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64
364화 지금 나와 장난하는 겁니까?
계약금!
엽현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시렁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납계 하나가 노인 앞에 떨어졌다.
납계를 확인한 노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잘 좀 부탁하겠소!”
상점을 빠져나온 엽현은 곧장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계옥탑으로 진입했다.
엽현의 머릿속에는 자화도 안에서 만났던 신비인이 전해 준 검기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이름조차 듣지 못했지만, 분명 평범하지 않은 검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내 연구에 들어간 엽현은 검기의 가장 큰 특징을 찾아냈다. 칼을 뽑을 때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일검정생사가 신념과 관련 있는 것이라면, 이 검기의 위력은 순수하게 힘과 속력에 좌우됐다.
두 개는 완전히 다른 무기였다.
순간, 엽현의 머릿속에서 두 무기를 합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누가 아는가? 혹시 대단한 발견을 하게 될지?’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그는 곧장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첫발부터 작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검집!
검을 뽑는 발검(拔劍)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검집이 필요했다. 특히, 두 개의 검기에서 나오는 위력을 감당하려면 일반 검집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먼저 이를 견딜 수 있는 검집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엽현은 할 수 없이 두 검기를 융합하는 일은 잠시 접어둔 채, 새로운 검기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룻밤을 꼴딱 새고 다음 날이 되었다. 엽현은 다시 어제 들렀던 태화상회를 찾았다.
그를 맞이한 것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청초한 얼굴의 여자 점원.
“어제 부탁한 물건을 찾으러 왔소. 기별을 넣어 주시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공자.”
잠시 후, 점원이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공자, 죄송하지만, 허(許) 노인이 지금 부재중입니다.”
“음? 분명 이 시간에 물건을 가지러 오겠다고 했거늘 어찌 자리에 없단 말이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 노인에게는 제가 말을 전해 놓을 테니, 내일 다시 들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엽현이 연신 눈썹을 튕기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나섰다.
다음 날, 엽현은 같은 시간에 상회를 다시 찾았다.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점원이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허 노인이 안 계시니 내일 오십시오.”
엽현이 그대로 자리를 피하려는 점원을 돌려세웠다.
“지금 나와 장난하는 건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배인이 지금 자리에…….”
쾅-!
엽현의 발길질에 가게 벽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때, 커다랗게 뚫린 구멍 사이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며칠 전 자신과 대화했던 지배인이었다.
“자리에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엽현이 허 노인이라는 자를 가리키며 묻자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허 노인이 엽현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표정은 매우 평안해 보였다.
“공자께서는 폭력을 행사하러 온 것입니까?”
“천만에! 약속한 물건을 받으러 왔소. 물건만 받으면 곧장 떠날 것이오.”
“물건?”
허 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얘야, 우리가 언제 주문받은 게 있더냐?”
‘뭐라고?!’
“이거 재밌군……. 이제 봤더니 도둑놈 소굴이었구나.”
엽현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살의가 가득했다.
그러자 허 노인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기운이 번뜩였다.
“젊은이가 말을 함부로 하는군.”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허 노인의 뒤편에 여섯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모두 파공경 강자들이었다.
득의양양한 허 노인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
“상회를 박살 내놨으니, 그 대가로 자원정 십만 개를 내놓거라. 그리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자원정 십만 개?’
“십만 개면 되겠는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엽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 노인의 앞에 납계 하나가 떨어졌다.
내용물을 확인한 허 노인이 엽현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만 가봐.”
허 노인의 말에 엽현이 웃으며 퇴장했다.
“왜 후환을 남겨두신 것입니까?”
엽현이 떠난 뒤, 여인이 허 노인을 향해 물었다.
“진 어법경 꼬맹이 하나 죽여서 뭐 하겠느냐? 게다가 만약 복수한답시고 덤벼들면 우리 주머니를 더 채워줄 뿐이니 살려 보내도 상관없다.”
“…….”
한편, 태화상회를 빠져나온 엽현은 도일학원으로 돌아가 즉시 소과 등이 있는 자화탑을 찾았다.
“뭐라고!? 태화상회 놈들에게서 자원정 천만 개를 뺏겼다고!?”
“이런 천인공로할 놈들! 자화정 천만 개가 뉘 집 개 이름이라더냐!”
“태화상회 놈들이 단단히 미쳤군! 감히 도일학원 학생에게 삥(?)을 뜯다니!”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가서 대장로께 우선 알리도록 하자!”
소과가 엽현의 등을 떠밀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형제들, 고작 이런 일로 대장로를 찾아가야 쓰겠나. 이 일은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고! 자, 다들 나를 따라와!”
엽현은 벌써 멀찌감치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소과가 빠른 걸음으로 엽현 곁에 따라붙었다.
“엽현, 태화상회는 결코 만만한 놈들이 아니야. 놈들은 북역에서 가장 큰 상회인 데다가, 재력이나 인맥도 보통이 아니라고!”
“알아, 알아. 지금 우리는 단순히 잘잘못을 따지러 가는 거야.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그 말을 들은 소과는 속으로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단순히 잘잘못만 따지는 것이라면 큰 사태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엽현과 열두 명의 내원 학생들은 태화상회에 도착했다.
