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탑 안에 있다고?
노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이내 살의로 바뀌었다.
“엽현, 네가 정녕 이러고도 무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엽현이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노인이 피하지 않고 양손을 뻗어내자, 한 줄기 영혼력(靈魂力)이 엽현을 집어삼킬 듯 나아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엽현의 검이 노인에게 떨어졌다.
푹-!
영혼력을 반으로 갈라 낸 검은 곧장 노인의 이마에 박혔다.
일검정혼(一劍定魂)!
영혼체에 대해 극상성이라 할 수 있는 일검정혼 앞에 노인의 발버둥은 허무할 뿐이었다.
장내에는 무거운 적막감이 흘렀다. 노인의 영혼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너… 어떻게 이런 힘이…….”
엽현은 더이상 노인을 상대하지 않고 뒤에 서 있던 두 흑의인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황급히 달아나려 하는 흑의인들. 하지만 엽현은 그들을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로부터 약 일각 후, 흑의인들은 이미 모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대장로는 말없이 엽현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선을 느낀 엽현이 입을 열었다.
“대장로, 이제 학원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딜 간다는 게냐? 도일학원은 아직 너를 지킬 여력이 남아 있다!”
대장로의 진심 어린 말투에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 하나 때문에 도일학원 전체가 피해를 입을 순 없습니다. 게다가 보물을 지니고 있는 한, 앞으로도 많은 세력들이 몰려와 학원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제가 여기 있는 한, 도일학원엔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입니다.”
“…….”
대장로는 침묵했다.
엽현의 말대로 그가 있는 한 도일학원은 험난한 시기를 보낼 것이 분명했다. 목도일의 시대였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지금의 도일학원은 결코 엽현을 지켜낼 수가 없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문득 물었다.
“대장로, 제 동생은 어디 있습니까?”
“그 아이는 원장이 데려갔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도 알 수가 없구나.”
“그렇군요……. 어쨌거나 제가 학원을 떠나게 되면 독고 가는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엽현이 대장로를 향해 정중히 예를 차렸다.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길.”
“어디로 가려는 게냐?”
대장로의 말에 엽현이 걸음을 멈췄다.
“운성 사부를 찾으러 갑니다. 혹시 운 가가 그를 데리고 천역에 돌아갔습니까?”
“그들은 아직 이 도일성 안에 있다.”
“알겠습니다. 참, 지금부터 저는 도일학원 학생이 아니니, 돌아가시는 대로 그렇게 공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엽현이 더이상 미련 두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대장로의 심정은 착잡했다.
사실 그는 엽현을 붙잡고 싶었다.
엽현의 자질과 실력이라면 도일학원이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에 도일학원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장로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대장로와 헤어진 후, 엽현은 곧장 도일성의 한 주루(酒樓)를 찾았다.
그가 문 앞에 걸음을 멈추자, 노인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와 그를 마주했다.
노인의 가슴에 보이는 ‘운(雲)’자.
상대는 이미 엽현의 방문을 알고 있었다는 듯, 얼굴에 비웃음이 만연했다.
“고작 너 같은 놈이 우리 운 가의 전승을 이어받았다니……. 이거 기가 차고 코가…….”
서걱-!
쓸데없이 말이 많은 노인이었다.
엽현은 노인의 시체를 피해 주루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너무나도 쉽게 운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루 한가운데 얌전히 앉아 있는 운성은 정체불명의 검은 쇠사슬로 온몸이 꽁꽁 묶여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매우 창백했다. 기운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미약했다.
이에 엽현이 재빨리 검을 휘두르자, 쇠사슬이 부서지며 운성의 몸은 자유를 되찾았다.
“사부,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일단 빠져나갑시다!”
“…….”
재빨리 운성을 들쳐업은 엽현은 곧장 주루를 빠져나갔다. 바로 이때,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한 중년인이 있었다.
운성이 희미한 목소리로 엽현에게 속삭였다.
“운룡(雲龍)… 운 가 사대호법 중 한 명…….”
이때, 중년인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운성 형, 그대의 안목도 한 참 멀었구려. 고작 이런 놈에게 제련술을 전수해 줬단 말이오?”
운성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엽현이 상대를 향해 튀어 나갔다.
엽현의 검이 빠르게 날아오는 것을 보고 중년인이 황급히 자신의 도를 휘둘렀다.
쾅-!
폭음과 함께 중년인의 신형이 수십 장 밖으로 밀려났다.
중년인이 재차 자세를 잡으려 할 때, 그의 바로 옆 공간이 찢어지며 한 자루 검이 날아들었다. 이를 본 중년인이 안색이 창백해져 몸을 비틀었지만, 검의 속도가 더 빨랐다.
서걱-!
허무하게 잘려나간 팔이 하늘을 날았다.
오른팔을 잃은 중년인이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편, 엽현이 막 상대를 끝내려는 순간, 등 뒤에 있던 운성이 그를 막아 세웠다.
“먼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엽현이 순식간에 장내를 빠져나갔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운룡은 고민 끝에 그들을 추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대신 전음석 하나를 꺼내 으스러뜨렸다.
* * *
성 밖의 어느 한적한 장소.
운성이 한참 달리고 있던 엽현을 멈춰 세웠다.
“사부, 괜찮습니까?”
