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뭘 멍청히 보고 있어! 돈 달라고, 돈!
그렇게 묵운기의 비명 소리로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한 창란학원은 이내 정오를 맞았다.
창란전 내부 상석에 앉은 기 원장은 계속 술만 마시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왼편에 앉아있는 기안지는 젓가락만 열심히 핥고 있었다. 기 원장의 오른편엔 대머리 남자가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쇠로 만든 매끈한 염주가 들려 있었다. 은은한 광택이 반짝이는 것이 분명 일반 재질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에는 묵운기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묵운기의 상태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얼굴은 묵사발이 되어 있었고 온 몸엔 선명한 발자국이 군데 군데 보였다. 그런 묵운기를 대머리 남자가 이따금씩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곤 했다.
바로 이때,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날아왔다.
그와 함께 기 노인이 눈을 번쩍 떴다.기안지는 자세를 바로 잡고서 젓가락을 단단히 쥐었다.
엽현과 엽령이 쟁반을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 엽현의 쟁반에는 잘 구워진 닭 요리가 먹음직스럽게 들어 있었다. 엽령이 내온 쟁반에는 푸른 생선 한 마리가 식욕을 돋웠다.
엽현 남매가 요리를 내려놓자마자 기 원장과 기안지가 젓가락을 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전광석화와 같은 손놀림에 대머리와 묵운기는 물론 엽현 남매도 입을 벌린 채 지켜보았다.
기 원장의 움직임은 기안지에 비해서는 그나마 양반이었다.기안지는 마치 도적떼와 같이 눈앞에 음식을 습격했다. 순식간에 닭 뼈와 생선 가시만 남겼다.
넋놓고 쳐다만보던 대머리와 묵운기가 그제야 서둘러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기 원장이 기안지를 쳐다보며 외쳤다.
“천천히 좀 먹거라!”
그러자 기안지가 젓가락을 핥으며 엽현을 쳐다봤다.
“더 있어?”
“…….”
그렇게 음식 쟁탈전은 가볍게 마무리됐다. 탁자 위에 수많은 쟁반들은 이미 깨끗이 비워져 있는 상태였다.
대머리와 묵운기는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젓가락질을 몇 번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엽현 남매가 서로를 향해 싱긋 웃었다.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그들은 이미 요리를 준비할 때 실컷 먹어 두었기 때문이다.
이때, 기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새로 온 대머리, 어디 소개 좀 해 보거라.”
“백택(白澤)입니다. 망산(邙山)에서 왔고 반요지체(半妖之體)입니다.”
백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물론 묵운기에게는 포권 대신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묵운기가 입을 삐죽이며, 애꿎은 엽현을 노려보았다.
“…….”
이때, 기원장의 손가락이 묵운기를 가리켰다.
“묵운기라 하오. 남쪽 변방인 묵진(墨鎮)에서 왔소. 경령체질(輕靈體质)로써 속도 위주의 무기(武技)를 장기로 하오. 곤(棍)과 비도(飛刀)를 사용하오.”
‘비도(飛刀)!’
엽현이 묵운기를 한 번 쳐다보았다.
‘역시, 아직 숨기는 게 있었구나!’
이때, 묵운기가 엽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원장님, 저 놈 차례요.”
기 원장이 눈짓을 하자 엽현이 자기소개를 했다.
“엽현, 청성 엽가 출신이고 대검수요.”
대검수!
기안지와 백택의 눈이 엽현을 향했다. 그들의 눈동자엔 의아함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대검수란 존재는 강국 전체에서도 몇 명도 채 없었다. 더욱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검수에 이른 자는 더욱 더!
“엽현…….”
묵운기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엽현을 바라보았다.
“혹시, 창목학원에서 버렸다던 그 쓰레기가…….”
“쓰레기는 그쪽이구요!”
엽령이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제 아저씨한테는 요리 안 해줄 거예요!”
이에 한 쪽에서 백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
묵운기가 경련이 이는 자신의 뺨을 스스로 때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하하! 동생! 내가 실언을 했구나! 화내지 말고 내 말을 좀 들어봐 응?”
묵운기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지금 창란학원에서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엽현 남매 둘 뿐이다. 그들이 밥을 안 주겠다고 하면 자신은 풀을 뜯어먹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엽령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이때, 기 원장이 말했다.
“맞다. 그가 바로 황성에 명성이 자자한 엽현이다.”
창목학원이 퍼트린 소문이 황성 내에 퍼지면서 엽현의 명성은 순식간에 올라간 상태였다. 물론 나쁜 쪽으로 말이다.
묵운기가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와, 창목학원은 정말 거만하기 짝이 없구나, 너 같은 자도 거절하다니! 창목학원의 문턱이 언제부터 이리 높았던가?”
엽현이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었다.
기 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뒷 산에 오르면 무전(武殿)이 있다. 예전 창란학원의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이지. 너희들은 틈날 때 마다 가서 한번씩 둘러 보거라. 어쩌면 좋은 걸 발견할 수도 있으니.”
“무기(武技)도 있습니까? 아니면 공법(功法)이라도!”
묵운기가 재빠르게 묻자 기 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묵운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기 원장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술 사느라 다 팔아 먹었다.”
“…….”
이때, 기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일년 반, 삼년에 한 번 있는 창란학원과 창목학원의 생사비무까지 아직 일 년 반의 시간이 남아있다. 부디 그때 가서 너희의 시체가 창산에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되도록 산 밑은 내려가지 말도록 해라. 창목학원의 학생들이 너희를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를 괴롭히려 할 것이다!”
