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봉경이 엽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탑 안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네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곳에서 수련할 수 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 말하려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불현 듯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칙이다!]엽현이 순간 동작을 멈췄다.
이 목소리는 이 층 존재가 아닌, 사 층 여인의 것이었다.
이때, 엽현이 차갑게 소리쳤다.
“도칙은 무슨 도칙.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사 층 여인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엽현 역시 아쉬울 것은 없었다. 지금 도칙이 없이도 계옥탑은 무척이나 안정적인 상태였다.
‘서두를 것 없어! 서두르면 지는 거야!’
“무슨 생각을 그리하느냐? 어서 가서 접수하도록 해라.”
엽현이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사부는 저와 가지 않으십니까?”
“내 임무는 너를 여기 데려다 놓는 것까지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엽현이 예를 차리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그런 엽현의 뒷모습을 보며, 봉경은 흐뭇한 미소 지었다. 그와 같은 외원 사부에겐 젊은 무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훗날, 저들이 완전히 자라나게 되면 그로부터 얻는 이점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모든 제자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장래가 촉망돼 보이는 천재들, 바로 엽현 같은 자들에게만 관심을 주었다.
봉경이 시선을 떼고 돌아섰다. 그의 역할은 엽현이라는 싹을 심는 것까지였다. 후에 그가 자신을 기억해 줄지 말지는 엽현 자신이 결정할 일이었다.
* * *
잠시 후, 엽현은 내원 접대전(接待殿)에 도착했다. 접대전 안에는 한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한껏 몸을 뒤로 젖혀 거의 눕다시피 탁자에 다리를 올려놓고선, 붓을 입에 물고서 들어도 들어도 알 수 없는 곡조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엽현이 들어오자 남자는 겨우 눈알만 굴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신입?”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은 알고 있나?”
엽현이 고개를 젓자, 남자가 빈손을 내밀었다.
“자원정 삼천 개!”
“없소.”
순간,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면 몸으로 때울래?”
“그건 환영이지!”
그 말과 동시에 남자가 양손으로 탁자를 집고서 엽현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그 맹렬한 기세에 공간이 순간 일렁일 정도였다.
엽현이 본능적으로 왼손을 들어 상대의 발을 막아냈다.
쿵-!
순간, 엽현이 뒤로 십여 장 밀려났다.
‘강하다!’
과연 봉경의 말이 옳았다. 내원에서 처음 만난 자조차 이렇게나 강하다니.
이때, 남자가 손바닥을 툭툭 털며 엽현을 향해 다가왔다.
“왜 이리 약해? 혹시 학원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들어오게 된 거 아냐?”
엽현은 대답 대신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그의 손 위에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이를 본 남자는 다소 흥분한 듯했다.
“이제 보니 검수였구나! 자,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한번 보자!”
엽현이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한 발 내딛으며 검을 뻗어 냈다.
엽현의 검에 담긴 기세를 본 순간, 남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남자가 황급히 오른손 주먹을 쥐고 정면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그의 주먹에서 반쯤 투명한 요수의 형상이 홀연히 나타났다.
쾅-!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밀려났다.
벽 끝에 부딪쳐 멈춰선 남자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그의 손엔 깊은 검흔이 생겨나 있었다.
조금만 깊었더라면 손이 날려 나갔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남자가 고개를 들어 엽현을 바라보았다.
“검선?”
엽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엽현을 바라보더니, 엽현의 앞으로 영패 하나를 날렸다.
영패 앞면에는 작은 글씨로 ‘內(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원 학생을 상징하는 영패였다.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오랜만에 용돈이나 좀 벌어보나 했더니.”
다시 자리에 돌아가 남자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원정이 필요한가?”
엽현의 말에 남자가 엽현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왜, 적선이라도 해 주려고?”
“하하하! 이렇게 장사하다간 굶어 죽기 적당할 것 같은데?”
“흥, 그럼 달리 뾰족한 수라도 있나?”
엽현이 웃음기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힘으로 뺏으면 간단하지 않나?”
“날더러 강도짓을 하라는 건가? 누구를?”
엽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그야 자원정이 있는 자들이 되겠지?”
“…설마 내원 사람들을 건드리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바로 맞혔다!”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이라 잘 모르나 본데, 여긴 괴물들만 득실득실하다고!”
“…만약 그대의 손을 빌리고자 한다면 건당 얼마가 적당할까?”
“내 손을 빌린다……. 이 몸을 움직이려면 최소 자원정 만 개는 필요하다.”
순간, 엽현은 표정 관리를 하기 어려워졌다.
이건 엽현에게는 공짜나 다름없었다.
엽현에게 있는 자원정은 총 팔십만 개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은 수의 강자들을 초빙할 수 있으리라!
눈 깜짝할 새, 남자의 앞으로 납계 하나가 날아갔다.
자원정 만 개였다.
납계를 확인한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슨 뜻이지?”
“나를 위해 한 번 싸워 줄 수 있나?”
“…백 번도 가능하다!”
남자가 납계를 품에 집어넣었다.
