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어떻게 이럴 수가
깜짝 놀란 두 노인이 곧장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고겸의 눈에 엽령이 들어왔다. 찰나의 순간, 고겸이 눈앞의 엽령을 들쳐업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독고훤이 눈에 살기를 흘리며 추격에 나섰지만, 고겸 등 세 사람은 이미 종적을 감추고 난 뒤였다.
바로 이때, 누군가 독고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 엽현이 서 있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독고훤이 재빨리 엽현의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안 된다! 고가는 독고가보다 훨씬 강하다! 혼자서 가는 것은…….”
엽현이 독고훤의 손을 감싸 쥐며 말을 끊었다.
“나를 건드리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령이를 건드리는 자는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베어버릴 것입니다.”
떠나가는 엽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독고훤은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두 남매는 얼마나 모진 삶을 살아왔을까.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바로 지금처럼 자신이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때가 아닌가.
* * *
막 무간연옥을 빠져나왔을 때, 빛으로 가득 찬 진법이 발동되면서 엽현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순간, 엽현이 발을 강하게 구르자 한 줄기 검광이 지면에서 솟아올랐다.
쾅-!
진법이 부서지고, 웬 노인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노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엽현의 검갑에서 한 자루 음령기검이 튀어 나갔다.
서걱-!
결국 노인은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머리가 잘려 죽었다.
엽현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이번에는 그의 주변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지나갔다.
엽현이 굳은 표정으로 검을 뽑아냈다.
발검정생사(拔劍定生死)!
하늘마저 찢어버릴 듯한 검명소리와 함께 검이 떨어졌다.
쾅-!
거대한 울림 사이에서 누군가가 튕겨져 나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무려 백 장 가까이를 뒤로 밀려난 엽현의 눈앞엔 거대한 골짜기가 생성돼 있었다.
엽현이 고개를 드니 한 남자가 잠잠히 자신을 향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장삼을 걸치고 손에는 창을 들고 있었다. 창신은 온통 붉은 빛이 감돌았으며, 창끝엔 붉은 술이 달려 있었다.
엽현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엔 오만함과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네가 검도의 천재라고? 이 정도론 어림도 없다!”
남자가 엽현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고가의 세자, 고평(古平)이라 한다. 오늘 내가 네게 한 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대신 한 줄기 검광이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순간, 고평의 안색이 급변했다.
빠르다!
고평은 엽현을 얕보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은 채, 발밑을 강하게 굴렀다.
쾅-!
공간이 뒤흔들림과 동시에 그의 손안에 있던 장창에서 화염이 강하게 솟구쳤다. 순식간에 화염의 바다로 변한 공간 속에서 마치 분노한 용이 바다를 뚫고 날아오르듯, 한 자루 창이 모든 것을 꿰뚫어버릴 듯한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검이 떨어지고, 화염의 바다가 기적처럼 갈라지며 창과 검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돌진했다.
쾅-!
충격으로 인해 천지가 크게 진동하는 순간,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 속에서 튕겨져 나갔다.
고평이었다.
고평의 발이 아직 지면에 닿기도 전, 한 줄기 검은 검광이 번뜩였다.
음령기검(陰靈氣劍).
푹-!
창을 순식간에 부식시킨 검은 조금의 자비도 없이 그대로 고평의 목을 관통하며 피를 뿌렸다.
고평의 뒤편에 나타난 엽현.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구부리자 독기를 뿜어내던 음령기검이 다시 계옥탑 안으로 돌아갔다.
“이 검은…….”
고평이 채 말을 잇기도 전, 엽현이 그대로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서걱-!
피에 젖은 머리가 힘없이 지면에 굴러떨어졌다.
무심한 얼굴로 검을 갈무리한 엽현이 잘린 머리를 들고서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떠난 후, 장내에 백색장포를 입은 중년인과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중년인이 말없이 엽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노인이 다가와 물었다.
“왜 출수하지 않으셨습니까?”
“놈의 내력이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오.”
중년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보아하니 그는 곧장 고가로 향한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제 발로 무덤에 들어가는 꼴인데, 우리가 출수하지 않으면 고가에게만 좋은 일이 되는 것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그가 고가와 정면 대결을 할 자신감이 어디서 나온다고 보시오?”
중년인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에게 배후가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가 성제현상방의 보물을 지니고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오. 게다가 연옥 구 층의 요수가 고가와 독고가의 무인들을 모두 죽였는데도 놈은 멀쩡히 살아있소. 이를 보고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소?”
“…….”
“어쨌든, 남무종이 출수하지 않는 한, 일단 관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보물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나, 뜨거운 불을 굳이 맨손으로 만질 필요는 없소.”
중년인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종주, 물론 그 물건이 다소 위험하기는 하지만, 일단 차지하기만 한다면 우리 북무종이 남무종과 성지, 나아가 미앙성궁을 제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후후, 독고가가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보지 못한 것이오?”
노인이 뭐라 대꾸하려 했지만, 중년인이 손을 저으며 그의 말을 막았다.
