얼거리고는 엽현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밥 시간 돼서 밥하는 걸 잊지 말거라!”
월기가 고소한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
며칠 후.
엽현은 이미 자신의 검기를 최소 한 등급 이상 올려놓은 상태였다. 만약 지금의 그가 호계맹의 금색 장포인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승리는 장담하지 못하더라도, 참패하는 상황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엽현은 순공일검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마음먹고 숨어서 순공일검을 펼친다면, 팔 할의 확률로 상대를 제거할 자신이 있었다.
엽현은 이처럼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엽현이 호계맹과의 전쟁에서 스스로의 약함을 절실히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숲의 한복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엽현의 미간에 순식간에 공간도칙이 집중됐다.
이번에 그가 시도하려는 것은 공간도칙을 활용해 검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공간지검(空間之劍)!
엽현은 호계맹의 두 호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만약 그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얼마나 승산이 있을까? 아마도 채 일 할이 안 될 것이다.
그가 만약 대지검보다 더 강력한 공간지검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땐 이야기가 다를지도 모른다.
임종운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한 달여가 지나면 진진이 영허성궁의 무인들을 데리고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엽현은 그와 상관없이, 스스로 강해지길 원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 의지할 곳은 결국은 자기 자신뿐인 것이다.
사실 엽현이 공간지검을 시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엽현의 경지로는 공간법칙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었기에, 아쉽게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진 어법경이 되었기에, 그는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숲의 한 가운데서 엽현 주위의 공간이 돌연 떨리기 시작했다. 이 떨림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 듯,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사방에서 몰려든 공간지력(空間之力)이 응집되어 서서히 물과 같이 투명한 검의 모습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순간, 뜨거운 땀방울이 엽현의 등허리를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비록 진 어법경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공간법칙의 힘을 다루기에는 다소 부침이 있던 것이다.
엽현은 이를 악물고 견뎠다.
엽현이 양 손바닥을 마주 보게 놓고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느덧, 공간도칙이 재차 활성화됐다. 이내 공간지력이 다시 몰려들었다. 그러자 검날에 이어 천천히 검신(劍身)이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이 모습에 엽현은 마음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의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
쾅-!
공간이 돌연 폭발함과 동시에 엽현이 오공에서 피를 쏟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충격에 엽현의 몸이 지면 위에서 핑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팽이처럼 정신없이 돌기를 약 일각! 그제야 돌기를 멈춘 엽현이 바닥에 철퍼덕 쓰러져 기절했다.
이때, 월기가 미간을 찌푸리며 등장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엽현의 상태를 살피던 그녀는 엽현을 들쳐 업고 운검전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로부터 반 시진 후, 엽현이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키려던 엽현은 머리가 핑핑 도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엽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칙을 모으는 중에 마음을 흐트러뜨리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한심한 일이었다.
이때, 월기가 나타났다.
“방금 대체 뭘 하고 있던 게냐?”
월기의 질문에 엽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검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공간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공간의 도(道)는 심오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진 어법경 강자라 해도 아주 일부만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공간의 힘을 네가 어찌 해 보려는 것은 매우 위험해 보이는구나.”
“헤헤, 조금 방심했던 것뿐입니다.”
월기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아무리 주의한다고 하더라도 공간의 힘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만약 공간이 찢어지고 공간난류(空間亂流)에 갇히게 되면 너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알겠느냐?”
“공간난류?”
엽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월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공간이 강제로 찢기게 되면 그 안에 난류가 발생한다. 이 난류에 휩쓸리게 되면 설령 진 어법경 강자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뼈와 살이 으스러져 죽게 된다.”
월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는 결코 공간의 힘으로 검을 만들겠다느니 따위의 행동은 하지말거라. 알겠느냐?”
“하하, 사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정말로 방심하다 실수한 것뿐입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다음번에 또 공간지검을 만들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를 부르거라. 알겠느냐?”
“…….”
“알겠느냐!?”
엽현의 목소리가 엄해진 것을 깨달은 엽현이 황급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부! 걱정마십시오!”
그러자 월기가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엽현은 날이 밝자마자 수련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월기가 곁에서 참관하고 있었다.
퍽이나 엽현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엽현 역시 월기에게 숨기는 것 없이, 과감하게 공간도칙을 개방했다. 엽현의 이마에 공간도칙의 표식이 나타나자, 순간 월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저게 무슨…….”
그녀가 놀랄 틈도 없이, 이번에는 공간지력이 불어와 한 곳에 뭉치기 시작했다.
한순간, 공간이 다소 불안정해지자, 월기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뛰어 들어갈 셈이었다.
잠시 후, 엽현의 얼굴 앞에 투명한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은 이번만큼은 결코 방심하지 않고, 온 신경을 공간지력에 쏟아부었다. 비록 다소 부침은 있었지만, 마음만 흐트러지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이렇게 반 시진이 흘렀다. 엽현의 전신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그의 얼굴 역시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의 공간지검은 절반쯤 완성된 상황이었다.
이제 검신의 절반과 검병(劍柄)만 만들면 공간지검이 완성된다.
한편에서 이를 바라보는 월기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했다.
이때, 엽현 주위로 몰려드는 공간지력의 양이 갈수록 불어났다. 그러자 공간지검의 빈 부분이 채워짐과 동시에, 엽현 주위의 공간이 이전보다 더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에 월기가 엽현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녀의 눈은 주변의 사소한 변화에도 반응할 만큼 예민해져 있었다.
직감적으로 고비가 가까웠음을 느꼈던 것이다.
한편, 계옥탑 안. 조그만 체구의 소녀 하나가 막 계옥탑 이 층에서 살며시 빠져나왔다. 그녀는 다름 아닌 소령이었다.
탑 밖으로 나온 소령은 살금살금 탑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엽현도 없고 이 층 존재도 막 잠이 들었으니, 누구도 그녀를 제지할 자는 없었다.
이토록 놀기 좋은 기회를 그녀가 놓칠 리가 없었다.
어느덧 탑 꼭대기에 올라선 소령은 세 자루의 검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깜빡이던 그녀가 돌연 중간에 박힌 검을 끌어안았다. 그녀가 막 검을 뽑으려 하는 순간, 머릿속에 엽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코 검을 뽑아선 안 돼…….”
검에서 손을 뗀 소령이 다시 탑을 내려가려는 순간, 다시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다시 가운데 박힌 검을 바라보던 소령이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며 중얼거렸다.
“…근데 정확히 어떤 검을 뽑으면 안 되는지는 말한 적이 없잖아? 검을 뽑지 말라는 말은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두 개는 뽑아도 된다는 소리 아닌가?”
소령이 헤헤, 웃으며 다시 세 자루의 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녀의 발이 가장 우측에 있는 검으로 향하나 싶더니, 이내 중간에 있는 검 앞에 멈췄다.
소령이 흥분된 표정으로 두 팔을 벌려 검을 껴안았다.
“헤헤… 나도 이제 어검을 할 수 있겠지?”
순간 소령이 두 팔에 힘을 주고 검을 비틀었다.
계옥탑 밖.
엽현이 벼락을 맞은 듯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엽현은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