“소과(箫戈)라 한다.”
“난 엽현. 참, 주변에 같이할 만한 사람이 있나? 돈은 신경 쓰지 말고.”
순간, 소과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체 뭘 하려는 속셈이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나를 위해 싸워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다른 건 더이상 묻지 말고… 한 번 움직이는 데 자원정 만 개씩. 간단하지 않나?”
엽현을 잠시 바라보던 소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기다려라. 함께 할 만한 자들을 데려오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과는 한 남자와 여자 하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왠지 낯이 익은 얼굴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둘은 얼마 전 백과원에서 엽현에게 시비를 걸었던 백령과 소잠이었다.
백령이 차가운 얼굴로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엽현의 검이 눈부신 검광을 뿜어내며 두 사람을 향해 떨어졌다.
이에 백령은 깜짝 놀랐지만, 순식간에 기지를 발휘하여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들고 있던 채찍을 뿌렸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백령이 벽이 있는 곳까지 밀려났다. 하지만 그녀가 숨 쉴 틈도 없이, 엽현의 비검이 다시 한번 그녀의 목을 노렸다. 바로 이때, 한 자루 장도(長刀)가 날아와 비검을 덮쳤다.
땅-!
장내에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비도가 튕겨 나갔다.
백령 앞에 선 소잠이 말했다.
“네가 우리 둘을 당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엽현의 검이 소잠의 머리 위로 하얀 검광을 뿌렸다.
“치잇-!”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오는 검을 향해 소잠이 본능적으로 도를 들어 올렸다.
땅-!
소잠이 튕겨 나가는 동시에, 어디선가 나타난 두 자루 비검이 그를 추적했다.
다소 놀란 표정의 소잠이 이를 악물며 양손으로 도를 잡고 맹렬히 휘둘렀다. 공간마저 찢어발길 듯한 패도 넘치는 일 도!
쾅-!
가까스로 비도는 튕겨 냈지만, 소잠은 그대로 십여 장 뒤로 날아갔다.
주륵.
멈춰선 소잠의 입가에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소잠과 백령 두 사람의 낯빛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엽현의 실력이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바로 이때, 장내에 예닐곱 명의 젊은 무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모두 내원의 학생들인 듯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엽현에게로 향했다. 엽현의 얼굴이 생소한 탓이었다.
엽현이 웃는 얼굴로 소잠과 백령 두 사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설마 둘이서 날 동시에 공격하려는 생각은 아니지?”
그 말에 장내 무인들의 시선이 모두 백령과 소잠 두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그러자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설마… 그러려고 했던 거야?”
“흥! 네 놈 하나를 상대로 나 하나면 족하다!”
소잠이 살기등등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하하! 아주 좋아! 배짱 있어!”
순간 엽현이 제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소잠 바로 앞에 나타났다. 소잠이 그를 인식하는 순간, 이미 한 줄기 검광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아무런 기교도, 포장도 없는 단순한 일 검!
소잠은 피할 겨를도 없이 오른발로 지면을 강하게 밟으며 날아오는 검을 향해 자신의 도를 맹렬히 휘둘렀다.
쾅-!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폭음성과 함께 소잠이 주르륵 밀려나더니, 입으로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냈다.
이 모습에 장내에 있던 무인들이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엽현의 검은 어느새 소잠의 미간 앞에 나타나 있었다.
순공일검(瞬空一剑)!
이제 거의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엽현의 순공일검이었다.
엽현의 검이 소잠의 미간을 겨눈 순간, 장내는 고요해졌다.
말없이 엽현을 노려보는 소잠. 하지만 그의 얼굴엔 두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엽현이 문득 자신의 근처에 서 있던 한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소?”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그러나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소. 최소 중징계, 운이 좋지 않다면 퇴학까지 당할 수 있소.”
‘퇴학이라…’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소잠과 백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를 아는 이들은 나 엽현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덕이 많은 자라는 걸 알고 있지. 나 역시 더이상 일을 키우고 싶지 않으니, 너희 목숨값으로 자원정 이십만 개만 거두겠다. 어때? 너희 목숨과 자원정,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자원정 이십만 개라고?
그 말에 장내 무인들의 표정이 모두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원 안에서 자원정은 매우 귀중하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화탑에서 수련을 하려면 예외 없이 자원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원정이란 것 자체가 매우 희소한 물건이기에, 내원 안에서 자원정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런데 그런 자원정을 이만 개도 아니고, 이십만 개나 요구하다니!
모두의 눈에는 엽현이 그저 날강도로 보일 뿐이었다.
이때, 소잠이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소리쳤다.
“이 돈에 환장한 놈! 차라리 그냥 죽여라! 네게는 자원정 하나도 줄 수 없다!”
“하하, 그래? 그렇게 해 그럼.”
순간, 모두의 시선 속에 엽현의 검이 번뜩였다.
툭.
아주 간단하게, 소잠의 한쪽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선혈이 낭자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정말로 죽일 셈인가!
이때, 엽현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들 그렇게 보시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