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그 얼굴
“그곳이라고? 아는 곳인가?”
엽현이 의아해하며 묻자 간자재가 대답했다.
[무간연옥… 오래전 명왕성역(冥王星域)의 명신(冥神)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목적은 바로 그를 대적하던 신족(神族)을 가두기 위함이었지.]“신족? 뭐, 개나 소나 다 신이야?”
[하하하하! 신은 무슨. 다 자신들이 마음대로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그러나…….]간자재의 웃음이 뚝 끊겼다.
[확실히 그런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 강성하던 제천성역(諸天星域)마저 찍어 누른 존재들이었으니.]“음… 그들은 아직도 존재하는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 명왕성역도 사라진 지 오래지.]‘모두 사라졌다고?’
“무슨 일이 있던 것이지?”
[너무 큰 힘을 갖게 되면 스스로를 망치는 법이지. 제천성역을 차지하고서 천하제일이라도 된 양 굴더니 결국엔…….]“…….”
[아무튼 명왕성역에 있던 연옥이 어찌하여 머나먼 미앙성역까지 흘러온 것인지는 나도 의아한 부분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 평범한 물건은 아니란 것이다.]잠시 말이 없던 엽현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럼 계옥탑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대단한 거야?”
[멍청한 놈. 네 머리는 돼지 창자로 만든 것이냐?]“아,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무간연옥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어찌 계옥탑과 비교한단 말이냐?]“왜 안 되는데?”
엽현의 물음에 간자재는 반쯤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잘 들어라. 이 탑은 이쪽 우주에서 온 물건이 아닌, 고도로 발달 된 무도문명(武道文明)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너는 그 진면목을 아직 십 분의 일도 알지 못한다.]‘계옥탑이 그 정도로 대단한 거였어?’
엽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녀의 말대로 그는 아직 계옥탑이 과연 어떤 물건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단 한 가지 확인할 것은 탑의 존재가 그에게는 행운이기도 하지만 불운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밀려오는 의문을 누르면서 엽현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육 층에 다다른 엽현.
이곳엔 다른 곳과는 달리 단 한 마리의 요수만이 감금되어 있었다. 요수는 전체적으로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꼬리는 용의 그것과 같았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 있었다. 마치 잘 벼려진 칼처럼 싸늘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엽현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다음 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이때, 간자재가 말했다.
[천마랑(天魔狼), 신족이 길러낸 괴물이지. 겉모습처럼 매우 빠르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하다.]“음… 내게는 그림의 떡이로군.”
[그래도 주제를 아는구나.]“…….”
엽현은 이미 천마랑으로부터 무상지경 이상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요수를 부릴 수만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맞먹는 일이겠지만, 한참 경지가 낮은 자신을 따를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천마랑이 복종을 거부하고 소란을 피운다면 무인들이 순식간에 달려올 것이 분명하니 엽현으로서는 굳이 시도할 필요 없는 모험이었다.
결정적으로 그의 머릿속엔 엽령을 구하려는 생각뿐이었다.
잠시 후, 엽현은 칠 층에 도착했다. 그가 막 안으로 걸음을 디딘 순간, 음산한 한기가 불어 닥치더니, 동시에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그를 속박했다.
엽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혹시 누군가 자신의 정체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바로 이때, 그의 정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한참 어려 보이는데 대검선이라… 음? 거기다 육신은 이미 용혈로 단련 된 상태로군! 충분해, 아주 충분해. 이 정도면 노부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다!”
“…….”
“뭘 멍하니 서 있는 게냐? 빨리 이쪽으로 오지 않고?”
잠시 고민한 엽현이 결국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감옥 안에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인의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닭장 안처럼 매우 헝클어져 있었다.
노인이 엽현을 훑어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저… 실례지만 뉘신지?”
“이노옴-!”
갑자기 노인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스승을 봤는데 아직도 예를 차리지 않는 게냐!?”
“…….”
“이놈아! 어느 안전이라고 그렇게 서 있는 것이냐? 노부로 말할 것 같으면…… 음……. 일단 살려다오!”
노인이 갑자기 쇠창살을 붙잡고는 애원하듯 소리쳤다.
“나 좀 여기서 꺼내다오. 이렇게 부탁한다! 꺼내주기만 한다면 너를 이 성역의 패주(霸主)로 만들어준다고 약속하마!”
“……혼자 힘으로 나올 순 없는 것입니까?”
엽현의 말에 노인의 표정이 흉포하게 일그러졌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나 혼자 나올 수 있었으면 네게 왜 부탁을 하겠느냐!”
엽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그대를 꺼내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
엽현이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기운을 감추고 있는 것이 혼돈지기 아니냐?”
엽현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렇습니다만?”
“역시… 처음부터 평범한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만…….”
순간, 엽현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혹시, 그대는 신족입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혹시 간자재라는 자를 알고 있습니까?”
