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05
405화 나는 최선을 다했다
콰콰콰쾅-!
갑작스레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지면 사방으로부터 네 개의 검은 기둥이 나타나 구름을 뚫고 솟구쳤다.
이 기둥들이 출현함과 동시에 하늘색도 기이하게 변했다.
“사방신진(四方神陣)!”
지켜보던 여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고가 놈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었구나! 설마하니 호족대진(護族大陣)까지 펼칠 줄이야……. 하지만 진법이 없이는 거룡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 옳은 판단이다!”
곁에 있던 노인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용족을 불러낸 것을 보면 엽현 또한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확실히, 오래전 사라졌던 용족의 출현으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느낌이긴 하군!”
말을 마친 여천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때 두 마리 거룡은 네 개의 기둥이 나타난 후 다소 무거운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순간, 한 마리 거룡이 돌연 아래쪽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대지를 갈라놓을 듯한 강대한 용위(龍威)가 지면을 향해 휘몰아쳤다.
이를 본 고천이 차갑게 웃으며 오른손을 까닥였다.
“기(起)!”
고천의 음성이 떨어지자, 하늘을 받치고 있던 네 개의 거대한 기둥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기둥 안쪽의 공간이 급격하게 일그러지더니, 굉장한 기세로 떨어지던 용위가 일순 소멸됐다.
공간의 왜곡은 점점 더 심해졌고, 급기야 거룡을 강하게 압박해 들어갔다.
이에 공중의 두 마리 거룡이 거칠게 포효하며 자신들을 옥죄어 오는 공간을 향해 몸을 부딪쳤다. 그러자 마치 종말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천지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를 보던 엽현이 황급히 공간도칙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이때, 그가 눈치채지 못한 순간 그림자 하나가 날아와 그를 멀리 날려버렸다.
그를 공격한 이는 바로 고천이었다.
수백 장을 날아가 떨어진 엽현은 육신의 곳곳이 무참히 찢어져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아무리 용혈로 단련했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의 경지의 차이는 그 이상으로 거대했다.
고천이 천천히 엽현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엽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결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거룡을 부릴 수 있는 엽현이었으니, 또 어떤 다른 수를 꺼내 들지 알 수 없다. 이에 고천은 모든 상황에 만전을 기하고 있던 것이다.
한쪽에선 여천이 엽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엽현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거룡들은 여전히 진법 안에 갇힌 상태였다. 비록 사방신진이 거룡들을 죽이는 것은 어렵겠지만, 얼마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엽현에게 더이상 숨겨둔 패가 없다면 죽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고천은 곧 엽현에게서 십 장 떨어진 곳에 멈췄다. 그러더니 천천히 주먹을 말아 쥐고 진기를 끌어 올렸다.
바로 이때, 엽현이 미약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렇게 된 거, 너희 고가와 함께 죽겠다.”
“후후, 이 상황에서도 아직 입은 살아있구나.”
비꼬는 듯한 고천의 말투.
고천이 엽현을 향해 출수하려는 순간, 엽현의 이마 가운데 작고 검은 탑 하나가 출현했다.
[뒷일은 어떻게 감당하려고?]이 층 존재의 말에 엽현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다 죽게 생겼는데 뒷일이 무슨 소용이야. 둘 이상만 데려가도 내가 이득이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한 줄기 무형의 압력이 나타나 장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쾅-!
하늘 높이 솟아 있던 네 개의 거대한 기둥이 그대로 으스러졌다.
엽현의 앞에 있던 고천 역시 무언가에 가격당한 듯 수백 장 떨어진 곳까지 밀려났다.
그 순간 장내의 모든 무인과 거룡들의 시선이 엽현 미간 사이에 나타난 작은 탑에 집중됐다.
엽현은 마치 육신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이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정말 계속할 생각이냐!?]이 층 존재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엽현.
이때, 탑이 엽현의 미간에서 빠져나오더니 그의 머리 위편에 자리 잡았다. 그 순간, 장내 모든 무인들의 머리 위에 희미한 작은 탑이 떠올랐다.
고천과 주변에 숨어 있던 고가의 강자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깜짝 놀란 고천이 온몸의 진기를 끌어모아 탑을 향해 쏘아 올렸다. 하지만 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인 양,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무인들이 당황해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 엽현의 분노 섞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수(收)!”
음성이 떨어진 순간, 장내를 가득 메우고 있던 수많은 고가의 강자들과 고천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한순간에 모두 실종된 것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여천과 노인의 표정은 이미 딱딱해져 있었다. 그 눈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거룡들의 눈동자 또한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엽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탑에 대해 거룡들 또한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한편, 계옥탑 일 층에 모습을 드러낸 삼십여 명의 고가의 무인들은 어리둥절해하며 탑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던 고천이 자신들을 향해 차가운 눈으로 서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소령.
