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20
320화 날 못 봤을 거야
엽현의 주변 공간은 마치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 월기가 엽현에게 달려왔지만, 공간의 힘이 폭발하며 그녀를 튕겨냈다.
쿵!
월기가 백 장 밖으로 밀려났다.
이때, 월기가 황급히 자신의 검을 꺼내 들고는 검과 함께 하나의 검광으로 변해 엽현을 향해 날아갔다.
월기의 검광은 엽현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간지력에 조그마한 틈을 만들었다. 월기가 그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엽현의 허리춤을 낚아챈 순간, 그녀와 엽현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엽현이 사라진 순간, 그가 있던 자리는 거대한 공간의 힘이 들이닥쳐 모든 것을 비틀어 버렸다.
계옥탑 안.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소령이 안고 있던 검에서 손을 뗐다. 바로 이때, 이 층 존재가 그녀의 바로 앞에 나타나 말없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소령이 두어 번 눈을 깜빡거리더니, 두 손을 얼굴을 감싸고 천천히 탑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날 못 봤을 거야… 날 못 봤을 거야…….”
바로 이때, 이 층 존재가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채더니, 탑 꼭대기에서 사라졌다.
운검전.
혼수상태에 빠진 듯 보이는 엽현이 침대에 고요히 누워있고, 그런 그를 월기와 고소한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엽현을 바라보는 월기의 이마에 깊게 주름이 팼다. 이때 그녀의 오른팔은 처참하게 갈라진 상태였다. 방금 전 공간지력에 의해 당한 상처이리라.
월기는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리자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공간지력, 그 힘은 검선인 그녀에게조차 위험한 힘이었다.
“그 힘을 다루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왜 허락한 것이냐?”
고소한이 다그치듯 묻자, 월기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실 거의 성공할 뻔 했어요. 다만 마지막 순간에 무슨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위험하다!”
“제가 막는다고 해도 이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을 거예요.”
“후… 네 말이 맞다. 이 녀석의 고집은 정말…….”
바로 이때, 문이 열리더니 창현이 들어왔다.
“종주의 호출이다. 연필봉으로 가자꾸나.”
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인 후, 창현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엽현. 그는 반 시진 후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깨어나서 가장 첫 번째로 그가 한 일은 계옥탑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방금과 같은 변고가 일어난 것은 분명 소령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엽현이 막 계옥탑 일 층에 들어서자,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엽현이 한쪽 구석을 바라보자, 소령이 무릎을 감싸 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엽현은 어이가 없어지려 했다. 아직 때리기도 전인데 벌써 울고 있다니!
선즙필승(先汁必勝)!
이때, 이 층 존재가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이때 그는 본체가 아닌 분신의 모습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 아이는 검을 뽑는 게 가능하다.”
이 층 존재의 말에 엽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탑 위에 꽂혀있는 검은 분명 탑의 봉인과 관련된 물건이었다. 그런 검을 아무나 쉽게 뽑을 수 있다는 게 엽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검은 원래 누구라도 뽑을 수 있다는 가능성. 둘째, 단지 저 아이가 특이할 가능성. 어찌 됐든…….”
이 층 존재가 엽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전, 저 아이가 중간에 멈추지 않고 검을 완전히 뽑았다면, 탑의 봉인은 최소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으로 네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지.”
엽현은 침묵했다.
그 역시 이 층 존재가 자신을 겁주려 하는 말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탑의 봉인이 풀리면, 과연 누가 탑 안의 존재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엽현이 고개를 돌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소령을 바라보았다. 순간,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무지 제어가 되지 않는 아이임이 틀림없었다.
엽현이 소령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소령이 고개를 들어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억울하다는 듯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었다.
“허 참, 기가 차서! 네가 왜 억울해? 방금 나 죽을 뻔한 거 알아?”
소령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근데… 안 뽑았잖아…….”
순간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엽현이 다그치듯 말했다.
“내가 뽑으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이때, 이 층 존재가 엽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 아이의 말은 네가 검을 뽑지 말라고는 했지만, 어느 검이 되고 어느 검은 안 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래서 한 자루만 남기고 두 자루는 뽑아도 될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소령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엽현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떻게 그 말을 그런 식으로 이해한단 말인가!
잠시 후, 엽현은 소령의 사고방식이 인간의 정상적인 사고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소령은 마치 자신이 사람인 양 행동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의 사고방식 중 절반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이때 소령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엽현에게 말했다.
“나, 나 때릴 거야?”
엽현이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말 해봐. 검을 뽑아서 얻다 쓰려고 했어? 혹시 사층에 있는 놈이 너한테 그러라고 시킨 거야?”
“그게… 그 검만 있으면 나도 너처럼 어검을 할 수 있다고 그랬어.”
‘역시 사층의 존재가 원흉이었군!’
엽현이 고개를 들어 계옥탑 위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사층 존재는 이 탑과 자신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엽현으로서는 대처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생각을 거둔 엽현이 소령에게 한 자루 검을 내밀었다.
“다음부터 무슨 문제가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내게 말 하도록 해. 알겠어?”
소령이 냉큼 검을 쥐어 들고는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알았어, 히히!”