엽현이 이런 질문한 까닭은 신황이 간자재가 신역에서 가장 강한 자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때, 엽현의 말을 들은 노인의 표정이 갑자기 크게 변하면서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그녀를 어찌 아느냐? 왜 알고 있는 것이냐? 왜!?”
엽현의 눈썹 끝이 말려 올라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노인의 반응은 점점 더 격해졌다.
“네가 어찌하여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냐! 빨리 말해라!”
엽현이 노인에게 대답하는 대신, 계옥탑 안으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간자재, 보아하니 네 명성이 엄청난 것 같군그래?”
[뭐, 저 정도야…….]바로 이때였다.
“대답해라! 도대체 네가 어떻게 그녀를 알고 있는 건지!”
노인이 재차 목소리를 높이자 엽현이 잠시 고민 끝에 대답했다.
“그녀와 약간의 교류가 있었습니다.”
“교류? 거짓말! 그녀가 뭐 때문에 너 같은 개미 새끼와 교류를 한단 말이냐!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노인이 엽현을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지금 그녀는 어디 있느냐?”
“이번엔 제가 묻습니다. 간자재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
“대답하기 싫으시다면 저도 볼 일이 없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엽현이 뒤로 돌아선 그때, 노인이 말했다.
“그녀는 족장의 딸이었다.”
걸음을 멈춘 엽현의 뒤로 노인의 음성이 계속 이어졌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떨어졌던 그녀는 부족 내에서, 심지어 족장의 눈에도 차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모친이 갑작스레 눈을 감는 일이 발생했다. 그녀는 신궁(神宮) 앞에 삼일 밤낮 동안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모친을 사당에 모실 수 있게 애원했지. 그러나…….”
노인이 잠시 멈추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 왜냐하면 그녀의 모친은 일개 궁녀 출신으로 사당에 오를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간자재는 모친의 시체를 짊어지고 그대로 신족을 떠났다. 그리고 십오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
“그리고는?”
엽현이 호기심이 동해 묻자,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십오 년 후 다시 나타난 그녀는 마치 괴물 같았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족장의 머리를 베어버린 것이다. 그의 머리는 오랫동안 신궁 위에 걸리게 되었지. 그다음부터는 그야말로 살육이었다. 그녀는 닥치는 대로 신족을 죽이기 시작했다. 조상을 모신 사당 역시 그녀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해버렸지……. 그 이후, 원기에 큰 손상을 입은 우리 신족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엽현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간자재가 신족이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라웠다.
그런데 홀로 그토록 강하다던 신족을 멸망시켜 버렸다니…….
엽현은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탑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면 간자재는 이미 자신의 사지를 조각조각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때, 노인이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이후로 그녀의 소식은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노인이 엽현을 향해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는 어디서 그녀를 만난 것이냐?”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엔 답해줄 수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이 노인을 떠나갔다.
노인은 엽현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 다시 불러 세우진 않았다.
팔 층으로 향하는 길,
“원래 신족이었군.”
[너와 무슨 상관이냐?]엽현의 말에 간자재가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네 일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웬 오지랖을 떠는 것이냐?]“하하하, 그냥 궁금해서 그랬다. 왜?”
간자재는 화가 났는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엽현 역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고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팔 층 입구.
입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엽현이 크게 심호흡을 들이킨 후,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연옥의 팔 층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사방에서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빼면 매우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엽현은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안쪽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혼돈지기로 은신한 상태였다.
이때, 간자재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무간연옥은 현재 주인이 없는 상태다. 게다가 보아하니 잠에 빠져 있는 듯하군. 어때, 욕심나지 않나?]“이런 걸 가져봐야 어디에 쓰라고?”
엽현이 시큰둥하게 내뱉자 간자재가 대꾸했다.
[비록 네게 계옥탑이 있긴 하지만, 네가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 무간연옥은 지금 너의 실력으로도 충분히 네 것으로 만들 수 있지. 그렇게 되면 명왕성역으로 들어가서 그것을…….]“명왕성역으로 가서?”
간자재의 말이 중간에 뚝 끊기자, 엽현이 다소 경계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하하하! 구경이나 한번 하라고! 명왕성역은 볼 것이 참 많은 곳으로 유명하지 않나!]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전진했다. 그가 안으로 진입하면 할수록 음산한 기운은 점점 강해져 갔다. 마치 누가 얼음으로 전신을 쑤시는 듯 뼈마디가 시릴 지경이었다.
이때, 간자재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네가 만약 이 무간연옥을 갖게 된다면, 연옥의 힘으로 성역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게다가 탑의 깃들어 있는 사기(死氣)는 일단 방출되면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내가 알기론 탑 어딘가에 한 자루 검이 있다고 하는데, 이 검은 영혼체를 상대로 쥐약이라 하는군. 만약 이 검으로 일검정혼을 펼친다면… 하하…….]바로 이때, 엽현이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정면, 기다란 기둥, 그곳에 한 여인이 묶여 있었다.
여인의 사지는 단단히 고정되어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엽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그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