고천이 그녀를 향해 말을 걸려 할 때, 그들 모두의 이마 위에 붉은 글씨로 ‘罪(죄)’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그러자 그들은 마치 밧줄로 전신이 꽁꽁 묶인 것 마냥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황한 고천이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냐! 왜 우리를 가둔 것이냐!”
그 어떤 대답도 얻지 못한 고천은 자신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무인들 또한 서로의 몸을 바라보며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곧, 계옥탑 전체에 절규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비명 소리는 사라지고, 탑에는 삼십여 개의 납계만이 남게 되었다.
계옥탑 외부.
고천 등이 사라지고 난 직후, 엽현은 곧바로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
부작용!
다른 경우들과 달리 이번에 찾아온 부작용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계옥탑으로부터의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독했다.
이때, 엽현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오공은 원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 있었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여천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천이 주춤하며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여천이 적막함을 깨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너를 적으로 삼을 생각이 없다.”
그러자 엽현이 아무 말 없이 고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고성 안엔 여전히 상당수의 무인들이 남아있었다.
온몸을 부들대며 걸어가던 엽현이 성문 앞에 이르러 문득 두 마리 거룡을 바라보았다.
“성안에 남아있는 고가의 무인들을 모두 죽여.”
하늘 위의 두 마리 거룡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그대로 고성을 향해 쏜살같이 하강했다.
콰쾅-!
고성 전체가 대지진을 맞은 것 마냥 흔들리고 처참한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하늘을 채웠다. 이내 고성 전체가 무너지고 그 먼지가 하늘 끝까지 솟구쳐 올랐다.
엽현은 다시 성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이따금씩 안면을 실룩이긴 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미 거룡의 식사 거리로 전락한 인간들의 비명 소리를 뚫고, 엽현은 이내 고가에 당도했다.
고가의 대문 앞에서 소매가 넓은 흑의 장포를 착용한 노인이 그와 대비된 흰 머리카락과 수염을 휘날리며 엽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엽현… 이번엔 우리 고가가 졌다고 인정할 수밖에…….”
“내 동생은?”
엽현이 노인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내 동생은 어디 있느냐 물었다!”
“엽현… 먼저 저 용들을 물려라. 그러면 아이를 놓아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쾅-!
엽현이 오른발에 힘을 주자 대지가 분노한 듯 갈라져 나갔다.
그가 곧 거룡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죽여! 고가의 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여버려!”
“건방진! 고가를 얕보지 마라!”
“내가 너희를 얕본 게 아니라 너희가 나를 얕본 것이었다. 그 대가로 고가는 오늘 씨가 마르게 될 것이다!”
“놈!”
바로 이때, 거룡 하나가 노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를 본 노인이 안색이 변하는 동시에 황급히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 공간이 마치 출렁이는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그곳에서 천지지력과 공간지력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거룡이 돌진해 오자 두 개의 기운은 순식간에 흩어지고 백발노인 역시 미친 듯이 뒤로 밀려났다.
이때, 나머지 거룡 하나가 빠르게 낙하해 고가 전체를 뚫고 지나갔다.
우루루 쾅-!
고가의 가옥 전체가 희뿌연 먼지만 남긴 채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노인 하나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고가도 끝났군.”
“정말 고가가 이대로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겐가?”
그 말에 노인이 고개를 돌려 여천을 바라보았다.
“고가의 저력이 겨우 이 정도였다면 천역에서 어찌 만 년을 버텨왔겠는가? 게다가 고가에는 ‘그’ 가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설마 그자를 말하는…….”
여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슬슬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한편, 두 마리 거룡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파괴했고, 보이는 족족 집어삼켰다. 고성과 고가는 단숨에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대한 기운이 고성 전체에 드리웠다. 두 마리 거룡이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웬 중년인 하나가 하늘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로 고가의 가주, 고천행(古天行)!
고천행을 앞에 두고, 두 마리 거룡의 눈빛이 다소 움츠러들었다.
이를 본 여천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거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이때, 공중의 고천행이 두 마리 거룡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찌 용족이 이곳까지 나타나게 된 건가?”
말과 동시에 그가 오른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작은 황금색 구슬 하나가 나타났다. 그 순간, 무수히 많은 수의 금색 광선이 폭죽처럼 터지며 거룡들을 뒤덮었다.
이에 거룡들이 안색이 변하여 급히 후퇴하려 했지만, 금색 광선이 그들의 육신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더 빨랐다. 순간, 거룡의 전신에 무수한 구멍이 생기며 엄청난 양의 선혈이 지면으로 쏟아져 내렸다.
한편, 엽현은 이미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부작용이 시작된 것이다.
여러 가지의 부작용을 한 번에 겪으면서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넘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때, 거룡들에게 중상을 입힌 고천행이 엽현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이를 본 엽현이 힘겹게 중얼거렸다.
“령아… 이 오라비는 최선을 다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의식을 잃어갔다.
바로 이때, 고천행이 걸음을 멈추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