“우선 저 아이가 고가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지켜보도록 합시다. 고가 삼성(古家三聖)은 절대 만만한 자들이 아니니, 이번에는 놈도 애를 좀 먹을 것이오.”
말을 마친 중년인이 곧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그 뒤를 노인이 황급히 따라나섰다.
* * *
한 시진 후, 엽현은 고가에 귀속된 고성(古城)에 도착했다.
성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엽현. 그의 등 뒤에는 검갑이, 왼손엔 검이, 그리고 오른손에는 피를 뚝뚝 흘리는 머리가 들려 있었다.
이 머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고가의 세자 고평이었다.
엽현이 막 성벽 아래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검갑에서 한 자루 검이 튀어 나왔다.
서걱-!
노인의 머리가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날아갔다.
그러자 이내 엽현의 주위로 고가의 무인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은 곧 서른 명이 넘는 강자들에게 에워싸이게 되었다.
서른 쌍의 눈이 엽현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성안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러나라!”
목소리가 시작된 곳에서 중년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겸이었다.
엽현의 앞까지 다가온 고겸이 웃는 얼굴로 운을 뗐다.
“네가 다시 올 줄 알고 있었…….”
바로 이때, 엽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자 고겸이 미간을 찌푸리며 정면으로 오른손 주먹을 뻗어냈다.
쾅-!
어느새 고겸의 바로 앞에 나타난 검이 주먹에 막혀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검과 권이 대치하는 순간, 그들을 둘러싼 공간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이때, 고겸이 주먹을 살짝 비틀었다.
쾅-!
엽현이 검을 쥔 채 백여 장 밖으로 그대로 밀려났다.
이 충격에 영선검 일부에 미세한 금이 생겼다.
“젊은 나이인데도 대단하군. 하지만 재롱은 여기까지다!”
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고겸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 순간, 엽현 정면의 공간이 흔들리더니 잔상 하나가 순식간에 엽현을 곁을 휙 하고 지나갔다.
빠르다!
육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다.
심지어 엽현의 검안으로도 상대의 궤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순간, 엽현의 몸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 기운의 등장과 함께 엽현 주위의 공간이 바람이 부는 강처럼 잔잔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신황혼!
고겸과 같은 강자를 상대로 엽현은 처음부터 자신의 비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제신황혼을 바라보는 고겸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도대체 그 물건은…….”
고겸이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전방으로 주먹을 뻗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한 줄기 검광이 나타났던 것이다.
쾅-!
검광은 그대로 흩어졌으나 고겸은 그대로 뒤로 미끄러지듯 밀려났다.
백 장 떨어진 곳에 멈춰선 고겸이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먹 위엔 깊은 검흔이 남아있었다.
고겸이 고개를 들어 엽현을 바라보았다. 평온하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고겸은 더이상 아무런 말을 삼간 채, 한 발을 앞으로 강하게 내딛었다. 순간 굳게 쥐어진 그의 주먹 안에 강력한 힘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엽현 역시 검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그러자 검세가 모여드는 동시에 두 개의 검의가 끊임없이 검 밖으로 흘러나왔다.
긴장된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장내에서 사라졌다.
쾅-!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고성의 한쪽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뿐만 아니라, 성문 앞의 대지가 쩍 입을 벌리며 갈라져 나갔다.
이 순간, 엽현과 고겸이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충격의 여파로 두 사람 주위의 공간이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처럼 흔들렸다.
고겸은 시선을 엽현에게 고정한 채, 천천히 오른손을 펼쳤다. 그러자 사방에서 몰려온 본원지력(本源之力)이 그의 손바닥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거대한 본원지력의 덩어리는 한 자루의 창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 순간, 고겸이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쉭-!
고겸이 흐릿한 잔영을 남기고 사라진 그 순간, 엽현이 이를 악물며 전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과 창에 깃든 거대한 두 기운이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
쾅-!
고막을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떨어졌다. 바로 이때, 밀려나던 엽현의 등 뒤에서 한 자루의 비검이 빛보다 더 빠르게 튀어 나갔다.
뜻밖의 기습에 고겸은 피하는 대신 손바닥을 들어 비검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검끝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고겸이 미간을 찌푸리며 황급히 왼손으로 칼날을 만들어 오른팔에 내리쳤다.
서걱-!
그의 오른팔 절반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이때 잘려나간 팔에서 흘러나온 피는 칠흑과 같이 어두운색이었다.
고겸이 엽현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음령지기! 어떻게 음령지기로 검을 만들 생각을…….”
이때, 또다시 엽령의 등 뒤에서 몇 자루의 비검이 날아들었다.
이에 안색이 변한 고겸이 미친 듯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음령기검은 지나는 공간을 모두 부식시키며 고겸을 추격했다.
고겸이 삼백 장 이상을 뒷걸음질 쳤을 때, 어디선가 수많은 광속다발이 나타나 음령기검을 덮쳤다.
콰콰콰쾅-!
세 자루 음령기검들은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