기 원장은 말을 마치고선 그대로 창란전을 빠져 나갔다.
이때, 기안지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밥 좀 더 해가지고 와!”
“…….”
반 시진 후, 이제 배가 찬 기안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한 가지 가르쳐 주자면 창목학원에는 두 명의 절대 강자가 있다. 한 명은 분절(焚絶)이란 남자고 다른 한 명은 북신(北辰)이란 여자 아이다. 그들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지만, 능공경, 아니 어쩌면 통유(通幽)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강국 전체에서 이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젊은이는 단 한명 뿐이다. 말 안 해도 누군지 짐작하겠지?”
그들은 모두 기안지가 말한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안란수 말고 또 누가 있으랴!
“그들 아래로는 삼대기재(三大奇才)라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신분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은 각자 특수한 능력을 사용한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 셋이 합공할 경우, 안란수를 상대로도 능히 버틸 수 있다고 하더군.”
이때, 묵운기가 오른 손을 번쩍 들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냥 여기 안들어온 걸로 해주면 안되나요?”
“자살이라도 한다면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아이고오!”
기안지의 말에 묵운기가 탁자에 엎드려 울먹이며 말했다.
“저 망할 노인네한테 완전히 속았어!”
이때, 엽현이 말했다.
“이렇게 다들 모였으니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집중됐다.
“내가 어제 오늘 조사해 본 결과 우리 창란학원에 일용품이 극히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쌀이라던지 변소에서 쓸 휴지라던지 에 또…, 그리고 뭐가 있더라…….”
“아이고 어머니!”
묵운기가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책상에 엎드려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엽현이 이에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자, 내가 시내에 가서 물건을 좀 사오려는데, 돈이 좀 부족해. 그러니까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보태자구! 자, 좀 꺼내들 봐!”
“…….”
기안지 등이 아무 반응도 없자 엽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할 수 없지 뭐. 앞으로는 서로 각자도생하자고. 문제없지?”
이 말에 묵운기 등의 표정이 실룩거렸다.
‘각자도생? 그럼 앞으로 풀이나 뜯어 먹어야받 하는 건가?’
이내 백택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엽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여기, 금화 스무 개.”
엽현이 그 돈을 받아든 후 기안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기안지 역시 엽현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무 초점 없는 그녀의 눈빛에 엽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시 후, 엽현이 손을 내저었다 .
“됐어, 돈 내지마. 가서 일 봐!”
기안지가 대답도 없이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엽현의 눈은 이제 묵운기로 향했다. 묵운기는 방금 기안지가 했던 것처럼 똑같은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에 엽현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뭘 멍청히 보고 있어! 돈 달라고, 돈!”
“…….”
반 시진 후 엽현은 엽령과 함께 산을 내려갔다. 묵운기와 백택도 함께 했다.
이 번에 사야하는 물품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억지로 끌고 온 것이었다.
엽령이 마치 소풍 가는 듯이 깡충깡충 뛰며 즐거워했다.
그런 엽령을 보는 엽현의 표정에는 조금의 근심이 서려 있었다. 지금은 화령(火靈)이 엽령의 한기를 제어하고 있지만 조만간 효력이 끝난다. 그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엽현이 갑자기 품속에서 안란수가 주고 간 검은 옥패를 꺼내 들었다.
‘양계산, 검주동부(劍主洞府)라….’
“반드시 한 번 가봐야겠어!”
엽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엽현의 왼편에는 묵운기가 입에 강아지풀을 하나 물고서 정체불명의 곡조를 흥얼거리며 건들건들 걷고 있었다. 오른편에는 백택이 침묵한 채 땅만 보며 걷고 있었다. 보아하니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인 듯 싶었다.
이때, 묵운기가 말을 걸었다.
“어이 두 사람, 일 년 반 후에 말야. 너희들 자신 있어?”
엽현이 묵운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대답했다.
“겁먹을 거 있어? 그냥 하면 되지!”
묵운기가 엽현을 향해 엄지를 날렸다.
“참, 말을 참 쉽게 하는구나! 근데 만약 지면? 저들과 붙어서 지기라도 하면 시체가 되어서 창산 위에 걸리게 된다구!”
“그러면? 창목학원 앞에 가서 무릎 꿇고 절이라도 할까?”
“에휴, 내가 그 망할 영감탱이의 말에 속아 이 지경까지 왔으니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이때, 묵운기가 백택을 향해 물었다.
“어이, 덩치! 너는 어쩌다 여기까지 굴러온 게냐?”
엽현이 백택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백택이 왜 이런 곳에 왔는지 몹시 궁금하던 차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창란학원에 자진해서 올 사람을 없을 테니 말이다.
백택이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기 원장이 말하길, 내 골격은 타고났고 천질(天質) 또한 총명하다 했어. 게다가 내가 만 명 중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무학기재(武學奇才)니 강국의 평화가 내게 달려있다고 했어.”
엽현과 묵운기가 걸음을 멈췄다. 묵운기가 잠시 목을 가다듬고서 물었다.
“그걸 믿어?”
백택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
백택의 대답에 엽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세상에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 있다니!
묵운기 역시 연민이 담긴 눈빛으로 백택을 바라보았다.
이때, 백택이 되물었다.
“나 무학기재 아니야?”
엽현과 묵운기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백택은 조용히 자신의 민머리만 쓰다듬을 뿐이었다.