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깐죽거리는 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기절해 있던 엽현이 서서히 깨어났다.
엽현이 눈을 뜬 곳은 공터가 아닌, 침대 위였다. 엽현이 고개를 돌려 보니, 미영천이 침대 머리맡에 고개를 묻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엽현이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끄덩이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방금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단 한 방이었다.
미영천의 주먹 한 방에 방금 엽현은 한 번도 뵌 적 없는 조상님을 만나 볼 뻔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엽현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이 층 존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녀의 힘은 매우 특수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강하지.]“어떻게 특수 하다는 거야?”
[그건… 귀찮으니, 직접 알아보도록!]‘아니 뭐 이런!’
엽현이 이 층 존재 때문에 화가 나 있을 때 미영천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엽현이 깨어난 것을 확인한 그녀는 다급히 그의 두 손을 꼭 붙들었다.
“오빠… 괜찮아요?”
엽현은 삭신이 쑤셨지만, 애써 태연한 척 웃었다.
그녀의 작은 주먹에 맞아 죽을 뻔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는 없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 나, 완전 괜찮아!”
미영천의 머리를 쓰다듬던 엽현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 센 주먹을 날릴 수 있던 거지?”
미영천이 자신의 작은 주먹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까지 내 안에 잠자고 있던 힘이 깨어난 것 같아요.”
‘잠자고 있던 힘이라고?’
“그것 말고 다른 특이사항은 없니?”
“없어요… 그저…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 말고는…….”
엽현이 조금 근심 섞인 표정으로 미영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이 소녀의 내력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듯했다.
이때, 이 층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
[남 걱정할 시간에 얼른 도칙이나 찾으시지!]“그런데 지금은 도칙의 기운이 느껴지지가…….”
[찾아!]“…….”
[도칙은 반드시 고무족 안에 있다! 이곳을 평지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샅샅이 뒤져야 한다!]엽현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잘 찾아볼게.”
곧, 자리에서 일어난 엽현은 미영천을 남겨두고 거리로 나섰다.
고무족 족장인 미영천의 허락하에, 엽현은 마을 안은 물론 부족 내 비밀스러운 곳까지 마음대로 들락날락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고대하는 도칙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점심 무렵이 되었다. 엽현은 한 늪지대에 도착했다. 형성된 지 매우 오래돼 보이는 늪은 짙은 독기마저 낮게 깔려 있었다. 이곳은 고무족에게도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함부로 접근하는 것이 금지된 지역이었다.
이곳에 발을 디디자마자 엽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그가 일반 무인이었더라면 한순간도 견디지 못할 만큼 강한 독기가 그를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돈지기로 무장한 그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어떠한 독기나 사물(邪物)도 혼돈지기에 의해 정화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늪에 떠도는 독기들은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어검술을 이용해 늪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도칙을 찾기 위해서라면 단 한 곳도 놓칠 수 없었다.
늪의 깊은 곳에 이르자, 도처에 시체들이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시체는 대부분 요수들의 것이었지만, 간혹 사람으로 보이는 뼈들도 있었다.
문득 그가 발밑을 내려다보자, 물고기라도 있는지 늪에 파문이 이는 것이 보였다.
엽현이 무시하고 계속 지나가려는 순간, 늪 속에서 돌연 시뻘건 입이 튀어나와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악어 형상을 한 거대한 요수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피부에 붉은 눈을 희번덕이며 달려드는 놈의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엽현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쿵!
엽현의 검에 가격당한 요수가 다시 어두운 늪 속으로 사라졌다.
순간 엽현은 자기도 모르게 낮은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비록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의 검이 요수의 딱딱한 피부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단단한 놈이군!’
바로 이때였다. 이번에는 방금 사라진 요수의 반대편에서 파문이 일었다. 고개를 숙여 자세히 늪 속을 바라본 엽현이 순간 깜짝 놀랐다. 늪 전체가 요수 천지였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요수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엽현을 향해 눈알을 굴렸다.
이 장면을 본 엽현이 갑자기 몸에 소름이 끼쳐 그대로 늪을 빠져나가려 했다. 바로 이때, 이 층 존재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다! 여기에서 기운이 느껴져!]‘도칙이 이곳에 있다고?’
“어, 어디에?”
[바로 네 발밑에!]그 말에 엽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나더러 지금 이 늪 속으로 들어가라고? 나랑 장난해!?”
엽현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아무리 그가 진 어법경이라지만 이렇게 많은 요수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그 안으로 뛰어들라는 것인가?
바로 이때, 침묵하던 이 층 존재가 엽현의 앞에 현신했다.
잠시 엽현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 층 존재가 아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순간, 그가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호수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강대한 요수의 기운이 늪 전체를 강타하자, 고개를 내밀고 있던 요수들이 잽싸기 호수 밑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늪지대는 다시 예전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이에 깜짝 놀란 엽현이 말 대신 입을 뻥긋거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이층 존재 역시 요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층 존재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한쪽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 뒤를 엽현이 검을 타고 따랐다. 잠시 후, 늪의 어느 지점에서 멈춘 이 층 존재가 앞발로 늪을 가볍게 긁었다. 그러자 녹초가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낡은 돌계단이 나타났다.
