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58
358화 얌전히 있었어야지
잠시 후 이 층 존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단 어떤 검으로 할 건지부터 정해.]‘검부터 정하라……. 다소 난감하군.’
현재 엽현에게는 천계 검만 해도 여러 자루가 있었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검이라 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영수검이었다. 하지만, 등급이 너무 낮은 관계로 강자와 싸울 때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엽현은 마침내 암창검을 선택했다.
이는 예전에 전철이 그를 위해 만들어 준 것이었다. 어검 전용으로 사용되는 비검이었다.
이령이 암창검의 검령이 된다면 검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다음은 이 층 존재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령은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반항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일 년만 지나면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던가. 물론 영 미덥지 않은 인간이 한 말이긴 했지만.
자화탑.
자화탑은 모두 여섯 개 층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내원 학생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세 번째 층 이상이었다. 그 아래층은 학생들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다.
자화탑 안의 규모는 상당했다. 각 층의 공간은 거의 작은 성 하나와 비교될 정도로 거대했다.
삼 층의 남쪽. 한 동굴 안에 남자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있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용모의 그는 검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긴 머리카락은 어깨를 스치고 있었다.
이 자가 바로 내원 사대천왕 중 한 명인 남산이었다.
남산의 앞에는 백령과 진봉 등이 도열해 있었다.
백령이 말했다.
“남산, 엽현은 얕볼만한 상대가 아니야.”
남산이 눈을 번쩍 뜨며 대답했다.
“나 역시 지난번 호계맹에서 사람이 왔을 때 들었다. 청창계를 떠나기도 전에 검선에 이른 자. 지금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기대되는군.”
남산의 시선이 백령과 진봉에게로 향했다.
“그나저나 간단히 실력만 확인해 보라고 했건만, 어찌하여 그렇게 무리를 한 거지? 특히 소잠 그 녀석은…….”
백령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엽현의 실력이 진짜인지 간만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엽현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을뿐더러 실력 또한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은 자였다.
“헌데, 소잠을 죽이고도 그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는가?”
“아무것도. 아무래도 학원 내에서 그의 실력과 자질을 높이 산 덕분인 것 같다.”
“확실히… 죽은 자를 위해 살아있는 천재를 내칠 수는 없는 법이지. 게다가 그 영감들은 실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아껴 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와 나, 둘 중에 누굴 선택할 것인지를!”
바로 이때, 중년 남자 하나가 그들을 방문했다.
그는 다름 아닌 원사였다.
“남산, 엽현에게 복수를 하고 싶으냐?”
“원사, 소잠은 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소잠을 죽인 자를 어찌 가만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상부의 명령이다. 이쯤에서 그만두거라.”
“그건 불가능합니다!”
순간 남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순간, 강대한 기운이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나오는 동시에, 주변 공간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한 줄기 신비한 기운이 남산의 손안에 집중됐다.
순간 모두가 집채만 한 눈을 한 채 남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경!?”
원경(源境)은 바로 파공경 상위의 경지였다.
원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선 본원지력(本源之力)을 깨우쳐야만 한다.
천지간에는 무수한 종류의 영력(靈力)이 혼재해 있다. 영기나 암흑 기운(暗能量) 등이 이에 해당한다. 본원지력은 영기와 암흑 기운을 상회하는 힘으로, 이 힘을 통제할 수 있다면 원경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원사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남산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물둘이었다. 이 나이에 원경에 이른 자를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단 말인가?
이때, 남산이 진봉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진봉, 나 대신 가서 말 좀 전해 줄 수 있나? 나 남산은 엽현과 삼 일 후 생사주(生死柱)에서 만나길 바란다고. 패배의 대가는 물론 목숨이라고 말이야!”
“그, 그래! 내가 가서 전하지!”
진봉이 흥분한 기색을 띠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원사 역시 남산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떠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산이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호계맹은 전멸했다. 자세한 내막을 아는 이는 모두 죽었으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창검종 무인들은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호계맹의 멸망이 창검종과 관련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소문에 의하면 창계검주가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엽현은 창검종의 제자였다. 그로서는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남산이 엽현에게 도전장을 내민 소식은 순식간에 내원 전체로 퍼졌다.
그와 더불어 내원 학생들은 누가 이길 것인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도일전(道一殿).
대장로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쪽으로 원사,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사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사가 먼저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둘 중에 누가 죽든 간에, 도일학원로서는 큰 손실임에 틀림없습니다!”
“녀석이 정말 원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대장로.”
“후… 두 놈 모두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놈들이니 막고자 하면 더 큰 일이 터질 것인데…….”
“그래도 두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허면, 놈들이 싸우지 말라고 한다고 그만둘 것 같은가?”
그 말에 원사가 침묵했다.
