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겠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엽현 역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주시했다. 공중에 고고하게 떠 있는 백발 중년인은 마치 깊은 심해처럼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었다.
양손을 뒷짐 진 채 엽현 등을 바라보는 중년인의 시선은 지난번 때와 마찬가지로 오만과 멸시로 가득 차 있었다.
“창검종…… 창계검주가 아직 살아 있다면 한 번 해볼 만 했을 것이거늘, 애석하도다…….”
이때, 백발 중년인의 시선이 진북한에게로 향했다.
“지난번처럼 참선검진을 사용하려느냐? 자, 네게 기회를 줄 테니 어디 한 번 발버둥 쳐보거라.”
절대적인 실력에서 오는 자신감, 그리고 오만함이었다.
그 말을 들은 진북한이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거의 폐허가 되어 버린 창검종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진북한이 무언가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창검종 무인들을 향해 외쳤다.
“창검종 제자들은 듣거라! 무인은 죽고 검은 부러진다! 하지만 창검종의 기개는 절대 꺾여선 안 된다!”
말과 동시에 진북한의 신형이 공중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윙-!
주인의 결심을 알아차린 듯, 진북한의 검이 응답했다.
공중에서 이를 바라보던 백발 중년인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버러지가 주제도 모르고…….”
순간, 중년인이 아래쪽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한 줄기 금색 광선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이윽고, 금색 광선에 닿은 진북한의 검광이 소멸된 순간, 진북한이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네게 주는 나의 자그만 선물이다!”
말과 동시에 진북한의 복부가 급속도로 팽창했다. 그리고는!
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하늘이라도 무너뜨릴 것만 같은 강대한 기운이 천지를 뒤엎었다.
자폭!
파공경 강자의 모든 기력이 담긴 엄청난 기운이 백발 중년인을 뒤덮어갔다.
하지만 백발 중년인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다, 가볍게 손바닥을 내리눌렀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로부터 거대한 무형의 압력이 뿜어져 나와 진북한의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을 그대로 뭉개버렸다.
모든 기운이 사라지고, 하늘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이 모습을 본 무인들이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무상지경(無上之境)! 저 힘은 무상지경이 틀림없다…….”
“저렇게나 강하다니… 창검종이 드디어 임자 만났구나!”
“애당초 호계맹과 싸우려 든 것이 어리석은 일이었지…….”
한편, 창검종의 제자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비통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야말로 절망적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진북한이 생명을 담보로 펼쳐 낸 공격을 상대는 힘 하나들이지 않고 막아낸 것이 아닌가!
이 정도의 강자는 그들의 눈에는 그저 신으로 보일 뿐이었다.
엽현 역시 반쯤 체념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엽현은 중년인을 상대로는 계옥탑의 힘을 개방한다 한들 부족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계옥탑이 약한 것이 아니라, 엽현 스스로의 경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계옥탑을 쓰고도 어쩔 수 없는 상대라면, 엽현에게도 더이상은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이때, 검현이 백발 중년인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백발 중년인의 시선이 검현에게로 향했다.
“나쁘진 않지만, 역시 너무나 약하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대답과 동시에 검현이 빠르게 수인을 맺더니, 손가락 하나를 자신의 미간에 위치시켰다.
윙-!
어디선가 검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투명한 검 하나가 검현의 미간 사이에 나타났다.
이를 본 월기가 소스라치듯 놀라며 중얼거렸다.
“인검합일(人劍合一)…….”
‘인검합일?’
“사부, 그게 무엇입니까?”
엽현의 물음에 월기가 말했다.
“그것은 일종의 검도 경지다. 대검선을 뛰어넘어야만 펼칠 수 있는… 설마 대사형이 벌써 이런 경지였다니……. 아니, 아직 그것에 미치지 못했는가?”
한편, 검현을 바라보던 백발 중년인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인검합일이라니… 하지만 진정한 인검합일에는 다소 부족하군. 앞으로 십 년만 더 있었더라도 본주와 일전을 기대해 봐도 좋았을 터! 아쉽구나…….”
그때, 검현이 백발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검현의 체내에서 하나의 검의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갔다.
이를 본 월기의 표정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백발 중년인 역시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생명을 담보로 기운을 끌어 올린 것인가? 너 역시 이미 죽을 생각을 한 모양이구나.”
그가 말을 마치며, 검현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위의 공간이 찢어지는 동시에, 거대한 손가락 하나가 출현했다. 손가락의 등장으로 인해 천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손가락의 기운을 담기에는 천지 공간이 너무나 빈약했던 것이다.
무인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한 줄기 검광이 거대한 손가락에 닿았다. 그 순간이었다.
쾅-!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거대한 손가락이 산산조각났다. 그 폭발 가운데 나타난 검현이 어느새 백발 중년인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검은 상대의 손바닥에 너무나도 쉽게 막혀버렸다.
백발 중년인을 마주한 검현이 돌연 소리쳤다.
“파(破)!”
외침과 동시에 검현이 양손으로 검을 부여잡고, 맹렬히 회전시켰다. 이때, 백발 중년인의 손바닥이 주먹으로 바뀌었다.
쾅-!
중년인의 일 권에 검은 부러지고, 검현은 수백 장 멀리 날아갔다. 그가 아직 하늘을 날고 있는 순간, 백발 중년인이 검현의 앞에 나타나 검현의 복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검현의 몸이 갑자기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백발 중년인이 검현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나의 힘을 조금 알겠느냐? 이것이 신과 인간의 차이라는 것이다.”
