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393
393화 죽인다!
엽령!
그토록 찾아 헤맸던 동생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모습을 마주하자 엽현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
그의 인생 목표는 엽령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앞의 엽령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증오!
엽현의 마음속엔 독고가에 대한 증오 외에도, 스스로의 무능함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찼다.
이윽고 이 증오심은 서서히 살심(殺心)으로 변했다. 눈앞의 독고열뿐만 아니라, 독고가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짓밟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엽현은 그 생각을 겉으로 드러낼 순 없었다.
그가 거칠게 나올수록 엽령의 목숨은 점점 더 위태로워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엽현 뒤에 서 있던 독고훤 역시 엽령의 등장에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안색이 극도로 차가워졌다.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살기는 실제로 살인이라도 할 수 있을 듯이 지독했다.
엽령을 데려온 중년인. 이 자가 바로 독고가의 가주인 독고련이었다.
처음부터 엽현에게서 눈을 떼고 있지 않던 독고련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족보를 따진다면 내가 너의 숙부가 되겠구나.”
“나 역시 북역에 있을 때부터 독고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천역 삼대세가 중 하나란 독고세가가 어린 여자아이 하나를 인질로 잡고 협박이나 하고 있으니, 대대손손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엽현의 말에 독고련이 웃음을 터트렸다.
“협박? 조카야 네가 우리 혈족의 피를 물려받아 대단한 것은 인정하겠다만,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게 아니냐? 너 정도를 상대로 우리 독고가가 협박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독고련이 이번엔 독고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랑하는 동생아, 그러게 진작 나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그렇게 고집을 피우더니… 어째 이제 좀 후회가 되느냐?”
이때, 독고훤의 표독스런 시선이 독고련의 얼굴에 박혔다.
“아니,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이 일은 나와 독고가, 그리고 고가와의 일이니 아이들은 풀어줘!”
“하하하! 못 본 사이에 농담이 많이 늘었구나? 저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독고련이 곁에 있던 언계와 고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분, 이번 일은 우리 독고가의 일이니 부디 참견하지 말아 주시오.”
고통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 말대로 이 일은 우리 고가와도 연관이 있으니, 이대로 물러날 순 없소.”
독고련의 표정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대들이 우리 독고가가 어떻게 저들을 다루는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독고련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카야, 피차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구나. 보물을 내놓거라. 그러면 네 누이를 풀어주마.”
“하하하!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아는가? 물건을 내어 주는 즉시 살인멸구할 것이 뻔한데 말이지.”
“그런다고 우리가 빼앗지 못할 줄 아느냐?”
“쯧쯧… 내가 이런 곳에 오면서 보물을 몸에 지니고 올 거라 생각했는가? 어떻게 그 머리로 가주가 되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군.”
순간, 독고련의 표정에 살의가 드러났다.
엽현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죽으면 물건은 자연히 미앙궁으로 가게 해놓았다. 자신 있다면 나를 죽인 후에 직접 미앙궁에 찾아가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후후… 이 핏덩이 같은 녀석이… 나를 지금 협박하는 것이냐?”
“협박… 그보단 거래라는 말이 좋겠군. 우선 저 두 사람을 풀어줘라. 그녀들이 안전하게 떠나는 것을 확인하면, 그때 네게 보물을 두 손으로 바치겠다.”
“너를 어찌 믿고?”
독고련이 철창 안의 엽령을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네가 그렇게 동생을 애지중지한다지? 어디 그 말이 사실인지 직접 보겠다!”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독고련이 철창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 순간, 철창 안에 한 줄기 전류가 흘러 들어갔다.
꺄아아아악-!
흰자를 보이며 쓰러진 엽령이 철창 안에서 움찔거렸다.
“독고련!”
이를 본 엽현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독고련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장내에 번뜩였다.
독고련이 여유 있게 웃으며 오른손을 가볍게 펄럭였다.
쾅-!
검광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엽현 역시 백 장 가까이 뒷걸음질 쳤다.
엽현이 공격당한 바로 그 순간, 독고훤의 모습이 사라졌다. 뒤이어 장내에 무수히 많은 백광(白光)이 마치 폭우마냥 독고련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에 독고련이 냉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 공간이 마치 잔물결이 일듯 흔들리더니, 백광들이 순식간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종적을 감췄다.
이때, 사라진 독고훤이 독고련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막 출수하려는 찰나, 독고련이 가볍게 지면을 밟았다.
쿵-!
그러자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울렁거리더니, 독고훤을 백 장 밖으로 튕겨냈다.
독고련이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독고훤을 바라보았다.
“내 가엾은 동생아, 예전이면 모르겠지만, 지금 너는 내 상대가 안 된단다.”
바로 이때, 몸을 추스른 엽현이 표독스런 표정으로 독고련을 향해 소리쳤다.
“독고가!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네놈들의 씨를 말려버리겠다!”
그의 음성과 동시에, 황금색 갑옷이 엽현의 상반신 위에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강대한 기운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잠시 후, 제신황혼이 엽현의 전신을 뒤덮자 엽현에게서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일순간 장내는 경악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독고열을 비롯한 무상지경 강자들 역시 엽현에게서 풍기는 강대한 기운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인정하긴 싫지만, 엽현의 기운은 이미 무상지경의 그것을 넘어섰던 것이다.