그 순간 엽현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설마 늪 속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단 말인가?’
이때, 이 층 존재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엽현은 떠밀리듯 돌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층 존재는 다시 계옥탑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계옥탑 밖에서 오래 머무르지는 못하는 듯했다.
계단을 내려서자 놀랍게도 컴컴한 동굴이 펼쳐졌다. 동굴 안으로 진입하면서 엽현은 도칙을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첫 번째 도칙은 천녀의 도움으로 간신히 해결했다. 그리고 두 번째 도칙을 찾으러 갔을 땐, 자칫하면 영원히 동굴 속에 갇힐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맞이했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도칙에 근접한 상황. 이번에도 그는 무사히 도칙을 구해 나올 수 있을까?
어찌 됐건, 최대한 조심히 접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따라 내려가길 반 시진, 드디어 동굴의 끝이 나왔다.
동굴 바닥에는 커다란 궁전이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앞에는 한 무더기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적게 잡아도 백여 구의 시체였다.
이를 본 엽현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이번에도 쉽게 가지는 못할 듯했다.
엽현은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부패한 정도로 볼 때, 매우 오래전에 죽은 자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기이한 점은, 시체가 상처 한 점 없이 모두 말끔하다는 것이었다. 시체들의 자세 또한, 마치 자다가 죽은 듯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거참, 이상하군!’
“분명, 평범한 곳은 아니야…….”
[왜, 겁나?]이 층 존재의 물음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두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매사에 신중을 기하려 할 뿐이었다. 언제나 사고라는 건, 방심할 때 일어나는 것이니까!
엽현은 시체들을 지나쳐 궁전을 향해 걸어갔다. 몸 안의 모든 세포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지만, 이 층 존재와 약속한 이상, 반드시 도칙을 찾아야만 했다.
어느새 궁전 문 앞에 다다른 엽현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열어젖혔다.
궁전 안은 별다른 장식도 없이 텅텅 비어있는 듯했다. 엽현이 걸음을 옮기자, 그의 발자국 소리가 공허한 메아리처럼 대전 안을 가득 메웠다.
이때, 그의 앞에 홀연히 노인 하나가 등장했다. 노인은 거의 얼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가 굽어 있었고, 얼굴 전체에는 독고름이 흉측하게 달려 있었다.
엽현은 노인을 바라보았고, 노인 역시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 할 때,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놈도 ‘그것’ 때문에 온 것이냐?”
‘그것?’
“그렇소!”
엽현이 당당하게 외쳤다.
이때, 노인이 엽현을 향해 기분 나쁘게 히죽히죽 웃어 보였다.
그러자 엽현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노인장, 무슨 장난이라도 치려 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장난?”
노인이 차갑게 웃었다.
“궁전 입구에 쌓인 시체를 보았겠지? 잠시 후… 너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하하!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네 놈이 누군데?”
“음… 됐소. 사람은 겸손해야 하는 법이니……. 이쯤에서 그만둔다면 나도 그냥 돌아가겠소.”
“하하하하! 돌아간다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냐?”
“누가 날 막기라도 한단 말이오?”
말을 마친 엽현이 들어왔던 문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바로 이때, 그의 앞에 무형의 기운이 나타나 그의 걸음을 막아 세웠다.
엽현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엽현이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기분 나쁜 웃음을 보였다.
“나를 쳐다봐야 소용없다. 노부도 이곳에서 이미 백 년이나 갇혀 있었으니까.”
‘백 년이라고?’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이오!”
“글쎄다… 너는 누구일 거라 생각하느냐?”
바로 이때, 엽현의 머릿속에 이 층 존재의 음성이 들려왔다.
[도칙, 도칙이 이곳에서 느껴진다!]“어떡할까? 탑의 힘으로 놈을 잡아들일까?”
[일단 기다려!]이 층 존재의 목소리가 다소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칙은 지금 널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이는 놈이 어느 정도 의식을 회복한 상태라는 의미다.]“도, 도칙이 의식을 갖고 있어?”
엽현이 다소 당황하며 묻자 이 층 존재가 차갑게 말했다.
[천지만물에겐 모두 영혼이란 것이 있다. 하물며 도칙 같은 존재에게 그것이 없을까? 네가 대지도칙과 공간도칙을 그리도 간단히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잠들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깨어나 나쁜 마음을 품는다면, 청창계 하나쯤 순식간에 날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순간, 엽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도칙은 강력한 계옥탑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단순할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이 층 존재의 말대로 의식을 갖춘 도칙이 그리도 강하다면,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이 층 존재가 엽현의 머릿속이라도 꿰뚫고 있다는 양 말했다.
[당시 탑이 타격을 입었을 때, 도칙과 탑의 법칙 그리고 여러 가지 근간이 모두 심대한 손상을 입었다. 비록 의식을 차리기는 했으나, 예전만큼 강하진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그럼,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깐죽거리는 거. 도칙을 열 받게 해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