갑작스런 무인들의 등장에 태화상회 전체가 술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의 파공경 강자들이 그들 앞에 우르르 나타났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자는 다름 아닌 허 노인이었다.
눈앞의 엽현 등을 바라보는 허 노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모두 파공경 강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엽현은 빼고.
“그러니까, 이들이 자원정 천만 개를 뺏어갔다 이 말이지?”
소과의 말에 엽현이 비분강개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저 노인이 자원정 천만 개를 강탈해 간 놈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허 노인이 어리둥절해하다가 대뜸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 놈…….”
바로 이때, 엽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푹-!
노인의 목에 어느새 검이 박히고 선혈이 사방에 튀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무인들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뻐끔거릴 뿐이었다.
“그냥 잘잘못을 따지러 오는 거라 하지 않았어…?”
엽현이 당황한 표정의 소과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응, 지금 잘잘못을 따지고 있잖아.”
“…….”
장내는 적막감이 가득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엽현이 출수하리라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의 앞에 아직 숨이 남아있는 허 노인 역시 핏발 서린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고 있다.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바로 이때, 점포 안으로 수많은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모두 태화상회의 사람들이었다.
그중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이 사람들을 밀치고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싸늘한 눈빛을 한 채.
“도일학원?”
“그렇소. 우리는 도일학원 내원 학생들이오.”
“어째서 태화상회의 사람을 해친 것이냐?”
“흥, 그 말은 응당 이자에게 물어야 할 것이오.”
흑포 노인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다 죽어가는 자에게 뭘 어떻게 묻는단 말이냐?”
“깜빡했군. 그렇다면 내가 간략히 말해주겠소. 이틀 전에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소. 그리고 이 허 노인이라는 자는 계약금으로 자원정 이십만 개를 받아갔소. 그런데 오늘 이 자는 물건은커녕, 나를 협박해 자원정 천만 개를 갈취했소!”
‘자원정 천만 개라고?’
그 말을 들은 흑의 노인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자원정 천만 개, 확실 하느냐?”
“내가 거짓말할 놈으로 보이시오? 나도 다른 요구는 없소. 내 자원정만 돌려준다면 더이상 소란 피우지 않겠소.”
“허허허… 이거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구나. 감히 우리 태화상회를 기만하려 들다니. 재밌군, 재밌어.”
“설마 배상하지 않겠다는 거요?”
“내가 그렇다고 한다면?”
엽현이 갑자기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형제들, 여기 있는 물건들을 다 털자!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엽현이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본 소과 등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설마 강도짓을 하라는 건가!?’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엽현은 이미 흑의 노인과 한바탕 싸우는 중이었다.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던 중, 소과가 흉흉하게 소리쳤다.
“감히 도일학원을 멸시하려 들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소과 등이 태화상회 무인들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 * *
도일학원의 한 대전.
대장로가 반쯤 엉덩이를 뗀 채 놀란 표정으로 눈앞의 노인에게 소리쳤다.
“그게 사실이오? 그놈이 학생들을 선동해 태화상회를 약탈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미 소동이 크게 번져서 성안의 모든 이가 그리로 몰려들고 있다 합니다!”
“아니,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듣자 하니, 엽현이 태화상회에 물건 구매를 의뢰했는데, 지배인이라는 자가 엽현의 돈을 착복하고 물건은 주지 않았다 합니다. 그런데 놈이 자원정 천만 개를 부른 것은… 아무래도 놈은 처음부터 태화상회를 치기로 작정했던 모양입니다. 간덩이가 부어도 이 정도까지…….”
“그뿐만 아니라 매우 약삭빠르기까지 하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인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는 원래 엽현의 개인적인 일이었소. 그러나 지금 상황은 우리 도일학원 전체가 태화상회에 적대하는 꼴이 되어 버렸소.”
대장로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소.”
* * *
한편, 태화상회에서의 일은 다소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도일학원 학생들이 상대를 압도 해 버린 것이다. 소과 등은 상대를 몰아붙이면서도 엽현이 말한 대로 상회 안의 물건들을 약탈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들이 이렇게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물건을 약탈할수록 점점 탐욕스러운 마음이 그들을 지배했다.
태화상회는 도일성에서 가장 큰 상회였다. 그들이 취급하는 것이 과연 평범한 물건이겠는가? 기왕 이렇게 된 거, 팔자 고쳐볼 생각으로 쓸어 담는 도일학원 학생들이었다.
이때, 엽현을 상대하고 있던 흑의 노인은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겨우 진 어법경에 지나지 않는 애송이인 줄로 알았건만, 엽현의 전투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던 것이다. 그의 마음을 더욱 다급하게 하는 것은 상회 안의 물건들을 그들이 미칠 듯한 속도로 약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였다.
“다들 멈춰라!”
누군가의 호통 소리와 함께 강대한 기운이 장내에 휘몰아쳤다.
사람들이 고개를 드니, 공중에 웬 중년인 하나가 서서 엽현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