이때, 한 편에 있던 노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대장로의 말씀이 옳습니다. 놈들은 이미 물과 불처럼 섞일 수 없습니다. 만약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성장하게 된다면, 훗날 그들의 전쟁은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닌 도일학원 전체의 내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둘 중 한 사람을 남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에 다른 무인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아래 두 왕은 존재할 순 없는 법이다. 아무리 둘 다 빼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지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하나를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도일학원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특히 대부분의 사부들은 입학하자마자 끊임없이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엽현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관여하지 않고 둘의 결투를 지켜보는 걸로 하겠소! 싸움이 끝난 후, 누가 더 뛰어난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물론 하나가 반드시 죽어야 할 이유는 없소. 승패만 결정되면 그걸로 족하오. 진 자가 이긴 자에게 승복한다면 가장 좋을 것이고.”
이때, 원사의 입술이 움찔했다.
“원사, 할 말이 있는가?”
“…대장로. 스물둘에 원경이 된 것은 정말 보기 드문 것입니다.”
“허면, 스물도 되기 전에 검선이 된 것은 어떠한가? 걱정하지 말고 이번 결정을 따르도록 하게나.”
“…대장로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물러가고, 장내에는 대장로 홀로 남았다.
천천히 눈을 감는 그의 머릿속에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흑의인의 그 일 검!
그 공포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자면 아직도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 * *
진봉이 엽현의 거처 앞에 나타났다. 그가 소매에서 무언 가를 던졌다. 한 장의 서신이 소과 앞에 떨어졌다.
“엽현에게 전하라. 삼 일 후, 남산이 생사결을 신청한다고.”
그 한 마디와 함께 진봉은 사라졌다.
소과는 손에 들린 서신을 바라보고는 엽현의 방 쪽을 한 번 쳐다보았다.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엽현의 폐관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엽현은 인고의 노력 끝에 이령을 암창검 안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암창검이 온통 붉은색으로 변했다. 고막을 찢을 듯한 검명을 흘리며 미친 듯이 계옥탑 안을 횡보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암창검은 온통 시뻘건 검광을 휘날리며 계옥탑 이곳저곳에 흠집을 내고 있었다.
이를 엽현은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봐, 경고하는데 까불지 않는 편이 신상에 이로울…….”
암창검은 엽현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계속 발작을 해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탑에는 상처하나 내지 못했다.
한참 동안 탑 안에서 난장을 피우던 암창검이 이번에는 탑 꼭대기로 날아올랐다. 세 자루 검을 마주한 암창검이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도전!
이는 분명 눈앞의 검들에 대한 도전이었다.
순간 엽현은 암창검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현재 암창검은 이미 천계를 넘어서서 어느 단계에 도달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탑의 검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윙-
바로 이때, 탑 가운데 박혀 있던 검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리고는!
쾅-!
순간적인 폭발과 함께 암창검이 그대로 탑 밑으로 내팽개쳐졌다.
내팽개쳐진 암창건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엽현이 귀를 기울이니 누군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는 바로 이령의 소리였다.
“쯧쯧… 죽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구나.”
잠시 안쓰러운 표정으로 소령은 암창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시선을 돌려, 영과를 돌보기 시작했다.
소령은 탑 위의 검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천방지축인 그녀조차도 감히 검들을 도발할 자신이 없던 것이다.
암창검 앞에 다가온 엽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게… 얌전히 있었어야지…….”
암창검이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힘없이 엽현의 얼굴 앞에 날아왔다.
이에 엽현이 위로하듯 한 마디를 건넸다.
“지금 약하다고 해서 영원히 약하라는 법은 없어. 한 번 치욕을 맛봤으니 절치부심해서 성장할 일만 남은 거야. 알겠어?”
위잉-
암창검이 알아들었다는 듯 가볍게 몸을 떨었다. 엽현이 웃으며 검신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 층 주민, 지금 이 검의 경지가 어느 정도지?”
[자신의 영을 자각한 검을 일컬어 성계 검이라 한다. 네 손의 있는 검은 이령의 영을 담고 있는 매우 특수한 검이다. 같은 성계 급 검이라 할지라도 감히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을 것이다.]엽현이 가만히 검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전의 암창검 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암창검 앞에 평범한 파공경 강자는 이제 명함도 내밀기 힘들 것이다.
간단히 말해 엽현은 이제 파공경 강자 하나쯤은 쉽게 죽일 수 있었다.
이령은 원래 파공경 강자를 쉽게 해치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만약 엽현의 힘에 이령의 역량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암창검이 더해진다면, 설령 대장로 급의 강자라 할지라도 능히 싸워볼 만 했었다.
원하는 결과를 얻은 엽현은 흡족한 마음으로 계옥탑을 나섰다.
그가 막 방문을 열고 나왔을 때, 때마침 기다리고 있던 소과가 그를 향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도전장?”
“남산이 네게 도전을 해 왔다. 결전의 날은 바로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