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07
407화 그가 무엇이 특별하다는 거지?
무간연옥은 구 층이 끝이 아니었다. 무너진 벽 안쪽으로 또 다른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던 것이다.
지하 십 층은 마치 태고 이전의 세상처럼 아무런 빛도 들지 않았다. 그저 사방에서 뼈를 찌르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닥칠 뿐. 더욱이 때때로 들리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속삭임이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이때, 앞장 서가던 간자재가 불쑥 손을 들어 올렸다.
“조용!”
그 순간, 장내가 고요해졌다.
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한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요수가 연민 어린 시선으로 오른쪽 구석을 바라보는 순간, 간자재가 가볍게 오른팔을 털어냈다.
그러자 우측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마침내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간자재의 뒤편에선 독고훤이 엽현을 부축하며 걷고 있었다.
엽현은 마치 아이처럼 약해져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독고훤의 눈가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간자재가 어느 제단 앞에 걸음을 멈췄다. 제단 중앙엔 검은 의자가 있었고, 그 뒤편으로 한 자루 검이 지면에 꽂혀 있었다. 검은 손바닥만 한 너비에 사 척가량 되는 길이였다. 검신은 온통 검은색이었으며, 검 끝에선 희미한 흑광이 발산되고 있었다.
제단 바로 앞에 선 간자재가 검은 의자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명왕(冥王), 오랜만에 왔는데 코빼기도 비추지 않을 셈이냐?”
“그럴 리가 있겠는가!”
컴컴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의자 위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순식간에 응집됐다. 어두운 공간인 데다가 그림자 역시 너무나 검은 나머지 그 형태를 알아보는 것은 어려웠다.
한편, 그림자에 출현에 놀란 요수가 황급히 뒷걸음질 치다가 막다른 길에 막혀 걸음을 멈췄다.
“간자재, 네가 사라진 지도 벌써 수만 년이 흘렀다.”
“하하, 벌써 그렇게 됐나? 그동안 바깥세상이 많이도 변했더군.”
“그렇지… 이제는 신족과 명족도 다 사라져버리고 없으니…….”
간자재가 천천히 제단 위로 올라섰다.
“거두절미하고, 거래를 하나 트고 싶은데…….”
“거래……. 어디 말이나 한번 들어보지.”
간자재가 뒤편의 엽현을 가리켰다.
“일단 저놈이 어떤지 한 번 봐 보거라.”
그 말에 명왕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제자라도 되는가?”
“아니.”
명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역시, 저런 부족한 놈을 네가 제자로 삼을 리가 없지.”
“하하하하!”
그 말에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간자재.
“엽현, 똑똑히 들었느냐?”
“…….”
명왕이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검도에 대한 자질은 나쁘지 않으나, 딱 거기까지군.”
“어이, 그러지 말고 좀 자세히 봐봐. 그거 말고는 없는 거야?”
간자재의 말에 명왕의 시선이 다시 엽현의 몸을 훑었다.
“음… 아무리 봐도 별 특별한 점을 찾지 못하겠다.”
“하하하하하!”
간자재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엽현을 향해 말했다.
“어때, 이래도 아직 네가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녀의 물음에 엽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간자재가 눈을 반짝였다.
“그래? 그럼 어디 네게 어떤 비범한 점이 있는지 읊어 보거라.”
“비범한 점? 그걸 알려줘서 내가 얻는 게 뭐지?”
“너의 운명을 단숨에 바꿔버릴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엽현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너처럼 절대적인 실력을 가진 자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충분히 증명할 수 있지 않나?”
엽현의 대답에 잠시 멍청히 서 있던 간자재가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뻔뻔하고도 훌륭한 대답이로구나! 마음에 들었다!”
간자재가 명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명왕,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면 놈의 특이한 점이 보일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명왕이 반신반의하며 엽현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뭐가 특별한지 알려 줘봐.”
“하하, 할 수 없군. 너도 알다시피 모든 존재에겐 처음부터 주어진 운명이란 것이 있다. 대부분의 자들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지만, 어떤 자들은 운명이 존재함을 깨닫고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려 노력한다. 심지어 개중에는 주어진 운명을 초월하거나, 전생과 미래의 굴레를 끊고자 목숨을 거는 자들도 있지.”
이때, 간자재가 엽현을 향해 돌아서더니 명왕을 향해 현기전음을 보냈다.
[그런데 저 아이에겐 아직 아무런 운명도 주어지지 않았다. 주어진 운명이 없으니, 느낄 것도, 거스를 것도 없는 것이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나?] […그 말인 즉, 놈의 미래가 무한히 열려있다는…?]간자재가 고개를 저었다.
