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8
38화 난 돈 없다. 술 사 먹을 돈도 없는 판에
엽현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좀 전에 봤던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가 엽현의 머리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엽현은 도저히 여인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직 여자를 품어본 적은 없지만 엽현 역시 달릴 건 달려 있는 지극히 건강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여인이 천천히 다가와 엽현의 앞에 섰다.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엽현은 온 몸이 불처럼 달아올랐다. 머리 속에는 온통 여인의 벌거벗은 몸만 떠올랐다.
강국은 그렇게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다. 강국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순결을 중요시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엽현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고 부끄러웠다.
물론 엽현의 잘못은 아니었다. 자신이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가 이 집 안에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 했겠는가? 게다가 이 벌건 대낮에 벌거벗고 목욕이라니!
방금은 정말 아름다웠다.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엽현의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넋이 나간 엽현을 일깨우는 여인의 목소리.
“너는 누구냐?”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고 눈에는 살의마저 감돌았다.
엽현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엽현이오, 새로 온 학생이오.”
대답과 함께 엽현은 그녀로부터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음란한 상상을 하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 싫었던 것이다.
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그 정도로 별론가?”
엽현이 말없이 두 발자국 더 후퇴했다.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남자를 좋아하는 자라니…. 남자끼리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오?”
“…….”
엽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여인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연민의 시선을 보내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엽현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겨우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서둘러 그 집에서 나온 엽현은 산으로 올라 손에 야생동물 몇 마리를 들고서 돌아왔다.
엽령의 보신을 위해 종종 산을 탔던 엽현이다.사냥은 엽현의 장기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엽현이 창란전으로 돌아오니 예전보다 훨씬 깨끗해진 모습이었다.
막 청소를 끝낸 엽령이 엽현을 보자 그를 향해 웃으며 달려왔다.
“오빠-!”
엽현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들지?”
“아니!”
“하하, 그럼 저기 있는 탁자 좀 닦고 있을래? 오빠가 가서 요리 좀 해 올게.”
그의 말에 엽령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요리!
엽령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엽현이 만든 요리였다. 그녀에게 있어 엽현의 요리는 엽가의 주방장의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반 시진 후, 창란전 내에는 엽현 남매가 낡은 탁자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요리가 서너 개 올라와 있었다.
남매가 서로를 향해 한 번 웃은 후 막 젓가락질을 하려는 그 때!
그들을 이 곳으로 데리고 왔던 노인이 다가 왔다. 그의 전신에서는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고 그가 입은 옷은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누구도 그에게 권하지 않았지만 노인은 굳이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바로 그 때, 한 사람이 또 나타났다.
방금 엽현과 마주쳤던 그 여인이었다.
여자가 아무 말 없이 노인의 옆에 앉아 음식을 바라보았다.
“네가 만든 거야?”
“…….”
엽령이 여인과 엽현을 번갈아가며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여인이 더 이상 묻지 않고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기 시작했다.
“음, 나쁘지 않아.”
그러자 노인 역시 버섯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는 엽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구나! 앞으로 창란학원의 주방은 네가 담당한다!”
염치 없는 노인의 말에 엽현은 순간 욱 했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나갈뻔 한 걸 애써 참았다.
이때, 엽령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런데, 우리 오빠는 학생 아니에요?”
“밥 짓기도 수련의 연장이다.”
“…….”
엽현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어르신….”
“원장! 기(紀) 원장이라 불러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 원장님! 학원이 이렇게나 큰데, 일하는 사람을 좀 두어야 하지 않습니까?”
“너, 돈 있어?”
“헙!”
엽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건, 원장이 하는 거 아닙니까?”
“난 돈 없다. 술 사 먹을 돈도 없는 판에!”
“…….”
한편,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젓가락을 놀리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엽현 남매가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경이로웠다.
그녀는 마치 열흘은 굶은 사람처럼 입 안으로 요리를 쑤셔 넣었고 접시들은 순식간에 비어가고 있었다.
여인이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엽현을 향해 젓가락을 핥으며 말했다.
“더 없어?”
“…….”
그러자 엽령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직 재료가 남았으니까, 내가 가서 씻을게!”
엽령이 대전 밖으로 나가자 엽현이 물었다.
“이 곳은 안전합니까?”
기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하다.”
엽현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원장에게 물었다.
“무릇 학원이라면 공부해야할 장소가 있을 것인…….”
“없어! 그건 알아서 하거라!”
“…….”
“무전(武殿)!”
이때, 여인이 젓가락을 쪽쪽 빨며 외쳤다.
그러자 기 원장이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뒷산에 무전이 있다. 그 곳을 잘 찾아보면 예전 학생들이 남긴 무학심득(武學心得)이 있을 것이다. 운 좋으면 무기(武技) 같은 것도 한두 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 저는 가서 요리나 하겠습니다!”
엽현이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장내에는 여인과 노인만 남았다.
여인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어디서 찾은 놈이에요?”
기 원장이 홍주를 한 모금 들이킨 후 대답했다.
“창목학원에서 주워 왔어.”
“왜 데려 온 거예요?”