방금까지 질질 짜고 있던 소령이 금방 환하게 웃자 엽현도 어쩔 수 없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령에게 어떤 악의가 있어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다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따끔하게 주의를 주는 것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이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소령과 잠시 놀아준 엽현은 탑을 빠져나와 다시 뒷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계속된 수련.
한 시진 후, 엽현의 눈앞에 한 자루의 검이 완성됐다.
마치 물이 뭉친 것처럼 투명한 검. 검의 주위 공간은 잔물결이 일 듯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공간지검(空間之劍)!
사실 전날의 시도에서 그는 공간지검을 거의 완성할 수 있었다. 오늘은 소령의 방해도 없는 데다, 이미 한 번 해봤던 일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공간지검을 뽑아낼 수 있었다.
눈앞의 공간지검을 바라보며 엽현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투명한 검 안에 응집돼있는 공간지력, 그 힘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엽현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엽현은 이곳에서 검을 시험해 볼 수 없었다. 이곳에서 검을 휘둘렀다간 온 창검종이 들썩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검을 다시 공간으로 돌려놓은 엽현은 품 안에서 전음석을 꺼내 들었다. 전음석에서 반가운 음성이 흘러나오자, 엽현은 빙그레 웃으며 곧바로 어검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얼마 되지 않아 엽현은 창검종의 산문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세 얼굴을 발견했다.
이들은 바로 묵운기, 백택 그리고 기안지였다.
엽현을 발견한 세 사람은 빠르게 달려와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이 세 사람을 호출한 것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잠시 그동안의 안부를 교환한 그들은 이내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묵운기, 백택은 이미 만법경에 오른 상태였다. 어풍비행(御風飛行)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막 그들이 커다란 구름을 빠져나왔을 때, 묵운기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엽 강도, 창란학원의 모두가 네가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어!”
백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란도병들과 구 공주가 이끌고 있는 십 인의 무인들은 이미 청주에선 무적이라 할 수 있지!”
“우선 조금만 더 기다려!”
엽현이 말했다.
현재 호계맹과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엽현은 창란학원의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엽현의 말에 묵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건 우리도 알아. 그저 우리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을 뿐이야.”
“하하하! 나도 빨리 다들 어떻게 변했을지 보고 싶군!”
엽현은 한시도 창란학원을 잊은 적이 없었다. 이는 기 원장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얼마 후, 네 사람은 커다란 산에 도착했다. 이 산의 정상에는 건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창란학원!
이곳이 바로 오래전 기 원장이 학생으로 있던 창란학원이었다.
엽현이 물끄러미 산 위의 학원을 바라보던 엽현이 소리쳤다.
“가자!”
바로 이때, 그들의 앞에 웬 중년인 하나가 나타났다. 중년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엽현 등을 바라보며 물었다.
“올해 학원 등록은 이미 마감됐다. 내년에 다시 오도록!”
엽현이 말했다.
“우리는 학생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온 것뿐이오.”
“사람?”
중년인이 눈썹 끝이 말려 올라갔다.
이때, 엽현이 기안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기 원장의 사부란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어?”
기안지가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말해 준 적 없어.”
엽현이 다시 중년인을 바라봤다.
“번거롭겠지만, 예전에 이곳 학생이었던 기운의 스승을…….”
“기운?”
중년인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 반역자를 말하는 것인가?”
‘반역자라고?’
순간, 엽현 등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에 중년인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아이들이로구나! 그러나 기운이란 자는 창란학원의 보잘것없는 반역자일 뿐이다. 그의 명성에 기대 우리 창란학원에 입학하려 한다면 그것은 꿈…….”
바로 이때, 장내에 검광이 번뜩이고, 중년인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느 틈에, 엽현의 검 끝이 중년인의 미간을 겨누고 있던 것이다.
“네, 네놈…….”
중년인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더듬자, 엽현이 검을 거두며 말했다.
“가서 전하시오. 엽현이 사람을 찾고 있다고.”
그 말에 중년인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이 청창계에서 엽현이란 이름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을까!
현재의 엽현은 맑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자, 잠시 기다려라!”
중년인이 다소 두려운 표정으로 엽현을 응시하더니 이내 장내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약 일각의 시간이 지났다.
이번에는 한 노인이 네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바로 창란학원의 원장인 구원(丘元)이었다.
엽현을 바라보는 구원의 표정은 다소 복잡했다. 그는 기원장과 엽현의 관계뿐 아니라, 그가 청주 창란학원의 원장인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엽현이 창란학원 본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엽현이 구원에게 포권을 취하며 예를 차렸다.
“우리 네 사람은 기 원장의 사부란 분을 뵙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그 말에 구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현재 폐관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다만, 이제 나올 때가 되었으니, 기다리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네 사람은 구원의 인도하에 한 동굴 입구에 도착하게 되었다.
“바로 이곳이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구원이 막 떠나려는 때, 엽현이 그를 향해 물었다.
“정말로 기 원장이 창란학원에서 퇴출된 것입니까?”
구원이 발걸음을 멈추고,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
“이는 고인이 된 기 원장의 평생소원입니다만… 혹시 그의 신분을 원래대로 되돌려 주실 수 없습니까?”
“이는 창란학원 내부의 결정이니 네가 함부로 언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자 엽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창란학원 젊은 무인들과 실력을 겨뤄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