[겨우 그 정도였다면 내 눈에 차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놈은… 사유계의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그 말을 들은 순간 명왕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냐!] [후후, 글쎄……. 무슨 말일까?]순간 장내에 정적이 일고, 싸늘한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
잠시 후, 숨을 고른 명왕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것이 뭔가?”
“저 아이에게 투자해 볼 생각 없나?”
“조금 더 자세히.”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게 너의 진혼검(鎮魂劍)을 빌려줄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지.”
“그건 안 돼!”
명왕이 단칼에 거절하자 간자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구 층으로 돌아간다.”
간자재의 말에 엽현등이 그대로 뒤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명왕의 음성에 간자재가 멈춰 섰고, 그녀를 따라 엽현 역시 제자리에 멈췄다.
간자재가 웃으며 뒤돌아보았다.
“왜 그러는가?”
간자재의 물음에 명왕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설령 검을 내어 준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태로는 검을 휘두르긴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해칠 것이 뻔하다. 무엇보다… 사유계 사람이 아니란 증거가 있나?]간자재가 말없이 엽현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엽현의 이마 가운데서 작은 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순간, 명왕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잠시 후, 명왕이 아무 말 없이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편에 있던 검이 엽현의 앞으로 날아갔다. 순간, 엽현은 검으로부터 범접하기조차 힘든 음산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음령기검 역시 음산하다고는 하나, 이 검에서 내뿜는 기운에 비하면 한참 모자랄 정도였다.
두 검은 완전 급이 달랐던 것이다.
‘내가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명왕의 검을 본 엽현은 검이 두려웠다.
엽현과 시선을 마주치자, 간자재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한 자루의 검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법칙이기도 하다. 만약 네가 그 검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되면 네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지금 나의 상태로는…….”
“왜, 이대로 포기라도 하려는 게냐?”
“그런 건 아니지만 내 몸이 회복된 후에 다시 받으러 오면 안 될까?”
간자재가 엽현에게 한 걸음 다가서더니,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의 선택지는 단 두 개뿐이다. 받아들이던가, 영원히 포기하던가. 어떻게 할 테냐?”
엽현이 잠시 고민하더니 손을 뻗어 진혼검을 쥐었다. 그 순간, 엽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엽현이 깜짝 놀라 검에서 손을 놓았다.
“포기할게!”
엽현은 지금까지 포기란 단어를 사용해 본 기억이 없었다. 한 번 무언가를 포기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습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 또한 알고 있었다.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뤄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엽현은 스스로의 상태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억지로 검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순간 장내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잠시 후, 엽현이 간자재를 향해 말했다.
“실망… 했나?”
“절대!”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엽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간자재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 네가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검을 취하려 했다면 그것은 오히려 바보 같은 짓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지 않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엽현이 포권을 취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때 간자재가 갑자기 자신의 앞 공간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빡-!
그러자 공간에 순식간에 균열이 일면서 그 사이로 암흑기운이 봇물 터지듯 흘러들어왔다. 잠시 후, 간자재가 다시 주먹을 펴자 공간은 다시 원래대로 회복됐다.
간자재가 이번엔 가볍게 손을 털어냈다. 찰나의 순간, 사방의 공간이 마치 잔잔한 호수에 바람이 불 듯 출렁거리며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였다.
잠시 후, 간자재가 손을 내려놓자 공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태로 돌아왔다.
“강(剛)과 유(柔), 이 두 가지 다른 힘은 각기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지나치게 유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강하게 나갈 땐 강하게, 부드러워야 할 땐 부드러워야 더욱 오래 살아남는다. 검도도 이와 마찬가지다. 두 가지가 잘 혼용되어야만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너는 지나치게 강에만 치우쳐 있으니, 유에 관해 잘 생각해 본다면 큰 성취가 있을 것이다.”
엽현이 잠시 무언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나를 도와주는 거지?”
“글쎄… 네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
“하하하! 농담이다. 예전엔 나도 널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
“왜?”
“궁금하다고 다 물어보지 마라.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알아버리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간자재가 검과 명왕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이 검은 명왕이 호의를 베푼 것이니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도록 해라. 그리고 만약 검을 거둔다면 훗날 명왕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엽현이 명왕을 향해 포권을 취해 예를 차렸다.
“고맙소, 명왕!”
“벌써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아직 네가 그 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다.”
말을 마친 명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명왕이 사라진 후, 간자재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길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간자재가 독고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만 나가지. 이다음부터는 엽현 스스로에게 맡겨야 한다.”
잠시 망설이던 독고훤은 결국 간자재를 따라나섰다. 작은 요수는 벌써 일찌감치 사라진 후였다.
이제 장내에는 엽현 한 사람과 검 한 자루,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기이한 존재들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