“잠재력이 좀 있어서.”
“나 혼자도 충분한데.”
순간, 노인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가 호리병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안지(安之)야! 너는 혼자서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다.”
“그게 내 운명이니까요!”
안지가 대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가족의 육신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영혼은 여전히 그 곳에 있어요.그들을 데려오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안식할 수 없을 거에요. 큰 오빠, 둘째 오빠 그리고 아버지까지…….”
노인이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너는 기가(紀家)의 유일한 혈맥이다.”
“그러니 더더욱 남에게 의지할 순 없지요.”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강국에서 창목학원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안란수 하나 뿐이다…….”
이때, 안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싸우기 전에는 승패는 알 수 없습니다!”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가던 그녀가 입구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기껏해야 창산에 시체 한 구가 느는 것 뿐 아니겠어요?”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대전 내에는 노인이 술을 홀짝이는 소리만이 남았다.
그 날 밤. 엽현은 엽령이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계옥탑으로 들어왔다.
엽현이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녀에게 물었다.
“천녀님, 이제 전 대검수라 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다.]“어째서 입니까?”
엽현은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대검수라 한다면 어찌 검망(劍芒)을 다룰 수 없는 것인가?
[네게 부족한 것은 경지뿐이다. 일단 어기경에만 달하면, 너의 기초, 검에 대한 조예등으로 봤을 때, 무난히 검기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그래도 전의를 깨우치긴 해서…….”
천녀는 그의 말을 끊었다.
[무도(武道)를 알고 있느냐?]천녀의 질문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비록 전의를 앞서 깨우치기는 했지만, 무도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이상, 무도종사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의화형(戰意化形)이 필요한데 너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무도의 기초 지식을 쌓는 것이다. 물론 검도 역시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슬슬 영검을 찾아 볼 때가 되었다.]영검!
엽현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디서 영검을 찾는단 말인가?
만약 돈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사면 그만인데 그는 돈도 없었다.
그러니 엽현은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엽현은 우선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검 외에도 권각(拳脚)을 수련 했는데 그가 전의를 깨친 후, 그의 유일한 무기(武技)였던 권붕(拳崩)의 위력에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전의를 깨우친 권붕의 위력이 이 정도인데 검의를 깨우친 후의 일검정생사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다음 날 아침. 엽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돌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 원장이 그에게 산 아래에서 안씨 성을 가진 여인이 그를 찾는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바람을 가르는 속도로 산을 내려가던 엽현은 창란학원의 비석이 서 있는 곳에 멈춰 섰다. 그 곳에는 티끌 없이 하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란수였다.
“안 소저!”
엽현이 웃으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안란수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갑자기 그들의 눈앞에 태도가 몹시 불량스러운 남자가 건들거리며 걸어왔다. 어깨에 검은 쇠몽둥이를 메고 걸어오던 그 남자는 안란수를 보더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외쳤다.
“아… 아름다워!”
이때, 엽현이 안란수의 앞을 가로막으며 남자를 향해 말했다
“나도 한 미모 하니, 차라리 나를 보시오!”
“…….”
안란수가 말없이 엽현을 쳐다보았다. 남자가 엽현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꼬마야, 넌 좀 맞아야겠다!”
남자가 갑자기 엽현을 향해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이에, 엽현이 전의가 집중된 주먹을 내질렀다.
쾅-!
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신형이 뒤로 십여 장 후퇴했다. 그의 쇠몽둥이가 충격에 떨리고 있었다. 엽현도 마찬가지로 몇 발자국 물러나 떨리는 주먹을 부여잡고 있었다.
남자가 쇠몽둥이를 한 번 쳐다보더니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좀 치는데!?”
그가 다시 한 번 맹렬히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붕-!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쇠몽둥이를 보며 엽현이 아무 표정 없이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가장 간단한 일 권! 권붕(拳崩)!
꽝!
그의 일격을 맞은 쇠몽둥이가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바로 이때, 엽현의 앞에 나타난 한 신형. 그리고 뒤이어 그의 목에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이건 위험하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엽현의 오른손이 가볍게 원을 그렸다.
위잉-!
장내에 중후한 검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그 신형이 뒤편으로 십여 장 날아갔다. 그는 바로 그 무뢰한이었다.
겨우 멈춰선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검수, 너는 검수였구나!”
“아직 더 해볼 테냐?”
“당연하지! 나 묵운기(墨雲起) 살면서 누구를 무서워 해 본적이… 응?”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엽현은 어느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한 줄기 차가운 빛이 지나갔다.
자신을 묵운기라 소개한 남자의 표정이 급변했다.
“너 이 자식, 말하고 있는데…….”
묵운기의 쇠몽둥이가 사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까강-!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퍼지고 묵운기의 신형이 순식간에 십여 장 밀려났다.
엽현은 더 이상 출수하지 않고 안란수 곁으로 돌아갔다.
“못 볼꼴을 보였소.”
안란수가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엽현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묵운기를 향해 소리쳤다.
“아직, 더 해볼 참이냐?”
“물론!”
안란수는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엽현과 묵운기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