독고련 역시 위기감을 느낀 듯 일순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좋지 않다!’
이때, 엽현이 흉악한 미소를 보였다.
“이제 죽어라!”
말과 동시에 엽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쉭-!
장내에 보이는 것이라곤 한 줄기 금광(金光)뿐.
빠르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맨눈으로 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뒤늦게 금광의 궤적을 확인한 독고련이 막 반응하려 할 때, 강대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쾅-!
굉음과 함께 그림자 하나가 떨어져 나갔으니, 이는 다름 아닌 독고련이었다!.
강한 충격을 정면으로 받은 독고련의 육신은 껍질이 벗겨지듯 우수수 부서져 나갔다. 마침내 그가 제자리에 섰을 땐 그는 이미 영혼체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 장면을 보자 장내 모든 무인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독고가의 가주가 이렇게 패한다고?
당사자인 독고련 역시 머리가 새하얘졌다. 초점 나간 시선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대, 대체 이게 무슨…….”
한편, 엽현은 어느새 엽령이 갇힌 철창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전기에 감전된 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이 늘어져 있는 엽령을 보자, 그의 전신에 일던 살의가 더욱 짙어졌다.
“죽인다, 이 개자식!!”
말과 동시에, 엽현이 곧장 독고련을 향해 달려들었다. 엽현의 귀신과 같은 얼굴을 본 독고련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바로 이때, 독고열을 포함한 세 명의 독고가 무인이 엽현을 막아섰다.
삼 인의 무상지경의 강자들!
엽현은 얼굴에 비릿한 미소를 띠며 그대로 일 검을 내리쳤다.
전신을 신비한 힘으로 두른 엽현의 일 검은 마치 천지를 둘로 나눌 듯 매섭게 떨어져 내렸다.
이에 세 무인은 젖 먹던 힘을 다해 출수했다. 순간, 세 줄기 멸천(滅天)의 힘이 엽현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그들의 힘은 엽현의 검에 닿은 순간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뒤이어 검의 정면에 있던 독고열의 육신이 영혼체도 남기지 못한 채 그대로 둘로 갈라졌다.
이를 보자 고통 등의 표정이 크게 변한 것은 물론, 그중 몇몇 무인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엽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곧장 독고가의 나머지 두 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무인이 황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엽현의 속도는 그들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 바닥에 두 개의 머리통이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것도 세 명의 무상지경 강자를 상대로!
이제 장내의 무인들은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사방에서 무인들이 고성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혼란스런 틈을 타 독고련 역시 이미 꽁무니를 뺀 상태.
아직 분노가 식지 않은 엽현이 돌연 고통 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통이 깜짝 놀라 뭐라 말하려는 순간, 엽현의 검은 이미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문답무용(問答無用)!
고통의 눈앞에 황금색 검광이 하늘을 양등분 하며 떨어져 내렸다.
막을 수 없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퍽-!
누구 하나 손쓸 틈도 없이, 고통의 육신과 영혼은 그 자리에서 반으로 갈라져 소멸됐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엽현의 검은 마치 멈출 줄 모르는 섬광처럼 끊임없이 장내를 밝혔다.
한 호흡도 지나기 전, 스무 명이 넘는 원경 무인들이 처참하게 나자빠졌다.
단 일검!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한바탕 폭퐁이 몰아친 뒤, 장내에는 이제 단 한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언가의 언계.
엽현의 시선이 언계의 얼굴에 닿았을 때, 언계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엽현 공자! 우리 언가는 그대에게 그 어떤 악의도 갖고 있지 않소! 정말이오!”
그 말을 들은 엽현이 검 자루를 만지작거렸다. 망설이는 것이리라.
“엽 공자!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시오! 우리 언가는 앞으로 그대 곁에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오!”
영원 같던 침묵이 지나가고, 마침내 엽현이 입을 열었다.
“…가시오.”
“고맙소, 엽 공자! 독고가와 고가는 결코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니 조심하도록 하시오!”
이 말을 끝으로 언계는 부리나케 떠나갔다.
언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엽현이 엽령을 지키고 있던 독고훤을 향해 말했다.
“우리도 가요.”
“무간연옥으로 돌아가자꾸나.”
‘무간연옥?’
독고훤의 말에 엽현이 의아했다.
“왜 그래야 하나요?”
“도망가봐야 얼마 못 가 따라 잡히고 말 것이다. 게다가 너 역시 상처를 돌보는 것이 급선무 아니겠느냐?”
“…그도 그렇군요. 그럼 연옥으로 돌아가요.”
엽현의 시선이 엽령에게로 향했다.
“령이의 상태는 어떤가요?”
“원신에 손상을 입긴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구나.”
독고훤이 엽령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이에 엽현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독고가… 너는 내가 반드시 쳐부수고 만다!”
엽현은 엽령을 안아 들고서 무간연옥으로 들어갔다.
이내 세 사람은 무간연옥 팔층에 들어섰다.
엽현이 막 엽령을 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제신황혼이 사라짐과 동시에 엽현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뒤이어 엽현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면서 마치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연옥 전체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