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막지말고 꺼지거라
다시 천유종의 산문으로 나온 엽현. 이때, 엽현은 아까까지만 해도 있던 노인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새 떠났나?’
엽현은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자리를 떠났다.
다시 왔던 대로 계단을 따라 늪지대를 빠져 나온 엽현은 어느 공터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조금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 일어났던 일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세 번째 도칙을 발견한 것도 모자라 천유종의 어마어마한 보물까지 차지했다. 엽현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천유종에서 얻은 보물의 양은 엄청났다. 그가 앞으로 돈 걱정 안하고 평생 펑펑 써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의 재산이었다.
물론 그 전에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엽현은 다시 자신의 위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재빨리 상기했다.
그리고 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수련뿐이었다.
엽현은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미영천에게 작별을 고한 후, 창검종으로 돌아왔다. 이때의 창검종은 바늘하나 들어갈 틈 없이 빽빽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모두들 조만간 호계맹이 다시 쳐들어올 거란 걸 알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것이다.
한편, 세 번째 도칙이 탑에 돌아온 후, 이 층 존재는 도칙을 데리고 이 층으로 들어갔다. 소령 역시 졸래졸래 따라 들어갔지만, 야단이라도 맞았는지 풀이 죽은 상태로 이내 이 층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 층에선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엽현은 몇 번이나 불러도 이 층 존재가 대답을 하지 않자, 직접 계옥탑으로 들어왔다. 그는 곧장 이 층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소령에게 묻자, 그녀는 잔뜩 심통 난 표정으로 이 층 존재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아 갔다고 대답했다.
그 장난감이란 세 번째 도칙을 말하는 것이리라.
엽현은 이 층 존재가 곧 밖으로 나올 것이라 소령을 위로해줬다. 그리고는 곧장 수련에 들어갔다.
이번에 그가 하려는 것은 깨달음이었다.
현재 그의 검기와 경지는 아무리 수련해도 더이상 오르지 않는 상태였다.
유일하게 그가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검도의 경계였다.
검선(劍仙)!
만약 검선이 된다면, 육 존주와 같은 강자와도 한 판 붙어볼 수도 있었다.
운봉산 꼭대기.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엽현이 마치 입적한 노승과 같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늘로 벌써 열흘째였다.
엽현이 수련하는 동안 월기와 고소한은 매일 같이 산으로 올라와 한두 시진씩 엽현을 바라보다 돌아가곤 했다.
그녀들뿐만이 아녔다. 진북한 역시 때때로 엽현의 상태를 멀리서 지켜보곤 했다.
그중에는 검현도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그는 반나절 동안이나 엽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처음엔 다소 걱정스러웠던 듯한 그의 표정은 떠나갈 때쯤에는 기쁨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편, 하늘 위에서 엽현을 바라보는 임종운의 눈에는 근심이 서려 있었다.
만약 영허성궁의 강자들이 제때 오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임종운이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를 떠났다.
* * *
호계맹.
창검종과의 일전 이후, 호계맹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꽈리를 틀고 기다리는 뱀 같았다.
대전 안에서 육 존주가 의자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두 손은 가지런히 양 무릎에 놓여 있었고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 주변에는 기이한 기운이 그를 맴돌고 있다.
육 존주가 마침내 두 눈을 번쩍 떴다.
“닷새, 닷새만 더 기다리면 주상께서 친히 광림하신다.”
닷새!
그 말에 대전에 있던 자들의 얼굴에 환희가 비쳤다.
지금으로부터 오 일 후, 창검종은 사라질 것이다.
* * *
어두운 우주. 한 척의 성운함이 별 사이를 전속력으로 뚫고 지나가고 있다.
성운함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어느 성역 안에 있는 궁전.
이때, 노인 하나가 성운함 안에서 빠르게 튀어 나왔다. 그 노인은 다름 아닌 막 청창계에서 돌아온 진진이었다.
진진이 궁전에 도착하자 대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영허성궁의 궁주 임허(林虛)였다.
“궁주, 찾았습니다!”
진진의 말에 임허가 황급히 되물었다.
“그는 어디 있느냐? 아니, 도대체 왜 그와 함께 오지 않은 것이냐?”
“그것이…….”
진진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 있는 한 세력이 그를 데려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빨리 가지 않으면 그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순간, 임허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어떤 세력이기에 그러느냐?”
“일개 삼류 세력일 뿐입니다. 허나, 그들의 우두머리로 있는 자는 저와 임종운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강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영허성궁이란 것을 말했느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외진 곳에 있는 자들이다 보니 우리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임허가 또 다시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바로 뒤엔 어느새 한 명의 여인이 다가와 있었다.
공포스러운 그녀였다.
그녀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임허는 순간 숨 쉬는 것도 잊을 뻔했다.
임허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나오셨습…….”