걱정스레 묻는 엽현을 바라보는 운성. 그의 눈에는 어딘가 모르게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거라. 나는 운 가 전대 가주의 셋째로 태어났다. 나의 자질은 나머지 형제들보다 우수했고, 내가 이뤄낸 성과 역시 적지 않았으니 응당 내게 차기 가주 자리가 돌아왔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제련에만 심취한 나머지 집안에서 일어나는 권모술수에 취약했다. 결국 가주의 자리는 큰 형에게 돌아가고 말았지.”
운성이 말을 끊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너는 왜 저들이 계속 내 목숨을 노리고 있는 줄 아느냐?”
“화근을 제거해 버리기 위함이 아닙니까?”
운성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가주가 나를 죽이려 하는 진짜 이유는 운 가의 보물인 조화로(造化爐)와 신병도(神兵圖)를 빼앗기 위해서다. 조화로는 가문의 선조께서 우연히 얻은 것이다. 이것으로 만드는 물건은 무엇이든 최상품이 된다. 우리 운 가가 천역에서 그만한 지위를 얻게 된 것은 조화로의 덕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운성이 숨이 가빠 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신병도는 세 가지 신병의 위치를 담고 있다. 이 위치는 오직 가주만 알 수 있다.”
“어떤 신병 말입니까?”
운성이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네 검을 다오.”
선령검을 건네받은 운성이 손등으로 가볍게 검신을 두드렸다. 그러자 검신과 손잡이 사이가 분리되며 그 사이에서 지도 한 장이 나왔다.
“세 자루 신병은 바로 사직인(社稷印), 감천부(撼天斧) 그리고…….”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이름이 없다.”
운성의 시선이 지도에서 엽현의 얼굴로 향했다.
“만약 이 세 신병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성제 현상방의 순위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헌데, 운 가의 사람 중에는 이들 신병을 얻은 자가 없었습니까?”
운성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운 가의 사람은 신병을 찾으러 갈 수 없다.”
“어째서 말입니까?”
“선조의 유지 때문이지. 그분은 그 신병으로 인해 운 가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을 염려하셨다.”
“허나, 정말로 그 누구도 신병을 찾으려 한 자가 없단 말입니까?”
엽현이 궁금한 듯 물었다.
“물론 아니다. 십칠 대 가주께서 신병을 찾아 떠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 이 일이 있은 후, 그 누구도 신병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운성이 말을 하는 동시에, 검의 손잡이를 쥐고 알 수 없는 구결을 외웠다. 그러자 검은색 납계 하나가 손잡이에서 튀어 나왔다. 운성이 납계를 잡아 신병도와 함께 엽현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엽현은 받으려 하지 않았다.
“왜, 겁나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운 가의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사실 나 역시 검 안에 이것들을 집어넣으면서도 망설였다. 하지만 네가 이토록 진심으로 나를 대하는데 어쩔 수 있겠느냐?”
순간, 운성의 눈빛이 번뜩였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훗날 네가 더욱 강해진다면 나의 큰형을 죽여줄 수 있겠느냐? 운 가는 멸망시키지 않고서 말이다.”
“…….”
“어렵겠느냐?”
“그것이 아니라… 어쩐지 그 말이 유언처럼 들려서 말입니다…….”
운성이 빙그레 웃었다.
“바보 같은 녀석. 그럼 내가 살 줄 알았단 말이냐? 나의 몸을 감고 있던 쇠사슬은 탈혼련(奪魂鏈)이란 것이다. 탈혼련에 속박된 자는 천천히 영기를 빼앗기게 되지. 네가 도착했을 땐, 이미 내 영혼은 거의 소멸된 상태였다.”
운성이 엽현의 손에 억지로 신병도와 납계를 쥐여주었다.
“나의 모든 전승은 모두 네게 남겼다. 남은 것은 천천히 네 것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힘들더라도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 한 명의 대장장이가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는지는 천역에 가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운성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사부! 더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제가 도일학원으로 데려가서…….”
운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잘랐다.
“부질없다. 소멸된 영혼은 누구도 다시 회복시킬 수 없다…….”
엽현이 다급히 속으로 소리쳤다.
“이 층 주민! 이거……”
[소용없어! ‘그녀’가 여기 있으면 모를까, 이미 흩어진 영혼은…….]이 층 존재가 말한 ‘그녀’는 천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때, 운성의 나약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죽거든, 이곳에 묻어 주면 좋겠구나…….”
운성이 간신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혼탁해져 생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일생의 소원은 성제 현상방에 들 만한 병기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애석하구나… 이렇게 가게 될 줄은…….”
툭.
운성의 팔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두 눈을 감은 채, 그렇게 운성은 영원히 잠들었다.
엽현의 시선은 그러한 운성의 얼굴에서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한참이 지난 후, 엽현은 양지바른 곳을 골라 운성의 시신을 안치했다.
무덤을 향해 큰절을 올린 엽현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 언젠가 반드시 갚겠습니다. 사부께서는 염려 마시고 평안히 쉬십시오.”
엽현은 운성이 남긴 납계와 신병도를 집어 들었다. 그가 문득 신병도를 펼친 순간,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병도에 표시된 세 번째 신병의 위치가 어떤 ‘탑’ 안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