백발 중년인이 천천히 손을 회수했다. 그러자 검현의 몸이 계속해서 희미해지더니 결국 공기처럼 투명해졌다.
“사부… 부디 무능한 제자를…….”
마지막 한 마디도 채 끝맺지 못한 채, 검현은 그렇게 소멸됐다.
검현의 전사.
이제 창검종에 남은 진 어법경 강자는 단 여섯. 그 중 육검선은 월기, 고소한 그리고 창현이 전부였다.
하지만 창현은 이미 심각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명확한 창검종의 패배였다.
이로써 천 년의 걸친 창검종과 호계맹의 싸움은 결국 창검종의 패배로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무인들의 시선은 엽현에게로 옮겨갔다. 장내 모든 무인들은 오늘 엽현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이 년만 더 지나면, 그의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리라.
백발 중년인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엽현을 구석구석 살피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현보다도 더 뛰어난 재능이로구나.”
이때, 백발 중년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듣자하니, 네 배후에 강한 자가 있다던데… 지금 어디 있느냐? 본주가 몹시 궁금하구나.”
그러자, 엽현의 근처에 있던 임종운이 백발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단언컨대, 그녀 앞에서 그대는 일초지적(一招之敵)도 되지 않을 것이오.”
백발 중년인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임종운을 바라보았다.
“너는 그때의 영허성궁?”
“그렇소!”
“흠…….”
백발 중년인은 더 이상 임종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더니, 엽현을 향해 물었다.
“어찌, 그녀는 오지 않는 것이냐?”
엽현이 히죽거리는가 싶더니, 돌연 백발 중년인을 향해 검을 들고 날아갔다.
이를 본 호계맹의 무인들은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백발 중년인이 가볍게 손짓하자, 엽현은 곧장 원래 있던 곳으로 추락했다.
쿵-!
엽현이 발을 디딘 곳의 땅이 크게 울리더니 길게 갈라졌다.
뒤이어, 백발 중년인이 손가락으로 엽현을 가리키자, 엽현의 머리 위 공간이 열리는 동시에 한 줄기 광선이 엽현을 향해 떨어졌다.
바로 이때, 귀신같이 나타난 임종운이 광선을 향해 일 장을 휘둘렀다.
쾅-!
임종운과 엽현이 동시에 튕겨져 날아갔다. 엽현이 다시 지면에 발을 디딘 순간, 그의 입에선 한 줄기 선혈이 새어 나왔다.
백발 중년인이 다시 출수하려는 순간, 돌연 안란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안란수를 본 중년인이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을 보였다.
“엽현 같은 천재가 하나 더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순간, 안란수는 상대가 언제 출수했는지도 모른 채, 백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백발 중년인이 안란수를 끝장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번에는 웬 노인 하나가 안란수의 앞을 막아섰다. 노인이 백발 중년인을 향해 예를 올렸다.
“노부는 안 가 가주 안재천(安在天)이라 하오. 우리 안 가는 호계맹과 적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이쯤에서 멈춰주길 바라오.”
그러자 백발 중년인이 안재천을 한 번 쳐다보고는 싸늘하게 외쳤다.
“이미 늦었다!”
백발 중년인의 벼락같은 일 권이 안재천을 향해 떨어졌다. 그러자 안재천이 황급히 양손을 교차해 맹렬히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바로 앞 공간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쾅-!
안재천이 만들어 낸 공간의 방패가 순식간에 찢어져 나가고, 깜짝 놀란 안재천은 재빨리 안란수를 데리고 멀리 후퇴했다.
백발 중년인은 안재천과 안란수에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번에는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자가 결국 나타나지 않는 것 같으니, 더이상 시간 끌 필요가 없겠구나.”
그의 말과 동시에 강대한 기운이 엽현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엽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었다.
하지만 엽현은 그저 가만히 서서 죽음을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입술을 깨물며 마지막 항전을 하려는 순간, 그의 앞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월기!
월기가 양손으로 검을 잡고 맹렬하게 휘두르니, 한 줄기 검광이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
쾅-!
검이 산산조각 나는 동시에, 월기 역시 백 장 밖으로 날아가서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를 본 엽현은 거의 이성을 잃어갔다.
이때, 그의 귓가에 백발 중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버러지들.”
뚝. 엽현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엽현이 괴성을 지르는 순간, 강대한 압력이 하늘 높이에서 발생했다.
그와 동시에 엽현의 미간 사이에 다시 한번 작은 탑이 드러냈다.
이때, 탑 안에서 누군가 다급히 외쳤다.
“더 이상은 안 돼!”
엽현은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계옥탑 전체가 흔들리며 무언가 사라지고 있었다.
엽현은 전신에 발작을 일으키며, 오공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때, 계옥탑 안에서 별안간 강대한 기운이 나타났다. 이 기운은 호계맹의 주상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하하하하!”
누군가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탑을 가득 채우는 순간, 계옥탑 꼭대기 중앙에 박힌 검이 가볍게 떨렸다. 잠시 후, 한 줄기 검광이 탑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 순간 계옥탑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유일하게 계옥탑 꼭대기 가운데 검만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가벼운 검명 소리가 검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응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