“어디있느냐!”
“이, 이곳에서 한 달 반을 가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미앙성역(未央星域)이란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한 달 반이라고?’
소복녀는 더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떠나고 한참 후, 임허와 진진은 폐 안에 있던 모든 공기를 한 번에 몰아내는 듯 크게 한숨을 쉬었다.
갔다!
드디어 갔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시간 동안 영허성궁 모든 무인들이 얼마나 마음 졸이며 살았던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순간들이었던 것이다.
만약 임종운과 진진이 그를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그들의 영허성궁은 사라져버렸을 수도 있었다.
“궁주, 그 여인이 어디서 흘러온 자인지 짚이는 바가 있으십니까?”
진진의 물음에 임허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내 생각엔 그곳의 존재인 것 같다.”
그 말에 진진의 표정이 굳었다.
“오유계(五维界)?”
“그럴 가능성이 높다.”
순간 진진은 등줄기에 서늘함을 느꼈다.
“만약 그렇다면…….”
임허가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일로 내 깨달은 것이 있다. 비록 우리 영허성궁이 약하진 않지만, 절대 강자 앞에서는 여전히 갓난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엔 최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더 강한 자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직 멀었다. 더 강해져야만 한다!”
임허가 무언가 생각난 듯 진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강자 몇몇을 데리고 당장 미앙성역으로 가거라. 그 호계맹이라는 놈들이 감히 우리의 체면을 짓밟은 이상, 그 죗값을 치르게 해 줘야 할 것이다.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감히!”
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참…….”
임허가 돌아서려 하는 진진을 돌려세웠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그 소년과도 잘 사귀어 놓아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진이 떠나고 임허는 홀로 남았다.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호계맹이라… 어찌 이런 존재를 건드려서, 부디 잘 가시게…….”
* * *
망망한 우주 속. 하얀 소복녀의 신형은 마치 별똥별이 떨어지듯 성공(星空)을 꿰뚫으며 흘러갔다.
그 엄청난 속도 덕분에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근처의 별들이 요란하게 진동칠 정도였다.
그녀가 거침없이 별들을 지나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주에 울려 퍼졌다.
“감히 누가 평화로운 성공을 혼란스럽게 한단 말인가!”
이와 동시에 한 줄기 강대한 기운이 소복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작은 계(界) 하나쯤은 간단히 지워버릴 만한 기운이었다.
그러자 여인이 무표정으로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살며시 눈을 찡그리자,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 검광이 나와 날아오던 기운을 부수고 나갔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참혹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너는 누구냐!”
이때, 한쪽 성역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여인이 양손을 뒤로 한 채 차갑게 소리쳤다.
“막지 말고 꺼지거라.”
“우리가 성역의 질서를 수호하는 자들임을 모르는…….”
소복녀가 말했다.
“늦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거라.”
말과 동시에 여인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대신 한 줄기 검광이 목소리가 울려 퍼진 성역을 향해 번뜩였다.
서걱-!
잠시 후,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 하나가 검은 우주 속에 둥둥 떠올랐다.
이런 일은 여인이 다른 성역에 이를 때마다 벌어졌다. 그리고 그녀를 막는 자들은 예외 없이 똑같은 결말을 맞게 되었다.
* * *
구름이 자욱한 어느 산봉우리. 눈처럼 하얀 치마를 입은 여인이 정면을 주시한 채 서 있다.
안란수였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는 그녀 곁으로 노인 하나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무슨 일이오?”
안란수가 가볍게 말하자, 노인이 다소 망설이다가 운을 뗐다.
“며칠 안에 호계맹의 주상이란 자가 도착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창계검주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창검종은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안란수가 굳은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안란수가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자 노인이 안란수의 앞을 막아섰다.
“아가씨, 가주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창검종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안란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가지 않으면 그가 정말로 위험할 것이오.”
“하지만, 아가씨. 호계맹의 주상과 같은 존재를 상대로 아가씨 한 사람이 더 있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안란수가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래서 더 가야만 하오.”
안란수가 노인을 지나쳐 가려는 순간, 노인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아가씨… 기어코 가주의 명을 어기고자 하신다면, 이 늙은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때, 안란수가 노인을 향해 번개처럼 일 장을 뻗었다.
꽝-!
마치 바위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노인이 백장 밖으로 밀려났다.
자리에 멈춰선 노인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안란수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정녕…….”
“그만 하시오. 더 이상 내 앞을 막는다면 그대라 하더라도 가만두지 않겠소.”
노인을 잠시 바라보던 안란수가 이내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노인은 장내에 홀로 남았다. 그는 방금 안란수에게 가격을 당한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역시…… 이렇게까지 강해지시다니……. 창계검주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녀를 쉽게 막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 더더욱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겨선 안 되지!”
이 말을 끝으로 노인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